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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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연 님의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을 읽었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로 런칭한 Like-it의 다섯 번째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처럼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시리즈인듯 하다. 이번 책은 MBC 라디오 피디로 일해온 장수연 님이 라디오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그녀가 피디로 성장하기까지의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과 삶에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일상의 지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준다. 라디오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라디오가 마치 저물어가는 해의 노을처럼 은은한 빛깔만 내뿜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유투브와 같은 개인 방송의 전성시대에, 특히나 보여지는 것이 아닌, 단숨에 임팩트 강한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아닌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라디오의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는 시대이다. 지금은 마치 분주한 일을 할때나, 반복된 일을 하는 BGM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상태이지만 그래도 경쾌한 시그널송과 함께 시작되는 DJ의 희망찬 격려는 고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잊고 지냈던 힘의 원천을 떠올리게 해주고, 잔잔하고 때로는 슬픔이 밀려오도록 만드는 엔딩곡과 더불어 잘자라는,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DJ의 인사는 쓸모없는 말과 행동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후회조차도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습관적으로 어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멈출 수 없다. 
“매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지겹고, 정도든다. 매일 하기 때문에 결국엔 들킨다. 매일같이 차곡차곡 만들어진 이미지, 흐름, 기세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라디오가 무섭다.(38)”
“인생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이 와중에’가 아닐까. 상중에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한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고, 이 와중에 애는 보채고, 이 와중에 돈은 벌어야 하고, 저 남자는 잘 생겼고, 버스 놓칠까 봐 뛰어야 하고 ... 그렇다, 언제나.(51)”
“‘모든 사람은 나빠질 가능성을 품고 산다’는 것. 나는 정말로 이 사실이 무섭다. 누구나 언제든 내가 증오하고 경멸했던 사람들,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한두 번만 눈감으면 된다. 외면은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그게 맞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늙어가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 자체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들이다. 나는 내가 추하게 나이 들까 봐, 조직의 적체된 기성세대가 될까 봐 두렵다. 나빠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거라는 걸 안다.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 핵심은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에 있다. 지적으로 연마할 것, 선택의 순간에 숨지 말고 행동할 것.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처럼 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137)”
“프랑수아즈 사강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 태풍처럼, 해일처럼, 폭우처럼, 폭설처럼,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무지마지한 것들처럼 쏟아져내리는 시간들을 지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에는 딴짓을 하자고 다짐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자고. 내 일과 조금과 관련 없는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오늘의 나를 구원해주길.(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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