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죽은 후, 미련을 풀 수 있는 추가시간이 주어지면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이 책은 사자(죽은 자)를 도와 저세상으로 안전하게 보내주는 사신의 이야기다. 사쿠라는 히나모리의 제안으로 시급 300엔 밖에 되지 않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추가 수당도 복리후생도 잔업과 스케줄 조정도 안되는 사상 최악의 아르바이트! 사쿠라는 이상한 꾀임에 이끌려 일을 시작하지만 점차 사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후회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돼간다.

 

 

사자들은 죽기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자로 보낸 추가시간이 종료되면 그때의 기억과 추억은 사라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에 사자는 추가시간이 생겨 자신의 한을 제대로 풀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연명하는 삶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자신이 내가 이렇게 보낸 시간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란 상실감이 찾아오기 때문에.

 

 

사자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아픈 동생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편지를 찾는 남자, 바람피운 남편을 증오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걱정하는 여자 그리고 히나모리. 모두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가려 하지만 결국 지나가버린 것들은 죽어서 손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신은 '사라짐'이 전제된 시간을 왜 주었을까? 아마 나 자신을 직시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미련은 아직 후회하고 아쉬운 점이 남았다는 뜻이다. 복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욕심을 위해 쓰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간절하게 가졌던 마음이 미련임을 알아보라고 준 시간이다. 답은 모두 사자 자신에게 있었다. 히나모리와 사쿠라는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사신인 그들조차도 일련의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결국 잃는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분명 아주 의미 있는 일이겠지. 슬픔을 없앨 수는 없어. 하지만 슬픔을 능가할 행복을 찾아낸다면 분명히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야.아사쓰키한테 배웠는데, 과거에 괴로워하기보다 내일에 희망을 품어야 행복해질 수 있나 보더라고. 우리도 마지막으로 그런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자." (p. 294~295)

 

 

내일의 희망을 품어야 행복하다는 말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숨을 불어넣지 않으면 그게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용기를 베푸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혹시 아나? 내가 용기를 내었다면 그 사람이 살아있을지도. 사쿠라가 사신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은 소원지를 다른 사자를 위해 사용했던 것처럼, 그 사자가 행복해졌던 것처럼 우린 서로에게 행복을 건네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어떻게 나에게 왔니 - 500days in Ireland
김민수 지음 / 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밭이 날리던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은 이 책은 감동을 주었다. 민수와 올리버의 500일의 우정 이야기는 진심으로 가득 차서 눈물샘을 자극했다. 아일랜드와 한국까지의 거리만큼 멀었던 둘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졌던 건, 같이의 가치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머릿속은 이제 네가 아니면 내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한 번 외국에 나가 보고 싶다는 마음에 아일랜드의 한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활을 시작한 민수. 그의 첫 시작은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었지만, 올리버를 만나고서부터 주고받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는 결과로 이어진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져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 올리버는 간혹 간질발작도 일으켜 잠잘 때 숨 쉬는 소리조차 주의해야 하는 친구다. 그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지체 없이 달려가야 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그의 일상을 나의 일상처럼 소중히 다뤄야 한다.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올리버가 민수를 처음 마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부러 못되게 굴고, 틱틱되며 민수를 난감하게 만든 올리버의 행동은 그동안 떠나간 봉사자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올리버에겐 역시 예정된 이별을 꼬리표처럼 달고 온 민수에게 마음을 내어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민수에게 마음을 연 것은 한 번 더 빤히 보이는 결말을 받아들이겠단 표시였다.

 

 

내 곁을 지켜주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 다시 속아보자는 생각에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할 테지만 쉽게 내키는 상황은 아니었을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이 상황을. 언젠가 이별이 다가오는 상황을 알면서도 나의 곁을 지켜주는 새로운 봉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는 다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p. 103)

 

 

친해진 후로, 둘은 티격태격 형제처럼 생활한다. 서로의 마음을 여전히 모르겠는 하루도, 잘 해준 것 같은데 알아봐 주지 않는 것 같아 느끼는 서운한 감정도, 나의 실수로 위험한 상황에 빠트린 것 같아 눈물이 나는 미안한 마음은 벽을 허물게 만들었다. 나를 네가, 내가 너를 치유하는 마법을 본다. 올리버가 배를 쓰다듬어 줄 때, 민수가 느꼈던 어지러운 심경을 나도 알 것만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배를 쓰다듬는 건 미안하다는 우리끼리의 수화이거든요.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 나도 미안해, 하며 안아주고는 불을 끄고 방을 급하게 나와 문 앞에 서서 엉엉 울어버렸어요. 나를 알아주던 친구가 참 고마웠고 감정을 들켜버린 제가 부끄러웠어요. 당신을 도와주려 애쓰는 사람은 나인데 정작 언제나 치유받고 돌아서는 사람은 저였던 거예요. 너는 내게 기적 같은 매일을 선물해주고 살아가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구나. 너는 나를 그렇게나 이해할 수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구나.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 같아요. 미안하다는 올리버의 손짓이 눈에 아른거려 오던 잠도 달아나버린 그런 날이었어요. (p. 91)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은 마음에 관대해지는 시간이었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생활해도 강요하는 이도, 명령하는 이도 없는 자유 속에서 스스로 선을 지키고, 사람을 대한다. 스트레스가 있어도 부정적인 발화로 이어지지 않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해결된다. 새 언어를 배우면서 부정 표현이 없었다는 건, 행복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행복의 증거는 내게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했던 나는 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영어를 배웠는데, 끝내 ‘원망’ ‘절망’ ‘이기’ ‘복수’ ‘질타’ 같은 단어들을 들은 기억은 없다. (p. 47)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민수가 걱정했던 건 올리버의 감정이었다.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할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만큼 아픔을 줄 수 없어서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그는 다시 아일랜드로 향하는 비행기를 끊어 올리버에게 간다. 올리버가 그를 알아보고 안아줄 때 나도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여전히 너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에.

 

세상은 늘 정직함이 최선인데 그것이 쉽지는 않아서 그럴 때면 주변에서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에게 마을 사람들은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고, 나의 오기들은 그렇게 용기로 변해갔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의 용기라는 것이 특별히 대담하거나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조금 덜 생각하고 옳은 것에 대해 실천으로 옮기는 하나의 움직임일 뿐 사실 모두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p. 190)

 

 

그는 평범한 사람에서 수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만이 대담함이 아니라 결심한 일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용기이며, 하나씩 다짐을 깨 나갈수록 겁쟁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는 용기 속엔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고, 국경과 나이, 거리를 초월한 사랑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컷 : 북디자이너의 세번째 서랍
김태형 외 지음 / 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에서 나를 위한 책을 고르는 일은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책들이 일렬로 서가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나도 이런 서가를 갖고 싶다는 로망이 생긴다. 하지만 모든 책을 사서 들여놓을 수는 없는 법! 이 중 단 몇 권의 책만이 선택된다. 면접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과의 첫인상도 중요한 선택 조건이다.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건, 책 표지다. 책의 얼굴인 표지는 각양각색으로 겹치는 느낌이 없다. 그 해의 유행에 따라 몇몇 익숙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이 있긴 하지만 다수의 책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책의 얼굴을 만드는 사람을 우린 '북 디자이너'라 부른다. 그들은 책의 내용, 분위기와 느낌을 독자에게 와닿게 하기 위해 파주 어딘가에서 종이를 고르고, 시안을 만들고, 글자를 써본다. 그럼 이들은 어떤 일을 주로 하고, 디자인이란 예술적인 일을 어떻게 삶에 불어넣고 있을까? 책을 좋아하면서 저절로 출판에 관심이 많아진 터라 디자인이 세계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다.

 

 

환상과 꿈을 안고 시작한 독서는 완독 후, 와장창 깨진 현실을 마주했다. 현직 디자이너가 말해주는 북 디자인의 현실은 '좋아하는 일이 생계가 된다면'이란 생각에 미쳤다.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위해 감수를 밤낮없이 하고, 편집자와 작가와 의견이 일치되는 디자인을 생각해야 한다. 때론 고생한 결과물이 반응이 없을 때도 있다.

 

의사처럼 고유의 영역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고 그들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게 진정한 전문직일 텐데, 북 디자인의 영역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개입한다. (p. 91)

 

 

디자이너마다 가치관과 색깔이 다르지만, 결국 책을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p. 215)

 

 

북 디자인은 개인의 개성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책이 빛이라면 디자이너는 그림자다. 이들은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빛이 더 빛나도록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업물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의 수정사항이 오가고, 위축되는 출판시장에서 예산 문제에 직면한다. 디자인과 편집자, 마케터, 작가 각각은 고유한 영역을 지닌 전문직인데 서로가 손쉽게 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조건에 부합하게끔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북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아쉬운 점이 있다. 북 디자인은 프로세스 자체가 폐쇄적이다. 때문에 디자이너 간의 소통이 많지 않다. 또래 디자이너나 선배들과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나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했지만, 우리가 만들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p. 33)

 

 

다시 말해 완성도라는 것은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으로 성취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부합하는 일련의 방법들을 찾아내고, 선택의 과정들이 지시하는 최선의 완결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다. (p. 47~48)

 

 

책에서 인터뷰 한 북디자이너들은 한 사람인 듯, 프로세스의 폐쇄성, 예산 및 소통 등의 문제를 똑같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책이란 매체에 어떻게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겪어왔던 시행착오들과 B 컷들은 서랍 속에서 나 자신이 나태해졌을 때 또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을 때 다시 일으키는 마스터키였다.

 

내게 위기가 찾아온 시기는 작업의 한계를 느꼈을 때가 아니었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매일 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 북 디자인은 나의 생계를 꾸리는 일이기도 했다. 매일 즐거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를 상대해야 했고, 때로 스스로를 구박하거나 자책하는 일을 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치는 건 당연했다. (p. 340)

 

 

일이 그렇듯 경험을 하면서 겹겹이 쌓인 시간들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지금 곧바로 빛을 발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나만의 무기가 되어 상상하고 펼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거기에 근성을 더한다면 진정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근성이라는 놈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모두 천재는 아니므로. (p. 279)

 

내가 깨진 환상과 꿈은 처음 마주한 떨림과 기대, 설렘 같은 말랑말랑한 것들이다. 어느 일이든 말랑말랑한 감정이 깨져버리면 방황을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일인지, 적성이란 무엇인지,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디자이너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직업을 가져 몇 년간 일해본 선배가 건네는 직장생활지침서 같았다. 지금 포기하고 싶고, 버텨야 하나 싶고, 설령 다른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그건 앞으로 가치있게 빛날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환상을 가진 일도 생계를 꾸리는 일이다. 자책하며 울고 싶은 순간들이 그들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의 일이 재미있으면 그건 일이 아니란 말이 있다. 진부하고, 재미없고, 답답한 게 정말 일하고 있다는 순간이다. 내가 나를 영위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우린 모두 천재가 아니기에 근성이란 놈이 꼭 필요하다는 마지막 말이 와닿는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억지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다가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지금 자신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내가는 것이 마음을 소진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좀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p. 342)

 

 

이들은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하는 마음에 더 열심히 버티고 좋은 결과물을 내보이려 한다. 그렇게 꾸준한 성과를 내다보면 이 분야는 견고하게 자리 잡을 테니까. 그러니 후배인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 자연스럽게 실수도 하고, 꾸중도 듣고, 눈물도 흘리면서. 북디자이너의 B컷이 자만했던 과거이며, 발전하고 수정해야 할 선명한 가르침이었던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문 - 나와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 365개의 물음
다나카 미치 지음, 배윤지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새해가 밝았다. 묵은 상념은 과거에 던져두고 새 마음으로 갈아입는다. 방 정리도 해본다. 이렇게 청소를 하다 보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아두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읽지도 않는 책들, 쓰지도 않고 방치된 다이어리, 각종 명함과 엽서들은 '나두면 쓰겠지' 하며 놔두었던 답답함의 원인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펼쳐보지도 않을 것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 있는 질문들은 어떨까? 365개의 질문들은 쓸모없어 보인다. '여기서 가장 먼 장소는 어디인가요?' 란 질문이 내 미래를 답해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엔 골똘히 생각해볼 마음들이 있다. 커피와 차 중에 무엇을 마시는지, 잠들면 불안을 잊을 수 있는지, 걸을 때 어떤 발부터 내딛는지. 이런 질문들은 '나'에 관한 물음이고, 묻지 않아도 관성처럼 하고 있는 행동이며 말이다.

 

몇 가지 질문들을 신중히 골라봤다. 이 질문들은 앞으로의 1년 동안 틈틈이 물어볼 생각이다.

 

 

Q. 당신을 제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이 가장 크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신중한 면이라지만 신중함이 지나치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작년 한 해가 그랬고, 두려움에 많이 잡아먹혔다. 막상 신중했던 선택들도 좋은 결과를 보이지 못해서 올해는 두려움과 싸워 이기는 게 목표다. 해서 후회하는 것과 안 해서 후회하는 건 결이 다르니까.


 

Q. 인생은 살아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가치라...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지는 가치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고, 그냥 살아야 하니까 사는 사람도 있고, 죽고 싶은데 바람처럼 잘 안돼서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두 번 태어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의미 부여할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흘러가는 대로 손목에 묶인 매듭이 자연스레 풀릴 때까지만 살고 싶다.

 

Q. 가장 고독한 장소는 어디일까요?

 

회사. 공장의 톱니바퀴처럼 사는 곳이다. 깊은 관계로 이어지기 힘들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약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인 곳. 외로움과 고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벗어나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다시 들어가 견뎌야 한다.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


 

Q. 죽을 때까지 책만 읽는다면,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해보고 싶다. 돈만 준다면? ㅎㅎ 이 세상 책을 다 읽고 싶지만 신간은 계속 쏟아지니 불가능할 테다. 1~2억 권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만 약 2000권은 되는 것 같은데.

 

Q. 오후에 듣는 음악을 한 곡만 고른다면 어떤 곡일까요?

 

요즘은 위너의 'MILLIONS'와 송민호의 '오로라'를 듣는다. 통통 튀고 청량한 느낌이 오후와 어울리는 것 같다. 살짝 잠을 깨우는 정도의 흥이 딱 좋다.


 

Q.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는 무엇일까요?

 

인간이다. 인간만 없으면 사라질 문제들이 태반이다. 플라스틱도 일회용품도 모두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고 이제 와 줄이라고 말한다. 지구에서 발생되는 각종 환경문제 중 인간이 관여 안된 게 없다. 결국 자초한 결과다.

 

 

Q. 당신은 20년 후 오늘 무얼 하고 있을까요?

나도 알고 싶다. 무엇을 할까요?라고 물으면 답을 못하겠다. 하고 싶나요?라고 묻는다면 조그마한 작업실 겸 가게를 내어 살고 싶다. 도시가 아닌 온 사방이 밭이고, 조금 걸어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읽고, 쓰며 살고 싶다. 오래전부터 프리랜서의 삶을 꿈꿨다. 나 정도만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만 벌면 괜찮은 삶일 듯하다. 억지로 빠른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게 어긋나기만 해서 힘들다.


 

막상 질문과 마주하니 적절한 답변을 하기 위해 고심했다. 이렇게 적어나갈 답변을 미래의 내가 다시 본다면 그 답은 바뀌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있으면 좋겠다. 영원히 질문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악마의 편집이 당연한 듯 돌아다닌다. 우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핸드폰으로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편리함은 진실로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굳이 어려운 길을 걷지 않으려는 심리는 권력에 휘둘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때론, 옹호자가 되었다가 오보자가 되고 오도자가 되어 짜집기된 편파적인 자료를 '진실'로 믿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만큼 짜임새 있는 정보들이 신념을 어지럽힌다. 적당히 편집해서 내보인 소식은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사실이며, 그것이 설령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더라도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의견에 담긴 내용은 내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공간과 긴 시간, 수많은 대상에 걸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의견은 '남들이 알려준 내용'과 내가 상상하는 내용을 끼워 맞춘 것일 수밖에 없다." (p. 26)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 중 '한 치의 오차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넓어진 세상만큼이나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들었고, 간접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생겼다. 인간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마녀사냥으로 특정 집단을 매도해 버릴 수 있는 힘을 대중들이 가졌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권력을 휘두르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며 극한으로 상황을 몰아 넣는다. 사실을 편집해서 그럴싸한 인과관계를 만들고, 감성을 자극할 요소를 집어넣은 그럴듯한 진실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스토리의 힘은 대단하다. 때로는 정당화될 수 없을 때조차 손쉽게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스토리에 이런 힘이 생기는 것은 스토리가 우리로 하여금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인간 심리의 패턴을 활용한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토리를 무조건 '진실'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 스토리가 '여러 진실 중 하나'에 불과할 때조차 말이다. (p. 177)

 

스토리는 유도하는 미끼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기관, 기업, 기사들은 대중들이 그렇게 믿을 수 있게 간교하게 조작한다. '여러 진실 중 하나'가 위험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저자는 '제대로 된 스토리'를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궁무진한 스토리만큼 듣는 이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도 여러 가지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이건 내가 속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다.

 

무언가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진실은 보통 한 가지 이상이다. 경합하는 진실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을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경합하는 진실을 가지고 우리를 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395)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만큼 진실도 한두 개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스토리를 엮어내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쥐락펴락할 수 있다. 스스로가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오보로 나타난 진실 앞에 "미안, 그게 아니었네." 하고 말뿐인 사과는 힘이 없다. 의심하는 태도와 비꼬는 시선이 시류에 편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자고 일어나면 논란이 불거지는 시대 속에서 각자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길은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에 달려있다. 편집을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법칙을 살펴보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가 오도자가 돼있겠단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