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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내가 죽은 후, 미련을 풀 수 있는 추가시간이 주어지면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이 책은 사자(죽은 자)를 도와 저세상으로
안전하게 보내주는 사신의 이야기다. 사쿠라는 히나모리의 제안으로 시급 300엔 밖에 되지 않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추가 수당도
복리후생도 잔업과 스케줄 조정도 안되는 사상 최악의 아르바이트! 사쿠라는 이상한 꾀임에 이끌려 일을 시작하지만 점차 사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후회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돼간다.
사자들은 죽기 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자로 보낸 추가시간이 종료되면 그때의 기억과 추억은 사라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에 사자는 추가시간이 생겨 자신의 한을 제대로 풀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연명하는 삶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자신이 내가 이렇게 보낸 시간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란 상실감이 찾아오기
때문에.
사자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아픈 동생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편지를 찾는 남자, 바람피운 남편을 증오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걱정하는 여자 그리고 히나모리. 모두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가려 하지만 결국
지나가버린 것들은 죽어서 손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신은 '사라짐'이 전제된 시간을 왜 주었을까? 아마 나 자신을 직시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미련은 아직 후회하고 아쉬운 점이
남았다는 뜻이다. 복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욕심을 위해 쓰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간절하게 가졌던 마음이 미련임을 알아보라고 준 시간이다.
답은 모두 사자 자신에게 있었다. 히나모리와 사쿠라는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사신인 그들조차도 일련의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결국 잃는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분명 아주 의미 있는
일이겠지. 슬픔을 없앨 수는 없어. 하지만 슬픔을 능가할 행복을 찾아낸다면 분명히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야.아사쓰키한테 배웠는데, 과거에 괴로워하기보다 내일에 희망을 품어야 행복해질 수 있나 보더라고. 우리도
마지막으로 그런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자." (p.
294~295)
내일의 희망을 품어야 행복하다는 말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숨을 불어넣지 않으면 그게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용기를 베푸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혹시 아나? 내가 용기를 내었다면 그 사람이 살아있을지도. 사쿠라가 사신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은 소원지를 다른 사자를 위해 사용했던 것처럼, 그 사자가 행복해졌던 것처럼 우린 서로에게 행복을 건네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