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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빠,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거 아닌가? 왜 그렇게 책이 두꺼워?”
그렇다. 아들의 질문에 내가 이 책을 너무 깊게 파헤치려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권위있는 로마 연구자가 쓴 책이니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을 ‘학습’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책을 읽으니 좀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랜 세월 저자의 연구 성과가 녹아 있는 만큼 충분히 다시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저자는 로마인들의 언어를 배웠고, 그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를 읽었다. 저자의 통찰은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로마와 나누는 대화’를 지속하는데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로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잘못된(?)’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나 명칭들이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유산에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로마의 원로원에서 사용하던 명칭을 근대적 입법 의회에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외에도 궁전(팔라티누스 언덕), 후보(칸디다투스), 연단(로스트라) 등 로마인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용어들에서도 로마의 영향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로마’라는 모범은 모두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영웅화된 이야기라고 일침을 가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로마는 실제 로마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기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끊임엇이 문제를 제기한다. …… 로마인들이 새롭게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이나 개념에 대해 우리 시대에 맞춘 논쟁을 벌이기를 원한다.”(17쪽)
저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로마, 로마인들이 바라본 로마에 대한 실상을 추적하여, 그들이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 개념이 실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살펴보는 것을 원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음 질문에 대한 가장 개연성이 높은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고 평범한 도시가 고대 지중해 세계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큰 도시로 성장해 그토록 큰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을까?”(32쪽)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로마는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가’
저자는 로마의 성공 비결을 당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87쪽)에서 찾았다. 로마는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위대해질 수 있었다.
먼저 로마 내부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면, 건국설화에 이어 전개된 ‘왕정’의 시대에서 로마의 최정상에 있는 왕이 외부인이거나, 출생이 미천하거나, 심지어 해방된 노예도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게다가 기원전 6세기 말 왕정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공화정’에서 진행된 개혁에서 세습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최고 관직과 입법권을 개방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로마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로마인들은 영토를 팽창하거나 약탈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기 보다 다른 민족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즉, 로마인이 승리한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로마와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는 물리친 적을 자신들의 군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점차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로마인은 전투에셔는 져도 전쟁에는 지지 않았다.’는 말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의 성공 비결은 해외에서 거둔 군사적 성공으로 인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마의 경쟁자들이 제거되면서 로마는 부유해졌고, 세습 귀족과 평민 사이의 내부적 합의가 서서히 흔들리게 되었다. 이제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평화 대신 ‘폭력’이 점점 더 당연한 정치 도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지나 동맹시 전쟁이 일어났고, 술라의 독재를 거쳐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발생하였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에 의한 삼두 정치를 거치고 나면 로마는 점점 더 군사력을 갖춘 황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 제국의 성공과 쇠퇴’
저자가 재구성한 로마의 모습을 읽으면서 몽골 제국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제국 모두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넓은 영토를 차지한 대제국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외에도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제국의 공통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제국은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중앙 정부에 의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이들을 간접 지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로마와 몽골, 두 제국의 중앙 정부는 모두 거대한 영토와 인민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지 않은 작은 규모이며, 많은 부분을 지역의 세력가들에 의존하고 있다. 로마에 패배해 로마의 동맹시가 될 것을 강요받았거나 이를 환영했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담당해야 했던 유일한 의무는 병사들의 식량과 유지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도 역시 이와 비슷한 요구를 정복민들에게 강요했고, 그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적이다. 로마의 동쪽 그리스와 서쪽 갈리아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다양한 민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제국이 성장하고 팽창해나갈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일 수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 제국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게르만, 프랑크 족의 국가가 수립되고, 몽골 제국이 한족이 세운 명에 의해 몰락하는 것은 다원성의 제국이 붕괴하고 단일성을 강조하는 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로마사를 고정된 진리가 아닌 ‘대화’를 통해 계속 바뀌어가는 살아있는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역사적 신념을 비판적인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무너뜨리고, 현재에 가장 필요한 역사로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하였다.
“‘늑대’에 해당하는 라틴어 Lupa는 ‘매춘’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쌍둥이(로마 건국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발견해 돌본 것은 지역의 야생 동물이 아니라 지역의 매춘부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78쪽)
“‘로물루스’는 ‘로마’에서 나온 상상의 구성물이었다.”(93쪽)
“rex는 왕이 아닌 족장이나 거물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편이, 그리고 ‘왕정’시기보다는 ‘족장’의 시기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127쪽)”
“고대 로마 인민들이 단결된 행동을 통해 세습귀족들의 양보를 얻어내고 평민들의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확보한 이야기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 운동이 기념할 만한 선례와 성공적인 수사를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87쪽)
이런 부분이 저자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현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재해석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 될 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가장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가장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