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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
김현지 지음 / 달 / 2014년 10월
평점 :

제목만 봤을 때, 제주살이를 담은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알고 보니 물음표가
생략되어 있었다. '제주에서 살고 싶은데 어때요?'라고. 2014년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그때의 제주가 담겨있었다. 5년이 지난 제주에
그녀가 타고 다닌 버스 노선도, 카페도, 게스트 하우스도 사라지거나 달라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바뀌어야 할 듯싶다. 1년만
지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간다.
저자는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직장인이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한
신분증이 없어 시작된 제주여행은 제주 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제주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었다.
서울과 달리 한라산의 절경과 푸른 바다가 감싸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고 여행지의 여유가 즐비해있다. 단시간에 여행자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곳, 이 매력 덕분에 그녀는 비행기 표만 보이면 제주로 날아가는 병에 걸렸다. 야근과 회식, 직장 내 스트레스로 얼룩진 그녀의
삶에서 답답함을 내려놓게 만드는 곳은 제주 그리고 여행이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사는 것 말고, 이게 사는 거구나, 라고 느끼기 위해서.가끔 우리는 삶을 다 내려놓고 바람과 음악만을 느낄 수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불한다. 잠시나마 일상의 모든 것을 비운 순간에야 비로소 바람과 음악이 온전히 나를 채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충만해지는 느낌. 좋은 경치를 보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 몸을 관통하는 바람과 내 귀에 가득한
음악을 느끼기 위해 떠난다. 여행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p.
82)
제주로 달려갈 수 있게 시간을
쪼갠다. 없는 휴가를 토, 일 앞뒤로 붙이고, 금요일 저녁에 공항으로 달려간다. 1박 2일, 당일치기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일단 제주면 된다.
1시간의 비행 끝에 보이는 야자수와 푸른 바다는 '휴'라는 글자를 이마에 선명히 새긴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부대끼는 도미토리는 반갑지 않지만
게스트 하우스의 저녁 술자리가 있다. 분위기가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마치 마법을 걸어 놓은 듯, 다음 여행에도 그들을 혹시 보게 될까 찾아간다.
다시 갔을 때, 그들은 이제 없지만 이렇게 글로나마 남아있는 기억을 추억한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인생의 길목마다 가끔은 회의에 빠질 것이다. 불평을 늘어놓거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망상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또
볕을 향해 나갈 것이다. 내 뒷마당에 심을 유채꽃에 대해 기쁘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삶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곁눈질하며,
그렇지만 묵묵히 볕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는 것이다. (p.
205)
그녀가 써
내려간 제주 일기에 대단한 관광지나 유명한 맛 집은 없다. 다만 여행의 본질은 '쉼'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우리는 여행을 언제 떠나고 싶을까?
삶이 가장 힘들 때가 아닐까? 다 집어치우고 싶은 소용돌이가 심장에서 꿈틀거릴 때, 떠나야 한다. 어디든 내 마음이 가장 편한 곳으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돌아봤다.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제주에 살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소중히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과거에
발자취를 추억했다. 중학생 때, 멋모르고 갔던 김영갑 갤러리를 떠올렸고, 동아리 행사 차 머물렀던 추자도의 밤을 기억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우도를 가봐야겠다고 적었고, 좋아하는 세화와 함덕 바다를 틈틈이 찾아가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수건 개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는 건 아마 내가 주부가 아니여서, 이 숙소의 스태프가 아니어서일 테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같이 있으면 서로를
지겨워하고 따로 있으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지. 고요하면 분주하고 싶고 분주하면 고요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방인이기에. 그러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여행하려 하는 존재이기에. (p.
34)
일상을
여행으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녀처럼 곳곳에 채우면 된다. 진짜 좋아하면 중요한 건 딱 하나다. 원하는 걸 쟁취하는 것! 반복적인 생활이
지겨울 때마다 그녀의 글을 들춰봐야겠다. 내가 쟁취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나는
무엇무엇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것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로 그것을 할 때만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좋아서 하는 일, 원해서 하는 일,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