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드렁크 - 행복 지수 1위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미스카 란타넨 지음, 김경영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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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술을 즐기는 것.

그게 바로 '팬츠드렁크'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휴식을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밤, 팬츠드렁크하며 행복해지세요! (p. 11)


'휘게', '라곰'에 이어 또 다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 나타났다. 바로 모든 억압을 벗어던지고 집에서 술 한잔 마시며 빈둥거리는 '팬츠드렁크'. 핀란드에서 유행이라는 이 라이프스타일은 한국의 혼술 문화와도 유사하다. 사실, 쉴 때는 어떤 간섭도 받기 싫다. 꽉 조이는 정장 바지도, 속옷도 숨 막히고,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억압 요소다. 그런데 팬츠드렁크는 이 모든 걸 벗으라고 한다. 집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추레하게 맥주 한 잔과 티비 또는 스마트폰, 책등을 행동반경 가장 가까이에 두고 함께 즐기라고 한다. 이처럼 쉽고 간편한 휴식이 어디 있을까?

 

팬츠드렁크의 휴식효과는 단순한 요소에서 나온다. 편한 옷차림, 적당량의 술, 그리고 가벼운 소일거리. 그리고 필요한 게 하나 더 있다. 팬츠드렁크를 제대로 즐기려면 마음을 열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 한다. 사실 팬츠드렁크는 정신, 감정적인 면에서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하는 명상법인 '마음챙김'과 닮은 구석이 있다. (p. 26~27)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 격하게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팬츠 드렁크는 우리의 요구 조건을 충실하게 들어준다. 이를 다양한 통계자료로 정당화하며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연구결과도 우릴 도와준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만큼 '쉼'에 적합한 것은 없다고! 휴일의 내 모습이 정당하고 올바른 형태라고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

 

 

그럼 팬츠드렁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북유럽의 기상현상과 사회 분위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백야 현상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복지가 너무나도 잘 되어 있는 곳. 하지만 주변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고, 높은 세금 징수로 인해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다. 스펙터클한 한국 사회와 비교해보면 따분하고 지루한 생활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 문화가 탄생했다.

 

 

그들의 문화는 '혼자'를 권한다. 가장 편안한 집안에서 느리게 흘러가 보라고 조언한다. 1년의 대부분을 '누군가'와 함께 보낸다는 점에서 이는 꼭 필요하다. 자기를 돌보는 건,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쉬면서 무언갈 하기보단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고,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직장 또는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일은 삶의 윤활유가 되어준다. 의미를 하나하나 넣다간 억지밖에 남지 않으니 이제 그만!이라고 손바닥을 내민다.

 

 

어찌 됐듯 수고했던 오늘이고, 한 해다. 후회는 잠깐,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멀었다. 현재를 충실히 하다 보면 해결되지 않던 것도 어느새 사라질 테다. 핀란드 사람들처럼 술 한잔 마시며 날려버리자! 즐기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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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말
켄 로런스 지음, 이승열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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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각인된 그룹 비틀스의 멤버이자 'Imagine'이란 명곡을 남긴 가수 '존 레논'.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고, 음악도 비틀스의 1~2개 명곡밖에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존 레논 입문서와 같았다. 각종 인터뷰나 공연장에서 뱉었던 수많은 말들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그를 두고 했던 말을 담은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자서전이다.

 

람들이 생각하는 존 레논은 내 안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허상을 만들고 그것을 진짜라고 착각한다. 우리에게 와서 비틀스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비틀스의 허상에 대한 답이지, 진짜 우리에 대한 답은 아니다. 우리 네 사람이 일상적으로 서로를 대할 때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비틀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끔 호텔 문을 나설 때면 이렇게 장난친다. "난 비틀스 1호 존! 그래! 비틀스 3호 조지. 자! 가자~!" 밖엔 비틀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그냥 장난삼아 그들이 원하는 비틀스로 변신해주는 거다. 코스프레를 하거나 가식을 떨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냥 우리인데, 사람들의 눈엔 비틀스만 보일 뿐이다. (p. 40)

 

거침없는 발언에 구설수에 여러 번 오르내렸던 그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몸을 사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한 당당함이 '존 레논'이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많은 팬과 후배 가수들이 그를 동경했다. 그가 가졌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평화다. 'Imagine'이 평화를 대표하는 곡으로 알려진 만큼, 그는 평화를 위해 평등과 자유를 주장했다. 직접적으로 나타낸 적은 없지만 여기 담긴 수많은 말들은 사람들이 '나다움'을 잃지 않길 바라고, 전쟁이 없는 세계를 꿈꾸었으면 한다.

 

뉴욕에서 존 레논을 만났다. 굉장한 대사건이었다.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 아닌가. 존과 요코를 촬영하던 날, 긴장한 풋내기 사진작가인 나를 그는 편안하게 대해주었고, 그냥 '나 자신'이 되라고 말했다. 어떤 가식도 없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일하라고. 인생에 대한 너무나 멋진 조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늘 '자신이 되는'법을 따라 살아왔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p. 229)

 

존 레논의 팬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무대 앞 관중들을 보며 가장 열정적인 팬은 "제일 앞줄에 있는 저분들이죠!"라고 말해주는데서 느낄 수 있다. 나도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가수가 팬들에게 해주는 말이 고맙다는 뭉클한 표현인 것을 알기에 그때 저 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천상 음악가 같다. 안타깝게도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이며 아버지이진 못했지만 '음악'이란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그는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단 사실은 분명하다. 자신을 믿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번역한 이승열이 그를 '안티 히어로'라 부르고 싶단 마음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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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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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으니 이방인의 마음을 절로 느낀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자가 된 한솔과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친 나미가 기차에서 만나 부산까지 동행하는 이야기는 집단에 속하지 못한 인간의 쓸쓸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한솔의 주민번호는 여전히 숫자 2로 시작된다.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석학 위해 여권을 만들 때, 그는 보통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옥 같은 꿈을 꾼다. 아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설명해야 하는 한솔은 주민등록이란 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상상한다. 주민번호는 신분증이면서 옭아매는 족쇄,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입국심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다 악몽을 꾸는 것 역시 '정체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난 자신이 이방인임을 에둘어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p. 37)

 

나미는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쳐 부산으로 향한다. 누군가 자길 쫓아올 거란 알 수 없는 불안에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용기를 내야하는 그녀는 믿음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한솔에서 말을 건 것은 가장 최악으로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절차인 듯 보인다. 한솔과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다가 마음을 열었던 건 '옆자리 사람'에서 '동행자'로 둘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서 있고 가끔 벼랑 끝에 서 있고 지금도 혼자 있다. 외롭거나 고독한 것, 처참하고 우울한 것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처럼 혼자 서 있다. 혼자 서 있는 사람으로 서 있다. 나는 모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서 있나?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혼자 서 있나? 아니 나는 혼자 서 있고 멀리 다른 혼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p. 92)

 

둘이 같이 타러 갔던 배는 일본과 부산을 오가는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이동 수단이었다. 국가를 넘나들며 머무는 '잠시'의 개념은 '스쳐감'을 뜻한다. 마치 한솔과 나미의 관계처럼, 입국심사에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코 한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이들처럼, 이방인으로 살아갈 우리 존재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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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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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미 비포 유』를 다시 봤다. 존엄사를 다루는 두 작품은 죽음을 결심한 당사자와 가족의 심경을 대변한다. 어느 한 쪽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두 입장 모두 존중할 필요가 있고, '생명'이란 테두리 내에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안락은 10년 후, 한국에서 존엄사가 합법화된 상황이라는 가정하에 진행된다. 지혜의 할머니는 5년 후 죽겠다는 선언을 가족들에게 하신 후, 천천히 자신의 삶을 정리해 나간다. 하지만 가족들 내에서도 찬반의 양상은 뚜렷하고 특히, 지혜의 어머니는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정정한 엄마가 몇 년 후에 죽겠다니 딸의 입장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인 거다.

 

할머니라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마감하는 결정이 쉬운 결정이었을까? 아니다.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은 노인이 되었고 몸은 여기저기서 삐거덕 소리를 낸다. 이제 자신의 몸은 병원을 다니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밖에 없기에 허탈함과 지난날의 무상함이 겹쳐 오셨을 테다. 자신을 간호하며 병수발을 들 자식들의 미래가 뻔히 내다보이기에, 그 꼴은 절대로 보기 싫어서 하루라도 건강할 때,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 인생계획을 세운다.

 

할머니의 죽음이 어떤 느낌일지 처음으로 실감해본 순간은 지혜가 수면내시경을 받는 장면이었다. 지혜는 할머니의 입장을 존중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수면내시경을 했던 단 몇 분간의 기억이 삭제되어 기억나지 않자, 할머니의 죽음도 이런 것일까 실감한다. 주삿바늘을 뽑으며 난동 부렸던 순간조차도 전혀 머릿속에 없는데,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일까 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눈물을 보인다.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 여전히 저토록 깍듯한 어투로 얘기해주는지, 간호사의 변함없는 친절에 나는 감탄했다. 또한 그가 말한 일들이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 몸속으로, 내장 기관 안쪽 깊숙한 곳까지 카메라를 단 호스가 들어간 일도, 그게 겁난다고 혈관에 꽂은 주삿바늘을 뽑아내며 사방에 핏방울이 튀도록 한 만행까지도 깨끗하게 기억이 없다니.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까. 할머니가 맞이하는 죽음이란 이렇게 고통도 기억도 일순간에 지워지는 과정인 것일까. 그럼 그다음은 어떤 게 기다리고 있을까. 몽롱한 기분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찔끔 눈물이 났다. (p. 98)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을 알면, 쉽게 웃을 수 없다. 『미 비포 유』에서 윌은 사지가 마비되어 어느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신은 진짜 내가 아니라서 불행하기에, 불행한 자신을 보는 사람도 불행해질 걸 알기 때문에 선택을 한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저절로 최악을 생각한다. 숨만 쉰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하나라도 스스로 할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삶을 일궈나갈 수 있을 때, 그게 사는 게 되어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한다. 할머니가 이와 같은 선택을 했던 것은 독한 약들과 싸우다 지쳐 간신히 숨만 붙어 있기보단, 마지막 가는 길은 내가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삶을 돌아보고 정진하고 즐기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회 없이 살다 가기 위해 노력하셨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미소를 지으시지 않았을까.

 

나의 할머니 이금래 씨. 할머니는 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유년시절 내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분주했다. 열아홉에 가정을 이룬 뒤에는 세 자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느라,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는 시가의 식당에서 독립해 차린 밥집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또한 여든을 넘기고 가게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곳곳에 탈이 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p.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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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너라는 계절 - 한가람 에세이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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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못해도 사계절은 같이 지지고 볶아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들었다. 과연 한 해를 그 사람과 지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서로 알 수 있는 막역한 사이일까? 주변에 오랜 사랑을 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하나같이 여전히 모르겠고, 사랑이 식어간다고 말한다. 결국 시간이란 사랑의 단물을 빼먹는 괴물인가 싶다.

한가람 작가님은 매일 같이 사랑을 했다. 짝사랑, 어긋난 사랑, 썸, 차인 사랑, 찬 사랑 등 온갖 종류의 사랑이 그녀를 스쳐갔다. 바람처럼 휙, 가버린 마음은 태풍처럼 커지고 나서야 사랑이라고 말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능숙해지긴커녕 더욱 바보 같아지는 것만 같아서 이렇게 글로 적어내려간다. '넌 그런 내 맘 알기는 했니?'라고.

 

너는 나의 여름이었지. 너무 덥고 짜증이 났었는데 도무지 잊히지 않는. 내 생애 그런 여름은 오직 너뿐이었어. 더 이상 내 계절에 여름은 없어. 없어졌어. 네가 나의 유일한 여름. 헤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던 나의 유일한 여름. 괜찮아. 난 뜨거운 건 너뿐이면 족하니까. 참, 나, 인생의 책이 바뀌었어. 좋아하는 색깔도, 음식도. 여름이 그렇지 뭐. 이리 지나가버리면 그만인걸. (p. 109)

 

이상기후가 종종 생기면서 여름에 눈이 오기도 하고 겨울에 한여름의 무더위가 찾아오기도 했던 2018년의 어느 날처럼 기억되는 계절의 한 조각, 그건 바로 너란 사람 때문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작열하는 하는 태양이었는데 냉수를 확 끼얹은 상태가 돼버렸다. 긴 연애도, 짧은 연애도 결국 이별 앞에선 주저앉게 된다. 덜 하고, 더 한 고통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는 걸 알면서도 이리 지나가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남이 돼버릴 테니까.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은 구석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엄마에게 칭얼대던 어린아이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사랑은 금방 잊는다. 쉽게 지워졌다가 사랑 같은 유치한 짓 다신 안 한다고 큰소리칠 때 다가온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시작하는 건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못난 내가 괜찮아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자들이다. 글을 읽다 보니 계속해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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