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 리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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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희철은 아나톨리아와 튀르크인에 열정적으로 미친(?) 사람이다. 그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열정을 바쳐 이 책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쉽게 말해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해 놓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나중에 필요한 정보를 꺼내 보아야 할 정도로 방대한 양을 좁은 지면 속에 밀어 넣어두었다. 마치 백과사전과 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의 책은 '아하~'하고 이해하기보다 '우와~'하고 놀라기 일쑤다.

"책 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튀르크인들의 역사에 꽂혀 산지도 25년이 훌쩍 지났다. 장엄하고 화려한 매력에 빠져 표정이 없는 역사를 넋 놓고 보면서 그들의 몸짓 하나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316쪽, 에필로그)


이번에는 "중간세계"라는 타밈 안사리가 제시한 개념을 빌려 아나톨리아에서 1000년을 버틴 비잔티움 제국과 600년을 살아낸 오스만 제국을 두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제목이 "중간세계사"로 지칭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만 보면 딱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이 더 부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나톨리아에서 동서양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이 두 제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 차라리 이들을 중간세계라 명명하지 말고, 이 두 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였음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스인과 로마인, 무슬림과 튀르크인, 유대인이 혼합되어 살아갔던 다양성의 세계사가 펼쳐졌던 이곳이야말로 중간 세계에 가둘 필요 없이 전체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튀르키예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는 고대 그리스, 로마 강역이었고, 중세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문화가, 근대에 들어서는 오스만 튀르크 즉 오스만 제국의 문화가 서린 곳이다."(4쪽, 프롤로그)

저자는 아나톨리아반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동 지역의 무슬림 역사를 함께 다루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1부에서는 비잔티움을 다루고, 2부에서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를 다룬다. 2부에서는 주로 이슬람이 등장한 시점부터 셀주크 튀르크 제국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3부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다룬다.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을 연결하는데 적절한 내용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저자는 왜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이 둘을 함께 다루고자 했을까. 나는 이 구성이야말로 이 책의 정체성과 목표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밝힌 두 제국의 공통점을 옮겨 적는다.

"첫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 모두 세계사라는 주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 두 번째 공통점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은 같은 장소를 수도로 했다는 것이다. ...... 세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은 정치와 행정 제도 면에서 엄청난 유사성이 있고, 종교와 문화 면에서도 공통의 전통을 가졌다는 것이다. ...... 네 번째 공통점은 로마의 일곱 언덕처럼 두 제국에도 일곱 언덕이 있었다는 것이다."(5~6쪽, 프롤로그)

저자는 특히 이 중에서도 세 번째 공통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정치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 앞 부분과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뒷부분으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다. 일반적인 교양 역사서를 기준으로 보자면 뒷 부분,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분량이 특히 많다. 이는 오랜 시간 아나톨리아에서 튀르크인들의 문화를 연구해온 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부분을 통해 서양사의 빈틈을 메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세계사의 변방에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던 이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지, 그 가치를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특히 우리가 잘 정리하기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도표의 형식으로 간략히 제시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잔티움이 동로마의 수도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결정이라든지, 이슬람 제국의 주요 왕조 연대기라든지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표들이 책 곳곳에 나온다. 나는 이것을 보며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또한, 지면 전체를 할애하여 담아내는 커다란 사진 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나톨리아반도는 내 평생에 방문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공간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전체적인 조망을 담은 생생한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게 독자로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리와 다른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현재를 담은 사진이야말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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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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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나만의 답사기를 써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유홍준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었던 설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행복했다. 책의 표지에 저자 소개 사진이 나온다. 답사 지도를 걸어두고, 그에 관련된 공부를 한 흔적으로 책 탑이 다섯 줄이나 높이 쌓여 있다. 답사, 공부, 지도는 역사학도에게 일종의 로망이다. 저자는 그 로망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매우 부러운 존재다. 일과 가족, 수업과 육아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뚱이도 답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시시각각, 사시사철 변화하는 문화유산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마음 한쪽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문밖을 나가지 못하니 더욱 답사가 간절하다.

 

세 가지 기조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답사기를 쓰는 세 가지 기조를 밝히고 있다. 학문적 정확성, 문학적 소양, 사회적 실천이다. 그의 답사기는 이 기조에 따라 정확하고 재미있으면서 유익하다. 이 글을 읽으면 매우 난해하지만, 의 깊이 있는 공부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또 그 장소에서 마주한 그의 감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유산의 유래나 그 성격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으니 매우 유익하기까지 하다.

위구르 인들의 땅, 중국에 가장 마지막으로 복속된 영토인 신강이 우리의 역사와 이리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법현, 현장, 혜초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긴 여정의 한 부분만이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고된 여정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업에 녹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으로 보고 익힌 것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만 하고 있었을 뿐이니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처럼 정확하면서도 그 생생한 느낌을 살려내고 싶다. 그래서 더욱 답사 욕심이 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천산위구르왕국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위구르 인들은 중국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우리에게도 회교도는 매우 생소하면서 거리감이 있는 존재들이다. 저자도 우리와 유사한 불교 문화에 더 애착을 느끼고,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답사기를 통해 위구르 인들이 우리와 매우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비슷한 운명을 경험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 신선하면서도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209년 몽골군이 (천산위구르왕국에) 쳐들어왔을 때 칭기즈칸에게 항복하고 공주와 결혼하는 사위나라가 되었다. …… 대원제국에서 고려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사위나라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148)

 

나는 여태까지 고려가 몽골 제국의 유일한 부마국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몽골에 맞선 위대한 역사로 매우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아는 세상은 매우 좁았다. 그리고 나같이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이러한 부분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우리 역사가 위대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

학부생 때 답사를 다녀본 것이 거의 전부이지만, 나도 저자처럼 답사를 가면 꼭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에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유 있게 둘러보기 위해서다. 나는 문화유산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그곳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설령 볼 게 없다 하더라도 가봐야 하는 게 문화유산 답사야. 벽화 못지않게 중요한 게 석굴의 자리앉음새야. 아마 풍광은 좋을걸세.”(241)

 

몸이 고되더라도 직접 그곳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답사기가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평한 지붕, 파미르 고원에서 마무리되는 그의 답사기는 아마도 다음 답사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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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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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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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거 아닌가? 왜 그렇게 책이 두꺼워?”

 

그렇다. 아들의 질문에 내가 이 책을 너무 깊게 파헤치려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권위있는 로마 연구자가 쓴 책이니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을 학습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책을 읽으니 좀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랜 세월 저자의 연구 성과가 녹아 있는 만큼 충분히 다시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저자는 로마인들의 언어를 배웠고, 그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를 읽었다. 저자의 통찰은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로마와 나누는 대화를 지속하는데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로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잘못된(?)’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나 명칭들이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유산에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로마의 원로원에서 사용하던 명칭을 근대적 입법 의회에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외에도 궁전(팔라티누스 언덕), 후보(칸디다투스), 연단(로스트라) 등 로마인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용어들에서도 로마의 영향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로마라는 모범은 모두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영웅화된 이야기라고 일침을 가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로마는 실제 로마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기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끊임엇이 문제를 제기한다. …… 로마인들이 새롭게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이나 개념에 대해 우리 시대에 맞춘 논쟁을 벌이기를 원한다.”(17)

 

저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로마, 로마인들이 바라본 로마에 대한 실상을 추적하여, 그들이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 개념이 실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살펴보는 것을 원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음 질문에 대한 가장 개연성이 높은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고 평범한 도시가 고대 지중해 세계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큰 도시로 성장해 그토록 큰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을까?”(32)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로마는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가

저자는 로마의 성공 비결을 당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87)에서 찾았다. 로마는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위대해질 수 있었다.

먼저 로마 내부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면, 건국설화에 이어 전개된 왕정의 시대에서 로마의 최정상에 있는 왕이 외부인이거나, 출생이 미천하거나, 심지어 해방된 노예도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게다가 기원전 6세기 말 왕정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공화정에서 진행된 개혁에서 세습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최고 관직과 입법권을 개방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로마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로마인들은 영토를 팽창하거나 약탈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기 보다 다른 민족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 로마인이 승리한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로마와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는 물리친 적을 자신들의 군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점차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로마인은 전투에셔는 져도 전쟁에는 지지 않았다.’는 말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의 성공 비결은 해외에서 거둔 군사적 성공으로 인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마의 경쟁자들이 제거되면서 로마는 부유해졌고, 세습 귀족과 평민 사이의 내부적 합의가 서서히 흔들리게 되었다. 이제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평화 대신 폭력이 점점 더 당연한 정치 도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지나 동맹시 전쟁이 일어났고, 술라의 독재를 거쳐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발생하였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에 의한 삼두 정치를 거치고 나면 로마는 점점 더 군사력을 갖춘 황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 제국의 성공과 쇠퇴

저자가 재구성한 로마의 모습을 읽으면서 몽골 제국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제국 모두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넓은 영토를 차지한 대제국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외에도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제국의 공통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제국은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중앙 정부에 의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이들을 간접 지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로마와 몽골, 두 제국의 중앙 정부는 모두 거대한 영토와 인민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지 않은 작은 규모이며, 많은 부분을 지역의 세력가들에 의존하고 있다. 로마에 패배해 로마의 동맹시가 될 것을 강요받았거나 이를 환영했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담당해야 했던 유일한 의무는 병사들의 식량과 유지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도 역시 이와 비슷한 요구를 정복민들에게 강요했고, 그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적이다. 로마의 동쪽 그리스와 서쪽 갈리아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다양한 민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제국이 성장하고 팽창해나갈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일 수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 제국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게르만, 프랑크 족의 국가가 수립되고, 몽골 제국이 한족이 세운 명에 의해 몰락하는 것은 다원성의 제국이 붕괴하고 단일성을 강조하는 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로마사를 고정된 진리가 아닌 대화를 통해 계속 바뀌어가는 살아있는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역사적 신념을 비판적인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무너뜨리고, 현재에 가장 필요한 역사로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하였다.

 

“‘늑대에 해당하는 라틴어 Lupa매춘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쌍둥이(로마 건국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발견해 돌본 것은 지역의 야생 동물이 아니라 지역의 매춘부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78)

“‘로물루스로마에서 나온 상상의 구성물이었다.”(93)

“rex는 왕이 아닌 족장이나 거물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편이, 그리고 왕정시기보다는 족장의 시기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127)”

고대 로마 인민들이 단결된 행동을 통해 세습귀족들의 양보를 얻어내고 평민들의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확보한 이야기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 운동이 기념할 만한 선례와 성공적인 수사를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87)

 

이런 부분이 저자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현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재해석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 될 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가장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가장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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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학자 홍정하
이창숙 지음 / 궁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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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다. 비록조선’, ‘수학자’, ‘홍정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정도로 매력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이 책은 대부분의 독자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이 셋을 잘 아우르고 있다. 최근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페이지를 접고, 표시하고 기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실존 인물인홍정하의 삶을 사실적으로 파헤치기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삶의 모습과 가상의 인물들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사실에서 멀어지는 내용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은 숙종 대 조선의 현실을 매우 개연성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중인 홍정하의 삶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서촌(웃대)의 모습이나, 왜란 이후 황폐해진 경복궁, 당시 중인들의 문학 활동 등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면 닿을 수 있는 그곳(서촌)에서 불과 200년 전에도 우리와 비슷한 삶이 있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역사적 사실에 이처럼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시대의 수학, 산학(算學)’

조선 시대 산학은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학문이었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지배층들은 학문이라기보다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천시했다. 때문에 산학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모든 것이 그 당시 산학을 담당하는 중인 계층의 개인적인 노력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의 책 󰡔구일집󰡕이 더욱 주목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성리학의 나라에서 성리학을 연구한 성리학자가 현재 화폐의 도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철저히 지배층의 논리를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시대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이었던 산학학문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홍정하의 삶이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산학에서 사용되던 표현이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중반은 ½, 소반은 , 태반은 , 강반은 ¾”(96)

 

현재 우리가 쓰는 수학적 용어의 태반이 일본 또는 중국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용례들의 발굴이 매우 반가웠다. 우리가 우리의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용어들이 갖는 힘을 우리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수학처럼 우리의 전통이 단절된 학문일수록 더욱 우리 조상들이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역사를 발굴해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우리도 서양과 일본, 중국의 학문에 종속되지 않은 주체적인 학문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전통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려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선 시대에도 산학은 잡과 시험의 주요 과목이었다. 비록 지금의 수학이 수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겠지만, 중인 가운데 호조의 관직을 원하는 자들은 아마도 목숨을 걸고 시험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산학 잡과 시험 풍경이 꼭 오늘날의 수능 시험장의 풍경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나무 통을 길게 매설하고 통 속에 노끈을 넣은 후, 과거장에서 시험문제를 노끈에 매달아 신호를 보내면 밖에 있는 자가 줄을 당겨 시험문제를 확보하여 답안지를 작성해 노끈에 묶어 보낸 것이다.”(109)

 

당시 부정행위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된 장면에서는 수능 시험장에서 최첨단 장비를 활용하여 부정행위를 했던 사례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산학을 다루는 호조 관리에게 적용되었던, 그 엄격한 잣대가 지금 공무원들에게도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가 지켜야 하는 사불(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삼거라는 말이 있다. 첫째,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땅을 사지 않는다. 셋째, 집을 늘리지 않는다. 넷째, 재임한 곳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다.”(172)

 

군사독재 시절, 공직자들이 가장 먼저 부동산을 매입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해나갔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지금까지도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기에 우리 사회의 금수저와 같은 신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존 인물 홍정하의 삶과 허구 인물 소이, 동이의 중요성

홍정하는 부족함이 없는 남양의 중인 집안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산학을 의무적으로 배웠으나, 말년에는 그 학문적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리고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였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삶을 마쳤다. 비록 그의 삶을 실제로 증명해줄 기록이 충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산학자로서 책을 집필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홍정하의 삶을 부각하는 장치로 실존 인물과 허구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특히 나는 그의 딸인 소이와 그의 제자인 동이가 그의 삶을 부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학자 홍정하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수학과 음악이라는 연결고리도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

 

산학자가 어찌 이리 노래를 잘하는가? 나는 산학자들은 딱딱하고 가정이 좀 메마른,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116) - 지금도 수학적 능력과 음악적 능력이 관련이 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상상의 산물이겠지만, 저자의 이러한 설정에 감탄하게 된다!

 

홍정하의 삶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유년 시절 든든한 후원자인 할머니가 계셨다. 어려웠지만 나중에 함께 살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믿음도 있었다. 청년이 되어서는 홍세태, 유수석, 겸재 정선 등과 교유하며 성장할 수 있었고, 특히 가장 친한 벗인 유수석이 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역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유독 산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홍정하는 그로부터 학문을 즐길 줄 아는 경지를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중년이 되어서는 아내와 자녀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주면서 자신이 책임지고 살피지 못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아내와 소이의 존재는 홍정하의 삶에 가장 큰 충격과 아픔을 주는 동시에 그의 삶을 완결지을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믿는다. 노년이 되어서는 제자 동이를 만나게 되고 그의 삶을 최종적으로 완성해 사제 간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그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내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의 삶은 내게 하나의 완벽한 삶의 전형으로 다가왔다.

 

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아버지가 나를 믿고 있다는 것도 마음이 뭉클했다.”(86) - 나도 아버지로서 내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어줄 수 있을까? 반성하게 된다.

자신(홍정하)이 어렸을 때 처음 느꼈을 순간을 동이도 맛봤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기뻤다.”(188) - 제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스승이 되어보고 싶었다.

산학청에서 취재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들을 가르칠 때보다 동이에게 더 마음이 갔다.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뿌린 씨앗 중 가장 굵은 씨앗은 아마도 동이일 것이다.”(191) - 나도 교사로서, 내 삶에 가장 굵은 씨앗(제자)을 세상에 뿌리내리게 하고 죽을 수 있을까. 나도 동이와 같은 제자를 만나고 싶다. 홍정하와 같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학문을 대하는 자세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조선의 뛰어난 산학자인 홍정하도 산학 공부의 시작은 의무감이었다. 그리고 그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산학이 깊이 연구해야 할 학문이라도 되느냐는 듯 되묻는 얼굴에 대고 왜 산학이 중요한지 설명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칫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어떤 아이는 언젠가 산학의 중요성을 스스로 찾아낼 것이다. 설사 이 아이들 모두 평생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자신들의 몫이며 자신들의 인생이다.”(20)

 

그렇다면 학문을 하는 이유가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인지, 삶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학문 그 자체의 즐거움에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저자는 지금 대부분의 학생이 수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을 의무감으로 대하고 있어서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솔직히 나도 학생은 아직 실제 생활에 학문이 적용되는 사례를 풍부하게 접해보지 못했고,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본 경험도 부족하므로 학문을 의무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론을 가르칠뿐이지 실제 문제를 해결하게 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홍정하는 산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를 실생활에서 찾게 된다.

 

정하야, 네가 논의 넓이를 계산할 수 있지 않냐?”(25)

 

전문직 중인 집안의 큰아들이라는 무게감과 친구네 집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 주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그에게는 실생활이었다. 그가 논의 넓이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 문제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며,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덤으로 그의 첫사랑까지 만날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 학생들의 상황이 홍정하의 말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학문의 중요성을 찾아낼 때까지 내버려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칫 강요가 될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그 학문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학생들은 홍정하가 살았던 조선 시대보다 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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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정석 세계사의 정석
야마사키 게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까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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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편의 잘 정리된 세계사 교양서를 읽은 느낌이다. 오랜 시간 세계사를 가르쳐 온 교사의 강한 내공이 전해지는 책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세계사를 어려워하는 많은 학생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고,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에게도 훌륭한 교양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책이 지향하는 전반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알맞은 구성 체계를 안내한 뒤, 본격적인 세계사 속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가장 모범적인 수업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주 일반적인 수업의 절차를 따르면서도 학생들이 암기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이야기의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왜 학생들이 저자의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사의 재구성

세계사는 말 그대로 세계의 수많은 지역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의 총체이다. 그렇게 많은 지역과 인물과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등장한다면 아무리 중요한 과목일지라도 당연히 모든 사람이 세계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지역, 인물, 사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의 질서를 바탕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했다.

 

첫째, 세계사 교과서 속 내용을 11개 덩어리로 묶고, 한 줄기로 엮어서 학습한다.

둘째, 가능한 한 주어를 고정해 놓고 설명을 이어나간다.

셋째, 연도를 절대 쓰지 않고, 이야기를 부각하여 설명한다.

저자가 재구성한 세계사는 책 21쪽의 그림처럼 한 줄기로 전체를 엮을 수 있는 흐름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며, 어느 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이 내용이 전체의 흐름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계속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이야기식으로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도 부분과 전체의 흐름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그렇다면 이 방대한 세계사를 왜 학습해야 할까. 단순히 입시에 중요한 성적이 목적이라면 세계사는 당연히 학습 이전에 선택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를 위해 세계사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시는 지식의 유무를 묻는 장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장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 생각하고 표현하려면 역사의 흐름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시시각각 글로벌화되고 있다. …… 이제는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세계인으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337)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계사란 어떤 의미일까. 저자가 말하는 역사의 뼈대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세계화 시대의 세계사에 대한 함의가 국가마다, 개인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이긴 하지만, 세계사를 학습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일본의 세계사 Vs 한국의 세계사

저자는 일본의 역사 교사이고, 나는 한국의 역사 교사이다. 역사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저자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과 일본의 세계사 수업이 어떤 면에서 같고, 또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석이라는 말로 표현된 세계사 수업의 결과물이 내 수업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먼저 학생들이 원하고, 일반인들이 교양처럼 즐길 수 있는 역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나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역사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자의 교과서 내용 재구성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저자처럼 항상 재미있는 수업을 추구한다고 말은 해 왔지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제는 학생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학습하고자 하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설명을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 수업에 대한 어려움만큼이나 일본과 한국의 세계사 교과서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역적 나열과 시대적 배열 중에 어떤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학습에 효과적일지에 대한 논쟁도 유사한 듯 보였다. 저자는 지역과 시대순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 11개 묶음은 단순화한 지역 단위를 사용하였고, 전체 흐름은 시대순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저자의 결과물을 보면서 세계사 교과서 서술에 적합한 내용 서술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5.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내용을 대항해 시대로 설정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다르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육상에서 세계를 처음 연결했던 몽골 제국과 바다에서 세계를 연결하려고 했던 유럽의 시도 사이의 성격 조명이 좀 더 필요할 듯 보인다. 내용만으로 보자면 대항해 시대유럽의 해외 진출은 세계를 연결하려는 시도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해 제국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이 바다로 세계를 연결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개척할 수밖에 없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던 몽골인들의 제국이 세계를 연결한 주체로서 서술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세계사는 어떻게 서술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육지와 바다. 반도인 한국에서는 육지에서 만들어진 세계를 당연히 더 선호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일본의 세계사를 기준으로 내용이 재구성되었고, 서술되었기 때문에 일본사가 빠져 있다. 이는 중국을 하나의 지역 묶음으로 설정하여 중국인들을 주체적으로 서술하려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에게는 일본사가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 세계사가 설정되어서 우리의 세계사와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일본사가 전근대 사회에서는 크게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1894년 청일 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청을 밀어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한국의 세계사에서 꼭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세계사는 지역 묶음을 설정할 때 인도’, ‘중국보다는 남아시아’, ‘동아시아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국사가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 위에 동아시아사, 세계사가 연결되는 것이 더 적절한 구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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