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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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샘터를 통해 수녀님의 글을 자주 접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글은 거부감을 느끼는 편인데 수녀님의 글은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소담스러운 내용들이라 보면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고 신앙을 드러내기보다는 수녀님 주변의 사건들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본인은 나이가 드셨다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해인 수녀님은 여전히 소녀 같은 분인 것 같다.

<기다리는 행복>이란 이 책은 그동안 수녀님이 쓰셨던 일기 같은 글들과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글과 시가 담겨 있는 책이다. 수도자로서 사는 삶이면 완벽하고 늘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그런 분이실 것 같은데 이 글을 읽다 보면 오히려 인간미 있는 분인 것 같다. 보통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시고 때론 그 마음을 주체 못 해 실수도 하시고 반성하시는 모습은 직업 불문하고 누구나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수녀님의 일상을 보면서 긍정의 힘은 무엇인지도 느끼게 된다.

지나친 긍정은 되려 가까이하기 힘든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실천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맞아, 나도 저렇게 느끼는 순간이 있어'라고 공감도 하게 되고 주변 하나하나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꽤 두꺼운 분량이라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었는데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많아 좋았다.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하고..... 수녀님이 좋아하는 것 모두 소박하다. 아직까지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시는 것 같아 나도 나이가 든다면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좀 더 고운 생각, 예쁜 말,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책을 읽으며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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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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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아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1년간 집안에 갇혀 산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그의 세상 역시 무너졌음을 뜻했다. 이웃인 버나뎃이 매번 그를 걱정하며 먹을 것을 만들어주며 관심을 가졌지만 그는 그러한 관심마저 귀찮고 짜증 나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1년이나 가졌지만 그 1년을 오롯이 떠나간 사람에게 쏟은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그 기간 동안 자신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연히 아내가 남긴 참팔찌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일상이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보여줄 때 <오베라는 남자>가 오버랩 되었다. 오베도 아내가 떠난 뒤, 이웃과 등을 지며 오롯이 자신을 가둬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서와 오베 둘은 공통점이 많아 보였다. 무뚝뚝한 점부터 아내를 긴 시간 동안 사랑했다는 점까지 두 인물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초반부만 읽으면 특별할게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참 팔지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이었다. 아서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참팔찌에는 다양한 참들이 달려있었다. 아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아서는 처음 보는 팔찌를 보고 아내의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코끼리 참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를 통해 아내가 과거 인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과 결혼하면서 이 동네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아내가 다른 국가인 인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서는 믿기 힘들어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또 자신의 아내라서 결국 그 과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서는 영국, 프랑스 등 이곳저곳을 참에 얽힌 아내의 과거를 밝히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에 참은 집에 갇혀있던 아서를 끌어내는 도구로 작용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여행이 지속되면서 그의 아내가 자신이 40년간 봐왔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알게 된다. 그는 여행을 통해 점차 변해간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정해진 곳으로 여행을 가는 등 일정하게 규칙을 지키던 아서는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즉흥적으로도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가장 놀란 사람은 아서 본인이었다. 그의 아내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다가 정적이고 조용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면 아서는 그 반대가 되어갔다.

또한 집안에서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묻혀있던 그는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의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며 지극히 평범한 그와의 결혼생활은 불편하고 힘들지 않았을지, 왜 아내가 자신을 선택했을지 등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내는 과연 40년 내내 자신을 사랑했을지까지 의심도 한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 루시와 댄을 돌본다. 자녀들이 겪은 상처를 알아보려 본인이 먼저 다가간다. 아내를 자신이 몰랐던 것처럼 그의 자녀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기 성찰의 과정이 지나자 자신의 남겨진 가족들에 대해 돌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먹했던 관계의 원인인 묵은 오해들을 풀고 현재에 집중하며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렇게 변해버린 아서지만 그에게 아직 남겨진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아내는 왜 자신의 참팔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루시와 댄이 아서의 생일을 기념해 아서 부부의 사진들을 진열해 놓은 선물을 보며 결혼식 사진에 아내가 참팔찌를 차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댄이 자신이 어릴 적, 엄마가 참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 있다고 그걸 가지고 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는 숨기려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모든 실마리가 다 풀리고 아서는 미련 없이 팔찌를 판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아서의 다짐이었다.


"그게 뭐든 그것 때문에 두 분이 함께 나누었던 것들이 달라지진 않아요. 아버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과거에 집착하고 계세요. 아버지가 없던 시절 어머니의 삶에 대해 알아내려 애쓰시잖아요. 그리고 그 시간을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크고 더 밝고 더 좋은 시간으로 만드셨잖아요." (p. 380)


아서는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은 마음과 기분의 명령에 따라 잊히거나 복원되고, 강화되거나 흐려진다. 아서는 참을 준 사람들에게 미리엄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생각하며 온갖 감정들을 빚어냈다. 그는 미리엄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리엄이 그를 사랑했다는 것, 댄과 루시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p. 393)


아내의 과거는 현재의 기억을 왜곡시켰다. 그가 느낀 분노, 실망감, 좌절의 감정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자녀들은 부모의 삶을 행복해 보였다고 인정했고, 아서 역시 아내와의 지난 시간이 행복하고 좋았음을 인정했다. 아내가 과거의 어떻게 살았든 그녀는 아서와의 현재에 충실하다 떠났다. 과거는 과거 일뿐이다. 아내가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아서는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다. 자신이 아내를 만나기 전의 일이고 그때의 당사자만 그 감정을 알고 있다. 단편적으로 들은 과거의 일만으로 그녀의 감정을 추측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40년간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다는 사실은 과거가 끼어든다고 해서 변형될 추억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상대방이 아닌 나를 알아가는 것이며,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우리의 사랑은 완벽할 수 있음을 아서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p. 431)


마지막 옮긴이의 말이 소설로부터 느낀 감정의 파도를 정리해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이해를 할 수 없다. 이해하려 시도해 볼 수는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도일 뿐이다. 현실에서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는 입김 같다. 하지만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해보려 할 수 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과거보다 현재의 삶을 존중해주고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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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8.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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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를 맞아 샘터가 새 단장을 마쳤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2,500원을 유지하던 가격을 3,500원으로 인상하고, 내용 구성과 필진들을 새롭게 맞이했다. 누구나 하는 새해의 고민들의 첫걸음을 뗐다. 그래서일까, 이번 호에는 '처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시작은 누구나 힘들고 가시밭길이지만 이제 조금씩 자신만의 터를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해의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임헌일의 인터뷰와 뽀빠이 화원이었다.

임헌일의 인터뷰는 메이트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터라 관심 있게 읽게 되었다. 올해 아이엠 낫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 찾아온 그는 꾸준히 영감을 얻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과거 솔로 앨범도 그렇게 적어온 메모들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그도 깊은 회의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공연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보여주고 내려오는 자리에서 관객들은 감명받아 손뼉을 쳤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초심 찾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의 초심을 되찾아 준 건 LP를 듣는 것이었다. 음악과 공연에 대한 슬럼프를 음악을 통해 극복한 사례였다. 초심을 찾는다는 것은 초심을 갖게 했던 그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했던 마음이 녹록지 않은 현실에 빛 바래질 때
첫 마음을 상기시켜주는 물건이나 취미를 만난다는 건 굉장히 큰 행운 같아요.


뽀빠이 화원에 대한 이야기는 가업을 잇는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꽃집의 막내딸 수현 씨가 부모님을 위해 시작한 꽃집 운영은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되어 젊은 층도 찾아오는 꽃이 되었다. 그녀의 꿈을 포기하고 내린 이 결정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또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였다. 우연히 남은 꽃들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작은 꽃다발은 금액도 부담이 없고 누군가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기 딱 좋았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미니 꽃다발 판매는 그녀의 진심이 잘 전달되는 상품이 되었다. 얼마 전 나도 미니 꽃다발은 산 적이 있었다.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가 웃음 지을 수 있는 선물이면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 부분이다.


꽃다발이 화려하다고 상대가 감동받는 건 아니에요.
비싸도 괜찮으니 무조건 크게 만들어달라는 손님에게 도리어 미니 꽃다발을 권해요.
주는 사람이 직접 고른 꽃 몇 송이면 마음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죠.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꽃도 마찬가지고요.


새로운 시작은 누구나 늘 힘든 것 같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도리어 힘이 드는 것 같다. 이번 새해에는 '꼭 무엇을 해야지!'보다는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어야지!'로 목표를 잡아야 겠다. 어떤 일을 하던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노력 속에서도 내가 조금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웃을 날도, 거창하지 않지만 새로운 꿈도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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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3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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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학교 시리즈>는 알랭드 보통이 세운 '인생 학교'에서 목표로 하는 '감성지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중 <소소한 즐거움>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작은 행복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면서 우리는 '행복해져야지'라는 말은 많이 한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누구나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스스로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복을 느껴야만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행복했을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은 잘 아는 사실이다. 일상의 작은 사건과 습관, 사람들로부터 얻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모여 순간의 행복을, 한 해의 행복을 만들어낸다. 여기 52개의 소소한 즐거움들은 정말 일상적인 것들이다. '별', '할머니', '창밖 응시하기', '동틀 무렵', '오래된 돌담',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노래' 등 실천해야지 하고 하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내가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나 존재하는 사람, 물건, 풍경이다. 이미 익숙하다고 여기는 것들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좋다'라고 한마디를 내뱉고 있을지 모른다.


소소한 즐거움이란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은 미소처럼 무언의 작은 행동에 나타난 진심을 언뜻 일별할 때 느껴지는 행복감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 가게 주인의 얼굴 근육 움직임은 몹시 사소한 것임에도 우리에게 소중한 사실 하나를 일깨워준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로 수많은 선한 마음이 흘러 다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평소에는 잘 알아보지 못한다. (p. 78)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쉽게 집에 대한 그리운 감정과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도, 늘 잠을 자던 침대의 푹신함과 거리의 표지판, 자주 가던 단골 카페와 같이 잘 모르고 지내던 것이 "어때, 나 소중하지?"하고 고개를 치켜든다. 진심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진심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이다. 우리가 느끼던 익숙함의 진심은 소중함일지 모른다. 소중하다는 건 품에 꼭 안고 싶게 만든다. 진심을 마음속에 간직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상황이 정말로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이 우리가 원하는 기대와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괴롭거나 우울해지는 것이다. 최악을 예상하는 것은 뜻밖에도 우리에게 힘을 북돋워준다. 비관주의는 우리에게 말한다. 삶이란 우연히 또는 잠시 비참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나 힘들고 버거운 것이라고. (p. 100)


소소한 즐거움에는 비관주의도 포함된다. 처음에는 물음표가 생성되지만 사실 긍정보다 부정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부정을 부정하며 살아가기란 어려운 것이기에 수긍이 간다. 최악을 예상하는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최악을 통해 잃어버리는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삶 자체가 늘 긍정적이고 탄탄대로일 수 없다고 말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많고 서로 의지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근심을 덜어놓는다. 비관주의 앞에 '너그러운'이 붙으면 비관도 조금의 아량을 베푸는 아이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로감은 종종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된다. 쓸 수 있는 힘이 다 소진되었기에, 중요한 일에 손을 대야 하지만 두뇌 에너지가 방전되었기에, 문제의 해결책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이미 지쳤기에, 포기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피로감이 반갑다. 우리는 하루의 끝에서 소중하고 값진 피로를 경험했다. 에너지가 바닥나서 짜증 나기는커녕, 그 기분 좋은 피로감이 하루의 노고에 대한 자연스럽고 정당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숙면을 위한 좋은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p. 191)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혼잣말과 함께 온갖 피로감이 몰려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싶다가도 또 하루를 버텨냈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느낀다. 에너지는 소진되었지만 무언가를 하며 산다는 생(生)의 소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더 살아있음을 느낀다. 쓰러질 듯한 몸을 침대에 던지면 푹신한 이불이 그날따라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곧 잠도 쏟아질 것 같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누우면 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몰려올 것 같다. 그런 하루를 보냈을 때 우리는 가장 기분 좋은 꿀잠을 잔다. 어떤 생각도 안 나고 바로 눈이 감기는 상태는 꽤 기분이 좋다. 이런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렇게 다양한 즐거움이 우리 주변에 있다. 잊고 사는 것도 있고, 맞는다고 맞장구치게 되는 것도 있었다. 행복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열차의 간이역은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다. 잠시 정차해서 스트레칭도 하고 간식도 먹고 상쾌한 공기도 마셔보는 그런 잠깐의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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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4
The School Of Life 지음, 구미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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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 학교'에서 목표로 하는 '감성지능'을 높이기 위한 활동 중 하나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다양한 관계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남녀관계'이다. 특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사랑 사이에서 우리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보다 좋은 관계를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려운 내용보다는 쉬운 내용으로, 특히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한 것들(ex. 이 청바지는 어떤 거 같아?)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집어주면서 그 사소한 다툼과 의견 충돌이 왜 생기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준다.

그것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낭만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낭만적인 사랑은 생각만 해도 웃음 지어지는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로맨틱하고 다정한, 서로 죽고 못 살겠는, 너무 사랑해서 죽음도 불사할 그런 드라마틱한 것들이 연상된다. 책에서 말하는 낭만적인 사랑도 그런 것이다.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고, 온전히 수용해야 하며, 1명의 상대와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그런 이미지이다. 문제는 낭만적인 그 자체가 아니다. 그로 인해 파생되어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전승된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이 현재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잠시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소한 일에 과민반응하는 이유', '아이 같은 배우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대화의 중요성'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발생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프로이트같이 다양한 심리학자들은 과거에 충족되지 못한 것들이 현재의 문제로 발현되는 것이라 말한다. '100%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전이'되어 표현되는 것은 맞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부모님도 완벽한 부모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우리 역시도 스스로를 완벽한 사람이라 칭하지 못한다. 세상도 늘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것들 투성이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느꼈던 불완전한 모습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완벽함의 프레임을 씌워버린다.

내가 잘 받지 못했던 것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충족 받고 싶어 한다. 주고받는 관계에서 사소한 것에 말다툼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로 발생하는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도 이런 의미에서 나왔을 것이다. 연인일 때 몰랐던 그 사람의 장점이 단점으로 둔감되어 버리기도 하고, 그때는 마냥 좋고 멋있었던 부분이 답답함으로 표현되게 한다. 일일이 부딪히고 맞춰가야 하는 것은 그렇게 서로가 다르고 양보해야 함을 받아들일 때부터이다.

 

그런데 부부를 보면 놀이방에 단둘이 남은 아이들 같을 때가 많다. 둘 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보채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어른 역할을 자처하며 상대방을 충분히 보살핀 다음 그 노력의 대가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의 고통을 보살피기 위해 우리의 욕구를 잠시 제쳐둬야 하는 것이 당연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주는 법도 아는 어려운 과제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p. 72)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되는 사랑이란 없다. 나도 날 모르는 게 삶인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상대에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다. 아주 어릴 때는 울음으로 때론 떼를 쓰면서 '난 저게 필요해요', '난 저게 갖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편한 것이다.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관해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다. 말하기도 입 아플 때가 현실적으로는 많다. 거기에는 아마 이러한 우리의 어린아이가 잠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단 내면의 어린아이를 인정해야 하는 편이 더 필요해 보인다. 수용이 명답은 아니다. 때론 서로에 대한 충고도 필요하고 도움도 필요하다. 누가 봐도 불쾌한 행동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연인이란 특수한 관계를 통해 그것을 인정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부부는 불완전함을 보듬어주며 헤쳐가는 동료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이란 말로 서로를 속박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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