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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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을 읽었다. 1937년 연해주 일대에 살던 조선인들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동시켰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요즘 가장 가까운 유럽 여행이라며 블라디보스토크로 짧은 휴가를 다녀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었는데, 그곳 일대에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1900년대 초 기근과 수탈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연해주에 주인 없는 땅이 많아 러시아에서 조선인들에게 거저 땅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몇 달에 걸쳐 그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교통 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그 당시에 소작농의 삶을 살던 이들이 세간을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일제치하에 들어간 조선 땅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척박한 동토의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어느 정도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들에게 스탈린은 다시 강제 이주 명령을 내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넘어 레닌과 스탈린에 이르러 공산주의 국가체제로 변모한 소비에트연방은 몹시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7만명의 강제 이주는 그들이 죽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않겠다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등의 지역으로 강제 이송된 후대에 고려인(카레이스키)으로 불리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김숨 작가의 언어로 다시금 살아숨쉬며 우리에게 그들의 역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다. 
작품은 페르바야-레치카 역에 화물열차에 강제로 태워진 몇몇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여러 등장 인물 중에 주인공에 해당되는 금실은 배가 부른 임산부로 시어머니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남편은 떠돌아 장사꾼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간도 땅에 물건을 팔러 다녀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금실 외에도 여러 등장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 중 상당수가 조선에서 태어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말을 조선말보다 더 잘하고 편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고향이 조선이 아닌 러시아였지만 얼굴은 조선인이기에 그들은 상황에 따라 배척받을 수 밖에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까지 화물열차에 실린 채 사방이 가려진 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한 달 가까이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짐승 취급을 받으며 이동한 터라 열차 안에서 상당 수의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그렇게 죽은 이들을 달리는 열차에서 밖으로 버릴 수 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이 그려진다. 
특히나 금실의 시어머니 소덕은 며느리에게 혹시 자신이 죽거든 시체는 아무데나 버리더라도 자신이 입었던 저고리와 치마는 반드시 챙기라고 당부한다. 저고리와 치마에 주머니를 잔뜩 만들어 곡식과 채소의 씨앗을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씨앗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들의 간곡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소덕은 열차가 잠시 멈추었을 때 소변을 보러 간 사이 다시 열차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한달이 지나 새로운 땅에 도착한 이들은 트럭에 실려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17만명이나 되는 이들을 이동시키려 했으니 아마도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이송시켰을 것이다. 작품의 말미에 굴을 파고 집을 마련한 금실은 아이를 낳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린 채 열차 안에 함께 있던 이들을 떠올린다.
“지난겨울 그녀는 구덩이를 파고, 갈대로 엮은 멍석으로 그 위를 덮어 땅굴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녀의 손톱 여섯 개가 빠져 있었다.(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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