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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다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김영사, 2024, 2판 1쇄)
생물의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공감 능력’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매우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갖춘 동물로 진화했기에 지금과 같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근거가 유인원 연구라는 점에서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유인원이나 돌고래, 코끼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새조차 인간과 유사한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나 로크의 사회 계약설에서 우리가 배운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전제를 모두 ‘허구’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생물학이 인간 사회를 새롭게 해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정치적 논쟁에 뛰어든다. 경쟁이 만연한 시대, 능력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저자는 인간의 공감 능력이 필요한 시대, 즉 ‘공감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물학과 정치학-
생물학이 정치적일 수 있을까. 저자는 생물학이 인간 사회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사회학이나 정치학,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은 온갖 억측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생물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전제를 바로잡으려고 정치적 논쟁에 뛰어들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저자가 연구하는 유인원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산업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하였지만, 근본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욕구인 안전과 생존에 대한 욕망은 동물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만이 예외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사회적 진화론을 배운다. 이런 질서가 우리 주변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바로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원리는 자본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무한 경쟁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에 있는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고, 그들을 밟고 올라가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아니 홀로 생존할 수 있을까. 물론 저자도 인정하듯,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고위직에 올라갈 수 있고, 타인을 짓밟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소통을 통한 신뢰를 구축하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의 질서다. 경쟁하는 것만을 추구하거나, 공감만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만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장치일 뿐, 실상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경쟁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인 공감과 신뢰, 협력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바뀌었다.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묵인할 수 없는 새로운 상류층이 생겨난 것이다. 이 상류층의 많은 이들은 불과 몇 세대 전에 하급 계층에 속했었다. …… 그러니 부를 공유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그들은 밑에서 일하는 자들을 무시하는 건 당연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게 흠잡을 데 없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말에 전율했다. 스펜서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며 그들을 안심시킴으로써 부자들이 느낄 만한 양심의 가책을 말끔히 없애버렸다.” (53쪽, 2. 다른 다윈주의)
저자에 따르면 진화론과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도덕적 양심을 떨쳐버리게 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동물의 본성 1, 공감-
그러면 공감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공감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신체적 연결이 먼저 일어나고, 이해가 그를 따른다.”(107쪽, 3. 몸이 몸에게 하는 말)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의 행동을 무심코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라 체화된 반응이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기적’, ‘이타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타인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이다. 우리는 분리되기보다 협력하고 함께하는 것을 더 원한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이 이런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대다수 생물체가 공감을 할 수 있지만, 그 공감에도 일정 수준과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공감을 위해서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여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거울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데, 유인원들은 거울을 보며 자신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과 다른 타인이 어떤 상황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그 필요에 맞춰 도움을 주는 ‘맞춤 돕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신체적으로 연결되는 감정적 단계와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이해 단계가 잘 결합하여야만 공감을 통한 협력을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동물은 많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공감을 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만이 이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이 단계에 도달한 사례로 든 동물은 고래와 코끼리가 있다.
-동물의 본성 2, 공평, 공정-
저자는 공감을 통한 신뢰의 회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는다. 협력만 추구하는 공동체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공동체의 가장 큰 적, 무임승차자 문제다. 만약 누군가 타인과 공감을 바탕으로 협력을 하고자 했는데, 상대방이 그를 배신하고 이익만 취한 뒤 떠나버린다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공동체가 붕괴하는 상황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물의 또 다른 본성이 진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평함, 공정함에 대한 욕구이다. 그래서 동물은 본능적으로 평등주의자이면서 혁명가들이다.(222쪽)
“수백 명의 사람이 모두 서로를 신뢰하며 하나의 제트 여객기를 만들거나 여러 다른 단계의 직원들이 하나의 회사를 구성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조직화하고, 일을 분담하고, 과거에 교류했던 것을 기억하고, 노력에 맞는 보상을 하고, 신뢰를 쌓고, 무임승차자를 막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247쪽, 6. 공평하게 합시다)
저자는 이 공정성, 공평함이 두 얼굴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동등한 수입(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노력에 따른 보상이다.(265쪽) 저자는 이 두 가지 공정성이 모두 중요하며, 하나만 극단적으로 주장했을 때 발생하는 폐해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이 두 공정성이 균형을 갖출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이상인 자유, 평등, 박애 중에서 미국인은 계속해서 첫 번째만을 강조하고, 유럽인들은 두 번째만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만이 포괄, 신뢰, 공동체에 대해서 말한다.”(268쪽, 6. 공평하게 합시다.)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룬 사회에서만 상호 공감과 신뢰를 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가 구축된 사회야말로 박애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 가지 이상 중에서 박애를 가장 최상위의 상태라고 보고 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 공감의 범위 넓히기-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 구부러진 나무(274쪽)처럼 쉽게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조정’할 수는 있다고 본다. 진화는 기존의 것을 내다 버리지 않고 그대로 품고 있기에 마치 러시아의 전통 인형처럼 가장 안쪽에는 자동화된 과정이 있고, 그 바깥에는 복잡한 인지 과정으로 이루어진 외층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282쪽)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본성(기초)을 그대로 인정하되, 공감의 범위(외피)를 넓히는 방향으로 조정을 하자고 주장한다.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와 시장의 힘으로만 형성된 사회는 부를 생산해낼 수는 있어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합이나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도가 높게 측정되는 곳은 가장 부유한 국가가 아닌 시민들 간에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나오는 이유이다.”(298쪽, 7. 구부러진 나무)
얼마 전 읽은 압축 소멸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소멸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행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공감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서로 협력하고, 무임승차자를 잡아낼 수 있는 공정함을 지켜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