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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일왕 부자 폭살을 꿈꾼 한 남자의 치열하고 뜨거운 삶과 사랑
안재성 지음 / 인문서원 / 2017년 6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701/pimg_7851691531683177.jpg)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일왕 부자에게 폭탄을 던져 죽이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후 22년 2개월의 감옥살이를 한 혁명가 박열.
그러나 박열을 항일 혁명가로 기록된 교과서는 없었다.
우리에겐 잊혀졌던 그가 작가 안재성의 기록으로 돌아왔다.
수재들이 다녔다는 경성고보에서 3. 1 운동을 겪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도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왜 고난의 삶을 스스로 택했을까?
김별아의 소설로 처음 읽은 박열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기록된 박열을 읽고 싶었다.
박열과 후미꼬
후미꼬와 박열
동지이며 부부였던 두 혁명가.
박열을 이야기하면 박열의 이야기의 절반은 후미꼬가 차지한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섞이니까 더 호기심을 자극해서일까 아니면 혁명가 박열의 삶에 후미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일까.
이 책에서조차 후미꼬는 위대한 혁명가다.
오히려 박열을 넘어서는 위대함을 가졌다.
감옥에서 목을 매 삶을 마감한 후미코.
박열에게 후미코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박열이 이렇게 큰 존재로 보였을까?
내가 박열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도 김별아가 후미코를 그린 소설을 읽고였다.
박열이 별이라면 후미코는 그 별을 빛나게 한 밤하늘이다.
별은 저 혼자 빛나진 않는다.
김별아의 소설 『열애』에서 박열은 후미꼬의 죽음까지만 기록되어 있어 그 후의 박열의 삶을 알지 못했다.
아나키스트가 해방 후 북한에서 어떻게 70년대까지 살아남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일제 치하 그것도 일본에서 천황과 그의 아들을 폭살하겠다던 그가 아닌가.
모의 단계에서 검거되었으나 혹독한 고문이 뒤따랐을 텐데 이 책에 실린 당시의 심문과 재판 기록을 보면 그는 단 한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다.
해방 후 일본의 감옥에서 22년 만에 출소한 그의 이후 행보도 무척 흥미롭다.
사회주의 계열의 재일본조선인연맹(조총련의 전신)이 아니라 이와 반대 진영의 우파 단체인 민단에서 활동한다.
24살의 나이로 일본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40대가 되어 출소한 박열이 47살에 출간한 그의 유일한 저서라는 『신조선 혁명론』에서는
"현실의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로 나뉘어 있다는 것, 정신적으로는 유물사관과 유심 사상이 대립하고 있음을 인정했으나 어느 한 편이 다른 한 쪽을 파괴하고 절대적인 승리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로 합쳐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261쪽--
20대의 무정부주의 혁명가 박열의 모습과 사상은 많이 퇴보한 듯 보인다.
이 대목에서 저자 안재성은 22년간의 옥중생활 동안 박열이 삶과 죽음에 대해 본능적으로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며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 보다 훌륭하게 사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록했다.
(반면 후미꼬의 경우 구차한 삶을 영위하기 보다 과감히 스스로 삶을 정리했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그리고 문득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출소한 박노해의 이후 삶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
박열의 삶은 이후에도 더욱 기묘하게 전개되는데 실제 그는 공산주의를 반대해왔는데 하필 1950년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다.
납북 초기 그는 정치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이후 조총련 계열의 재일 동포 북송 사업에 이용된 듯하나 이 책의 저자 안재성도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이 책은 박열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 안재성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회주의 운동과 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과 현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가로 유명하다. 『경성 트로이카』, 『이현상 평전』(이 책은 체 게바라 평전 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이관술 1902~1950』등의 저작들만 보더라도 안재성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 기록인지를 알 수 있다.
'박열'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어서 그런지 그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나는 안재성이라는 이름을 믿고 이 책을 선택했다.
박열을 평전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 두 가지 의미에서 나는 좋은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