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안대근 지음 / 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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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뒤에 마침표를 찍는 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마침표 뒤의 이야기는 행복하기만 바라니까.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우린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에 응원을 보낸다. 맑고 순박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세상은 없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나는 누군가의 하루가 슬픔으로만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이라는 건 대책 없이 찾아오니까, 대책 없이 슬플 때는 그 마음 그대로 슬픔을 쏟아내고, 그러다가도 웃음이 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웃음이 날 때는 웃었으면 좋겠고 그러다가 또 모든 기억하고, 추억하고, 잊지 않고. 나는 언제나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충분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충분한 애도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p. 33)

 

하지만 안대근 작가님은 전작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보다 더 깊어진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감사해서 더 잘해드리고 싶지만 실언을 하며 상처를 주게 되는 가족, 멀지만 가까운 사회의 친구들, 기억에서 희미한 사람들과 열광했던 작가와 가수. 그들과 함께 만들어 낸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그 애에게 준다. 나에게만 소중할지도 모르는 것, 그 행복의 전부를 상대의 양손에 쥐여주는 일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나도 꺼내볼 수 없고, 상대도 꺼내보지 않는 것들을 또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p. 21)

 

나는 얼마나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경계함으로써 나 역시 모두에게 호감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야 그 사람이 왜 모두에게 호감을 받았는지 조금 알 것만 같다. 그가 자꾸 생각난다. 그 사람이 가진 그루브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까 봐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을 지우니, 넋 놓고 그를 바라보던 내 얼굴이 남는다. 마음 깊이 무겁게. (p. 118)

 

그를 좋아하면 자신의 일기장을 줄 만큼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다. 과거 앞에선 당당하지만 미래 앞에선 불안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인 대답 중에 자신이 쓴 시 한 편을 낭송할 수 있는 낭만을 가진 사람이다. 한 줄의 감성, 하루 5분의 여유 그 정도만큼은 자신을 기꺼이 허락하게 하는 관용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손을 잡고 함께 버스에 오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무릎이 누군가의 베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지 않고, 내 위치와 너의 위치의 높낮이를 재지도 않고, 부러움 없이 떳떳하게. 지름길을 걷지 않아도 언제나 튼튼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 (p. 133)

 

300쪽에 가까운 그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끌림이었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한 사이가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책이 된 것만으로 그는 '보고 싶은 사람을 모두 보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힘든 하루를 견디게 만드는 것처럼 그의 사람도 그를 일어서 있게 만들어 준다. 모든 이타심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나도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의 행복을 정말로 바라지만 나 없이 말고, 나 있이였으면 좋겠다. (p. 273)라고 말할 만큼 같이의 가치를 마음껏 어필한다.

 

좋아한 게 아니라고는 생각 못 하겠다. 눈을 보면 떨렸고, 밤에 달이라도 올려다보면 분명히 더 예쁘게 보였다고 생각해. 다만 당신은 언제가 더 좋은 사람, 더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여전히 난 섭섭하고, 그랬을 당신이 안쓰럽고,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져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서로 보고 살았으면 싶고. (p. 258)

 

빈틈이 있어야 위로의 말도 들을 수 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도 비슷하다. 여백을 만들어야 진심을 담을 수 있다. 손등 위에 내 손바닥을 올려놓는 일, 내 온기와 상대의 온기가 비슷해졌다 싶을 때 손을 꽉 잡아주는 일, 흔들려도 서로 꼭 잡고 버텨내는 일. 모든 일은 불완전한 우리가 함께여야 가능하다. 일으켜주고, 치켜세워주고, 마땅히 찬사를 보내는 행위는 모두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언젠가는 달라지길 빌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에 하기 싫은 일들도 해내게 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구태여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하기 싫은 일이 아닐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마음이 아픈 일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일, 무자비한 스피드로 닥쳐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마주할 때, 사랑이 모든 가능성의 증거가 되어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p. 17)

 

카톡 친구들을 셈하며 진정한 관계는 몇 명일까 숫자로 판단하기 보다 오늘 하루 마음이 누구에게 쓰였는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욕심내서 좋아하고 다정함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정육점의 고기처럼 무게를 저울질하지 말고 드라마의 해피엔딩처럼 관대한 결말을 기도하는 하루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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