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 일상 속 음식에서 발견한 철학 이야기
오수민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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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을 먹다가 칸트가 생각나고, 버터 성분을 보다가 데카르트가 떠오른다.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철학이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 건, 취향을 저격하는 음식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의 나처럼 철학에 대해 오해하며 재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손을 놓아버린 경험이 있었지만 다시 관심이 생긴 건, 쳇바퀴처럼 질문 지옥에 던져놓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소재에 철학을 살짝 가미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철학 한 끼>라는 매거진으로 한차례 연재가 되었던 글은 저자가 일상 속에서 좋아했던 음식들 속에서 철학자를 연결하며 진행된다. 붕어빵을 먹다 떠오른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게 만들지는 않아도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왜 이런 주장 펼쳤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철학과가 아닌 이상 철학 책을 펼쳐보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이건 마치 철학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배가 고프다고 느낀 것, 그래서 붕어빵을 사 먹으려고 생각한 것, 다 먹은 후 천 원어치만 더 살 걸 하고 후회한 것.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경험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 생각이나 느낌 또한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일어난다. 또한 붕어빵이라는 물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일정한 부피를 가지고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 인식된다. (p. 48)

 

칸트는 초콜릿을 먹다가 불쑥 등장한다. 일반 녹차 킷캣과 킷캣 프리미엄을 이야기하며 녹차 함유량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 키캣을 먹었다고 손해 본 느낌이 들진 않는다는 생각을 펼치며 이성적인 판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당히 "아~ 이런 맛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면 "완전 손해는 아니었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평가는 헤겔과 칸트의 논쟁으로 이어지는데 재미있다.

 

로아커, 레돈도, 킷캣으로부터 그것들을 모두 아울러서 설명할 수 있는 상위의 개념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세 과자의 공통점만 쏙 골라서 만든 개념이라기보다, 길쭉한 웨이퍼, 막대 형식으로 돌돌 말아진 웨이퍼, 겉에 초콜릿을 코팅한 웨이퍼 등등 다양한 웨이퍼들을 모두 함께 포섭하는 개념이라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보편 개념이란 현실 세계의 사물들과는 동떨어져 완전 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세계의 불완전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모두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p. 95)

 

버터에 대해서도 데카르트와 연결한다. 녹아버린 버터를 보며 우리는 '아까 그 버터'라고 인식하는 모습을 보며 버터도 모양이 변할 수 있도, 변해도 버터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버터의 연장성이라 부르며 데카르트가 물체를 파악할 때 연장성에 근거하여 판단한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가 쉽게 파악하는 건, 감각기관을 통한 인식이 아니라 나의 정신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파악하기 쉬울 거라고 가정하는 것은 '오해'라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나의 정신을 통해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며, 결국 나에게 있어 가장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나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에 의지해 판단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므로, 외부의 물체들을 판단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는 더더욱 분명해지게 된다. (p. 174)

 

철학은 '존재'에 대해 탐구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본질을 탐구한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우린 먹고 살 걱정만큼이나 내가 왜 이러고 살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먹고사는 것이나 사는 이유나 결국 인간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철학인데, 내 삶에서 이보다 유용한 것이 또 있을지를. 아, 물론 여기에 대한 답을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규명한 후에야 가능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철학이 다룰 만한 질문이다. 역시, 오늘도 삶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p. 246)

 

책을 읽고 공자가 조선이란 꼰대 같은 나라를 만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쾌락주의가 단순히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쩌면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편견처럼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란 잣대로 진입장벽을 높게 설정하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철학은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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