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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죽은 연인에게서 전화가 온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온 익숙한 모티프이기에, 처음 이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는 맛의 감정(그리움과 애틋함, 잔잔한 위로)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효인의 <그렇게 안녕>은 그런 예상을 단번에 깨뜨린다. 이 작품은 죽음 이후의 낭만적인 사랑을 그리기보다, 남겨진 자의 현실적 고통과 애도의 지난한 과정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리고 여기에 미스터리적 요소가 더해져,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소설은 연인 소우와 리호의 7년 연애로 시작된다. 같은 생일을 가진 두 사람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돈 걱정 없는 서른’을 꿈꾸던 리호는 캐나다로 떠나고, 그 사이 한국에 남은 소우는 여름밤 천문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고처럼 보이지만 의문이 많은 죽음. 남겨진 리호는 소우가 사랑하던 속초에 자리를 잡고, 술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의 내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 ‘내일’이란 단어는 의미를 잃고, 남은 시간은 소우의 부재를 견디는 길고도 흐릿한 반복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걸려온다. 분명 소우의 목소리다. 처음엔 꿈같던 그 목소리가 사실 평행세계의 ‘1년 전 소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리호는 매일 밤 이어지는 그 통화를 통해 소우를 잃은 슬픔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만, 동시에 현실 속 소우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도 다가간다.
리호가 알던 소우는 순수하고 따뜻한 연인이었다. 그러나 죽음 이후 드러나는 단편들은 그가 결코 단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존재조차 몰랐던 형의 등장, 천문대에서의 수상한 근무, 그리고 다른 여성과의 모호한 관계. 리호는 그 모든 조각을 맞추며 소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의 기억은 의심으로, 위로는 혼란으로 변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추적의 과정이 리호를 다시 현실로 이끈다.
작품은 애도의 단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소우의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는다.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곧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된다. 그렇게 리호는 아름다운 걸 기대하며 내일로 걸어 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나 체념이 아닌, ‘안녕’을 진정으로 건네는 순간이다.
소우의 죽음을 통해 리호는 결국 자신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애도의 끝에는 반드시 작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안녕’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이별의 인사가 아님을. 그것은 떠나보낸 이에게,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는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다.
아름다운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용기, 그 조용한 생의 의지야말로 이 소설이 남기는 가장 큰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