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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정착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으니 이방인의 마음을 절로 느낀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자가 된 한솔과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친 나미가 기차에서 만나 부산까지 동행하는 이야기는 집단에 속하지 못한 인간의 쓸쓸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한솔의 주민번호는 여전히 숫자 2로 시작된다.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석학 위해 여권을 만들 때, 그는 보통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옥 같은 꿈을 꾼다. 아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설명해야 하는 한솔은 주민등록이란 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상상한다. 주민번호는 신분증이면서 옭아매는 족쇄,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입국심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다 악몽을 꾸는 것 역시 '정체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난 자신이 이방인임을 에둘어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p. 37)
나미는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쳐 부산으로 향한다. 누군가 자길 쫓아올 거란 알 수 없는 불안에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용기를 내야하는 그녀는 믿음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한솔에서 말을 건 것은 가장 최악으로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절차인 듯 보인다. 한솔과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다가 마음을 열었던 건 '옆자리 사람'에서 '동행자'로 둘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서 있고 가끔 벼랑 끝에 서 있고 지금도 혼자 있다. 외롭거나 고독한 것, 처참하고 우울한 것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처럼 혼자 서 있다. 혼자 서 있는 사람으로 서 있다. 나는 모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서 있나?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혼자 서 있나? 아니 나는 혼자 서 있고 멀리 다른 혼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p. 92)
둘이 같이 타러 갔던 배는 일본과 부산을 오가는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이동 수단이었다. 국가를 넘나들며 머무는 '잠시'의 개념은 '스쳐감'을 뜻한다. 마치 한솔과 나미의 관계처럼, 입국심사에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코 한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이들처럼, 이방인으로 살아갈 우리 존재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