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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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인간관계' 다. 일을 같이 하는 동료부터 앞뒤가 다른 사람, 친척들의 오지랖, 친구라서 더 깊게 받았던 상처들은 나이를 먹어도 관계란 참 힘든 거라며 한숨 쉬게 만든다. 오랜 시간 라디오 작가를 해온 저자는 그간 자신이 받았던 무례함 앞에 소심하게 굴었던 지난날을 삭제하겠다 말한다. 여리고 소심한 이들은 알 거다. 속으로 큰 소리를 치지만 현실에선 입도 뻥긋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울 때가 여러 번이란 것을. 나 역시 욕을 따발총으로 쏴대고 싶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하소연하며 푸는 게 전부라 저자에 모습에 공감이 갔다.


나는 이제 "네가 걱정이 돼서"라는 핑계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거부하려 한다.

정말 걱정이 된다면 그저 조용히 교회에 나가 새벽 기도 나 해주면 좋겠다.

아니, 절에서의 백일기도도 환영합니다. 정말 그것으로 족합니다. (p. 20)


은근히 나를 뒤처졌다 여기며 사서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졸업이 늦네", "취업은 언제 하니", "다들 힘든데 참고 다니는 거야", "결혼은 해야지", "꼭 안 간다는 애들이 일찍 결혼하더라", "애는 언제 갖니?", "그러지 말고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줄까?" 이런 말들을 건네는 인간이면 상종을 안 하는 게 답이지만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면 저자처럼 참견은 말고 기도나 해주시라 말하고 싶다. 무례함은 다른 게 아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A부터 Z까지 참견하면 그게 무례한 거다. 이런 기분은 삭제해도 좋다.


우리가 언제 잘했다는 칭찬을 원했던가.

그저 딱 한 번의 헤아림. 너의 고생을, 속상함을, 잘 해내고 싶은 부담감을, 간절함을

내가 알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되는 것을…….

그저 그날 내 고생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을…….


그러다가 또 생각해본다.

그래, 그렇게 쉬운 위로, 남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나에게 하면 되지.

내 고생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p. 68)


그러다가도 남이 주는 위로에 목매다는 슬픈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마음 좀 알아주지 하는 여린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 때, 절실하게 사람이 주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녀는 힘든 하루 끝에 탄 기차 안에서 기장님의 '수고하셨어요' 안내방송에 마음을 녹인다. 그러면서 '그래, 그까짓 위로 나에게 하면 되지'하며 힘을 낸다. 이런 마음은 저장해도 된다.


그래도 떠나보는 건 좋은 것 같아. 뉴질랜드나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보는 건 어때?

구글 지도가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어. 도착 시간이 늘어나면 반대로 걸으면 되거든. (p. 160)


일을 그만둔 동료 언니가 캐나다로 여행 가서 보내준 카톡은 그녀 마음속에 저장한다. 여행에선 조급할 게 없다. 도착시간이 늦을 뿐이니 몸이 조금 고생하는 정도다. 길치인 언니가 보낸 답장은 저자의 마음에도 와닿았나 보다. 좀 멀어진다 싶으면 반대로 걸으면 된다. 마음도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보면 된다.


마음을 '저장'과 '삭제', '보류'로 구성한 것이 재미있다. 불필요한 파일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처럼 감정도 청소가 필요하다. 앞에서는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면 뒤돌아 '메롱'하고 나 혼자 사이다 한 모금 마셔도 좋다. 다친 상처에 소금 뿌리지 말고 연고를 발라 밴드를 붙이자. 책의 페이지가 배터리 방전 상태에서 완충 상태로 늘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충전도 좋은 말을 곁에 두어 그렇게 소소하게 웃고 지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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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지음 / 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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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어 보고 싶은 방송을 기다릴 때면, 광고가 끊임없이 재생됩니다. '나 좀 봐줘요! 사주세요' 하는 광고에 시선이 가기란 쉽지 않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광고 카피는 뇌리에 깊게 새겨집니다. 그만큼 광고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는 건 카피 한 줄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고 카피들은 저절로 그때의 유행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 책은 10년 차 카피라이터가 들려주는 일본 감성 카피 에세이입니다. 카피에 감성이라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녀가 소개하는 광고를 읽다 보면 글이라는 힘이, 구성이란 짜임새가 들려주는 위로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 명카 피로 불리는 몇 줄의 글은 서정성의 대표인 일본이라서 그런지 한 편의 문학작품 같습니다. 제품을 전면에 내세울 만도 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토리 끝에 다다라야 이들이 소개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마음에 들었던 카피를 말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가족과의 에피소드부터 직장에서 겪었던 슬픔, 청춘이 가진 불안함 등 삶의 희로애락을 카피의 힘을 빌려 얘기합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카피는 " √a=18 여행의 길(root) 위에선 누구나 18세(age)다. " 란 문구는 여행이란 길에서는 누구나 18세의 아이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 서툼을 보탭니다. 여러 번 방문해도 낯선 곳에서 백지가 돼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청춘의 본모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의 저였는데 일본 여행길에 오른 저는 서툼, 그 자체였거든요. 그 뒤로 여러 번 일본 여행을 하면서 점점 능숙해져 갔지만 거기에도 늘 '서툼'은 존재했습니다. 아무리 가도 서툰 자신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이 저를 청춘으로 만들고, 18세로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꼭 일본이 아니어도, 해외가 아니어도, 내가 생활하지 않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는 서툰 존재가 되더군요. (p. 42)

 

다음은 한 제과점의 광고 카피입니다.

 

어렸을 때 좋아한 음식이 지금도 역시 좋고 젊었을 때 열중했던 음악이 지금도 역시 좋고 예전에 소중했던 친구들이 지금도 역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조금씩, 조금씩밖에 변할 수 없는 인간에게 왠지, 안심합니다. 어제와 같아서 맛있다. 어제와 달라서 맛있다. 메이지 가게의 선물

 

우연히 얻은 콘서트 티켓으로 회사 동료와 함께 간 공연장에선 요즘 유명한 아이돌 가수가 노래합니다. 그녀와 직장동료는 어린 학생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을 탓합니다. 하지만 막바지에 그녀가 고등학생 때 열광했던 가수가 등장하자 그녀와 동료들은 어린 학생이 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뛰고 부르며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서른 이전에 경험한 것은 앞으로의 취향을 결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래, 음식, 패션들은 어느 순간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는 뜻은 이런 경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의 취향도 제과점의 카피처럼 예전의 것이 소중하기에 시간이 흘러도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마냥 그리운 것들은 나이가 들면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서 더욱 애착이 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의 것, 과거의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좋은 감정. 이것은 집착도 아니고 미련도 아닙니다.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애라고 할까요. 추억이란 이름 아래 모이면 모두가 그냥 그리운 것이 된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보낸 타임머신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은 이렇듯 사랑의 마음보다 늘 뒤처집니다. (p. 84)

 

일본의 술 광고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위스키 광고처럼요. " 그렇군, 인간의 시계는, 너무 빠르지. 산토리 올드"

 

이 문구는 그녀가 드라마 <자상한 시간>의 촬영지였던 '숲의 시계'를 찾아간 여정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무 생각 없이 공간에 가득 번진 원두 향을 느끼고,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며 눈이 내린 숲을 바라보던 시간은 천천히 가 아로새겨진 흐름입니다. 이곳의 시간은 아깝지 않은 낭비입니다. 인간의 시계는 빠르지만 숲의 시계는 천천히 시간을 새긴다는 그녀의 문장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일상의 시계와 달리 숲의 시계는 조금이라도 넓은 마음을 지닌 걸까요. <자상한 시간>이란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탄생한 것은 아닐까요. 지금 시간은 나에게 자상함을 베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으니. 이렇게 커피향만 맡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순간이,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으니. 나는 분명 이 시간을 회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순간보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사람에게 여행이 필요하다는 말이 단순히 바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서란 걸 슬쩍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JR의 예전 광고 카피처럼, 사람에겐 미아가 될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요. (p. 267)

 

그녀는 말머리에서 말합니다. 이 책에는 내가 많이 담겨 있다고. 그녀는 광고 속에서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카피들은 삶의 순간포착처럼 명징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문장들은 단 몇 줄로 표현해야 하는 이야기 속엔 나를 계속 드러내야 하는 사회생활과 닮아 있습니다. 제가 글에 공감하며 읽어내려갔던 건,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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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
김현지 지음 / 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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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때, 제주살이를 담은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알고 보니 물음표가 생략되어 있었다. '제주에서 살고 싶은데 어때요?'라고. 2014년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그때의 제주가 담겨있었다. 5년이 지난 제주에 그녀가 타고 다닌 버스 노선도, 카페도, 게스트 하우스도 사라지거나 달라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바뀌어야 할 듯싶다. 1년만 지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간다.

 

저자는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직장인이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한 신분증이 없어 시작된 제주여행은 제주 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제주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었다. 서울과 달리 한라산의 절경과 푸른 바다가 감싸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고 여행지의 여유가 즐비해있다. 단시간에 여행자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곳, 이 매력 덕분에 그녀는 비행기 표만 보이면 제주로 날아가는 병에 걸렸다. 야근과 회식, 직장 내 스트레스로 얼룩진 그녀의 삶에서 답답함을 내려놓게 만드는 곳은 제주 그리고 여행이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사는 것 말고, 이게 사는 거구나, 라고 느끼기 위해서.가끔 우리는 삶을 다 내려놓고 바람과 음악만을 느낄 수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불한다. 잠시나마 일상의 모든 것을 비운 순간에야 비로소 바람과 음악이 온전히 나를 채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충만해지는 느낌. 좋은 경치를 보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 몸을 관통하는 바람과 내 귀에 가득한 음악을 느끼기 위해 떠난다. 여행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p. 82)

 

제주로 달려갈 수 있게 시간을 쪼갠다. 없는 휴가를 토, 일 앞뒤로 붙이고, 금요일 저녁에 공항으로 달려간다. 1박 2일, 당일치기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일단 제주면 된다. 1시간의 비행 끝에 보이는 야자수와 푸른 바다는 '휴'라는 글자를 이마에 선명히 새긴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부대끼는 도미토리는 반갑지 않지만 게스트 하우스의 저녁 술자리가 있다. 분위기가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마치 마법을 걸어 놓은 듯, 다음 여행에도 그들을 혹시 보게 될까 찾아간다. 다시 갔을 때, 그들은 이제 없지만 이렇게 글로나마 남아있는 기억을 추억한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인생의 길목마다 가끔은 회의에 빠질 것이다. 불평을 늘어놓거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망상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또 볕을 향해 나갈 것이다. 내 뒷마당에 심을 유채꽃에 대해 기쁘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삶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곁눈질하며, 그렇지만 묵묵히 볕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는 것이다. (p. 205)

 

그녀가 써 내려간 제주 일기에 대단한 관광지나 유명한 맛 집은 없다. 다만 여행의 본질은 '쉼'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리는 여행을 언제 떠나고 싶을까? 삶이 가장 힘들 때가 아닐까? 다 집어치우고 싶은 소용돌이가 심장에서 꿈틀거릴 때, 떠나야 한다. 어디든 내 마음이 가장 편한 곳으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돌아봤다.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제주에 살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소중히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과거에 발자취를 추억했다. 중학생 때, 멋모르고 갔던 김영갑 갤러리를 떠올렸고, 동아리 행사 차 머물렀던 추자도의 밤을 기억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우도를 가봐야겠다고 적었고, 좋아하는 세화와 함덕 바다를 틈틈이 찾아가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수건 개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는 건 아마 내가 주부가 아니여서, 이 숙소의 스태프가 아니어서일 테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같이 있으면 서로를 지겨워하고 따로 있으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지. 고요하면 분주하고 싶고 분주하면 고요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방인이기에. 그러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여행하려 하는 존재이기에. (p. 34)

 

일상을 여행으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녀처럼 곳곳에 채우면 된다. 진짜 좋아하면 중요한 건 딱 하나다. 원하는 걸 쟁취하는 것! 반복적인 생활이 지겨울 때마다 그녀의 글을 들춰봐야겠다. 내가 쟁취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나는 무엇무엇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것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로 그것을 할 때만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좋아서 하는 일, 원해서 하는 일,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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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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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뮤다를 세우고 성장시켜 온 '테라오 겐'의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전엔, 토스터기로 유명한 회사라는 것 빼고는 아는 게 없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도 그저 발뮤다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한 CEO의 성공 비법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굴곡이었고, 재능이 있다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온 결과는 빛난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부고,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가득 차 적응하지 못했던 학교생활 그리고 자퇴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비록 풍족하지 못했지만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지냈던 시골생활도 있었고, 어머니와 만나 받는 사랑은 그에게도 행복이었다. 하지만 잔잔히 흘러가는 행복은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 연약했다. 그는 늦게나마 깨달았다. 어머니가 그동안 자신에게 주려 했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가르쳐 준 가르침을 따르고자 어머니의 보험금을 경비로 마련해 지중해로 떠난다. 그 당시 나이는 17세였다.

 

당시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도, 자립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다. 동네에서 악명 높은 불량배라고 해도 결국 부모의 보호 아래 있었다. 내가 알던 놈 중에 가장 삐딱했던 놈도 밥은 집에서 먹었으니까. 홀로 설 수가 없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모르고, 불평불만만 외쳤다.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어리광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도 한참 어린애들이었고. (p. 87)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지도 않았던 시절, 오직 지도 한 장만이 나를 안전한 숙소로 데려다줄 수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홀로서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스스로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부모가 마련한 울타리가 따뜻하고 안전하단 것을 드디어 깨닫는다. 더불어 나를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단 사실로 체감하게 된다. 그는 여행에서 음악이란 꿈을 찾아 1년이 넘는 긴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젊음의 패기와 자신감은 '재능'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다. 덕분에 그는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고 무대의 생활을 한다.

 

10년간의 음악생활은 재능과의 줄다리기였다. 그는 오만하게 멤버들과 스태프를 대했다. 자신만이 옳다고 믿었고, 쉽게 화를 내기도,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10년은 나를 내려놓는 일처럼 보였다. 나를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뼈져리게 느낀다. 그리고 회사의 사정으로 계약이 종료되자 이제 음악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온다. 그건, 우연히 알게 된 제품 제작이다.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p. 176)

 

'혁신'과 '아이디어' 두 개를 가진 자신을 믿었다. 발뮤다는 작은 월세 집에서 수공업으로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투자를 받기 위해 머릿속 생각을 실물로 만들었다. 지적을 받으면 수긍하고 보완하고자 했다. 음악을 하던 시절의 고집스러운 그는 유연하게 바뀌어 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책들을 모조리 탐했다. 그렇게 부족한 지식을 채웠고, 아이디어는 풍족해졌다. 마지막이라 여겼던 시기는 이런 그의 자신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공은 믿음이었다. 나를 내가 믿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굴곡진 인생이 발뮤다라는 정체성으로 발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은 허황된 꿈같았지만 꿈은 이뤄내면 현실이 되었고 후세대의 무한한 가능성이 되었다. 자기 손으로 가져온 변화를 믿고 소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다시 혁신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란 매력을 보여주는 삶이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언제나, 누구나, 그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내 인생 전부를 걸었을 때에야 비로소 역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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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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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낀 적은 언제일까? 대부분의 시간을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터라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다. 오후는 점심 식사 후, 몰려오는 잠과 투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커피를 입에 붓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하기에 힘겨운 시간이다. 하지만 장석주 시인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오후는 짧아진 그림자를 응시하며 드리워진 끝을 사색하고 근심, 걱정은 내려놓은 채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느끼는 시간이다.

 

인생의 오후에 당도한 그가 전하는 삶의 태도는 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디쯤을 산책하는 듯하다. 그가 전하는 삶의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지나온 인생에 대한 소회 등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이 어쩔 수 없이 묻어 나올 법도 한데 이를 배제한 채 아름다운 면을 다룬다. 매 장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말을 한 줄씩 적어놓아 가만히 혼자 하고 싶은 건 역시 글쓰기와 책 읽기라 말한다.

 

나도 가만히 혼자 보내는 오후를 좋아한다. 저녁잠이 늦고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오후는 주말과 같다.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는 일상의 오후는 후회와 상념으로 가득한데 주말의 오후는 나른함과 싸우지 않고 진득하게 몸에 배도록 느끼는 시간이니까. 그가 가을 안쪽에 접어들었을 때 환한 웃음을 지었던 것처럼 나도 모처럼 느낄 수 있는 여유 속에서 기분 좋은 진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니까.

 

가을이 저 안쪽에서부터 깊어진다. 바람이 분다. 아아, 다시 살아봐야겠다! 가을 오후, 마음의 근심들을 내려놓고 책을 읽다 혼자 웃는다. 얼굴이 환해지고 입가에는 절로 웃음이 떠오른다. 무르익은 석류 열매가 터지고 야산 언덕에 구절초가 흐드러진 이 계절이 좋다. 가을밤은 일찍 오고, 창가에 등불을 밝힌 채 귀뚜라미 우는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을 때, 아아, 이 가을, 내가 살아 있음이 미칠 만큼 좋다. (p. 67)

 

그에게 산책은 오후를 만끽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탁한 공기에 두통이 밀려온다면, 갑자기 밀려오는 힘겨운 생각들에 버겁기만 한다면 햇살이 도움이 된다. 햇살이 건네주는 위로는 따스하고 넓은 포용력을 갖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큰 존재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신선한 공기, 빛, 물, 건강, 약간의 책들, 음악, 고요, 몇 벌의 옷, 물이 새지 않는 신발, 벗들! 행복을 위한 목록에 적힌 것들은 대개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이다. (p. 29)

 

햇볕은 우울한 기분을 걷어내고 화창하게 만든다. 우리 기분은 더 유쾌해지고, 감정은 확실히 겨울보다 낙관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것은 봄날 햇볕이 일으키는 기적이다. (p.29)

 

창가 바 테이블에 앉아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싶다. 아직 그에 비해 출발점에 서 있는 나는 쉽게 조급해지고, 자주 출렁인다. 새벽 동이 트는 시간이 곧 쏜살같이 오후로 달려가겠지만, 오후의 내가 새벽의 나를 바라보면 그건 별거 아니었다라 하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아직 덜 여물었기에 얻는 상처와 아픔이라고 그때의 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가 길어올린 문장들처럼 거대한 장서 속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이렇게나마 계속 끌어올리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의 큰 줄기는 이랬으면 한다.

 

인생이 한 줄기 강물이라면, 누구나 작고 소란스러운 급류 같은 소년기를 보내고, 온갖 소용돌이들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깊고 넓은 하류에 닿는다. 내 앞에 넓고 따스한 불멸의 바다가 가까이에 와 있다. 이미 내 삶의 윤곽과 형태는 바꿀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움과 성장을 끝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세련되게 하며, 아상의 참모습과 만남으로 아끈다. 결과적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풍요한 삶을 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p.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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