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 일상 속 음식에서 발견한 철학 이야기
오수민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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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을 먹다가 칸트가 생각나고, 버터 성분을 보다가 데카르트가 떠오른다.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철학이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 건, 취향을 저격하는 음식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의 나처럼 철학에 대해 오해하며 재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손을 놓아버린 경험이 있었지만 다시 관심이 생긴 건, 쳇바퀴처럼 질문 지옥에 던져놓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소재에 철학을 살짝 가미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철학 한 끼>라는 매거진으로 한차례 연재가 되었던 글은 저자가 일상 속에서 좋아했던 음식들 속에서 철학자를 연결하며 진행된다. 붕어빵을 먹다 떠오른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게 만들지는 않아도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왜 이런 주장 펼쳤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철학과가 아닌 이상 철학 책을 펼쳐보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이건 마치 철학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가 고프다고 느낀 것, 그래서 붕어빵을 사 먹으려고 생각한 것, 다 먹은 후 천 원어치만 더 살 걸 하고 후회한 것.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경험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 생각이나 느낌 또한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일어난다. 또한 붕어빵이라는 물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일정한 부피를 가지고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 인식된다. (p. 48)

 

칸트는 초콜릿을 먹다가 불쑥 등장한다. 일반 녹차 킷캣과 킷캣 프리미엄을 이야기하며 녹차 함유량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 키캣을 먹었다고 손해 본 느낌이 들진 않는다는 생각을 펼치며 이성적인 판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당히 "아~ 이런 맛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면 "완전 손해는 아니었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평가는 헤겔과 칸트의 논쟁으로 이어지는데 재미있다.

 

로아커, 레돈도, 킷캣으로부터 그것들을 모두 아울러서 설명할 수 있는 상위의 개념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세 과자의 공통점만 쏙 골라서 만든 개념이라기보다, 길쭉한 웨이퍼, 막대 형식으로 돌돌 말아진 웨이퍼, 겉에 초콜릿을 코팅한 웨이퍼 등등 다양한 웨이퍼들을 모두 함께 포섭하는 개념이라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보편 개념이란 현실 세계의 사물들과는 동떨어져 완전 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세계의 불완전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모두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p. 95)

 

버터에 대해서도 데카르트와 연결한다. 녹아버린 버터를 보며 우리는 '아까 그 버터'라고 인식하는 모습을 보며 버터도 모양이 변할 수 있도, 변해도 버터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버터의 연장성이라 부르며 데카르트가 물체를 파악할 때 연장성에 근거하여 판단한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가 쉽게 파악하는 건, 감각기관을 통한 인식이 아니라 나의 정신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파악하기 쉬울 거라고 가정하는 것은 '오해'라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나의 정신을 통해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며, 결국 나에게 있어 가장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나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에 의지해 판단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므로, 외부의 물체들을 판단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는 더더욱 분명해지게 된다. (p. 174)

 

철학은 '존재'에 대해 탐구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본질을 탐구한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우린 먹고 살 걱정만큼이나 내가 왜 이러고 살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먹고사는 것이나 사는 이유나 결국 인간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철학인데, 내 삶에서 이보다 유용한 것이 또 있을지를. 아, 물론 여기에 대한 답을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규명한 후에야 가능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철학이 다룰 만한 질문이다. 역시, 오늘도 삶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p. 246)

 

책을 읽고 공자가 조선이란 꼰대 같은 나라를 만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쾌락주의가 단순히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쩌면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편견처럼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란 잣대로 진입장벽을 높게 설정하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철학은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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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 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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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울기 좋은 방>은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슬프고 힘든 책으로 꼽힌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덮었는지 모를 만큼 작가님의 심정이, 정서가 가슴 깊이 와닿아 좋아하면서도 함부로 꺼내읽지 못하는 책이 되었다. < 13월의 만나요>도 혹시나 그럴까봐 걱정이 되었다. 13월이란 존재하지 않는 계절처럼 기약 없이 책장에 꽂혀질까 봐 조심스레 한 문장씩 읽어내려 갔다. 그녀를 스쳐간 인연들과 커피를 향한 애증 섞인 시선,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푸는 과정은 소복이 쌓인 눈밭에 내 발자국을 새기는 과정 같았다.


 

건조한 영혼 틈으로 스며드는 생각,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란 말 자체만을 생각해보면 살기 싫어진다. 사는 일이 너덜너덜해진다. 폐허가 될 때마다 사람에게 기대려고 해본 적 없었더도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듯, 기댈 사람이 누구라도 관계없다. (p. 19~20)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사람은 보호되어야 한다.(p.15)는 말처럼 그녀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여 섣불리 다가서거나 다가오는 관계를 지양한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긴다. 매 장마다 주인공이 되는 인연과 장소는 경계하면서 기대었던 자신의 마음이 놓여있다. 너덜너덜 떨어질 듯 애처로운 심장을 꿰매주던 사람과 무심히 건넸던 질문들, 정확한 마음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과 놓지 못한 미련들을 정갈하게 정리한다.



 

이제는 그 소망조차 놓았으나 이것이 내 꿈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고 그 시절 슬픔도 깊어서 더 깊은 슬픔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슬픔은 또 오더라. 슬픔은 왜 끝없이 오는가. 꿈을 꾼다는 것은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겪은 것을 겪지 않기 위해 단단히 경계하고 살았는데 내 앞에 깊은 강과 험난한 바다가 있다. (p. 87)


 


나는 나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내가 아직도 소중한가 보다. 나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깊어 멈출 줄을 모르는(p.38) 모습은 곧 나였따. 타인에게 상처도 주고 정말 무결한 사람처럼 구는 못된 사람과 티 나게 심술부리며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는 보통 사람은 사랑을 만나며 특별해진다.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 태어남과 죽음처럼 알면서도 끌려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이란 자산을 기억이란 생동감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는 순간, 헤어지는 일은 만나는 일의 기약처럼 다가온다. 우리 모두 헤어지고 우리 모두 죽는다. 나도 헤어질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헤어지고 죽는다고 모두 헤어지고 죽는 것이 아니었다. 잘 헤어지지 못하고 잘 죽지 못하면,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룰 때까지 사랑하는 수밖에 없듯 헤어지지 못하고 죽지 못한다. (p. 292)


 

단단했던 다짐과 철저했던 계획이 무용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12월은 멜랑꼴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이 기록한 기억이 때론 독처럼 괴롭게도 만들고 새로운 기억에 지난 기억이 지워지기도 하는 시기는 아멜리가 그녀가 적어준 '지금부터 행복해지겠습니다'같다. 쓰지만 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언어. 13월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p.165)는 문장처럼 보고 싶은 사람, 보기 싫은 사람 모두 그리워하게 되는 묘한 계절의 신기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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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안대근 지음 / 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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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뒤에 마침표를 찍는 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마침표 뒤의 이야기는 행복하기만 바라니까.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우린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에 응원을 보낸다. 맑고 순박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세상은 없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나는 누군가의 하루가 슬픔으로만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이라는 건 대책 없이 찾아오니까, 대책 없이 슬플 때는 그 마음 그대로 슬픔을 쏟아내고, 그러다가도 웃음이 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웃음이 날 때는 웃었으면 좋겠고 그러다가 또 모든 기억하고, 추억하고, 잊지 않고. 나는 언제나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충분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충분한 애도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p. 33)

 

하지만 안대근 작가님은 전작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보다 더 깊어진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감사해서 더 잘해드리고 싶지만 실언을 하며 상처를 주게 되는 가족, 멀지만 가까운 사회의 친구들, 기억에서 희미한 사람들과 열광했던 작가와 가수. 그들과 함께 만들어 낸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그 애에게 준다. 나에게만 소중할지도 모르는 것, 그 행복의 전부를 상대의 양손에 쥐여주는 일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나도 꺼내볼 수 없고, 상대도 꺼내보지 않는 것들을 또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p. 21)

 

나는 얼마나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경계함으로써 나 역시 모두에게 호감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야 그 사람이 왜 모두에게 호감을 받았는지 조금 알 것만 같다. 그가 자꾸 생각난다. 그 사람이 가진 그루브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까 봐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을 지우니, 넋 놓고 그를 바라보던 내 얼굴이 남는다. 마음 깊이 무겁게. (p. 118)

 

그를 좋아하면 자신의 일기장을 줄 만큼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다. 과거 앞에선 당당하지만 미래 앞에선 불안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인 대답 중에 자신이 쓴 시 한 편을 낭송할 수 있는 낭만을 가진 사람이다. 한 줄의 감성, 하루 5분의 여유 그 정도만큼은 자신을 기꺼이 허락하게 하는 관용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손을 잡고 함께 버스에 오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무릎이 누군가의 베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지 않고, 내 위치와 너의 위치의 높낮이를 재지도 않고, 부러움 없이 떳떳하게. 지름길을 걷지 않아도 언제나 튼튼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 (p. 133)

 

300쪽에 가까운 그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끌림이었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한 사이가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책이 된 것만으로 그는 '보고 싶은 사람을 모두 보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힘든 하루를 견디게 만드는 것처럼 그의 사람도 그를 일어서 있게 만들어 준다. 모든 이타심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나도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의 행복을 정말로 바라지만 나 없이 말고, 나 있이였으면 좋겠다. (p. 273)라고 말할 만큼 같이의 가치를 마음껏 어필한다.

 

좋아한 게 아니라고는 생각 못 하겠다. 눈을 보면 떨렸고, 밤에 달이라도 올려다보면 분명히 더 예쁘게 보였다고 생각해. 다만 당신은 언제가 더 좋은 사람, 더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여전히 난 섭섭하고, 그랬을 당신이 안쓰럽고,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져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서로 보고 살았으면 싶고. (p. 258)

 

빈틈이 있어야 위로의 말도 들을 수 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도 비슷하다. 여백을 만들어야 진심을 담을 수 있다. 손등 위에 내 손바닥을 올려놓는 일, 내 온기와 상대의 온기가 비슷해졌다 싶을 때 손을 꽉 잡아주는 일, 흔들려도 서로 꼭 잡고 버텨내는 일. 모든 일은 불완전한 우리가 함께여야 가능하다. 일으켜주고, 치켜세워주고, 마땅히 찬사를 보내는 행위는 모두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언젠가는 달라지길 빌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에 하기 싫은 일들도 해내게 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구태여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하기 싫은 일이 아닐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마음이 아픈 일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일, 무자비한 스피드로 닥쳐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마주할 때, 사랑이 모든 가능성의 증거가 되어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p. 17)

 

카톡 친구들을 셈하며 진정한 관계는 몇 명일까 숫자로 판단하기 보다 오늘 하루 마음이 누구에게 쓰였는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욕심내서 좋아하고 다정함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정육점의 고기처럼 무게를 저울질하지 말고 드라마의 해피엔딩처럼 관대한 결말을 기도하는 하루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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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 (1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안대근 지음 / 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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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예마근>이 1주년을 맞아 노란색 표지로 돌아왔다. 처음 초록색 표지였을 때 읽고 썼던 리뷰를 보니 작년의 나는 '타인의 시선'에 마음이 쓰였나 보다. 남들의 인정을 받고 싶기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불편함을 티 내면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다. 다시 읽은 올해의 나는 '나 자체'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금의 상태에서 유지하고 싶은 것과 빼고 싶은 것을 구분한다. 애써서 될 것과 아닌 것에 감을 잡게 됐달까?

 

나는 당신이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의 수를 세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의 수를 세느라 조금의 시간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는 건 오디션이 아니니까. 힘들면 울고 행복하면 웃어야지.

지지도 말고 이기지도 말아야지. (p. 35)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어른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어렵다. 그가 아픈 친구에게 병문안을 가서 '더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 힘내'라고 말한 것에 자책한 것처럼 우린 쉽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내뱉으며 비슷해지고 있었다. 쉽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려워졌고, 알다가도 모를 일이 생겼다. 어쩌면 사람은 태초부터 가진 불안을 잠재우고자 명확한 반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눈을 감고 누군가를 떠올려보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 있을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내가 애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나도 누군가에게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좋은 사람.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말해줬다. 애쓰지 말라고 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여전히 믿고, 여전히 좋아한다고.

 

애초에 '제대로'란 명확한 이미지도 없으면서 우린 쉽게 그 허상에 사로잡힌다. 그곳에서 불안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이 쏟아낸 말들에는 불안이란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불안하니까 드는 생각은 별로 좋지 않다고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 때론 갑자기 밝아진 하늘에도 감동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애쓰지 않아도 손을 뻗게 되는 것들에 '아무 이유 없이' 다가가고 싶다. 인생이란 드넓은 울타리를 생각하기보단 발밑에 작은 꽃망울을 지켜보는 일도 좋은 일이니까.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무작정 쏟아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울어야 한다는 말. 제대로 울지 못하고 적당히 강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요즘엔 말이다. 슬픔도 슬픔까지 가기 전에 알아서 잦아든다. 제대로 슬픔이 되지 못한 슬픔들이 들어차 마음에 쌓이다 보면 나는 나한테 많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 133)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눈물이 보일라 치면 불을 다 끈 방 안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가 새어나갈까 속으로 흐느껴 울었다. 감정을 보이는 건 건강한 일데 힘들고 지치면 모두 나만 유난인 감정 같아서 더욱 숨어서 울었다. 제대로 웃고 울어야 한다는 말은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순한 표현, 그건 가장 예쁜 마음 사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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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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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쓰라고 하면 자기 연민이 되기 쉽다. 내가 보기엔(때론 타인이 보기에도) 유독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고, 과정 안에서 상처는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세상에 멋지고 잘난 사람은 많으니까 저절로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이석원 작가는 자기 연민보단 담담함을 택했다. 내용이 슬프고 아파도 그 이상 이하로 내몰리지 않는다. 그는 생각보다 이럴 수 있나 싶어도 그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말한다.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막을 꿈꾸는 노래를 짓고 부른다. 고통이 아니었던들 내게 평화로운 삶 같은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의 중요한 것들이 이처럼 고통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내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p. 93) 

 

 그에게 삶은 낯섦의 연속이다. 일기장에만 써놓고 절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사건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좋았다고 느꼈던 시간이 있는데 야속하게도 그리 길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 계속 삶이 이어질 거란 티저 영상을 보여준 것 같다. 절망과 슬픔, 우울과 추억 속에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나 그리움으로 점철되진 않는다. 어느 정도 삶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사람만이 보여주는 곁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 (p. 189)

 

 

생각의 여력이 없으면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모두 끄나풀처럼 여겨진다. 얼마 전, 치러진 수능시험처럼.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이고 중대한 반환점으로 다가온다. 사실, 지나고 보면 그게 아닌데 말이다. '지나고 보면'이란 괴로운 전제가 깔려야만 별거 아닌 것이 된다. 보통이란 단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아직 보통을 겪어보지도 못했는데 보통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이 자꾸만 부러워지고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옹졸한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p. 268) 

 

 풋내가 나던 20살에 읽은 이 책을 5년이 지나서 읽으니 그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알듯 말듯 해서 좋았던 문장이 알아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달까. 각자 가진 보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모두 그곳에 도달에 얻고 싶은 위안과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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