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하게 산다 - 몸과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상의 습관
오키 사치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만 돌리면 새로운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사도 사도 끝이 없고, 좋아요를 누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어도 내가 사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는 충족되지 못한다. 과연 넘치는 욕구를 채워줄 완벽한 양이 있을까? 이 책은 저자가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30년 동안 얻은 노하우를 삶에 적용시킨 이야기이다. 단순히 집안 정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도 관계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와 비슷한 기조로 '미니멀 라이프'가 있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간소하게 생활하는 삶은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멀이란 말과 다르게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또 들어가고 단순히 세간을 줄인다고 해서 내 마음속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우면 사고 싶고 있어도 사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저자는 단순한 습관에서부터 실천하라고 한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정리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는 등의 생각보다 쉬운 습관 말이다. 일단 무언가를 정리하려면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상의 작은 습관은 누구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지속하기 곤란한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 도중에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노력과 인내와 참을성을 발휘하여 한번 몸에 익혀 습관화하면 어느덧 당연한 하루하루의 행동 패턴이 되어, 태양이 매일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듯 자연스럽게 반복되지요. (p. 216)


버리는 삶보다 고치는 삶이 더 고되다. 의식하면서 꾸준히 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말 내 삶을 간소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탈바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주변의 상황도 내가 다르게 조정하게 되고 마음가짐도 주변 사람들도 태도도 모두 바뀔 수 있다. 작은 날갯짓이 큰 태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저자의 이런 주장과 달리 나는 아직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문구부터 시작해서 책, 편지, 일기 등 다양한 것들이 내 방에 놓여있다. 어떤 건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 버리기 어렵고, 또 어떤 건 소중한 사람이 준 것이라서, 놔두면 언젠가는 쓸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나도 물질적인 만족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 특히 추억이니까.

아무래도 이 책은 지금의 나보단 나중에 노후를 준비할 때 꺼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그런 나이가 되면 오히려 책에 기록된 것들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려면 아직 한참 먼 미래의 일 같다. 정리하는 습관은 남녀노소 모두 필요하지만 최종 정리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저자의 나이도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그런가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누구나 복잡한 것들을 끊어내고 싶을 때 꺼내보면 좋을 책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법,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선물 - 알아 두면 쓸모 있는 헌법 이야기 아우름 24
조유진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헌법이란 두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모든 법들의 최고이자 근간이 되는 잣대 그래서 무겁게 다가오는 이미지, 어려움, 전문성 등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몇 번 법과 관련된 책을 읽어봤었지만 읽어도 모르겠고, 내가 이걸 알아서 현실적으로 쓸 수는 있을까 의문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깨준다. 단순히 헌법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 생활밀착형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나 이슈에 헌법을 살짝 녹여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만이 유일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인간 사회 내부에서도 많은 부조리를 낳았습니다. 권력과 강제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은 현실 속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강자의 존엄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생겨난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p.34)


헌법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존엄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 바탕은 사실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강자와 약자 사이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으며,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 생각하여 여러 동물들이 학대와 희생을 겪고 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 사이의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도 차마 인간이라 부르기 민망한 존재들이 있다. 법은 그런 부분에 살짝 뒤처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법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헌법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높고, 헌법을 문제 해결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헌법을 권력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헌법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헌법이 사회적 소통의 도구로 자리매김한다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입니다. (p. 66)


법은 우선 집행자가 있다. 법을 잘 알고 공부한 자들, 그것을 업으로 삼은 자들은 일반인들보다 이 어려운 학문에서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부터가 법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헌법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고 한다. 즉, 행사하는 자에 의해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권력과 손을 잡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 이제 그런 모습보다는 올바른 사회통제 수단으로 법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최소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부분에서 소통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과 의지도 함께 선행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법은 가혹하게 느껴질 때도, 부정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법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은 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지금도 많은 법들이 제·개정되고 있다. 그렇게 법들은 쌓이고 쌓여질 것이고 먼지 쌓인 낡은 법들도 많아질 것이다. 적절한 방향을 찾는 일은 이제 지금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터 2017.12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드디어 2017년 마지막 샘터가 도착했다. '맺음 달'이란 말처럼 이제 한 달이 조금 남은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17년의 끝자락이 늘 그렇듯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똑같은 것 같다. 처음에는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막상 12월이 되면 뭐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싶다. 이번 샘터에는 맺음을 짓고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던 것 같다. 은퇴 소방관 경광숙 씨, 자신의 춤을 추기 위해 다시 출발선에 섰던 최수진 씨,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꿈꾸게 만드는 <달려라 피아노> 프로젝트 이야기는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 글이었다.

먼저, 경광숙 씨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2014년 잊지 못할 안타까운 사고인 '세월호'의 구조 작업에 투입되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소방관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지만 정작 현실은 차가운 바다 앞에서 침몰해가는 배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소방관 교육을 담당했던 그이기에 교육자로서 자신에게도 회의감이 들었다는 그는 그때 이후 소방관을 그만두었다. 여전히 그때의 사건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여러 사람들 가슴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빨리 변하다고 하지만 막상 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을 다시 인지하게 된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재난은 언젠가 다시 반복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우리는 한 사람의 전문가를 아쉽게 떠나보냈다. 그의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p.17)


현대무용가 최수진 씨는 자신의 춤을 완성시키기 위해 어렵게 입단한 무용단을 박차고 나온 인물이다.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무용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춤에 담고 싶어 했던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현대무용은 춤선이 예쁜 예술이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감정을 녹여낸다는 것이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접점을 그녀는 계속해서 추구해 나갈 것이라 말한다. 시작은 맺음과 맞닿은 지점임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단순히 화려한 기교만 가진 무용수는 되고 싶지 않아요. 제 감정과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춤을 통해 관객이 조금이라도 느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어떤 춤을 출지 궁금한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p. 27)


거리에 놓인 피아노가 전국에서 '딩동 댕동' 울리면 어떤 기분일까? <달려라 피아노> 프로젝트는 길거리 피아노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자유롭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이끌어낸 프로젝트이다. 기획자인 정석준씨는 외국 유튜브 영상에서 길거리 피아노로 연주를 하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모습을 보고 한국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 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열망이 있는 사람이면 피아노 앞으로 가 연주를 한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숨겨져 있던 나의 피아노에 대한 꿈도 부풀었다. 숨겨진 것은 맺힌 것이었다. 가슴에 맺힌 한을 푸는 그런 프로젝트, 거창하지 않지만 누구나 특별하게 또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콘텐츠가 하나 탄생한 것 같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피아노를 설치하고 나면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에요. 그냥 자유롭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피아노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길 바라요. 달려라 피아노로 인해 일상의 작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거죠." (p. 49)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까지 연말인 것처럼 한 해의 다양한 사연 잔치가 벌어진 이번 호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아쉬움은 잠시 잊고 한 해를 올해도 무사히 잘 보낸 우리들에게 따스한 토닥임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추운 연말이 서로의 온기로 따뜻해지고 길거리에 반짝거리는 전구가 가득해지는 북적북적하지만 소외되는 사람 없는 그런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조남주, 최은영, 구병모, 김성중, 김이설, 손보미, 최정화 7명의 작가님의 합심하여 탄생한 단편소설집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난 뒤에도 여운이 길었는데 이 책도 한 편 한편 읽어나갈 때마다 주인공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기에 감정이입이 잘되었다. 그 중 조남주 작가님의 <현남 오빠에게>, 최은영 작가님의 <당신의 평화>, 김이설 작가님의 <경년>이 가장 잔상이 많이 남는다.

먼저 <현남 오빠에게>는 주인공이 남자친구인 현남 오빠에게 써 내려가는 이별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멋모르던 신입생으로,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그녀는 현남 오빠를 믿고 의지하다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린다. 성인으로서 주어진 선택권,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채, 현남 오빠의 울타리 안에서 산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결혼하자는 현남 오빠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 보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해주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현남 오빠가 주인공에게 툭툭 던지는 말이었다. 여성을 자신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말은 사회가 변한다고 해도 유전자처럼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p.34)


<당신의 평화>는 유진의 집에 인사 온 예비 며느리인 선영을 바라보는 시선과 유진이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누이이지만 선영이 자신의 집에 귀속되어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 그리고 이젠 시어머니가 되어서 선영에게 하는 모습을 보는 시누이, 이 세 모습 속에서 유진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며느리로 가부장제의 전통적인 집안 풍경에서 엄마가 숨도 못 쉬고 살아온 것을 유진은 안다. 하지만 그런 힘듦을 받아주는 딸로서의 유진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엄마를 괴롭히던 할머니가 없다. 이제 할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엄마는 예비 며느리인 선영에게 자신이 받아왔던 모습 그대로 행하고자 한다. 유진은 그 모습이 싫다. 엄마가 그만큼 힘들었으니 선영에게만큼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유진의 말은 잘 닿지 않는다.

고부갈등이 여전한 이유는 이 반복되는 체계가 너무도 견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은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어 그걸 깨뜨리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유진의 어머니는 더욱 보상심리와 함께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버렸다. 변화도 손발이 맞아야 가능한데 이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읽으면서 갑을 관계의 고부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의 관계는 여전히 불가능한 것인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유진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알고 있었다. 정순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을 것이고, 자신과 유진이 주고받았던 말을 지울 것이다. 유진은 그런 정순을 용서하겠지, 언제나처럼 정순의 전화를 받고 아주 가끔은 정순과 얼굴을 보고 밥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은 정순이 오늘 했던 행동과 말을 잊지 못하게 된다. 용서해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언제까지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겠지만 오늘 같은 순간들이 만들어낸 거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그 거리는 유진에게 어떤 안타까움을, 그리고 자유를 줬지만 언젠가 그만큼의 슬픔을 줄 것이었다. (p. 72~73)


<경년>은 갱년기를 보내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들에게 거는 기대와 딸에게 거는 기대는 현저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아들은 어떤 사고를 쳐도 올곧은 아이이다. 반면 딸은 어떤 사고를 치면 행실을 잘하지 못해서이다. 같은 문제를 남녀가 똑같이 겪었는데도 남자가 하면 혈기왕성하니까 다들 그렇게 큰다고 용인하고 넘어가지만, 여자는 골이 비었고, 여우라 꼬리치고, 독하게 비친다. 다행인 건 이 소설의 엄마는 아들 역시 잘못 했음을 알고 다른 집의 딸을 걱정한다. 그리고 너도 결국 그런 여자이구나 하며 자신의 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딸에게 앞으로 닥칠 시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눠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내 등을 쓰다듬던 딸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생리대를 혼자 붙여보겠다고 끙끙댔다. 그렇게 어린애였다. (p. 119)


책을 다 읽으니 조남주 작가님이 쓰신 작가노트의 말이 계속 맴돈다. 현남 오빠에게 벗어나기 위해 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스토킹을 당하면 어떡하냐고,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이라도 찍어놨으면 어떡하냐고. 요새는 데이트 폭력도 많이 발생하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 사회가 착잡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여자는 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서이다.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고,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당연하다고 여기며 전승된 의식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딘가 뿌리 깊숙이 박혀 내가 모르는 차별을 당연하다고 받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성별 구분없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런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싸움보다는 대화로, 토론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또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한 사람들 -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게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이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이코패스와 평범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이 책은 '이타 주의적 사람들'과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실험을 통해 차이를 알려준다. 보통 사람이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게 연민, 불안,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선한 마음으로 여겨지지만 상황에 어떠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영웅적인 행동으로 누군가를 위험해서 구해냈을 때,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 사람이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목숨을 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동을 당사자는 그 순간 속에서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잠깐이지만 망설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즉, 선한 행동이라고 해서 과정마저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그럼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를 보며 가정에서 보고 자란 게 있으니 저렇게 행동할 것이라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그들 중 몇몇은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음이 밝혀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가정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이코패스: 동정심을 느끼는 뇌 기능이 상실된 정신 질환. 냉혹한 태도, 행동 조절 장애, 사기나 조작 같은 반사회적 행동이 두루 나타남.

뇌의 문제가 있는 정신질환의 한 유형으로 사이코패스를 바라본다. 저자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공포 등에 관한 감정을 느끼는지에 관한 실험을 하나 한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이러한 감정을 알지 못하고 자란다는 점이었다. 이는 대뇌와 편도체의 기능 장애로 나타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그 부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를 무자비하게 학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타 주의적인 사람들은 어떨까? 사이코패스와 정반대의 성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두려움에 높은 공감을 보인다. 또한, 감수성이나 활동성 면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이며 특히, 보통 사람들보다 연민을 높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이식과 같은 선한 일에 고민 없이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장기이식에도 위험부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저자가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배려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책의 말미에는 우리가 이타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4가지를 말해준다.

1.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존재이다.
2. 남을 보살피려면 단순한 동정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3. 자제심은 답이 아니다.
4. 문화적 변화로 인해 배려심이 더 늘어났다.

 

 

이타 주의적인 사람들과 사이코패스의 비교가 인상적인 책이다. 결국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타 주의인 것이다. 장기이식처럼 대단한 일을 해낼 만큼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배려하고 도와준다. 생물학적으로 이타적인 DNA가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타적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이타적인 쪽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생각은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