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장류진.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 보다 봄 2020]을 읽었다. 문지에서 분기마다 출간하는 이번 모음집에는 김혜진 작가의 “3구역, 1구역”, 장류진 작가의 “펀펀 페스티벌”,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 이렇게 3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김혜진 작가는 [9번의 일]에서 드러난 계층간의 갈등에 다시 한 번 주목한 모습이다. 마치 프랑스 파리가 구역으로 계층간의 이동과 구별을 보여주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곳도 점차 커다란 인공 다리를 만들어 내가 사는 곳과 너가 사는 곳을 구분지어 계급을 만들고 그 정당함을 뻔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너’가 보여준 길 고양이를 돌보는 착한 마음과 기꺼이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자 하는 너그러운 마음에 끌리다가도, 불현듯 ‘너’가 가진 부유함이나 7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약삭빠른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살얼음처럼 이어진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자 하는 욕구도 치밀어 오른다. 재개발을 시도하는 여러 지역에서 쉽사리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로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깊은 마음의 상처만 얻게되는 반복된 상황도 그저 세입자에 불과한 ‘나’는 온전히 투신하지 못한 채 ‘너’가 말하는데로 끌려가기만 할 뿐이다. 
장류진 작가는 역시나 이번 단편에서도 가독성 높은 글을 보여준다. 주인공 유지원은 세명은행에 신입사원모집에 응시하여 1, 2차 합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3차 합숙 면접을 앞두고 있다. 합숙 면접에서는 2박 3일동안 간단한 강연과 교육을 듣고, 조를 짜서 마지막 날 밤 열리는 ‘펀펀 페스티벌’에서 면접관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보이는 것이다. 지원은 과거 교회에서 밴드 보컬을 했던 경험을 살려 밴드 조에 지원을 하게 된다. 그곳에 가서 보니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자 슈퍼스타 K에도 나왔었던, 지원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도 자주봐서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찬휘가 있었다. 지원은 이찬휘와 더블 보컬이 되어 공연을 준비하지만 자신이 선망해왔던 이찬휘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을 느낀다. 이찬휘가 키보드와 갈등을 겪을 때 중재하는 역할을 하지만, 되려 이찬휘는 지원의 노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면박을 준다. 무대를 마치고 에프터 파티에서 그들에게 다가온 면접관에게 이찬휘는 입에 발린 말을 하며 점수를 땄고 결국 그는 최종 입사 했지만 지원은 떨어지고 만다. 

“그 순간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건 이찬휘가 내 어깨에 함부로 손을 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그 손이 그렇게까지는 싫게 느껴지지 않는 건 나 자신이었다. 젠장, 어떡하지? 아직도 너무..... 잘 생겼어. 분명히 말하지만 이찬휘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형의 반대말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이찬휘는 이제 그것에 가까웠다. 이찬휘 같은 태도, 이찬휘 같은 표정, 이찬휘 같은 말투, 이찬휘 같은 취향, 한마디로 이찬휘 같은 바이브. 모두 내가 꺼리는 것들이었고 사람을 판단할 때 절대적으로 피하는 기준 같은 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찬휘의 모든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다만 저 애의 얼굴과 몸, 그 껍데기만 빼고, 그건 아직까진, 아무리 봐도 싫어지지가 않았다. 그걸 싫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만 자꾸 싫어질 뿐. 나는 누구에겐지 모르게 다급히 변명했다. 껍데기일 뿐이지만 이런 껍데기는 귀하다고.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다고.... 그리고 다시 어딘지 모를 반대편을 향해 외쳤다.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정말 쓰레기야. 난 육신의 노예야. 제발 누가 날 좀 말려.(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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