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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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면 어른 된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나라면 기뻐했을 말이지만 지금의 나는 별로 기쁘진 않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크고 멋진 존재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피곤과 알 수 없는 미래에 신음하는 존재 같다. 과거는 마냥 좋았던 순간으로 조작됐다. 이 책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좀 더 유익한 시각을 가질 수 없는지 근대 일본의 대표 인물들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나쓰메 소세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는 일본에 서양 문화가 들어오던 때이다. 그는 그 엄청난 파도 속에서 일본 본연의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오는 고독감과 같은 감정들은 지성이 되었고, 그때와 다른 지금 이 시대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특히, 소세키는 자기 본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은 곧 소세키 스스로를 꿋꿋이 견디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현대에서 ‘개인주의’라는 말이 ‘이기주의’나 ‘제멋대로 행동하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세키의 개인주의에는 이런 이타성과 타인을 거절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있다. (P. 55)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차이점을 명확히 서술한 것 같다. 이기주의는 '나만 생각하는 것'이고, 개인주의는 '나를 중점으로 생각하되 타인을 곁에 두는 것', 이타주의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심의 우선순위만 다른 세 개의 가치관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를 표방한 소세키가 자기 본위를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기 본위가 가장 필요한 곳은 직업이다. 소세키는 인간이 일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자급자족할 수 없는 무언가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p. 57) 라고 말한다. 이 속에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하나라도 있으면 직업과 상호교환 관계를 유지하라고 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직업은 단순 알바나 봉사와는 달라 꾸준히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적 요소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본질을 유지하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과정, 그것이 소세키가 말하는 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세키가 유학을 가서도 적응을 못한 것은 어쩌면 안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교양을 갖추면 단기적으로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사를 알고, 사고의 기본을 습득하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항상 ‘본질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연습할 것, 이것이 지성을 갈고닦는 기본 트레이닝이다. (p. 194)


교양을 갖추라는 말은 자신을 흔들림에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는 일침인 것 같다. 내 사고를 단순히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고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지속적으로 돌아보려는 노력은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면, 더 나아가 내 삶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후회로 점철되지 않기 위해서 지성을 갈고닦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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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B - 역경에 맞서고,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삶의 기쁨을 찾는 법
셰릴 샌드버그.애덤 그랜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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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와 <린 인>의 저자 '셰릴 샌드버그'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회복 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표현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즉, 회복 탄련성이란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겪은 후 얻게 되는 긍정적 성장을 말한다. 셰릴 샌드버그는 우연한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겪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변화해간 과정을 서술하며 책을 시작한다. 읽다 보면 회복 탄력성 그 자체를 강조하기보단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정신적 충격을 준다고 한다.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은 자책감과 후회를 동반한다. 그녀 역시 남편을 잃었을 때, 이 과정을 겪었다. 남편이 없는 미래는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했고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렸다. 하루아침에 아빠가 사라진 아이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만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준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애덤 그랜트다. 그녀는 자신이 부적절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애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애덤은 그녀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고 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슬픔의 5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해하는 네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한다. 하지만 요즈음 전문가들은 그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아니라, 정도가 오르내리는 ‘다섯 가지 상태’라고 본다. (p. 78)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의 감정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격렬한 감정 상태일 때, 이성을 갖고 보자는 말은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때 나의 감정이 당연한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 주는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중요함을 느꼈다. 실제로 셰릴 샌드버그는 자신 주변의 몇몇에게만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들을 '오프너'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친구들과 달리 오프너는 질문을 많이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대답을 귀담아듣는다.
(P. 52)


 

그녀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슬픔을 이겨내고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내용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어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비슷한 사례들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 역시 감정의 블랙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회복 탄력성은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산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연민은 중요했다.

흔히 자기 연민하면 나에 대한 애틋함, 안쓰러움을 갖는 부정적인 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도록 하는 과정이라 표현한다. 누군가 사망하게 되면 그동안 못해줬던 것, 쓴소리 했던 것, 사건 당시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 등에 자책감을 갖게 되는데 이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기 연민이었다.


자기 연민은 흔히 자책감과 공존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세워 스스로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자기 연민은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위자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P. 84~85)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은 슬프지만 그녀에겐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회복해가며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현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읽고 나니 내가 감정을 어떻게 지각하는지와 주변의 지지가 회복 탄력성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내 옆의 빈자리도 사람으로 채워지고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간다. 사라져도 내 인생은 살아내야 한다. 슬픔으로 점쳐진 하루하루를 살기 보단 웃을 수 있는 하루가 길어지는 삶을 떠난 사람들도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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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은 날 - 농부라고 소문난 화가의 슬로 퀵퀵 농촌 라이프
강석문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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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이란 누군가의 희생과 땀의 결과라는 걸 또 깨닫는다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농사는 참 어렵고도 힘든 일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먹는 모든 농작물은 농부의 땀과 노력이 가득 베인 소중한 것들이다. 비단 농작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이나 행복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농촌 라이프에서 알 수 있다. 화가이자 농부인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하는 농촌 생활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자신은 아버지의 쫄병이라 말하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농부로서의 가치관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본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최대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밖에 심어 놓은 채소들을 먼저 생각한다. 어렸을 때,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행동들을 지금에서야 이해한다. 꽤 부유한 집안에 속했다는 저자는 어렸을 때 시장에 나가 농작물을 판매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는 그저 자신이 힘들게 일군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들인 희구에게도 이런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진다. 비가 오면 전을 부쳐먹는 소소한 삶이 제목처럼 "딱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농촌 생활은 생각처럼 여유 있지는 않다. 농번기가 아니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것 같지만, 농번기가 아닌 시기엔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고, 병충해에 대비해야 한다. 퇴비를 뿌린 날엔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냄새로 망쳐진다.

책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익살스러운 그림이 함께 덧붙여 있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딱 그의 모습 같다. 상상과 같은 하루하루는 아니지만 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행복해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자를 보며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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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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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님의 글과 한성옥님의 그림이 결합된 그림책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는 나무 그림이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그림책은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시의 특유의 서정적인 느낌을 그림이 듬뿍 담아준다. 인생의 흔들림을 나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공감이 가고 지금 계절의 감수성마저 자극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여러 차례 흔들림을 겪는다. 별거 아닌 산들바람부터 큰 태풍까지 우리는 이리저리 꺾인다. 바람에도 온도차가 존재해 여름의 습한 바람인지, 겨울을 알리는 날카로운 바람 인지에도 영향을 받는다. 흔들리는 나 자신이 밉다가도 살면 다 겪는 일이거니 하며 넘어가는 성숙함이 생기기도 한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서있는 나무의 모습과 흔들림이 멈추고 오색빛깔 단풍물을 들인 나무의 모습이 대비된다. 불안한 시간이 다시 안정된 시간이 다가옴을 말하는 것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짧은 문장에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흔들리지 않기 위해 흔들린다는 말이 와닿는다. 따뜻한 햇볕만 있으면 갑작스러움에 대처할 수가 없다. 우리는 다른 흔들림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의 흔들림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흔들림 끝엔 우리가 꿈꾸던 것들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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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1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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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나에게 특별하다. 바로 내가 태어난 달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작이 된 이 달은 쓸쓸하고 추운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가을의 끝자락이라 심적으로 늘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생각에 내 지난 10달을  애써 후회해보기도 하고 관계에 권태기가 찾아와 친한 친구도 멀리하고 싶은 감정이 몰려오기도 한다.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이 날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런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일까 이번 샘터는 나눔과 공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심야약국을 운영하며 24시간 불을 켜놓는 김유곤 약사부터 시작해서, 책을 공유하는 민립 중앙도서관 이야기, 카피에서도 느낄 수 있는 배려와 유머, 정혜윤 PD에게 빛나던 한 마디를 건넨 친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민립 중앙도서관은 집에 쌓아두고 안 읽는 책을 공유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서비스이다. 도서를 맡기는 키핑(keeping)과 내 책을 빌려 가면 쌓이는 크레딧(credit)을 통해 운영되는데 이 크레딧은 현금으로도 환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서로의 책이 망가질까 우려도 됐지만 사람들은 내 책인 듯 소중히 다룬다. 서로의 마음이 모인 책꽂이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별자리를 만들자. 위대한 개인이 되지 말고 위대한 관계를 만들자."
깜빡깜빡 반짝이는 별 밭에서 캐내고 싶은 빛이 있다면 바로 그런 말일 것만 같았다. (p. 63)


정혜윤 PD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 말은 나에게도 울림을 주었다. 위대한 관계가 되자는 말은 사람을 져버리지 말자는 말 같았다. 어떤 힘든 순간이라도 그 힘듦의 근원이 비록 사람일지라도 사람으로 치유받자고, 세상에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보다 더 멋진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게는 내 울타리 안 사람들이지만 넓은 세상에는 목소리로도, 연기로도, 책으로도 여러 방식으로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나만의 관계를 그들과 맺고 있다. 별자리는 별과 별 사이를 잇는 길, 여러 방식으로 이은 선은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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