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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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종종 잊곤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혐오를 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저자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떻게 차별로 이어지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설명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p. 60)


그래서 위 문장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우리'라며 환대하는 태도와 '그들이라며 배척하는 태도 사이에는 극명한 온도 차이가 있다(p. 50)는 말마따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약자가 되기도 하고 강자가 되기도 하며, 주관적인 관념에 따라 경계를 짓고 살아간다.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많고 그걸 일일이 지적해 줄 사람은 너무도 적다. 가볍게 이 책을 펼친 것처럼 가벼이 차별에 가담하게 되는 가해자가 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많은 기준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p. 111)


남을 돕는 게 천성이라 믿고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지금도 복지 차원의 일을 하고 있다. 복지라는 천사같은 단어와 다르게 이 업계는 '조건'에 따라 편을 가르고, 대상자를 '선별'하고, 그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차별'이 자주 발생한다.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만들고자 하는 일이지만, 그 생각이 독이 될 경우가 많고 알게 모르게 색안경을 낀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도 많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한번도 내 마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왜 저러고 살까 한숨도 쉬었으면서.


TV에 나오는 권력이란 것을 나도 갖고 있었고, 자주 갑과 을의 입장에서 호오를 판별하고 있었다. 공공질서라고 하는 '공공'이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만능 논리가 탄생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쪽이 늘 발생함을 인지하면서 그 시스템을 바꿀 힘은 우리에게 없다고 자조하고 있었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p. 205)


마지막까지 읽고서야 참았던 숨을 후우 내뱉을 수 있었다. 공존의 조건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옳은 삶을 규정하지 말기라는 차원에서 차별을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조언이 아직은 막막하게 다가왔다. 일단 내가 있는 곳이 작은 새장이었단 걸 인식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내가 서 있는 곳이, 살아가는 사회가 점점 알 수 없는 미로처럼 다가온다.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아무렇지 않게, 내게 해가 될 일을 제거하며 살기 위해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젠 더 나아가 '선량한'이란 단어를 지울 수 있게, 최소한 '노력하는' 차별주의자라도 될 수 있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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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개하는 키워드 찾는 법 - 평범한 경험도 특별하게 만드는 노션 포트폴리오
이루리 지음 / 리드앤두(READNDO)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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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곳곳에서 회고 키워드가 등장한다. 내가 일궈낸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누구나 같은 모양이다. 노션이 등장한 후로는 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매년 회사나 해낸 일을 기준으로 역량을 다듬는 일은 중요한 연말·연초의 일이었다. 


정작 노션을 제대로 알고 쓴 적은 없다. 적당히 누군가의 무료 템플릿을 다운받거나, 유명 인플루언서의 포트폴리오를 따라하며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게 치중했다. 그래서 노션의 기능을 알기 쉽게, 그리고 포트폴리오의 요점을 콕 짚어주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었다. 때마침 나온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올해로 흐지부지 대충 만들었을지도.


노션 앰배서더 이루리가 말하는 포트폴리오의 큰 방향은 두 가지다. '키워드'와 '경험 데이터베이스'. 노션에는 필터와 정렬을 통한, 마치 엑셀과 유사한 '데이터베이스'라는 기능이 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원하는 대로 경험을 재조립해 볼 수 있다. 그는 태그 등을 활용, 경험 나열하기를 넘어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경험을 작성해 봤다면, 본격적인 포트폴리오 작성이 시작된다. 여기서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된다. 단순히 매뉴얼을 언급하기보단 나의 흩어진 조각을 한데 모아, 보기 좋게 분류하고, 어떻게 정의할지를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 자체가 포트폴리오 같달까.


내 포트폴리오의 패착은 기술, 나열의 반복이어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욕심 과다. 이 경험도, 저 경험도 자기 자신에겐 소중하니까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위 사진처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고, 어떤 강점이 있는 사람인지 직군별로 예시를 들어주는 게 소중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이미지메이킹 하는지 볼 수 있어 나는 어떤 키워드로 방향키를 잡을지 도움이 됐다. 


더군다나 나를 강조하기 좋은 수식어도 제공해 주니 내년의 나를 차별화하는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저자가 작은 회사에서 여러 일들을 오래 해왔고, 재밌는 일들을 쉽게 벌이는 사람이라서 관련 경험을 추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은 익힘책이 되었다.


포트폴리오를 꼭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의 경험/경력을 정리하고 회고하며, 혼잡한 세상에서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재정의하고 싶다면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쓰지 않으면 생각은 구체화 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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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이주윤 지음 / 빅피시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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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더라도 오래 손 놓고 있으면 퇴보하는 게 글이다. 현재 내가 그렇다. 좋아해서 쌓아둔 책만 수십 권. 매일 읽어야지 되뇌어도 눈이 절로 감기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써야 할 글과 읽어야 책이 넘치고 어찌할 방도를 찾을 수가 없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좀처럼 펼치지 않는 필사책을 꺼냈다. 더 나은 어휘력을 만들어 준다니! 이만큼 설레는 문구가 또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인즉,

모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과 같을 것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미를 문장 속에 놓았대도도

읽는 이가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받아들일 방도가 없겠지요.



이 책은 단순 필사책이 아니다. 무작정 좋은 글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란 소리다.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표현하는 법', '매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법', '품격 있는 어휘로 세계를 넓히는 법'까지 장마다 주제가 있고 선별된 문장들이 줄지어 있다. 


아는 문장도 떼 놓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김애란의 <비행운>은 서른의 나를 울렸고, 양귀자의 <모순>은 스스로를 자각하게 했으며,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어떤 문장은 다소 평범하여 '왜 있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언어일수록 곱씹게 되는 맛이 있다. 잘 쓴 문장은 어려운 어휘를 보기 좋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쉬운 말을 읽기 쉽게 쓰는 것이니까. 



이 책은 단순 필사책이 아니다. 무작정 좋은 글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란 소리다.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표현하는 법', '매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법', '품격 있는 어휘로 세계를 넓히는 법'까지 장마다 주제가 있고 선별된 문장들이 줄지어 있다. 


아는 문장도 떼 놓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김애란의 <비행운>은 서른의 나를 울렸고, 양귀자의 <모순>은 스스로를 자각하게 했으며,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어떤 문장은 다소 평범하여 '왜 있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언어일수록 곱씹게 되는 맛이 있다. 잘 쓴 문장은 어려운 어휘를 보기 좋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쉬운 말을 읽기 쉽게 쓰는 것이니까. 


<시지프 신화>의 문장처럼 우린 등장인물의 실제 감정을 상상할 뿐 그것이 진짜 그들이 느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문장을 두 번, 세 번 받아적고 있으면 눈이 뜨인다. 그의 한숨이 안도감에서 비롯됨을, 그녀의 단말마의 외침인지, 시의 구절이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작가가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에는 진심의 힘이 담겨 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필사하며 어수선한 지금, 이 순간이 떠올랐다. 천국으로 가는 자도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자들이 명확히 공존하는 이 시국에 고요히 침잠할 수 있는 순한 자극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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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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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진 않아...... 근데 괜찮아. 행복한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괜찮은 게 중요한거지. (p. 117)


이서수 작가는 사회 문제와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다. 아마 카페 창업을 한번이라도 꿈꾸었다면, 이 책을 읽고 물거품처럼 날려보내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자영업의 고난과 여성으로서 노출된 위협을 깊이 있게 다루며, 주인공 마은이 마주하는 다양한 시선과 사건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동등할 수 없는 걸까. 이웃이자 손님인 그들과 자영업자는 결코 동등해질 수 없는 걸까. 무조건 그들의 취향에 나를 맞추고 그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해야 할까. 자영업자니까, 서비스업이니까, 돈을 받았으니까? (p. 204)


마은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저 나대로 살아가며 카페를 운영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아 자주 난처하게 만든다. 무례하게 가게를 둘러 보고, 과한 친절을 요구하며 한계를 시험하게 한다. 꼭 카페라서가 아니라 으레 서비스직이면 한번은 겪어봤을 '진상'의 상황들은 삶을 버석이게 만든다.


그래도 마은은 이겨내고 괜찮아진다. 타인의 크게 귀담아듣지 않던 마음을 열고, 하나씩 카페를 대중의 취향과 조율하며 변화를 통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건조한 삶엔 적당한 습기가 필요하다. 적당함이란 난제를 풀고 나면 조금씩 용기가 생긴다. 희망 사항도, 꿈도, 미래도 어쩌면 작은 빈틈에서 피어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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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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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여전히 제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기운들에 얽매이고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려고 읽는다. (p .26)

고닉의 세 번째 선집 <끝나지 않은 일>은 다시 읽기에 관해 말한다.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었다던 그는 오독과 오해의 무더기 속에서 과거를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갔던 현재까지를 톺아보며 읽기를 파헤친다.

읽기의 시작, 그건 순전히 재미였지만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순진함은 삶의 딜레마로 대체된다. 그건 페미니즘이었고, 너무 놀라 얼떨떨한 채 말을 잃었던 순간에서 엄정한 현실의 장벽을 느낀다.

🔖이미 상처 입고 훼손된 자아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하려면 이데올로기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열렬한 수사와 엄정한 현실의 요구 사이에. (p. 23)

그리고 다르게 읽기 위해 닳아버린 소설들을 다시 꺼낸다. <끝나지 않은 일>은 책 읽기를 통해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이건 성장의 이야기다. "새로운 의미들을 발굴해 그 위에 양피지처럼 의미를 덧쓰고 고쳐 쓰고 겹쳐 쓸 뿐이다."

나도 그렇다. 다시 읽으면 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 등장인물의 인물이, 전개되는 서사가 기억과 달라 당황한다. 내가 이런 걸 읽었냐며 감동의 순간이 메말라 버리는 것도 다시 읽기의 미묘한 재미다.

나의 오류와 오독, 오해로 점철된 과거 위해 현재의 바름을 덧칠하는 것. 고닉만큼은 아니지만 나의 읽기를 돌아볼 수 있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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