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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0년 2월
평점 :
아오야마 미나미의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를 읽었다. 요즘 오랜만에 인강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그런지 제목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순이 넘어서도 그 먼 멕시코까지 가서 홈스테이를 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난 아직 한창이구나 싶은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말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영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멕시코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내용을 소개한다. 생각보다 스페인어 단어와 문법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게, 어학원을 다니며 만난 에피소드이니 당연히 스페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더불어 멕시코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와 독재 정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킬링 필드의 역사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저자에게 문뜩, 일본부터 사과하고 글을 쓰지 라는 반감이 일기도 했다. 이 책을 보니 멕시코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가 소개한 tequila와 비슷한 mezcal이란 술은 agave(용설란)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서, 용설란이 무엇인가 찾아보니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에 나오는 선인장과 유사해 보였다. 용설란의 연관 검색어로 에네켄, 애니깽 이라고 나오는데, 김영하 작가가 말한 검은 꽃인 에네켄은 용설란의 한 종류라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타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한 이들이 멕시코에 도착해서 에네켄(밧줄의 주요 재료)을 자르고 나르는 고된 노동의 삶을 그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멕시코가 우리나라와 아주 무관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학연수에 대한 내용을 보니 당연히 내가 verona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도 함께 공부하며 만났던 학생들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나와 가장 오랜 시간 어학원을 다닌 친구들은 둘 다 일본 학생들이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나처럼 오랜 시간 문법과 회화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는 학생들보다는 2주에서 4주간 정도 여행 겸 어학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많은 유럽인들이 휴가 기간에 오전에는 어학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그 지역을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여유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만 지내다 가는 뜨내기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들과 친교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길게 어학 공부를 할 일본인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Makiko라는 이름의 여학생과 다른 한 명은 Yasuhiro라는 이름의 남학생이었다. Makiko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외대 이태리어학과를 다니다 온 수재였기에, 작문을 꽤나 잘해 언제나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Yasuhiro가 정말 특이한 친구였는데, 그가 이태리어를 배우러 오게 된 이유는 나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Federico Fellini의 영화를 보고 너무나도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Yasu와 친해지고 수업의 회화 중에 들었던 내용에 의하면 지난 몇 년 간 슈퍼마켓에서 벌은 돈을 이 어학연수 기간에 올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활발한 성격이었던지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Yasu는 항상 관심대상이었고, 그에 반해 나는 항상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말이 늘지 않아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만 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로마로 내려갈 때가 되어 Yasu가 홈스테이 하는 집에서 조촐한 송별회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쩌다 독도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짧은 회화실력으로 그런 무거운 주제는 왜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혹시나 말다툼이 생겨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Yasu도 Makiko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다고 하며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고 말해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일본 사람의 과달라하라 어학연수기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