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 빈 책을 채우자 나의 이야기로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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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향하는 매일은 결국 나를 읽는 일상에 가깝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한 페이지씩, 한 챕터씩 넘기며 숫자보다 오늘의 문장을 고르고 그러다 마음이 멈추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하루의 속도가 달라진다.


임진아의 <2026 다 읽을 거야> 일력은 단순히 날짜를 표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바쁘다는 이유로 흘려보낸 시간을 다시 붙잡아 주는 작은 멈춤의 장치처럼 느껴진다. 뺴곡한 일정으로 가득 찬 캘린더를 보다가 이 일력의 한 장을 넘기면, 잠시라도 나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일력 속 짧은 문장들은 떄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단단하게 하루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주며,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순간들의 가치를 다시 일꺠워 준다. 그래서 이 일력은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도구를 넘어, 나를 천천히 읽어내는 조용한 기록장. 이곳에 나의 마음도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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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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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선연하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나의 행복을 우선한다'는 사고방식은 어쩌면 작은 혁명이었다. 초개인화가 삶의 기본값이 되는 시대가 올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멀리 와 있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10년 전보다도 한층 더 솔직하고 꾸밈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결국 이 모두가 그저 살면서 거쳐가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처럼, 판사에서 전업 작가로 인생 2막을 시작하며 마주한 현실의 민낯을 담담히 고백한다. 


'지금 이 일이 나와 꼭 맞고 너무 행복하다'는 식의 깔끔한 결말은 이 책에 없다. 대신 직업을 바꾸며 얻은 자유와 감당해야 했던 불안, 그럴싸해 보였던 계획들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일했던 조직에서 부정을 겪고, 결국 퇴사해 진짜 꿈을 찾는 과정은 살 전체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내가 끊임없이 겪는 불안 역시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조차도 여전히 겪고 있는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써 내려가는 문장에는 첫 번쨰 삶에서 배어 나온 경험의 결이 진하게 묻어난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순한 잣대로 행위를 재단하는 사회 속에서도, 어떤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이득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태도가 느껴진다.


현실에서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이 벌써 10년 전 책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의 이번 결심은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줄임표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결심'처럼 읽힌다. 여전히 흔들리고, 다 써 내려가고, 또 수정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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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루이&후이 시점 2 (양장) - 사랑으로 함께 써내려가는 쌍둥이 판다의 성장 일기 전지적 루이&후이 시점 2
송영관 지음, 송영관.류정훈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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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루이&후이 시점2>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리고 진심을 다해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알려준다.


에버랜드의 쌍둥이 판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 그리고 그들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돌보는 주키퍼 송영관님. 우리는 그를 ‘송바오’, ‘작은 할부지’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따스한 시선은 여전히 변함없다. 판다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생명을 온전히 이해하려 애쓰는 보호자이자 가족같다.


사실 나는 한때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그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 생명의 자유를 빼앗는 어두운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편견은 푸바오에 대한 에세이를 읽으며 달라졌다. 그 안에서 들여다본 보호자의 진정성, 그리고 멸종위기종이 생존할 수 있도록 마련된 환경이라는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동물원’의 정의를 다시 묻게 했다.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생각보다 더 깊은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왜 판다에게 열광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나는 푸바오의 모든 영상을 섭렵하고 있었고, 루이와 후이의 탄생기를 보며 울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알게 되었다. 판다는 단순히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그 안에 각자의 취향과 성격, 고유한 세계를 갖고 있는 ‘하나의 존재’였다.


루이는 천천히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아기였고, 후이는 호기심 많고 씩씩하며 때로는 엉뚱한 개구쟁이였다. 책 속 송영관님의 기록은 이런 성격 하나하나를 존중하며 지켜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독자인 우리도 점점 더 깊이 그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엔 ‘우리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했던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계산도 이유도 없이,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감정. 판다는 내게 그 오래된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세상이 주는 다양한 순간을 마주하면요. 우리는 더 깊어지고 넓어지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될 거예요. (p. 160)


나는 생명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생명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늘 뒷걸음질 치곤 했다. 그런데 루이와 후이를 바라보며, 그리고 그 아이들을 생명의 무게만큼이나 큰 사랑으로 돌보는 송영관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책임의 반대편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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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마음 없는 일 - 인스피아, 김스피, 그리고 작심 없이 일하는 어떤 기자의 일 닻[dot]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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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스피'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한 김지원 기자의 신작 <일에 마음 없는 일>은 일과 마음 사이의 관계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뉴스레터 <인스피아>의 비하인드 스토리, 기자로서의 일상, 흔들리는 직장인의 마음가짐까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나도 뉴스레터를 발행해본 경험이 있어 저자의 고민들이 유난히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 중, 인상 깊은 것은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마음 없이 일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우리를 붙잡는 것도, 쓰라리게 하는 것도 일이라는 사실. 마음이 전혀 없는 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일에서 좀처럼 보람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조직이 나와 맞지 않는 건 아닐까, 다른 일로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며 아팎으로 분투했다. "일은 원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어렴품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저자는 <인스피아>를 통해 '안전함'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간다. 누가 읽을지 모르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기묘하게도 마음 없는 일을 생동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을 버텨낸 그의 태도는 맹렬히 달려들지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쌓아 올리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구조나 시스템의 탓을 하기보다는, 일단 내가 읽기에 재밌는 글을 만들어보는 일 말이다. (p. 146)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1년 넘게 뉴스레터를 발행하던 시간들. 일을 하기 위해 오히려 다른 일을 만들어 하던 때. 그때의 나는 무기력과 활력이 뒤섞인 혼종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짐짓 마음을 쓰며 내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던 날들. 아마 다들 그런 시기를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결국 말한다. 일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서사이며, 마음 없는 척하면서도 마음을 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 그 서사를 이끈다고. 


나 또한 앞으로도 계속 변형되고 부침을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없는 척, 사실은 마음을 쓰며 계속 일을 해보고 싶다. 김지원 기자처럼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게 우리가 각자의 일을 만들어가는 방식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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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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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연인에게서 전화가 온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온 익숙한 모티프이기에, 처음 이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는 맛의 감정(그리움과 애틋함, 잔잔한 위로)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효인의 <그렇게 안녕>은 그런 예상을 단번에 깨뜨린다. 이 작품은 죽음 이후의 낭만적인 사랑을 그리기보다, 남겨진 자의 현실적 고통과 애도의 지난한 과정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리고 여기에 미스터리적 요소가 더해져,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소설은 연인 소우와 리호의 7년 연애로 시작된다. 같은 생일을 가진 두 사람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돈 걱정 없는 서른’을 꿈꾸던 리호는 캐나다로 떠나고, 그 사이 한국에 남은 소우는 여름밤 천문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고처럼 보이지만 의문이 많은 죽음. 남겨진 리호는 소우가 사랑하던 속초에 자리를 잡고, 술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의 내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 ‘내일’이란 단어는 의미를 잃고, 남은 시간은 소우의 부재를 견디는 길고도 흐릿한 반복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걸려온다. 분명 소우의 목소리다. 처음엔 꿈같던 그 목소리가 사실 평행세계의 ‘1년 전 소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리호는 매일 밤 이어지는 그 통화를 통해 소우를 잃은 슬픔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만, 동시에 현실 속 소우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도 다가간다.

리호가 알던 소우는 순수하고 따뜻한 연인이었다. 그러나 죽음 이후 드러나는 단편들은 그가 결코 단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존재조차 몰랐던 형의 등장, 천문대에서의 수상한 근무, 그리고 다른 여성과의 모호한 관계. 리호는 그 모든 조각을 맞추며 소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의 기억은 의심으로, 위로는 혼란으로 변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추적의 과정이 리호를 다시 현실로 이끈다.

작품은 애도의 단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소우의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는다.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곧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된다. 그렇게 리호는 아름다운 걸 기대하며 내일로 걸어 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나 체념이 아닌, ‘안녕’을 진정으로 건네는 순간이다.

소우의 죽음을 통해 리호는 결국 자신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애도의 끝에는 반드시 작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안녕’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이별의 인사가 아님을. 그것은 떠나보낸 이에게,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는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다.

아름다운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용기, 그 조용한 생의 의지야말로 이 소설이 남기는 가장 큰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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