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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한민용, 이야기장수, 2020, 초판)
책 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우선 저자가 유명한 방송국 뉴스 진행자다. 이름은 조금 낯설어도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 표지에 저자의 사진을 담았다. 방송에서 보는 익숙한 모습이다. 선뜻 손이 가는 표지다. 다만 약간 부제가 약간 어색하다. 부제가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이다. 뭔가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나 통하던 ‘개천에서 용난다.’는 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식의 계층 이동(?)이 일반적인 시대가 아니다보니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출판사 이름이 참 매력적이다. ‘이야기장수’라니. 뭔가 이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책도 재미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맨 마지막 표지를 보니 ‘역시나’다. 이 출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만들었다. 내가 딱 좋아하는 책들이다. 나는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 직업이 그다지 다른 직업에 비해 힘들지 않다는 안도감이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진로에 대한 직업인의 답변-
나도 교직에 몸담은 지 20년 정도 되어 간다. 이제야 조금씩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 중에 교사를 꿈꾸는 경우가 있다면 조금은 현실적이면서 조심스러운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20대에는 막연히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고, 30대에는 현실적인 조건이 하다고 말했다면, 40대에는 그 모두를 아우르고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자기 기준이 마련되었다.
저자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학생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8쪽). 뉴스 앵커를 꿈꾸는 학생이 현직 앵커에게 이메일을 보낼 정도라면 나는 매우 적극적인 학생이라고 느꼈다. 어떤 내용을 보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아마도 그 정성스러운 메일을 보며 저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쉽게 던지는 조언이 학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어서 어떤 말이든 쉽게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놓았다. 이 책이 그 학생에게 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저자는 학생에게, 언젠가 자신의 후배가 될지 모르는 그 상대에게 많은 답변을 남겼다. 내가 봐도 참 애정이 어린 조언들이다. 아마도 그 메일을 보낸 학생을 포함해 자신이 편들어야 하는 아이들을 염두에 둔 말들일 것이다. 몇 가지만 보아도 저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가장 좋은 이야기만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를(21쪽)”, “Who Cares!(34쪽)”, “재능은 없다.(115쪽)”, “‘니나 내나’ 정신(155쪽)”, “명성 없는 명예(211쪽)”, “책, 괜찮은 동료(234쪽)”
뉴스 앵커를 꿈꾸는 학생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떤 직업을 희망하더라도 이 책은 미래 직업인을 꿈꾸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0대로 접어든(사실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그저 저자가 나와 유사한 상황인 것 같아 40대 초반 정도로 유추해본다.) 직업인이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책이다. 이들의 삶을 똑같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특히 학생부에 어떤 내용을 기록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부 특기사항은 단순히 어떤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기 기준이고 철학이며 방향이다. 나는 그것을 설정하는 저자의 태도를 학생들이 보고 응용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
나는 저자를 뉴스 앵커로만 봤다. 그래서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경로가 매우 상상하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마치 저자를 오래 알아 왔다는 기분이 들게끔 만든다. 매우 친한 친구가 상대의 과거를 함께 공유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물론 책이기에 이 감정은 독자인 내가 일방적으로 느끼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과거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것을 부끄럽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 부끄러움도 당당히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른이 된 장면이다.”(31쪽, 가장 좋은 이야기만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를)
나는 저자의 경험 중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도 어른이기에 매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 매우 아프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저자의 불운한 과거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저자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 불행했던 과거를 견뎌냈다.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을 회상하는 부분을 통해 유추하기로) 그 힘든 시기에 매일 일기를 쓴 모양이다. 자기의 상황, 솔직한 심정, 그날의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매일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매일 실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어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그 힘든 경험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성장한 내일의 나를 만나려면, 과거의 아픔을 성장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픔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 저자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또 다른 증거였다.
저자가 베이징에서, 뉴욕에서, 경찰서에서 얻었던 그 고통스러운 경험들은 모두 그녀를 만드는 자양분이었다. 덕분에 나도 배울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저자만큼 풍부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내 수준이, 그릇이 이 정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마저도 저자와 닮은 모습이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저자와 같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이 주는 벅차오르는 감동, 그 아름다움. 흑백 같던 내 인생에 색이 입혀졌다. 왜 어떤 정치인이 국민 모두가 악기 하나쯤 다루는 나라를 꿈꿨는지 이해하게 됐다.”(47쪽, Who Cares!)
- 문화 강국을 꿈꿨던 김구 선생이 떠오른다. 나도 그래서 악기를 하나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왜 나의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가. 외워서 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외울 텐데.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어디서 틀렸는지라도 알 텐데.”(64쪽, 실패는 실패고 넘어지면 무릎만 아프다.)
- 이게 정말 학생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 왜 실패하는지, 그 실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부분이다. 저자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까지 넘어져도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내라고 조언한다.(65쪽) 실패는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왜 실패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걸 넘어서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선배는 내가 사회생활하는 내내 두고두고 떠올릴 말을 건넸다.”(71쪽, 실패는 실패고 넘어지면 무릎만 아프다.)
- 선배는 이런 존재여야 한다. 이미 경험했다는 것은 그 경험을 따라 경험할 후배를 위해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나는 이 책이 저자의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무언가를 잘하려면,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13쪽, 하리꼬미)
- 능력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한 사람도 노력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지금의 내 연차쯤 되면 경험이 쌓인 만큼 감정도 더 잘 추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어렵다.”(154쪽, 죽음을 좇는 직업)
- 이 부분은 정말 공감된다. 수업을 정말 오래 했지만, 아직도 수업 시간에 학생을 대하는 것이나 수업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다.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처럼 계속해서 새로움에 도전하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얘기되게’하는 능력-
“기자들은 모든 주제를 ‘얘기 된다’와 ‘안 된다’로 분류하는 사람들이었다.”(74쪽, 인턴을 하려고 퇴사하겠다고?)
저자는 ‘얘기되게’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애초부터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라기보다 혹독한 훈련과 경험을 통해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내 직업인 교사보다 훨씬 책 쓰기에 유리하다. 나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얘기되게’하는 능력이 없다. 일단 내 글은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다. 그것만 봐도 내 글이 별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반면에 저자는 자기 이야기를 매우 재밌게 쓴다. 글 속으로 사람들을 마구 끌어들인다. 부럽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나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글로 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어제 갑작스럽게 방문하신 장인어른께서 나도 이제 책을 써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쓰고 싶다. 다만 역량이 부족할 뿐이다.
저자는 뉴스 특파원을 보고 기자가 되고 싶어 했다. 당연히 어릴 적에는 그 겉모습만 보고 직업을 선망하게 된다. 실제로 그 직업인이 되어보면 당연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도 겉모습만 보고 희망 직업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저자처럼 직업인이 된 후 실제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준 내용을 읽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직업인 특강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은 딱 그런 의미로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모만 보고 빠져든 사랑이라 의심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사랑할 이유가 샘솟았다.”(85쪽, 이토록 적절한 타이밍에~)
나는 ‘직접 겪어보니’가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직업인 특강은 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소개를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겪어본 내용을 들려주어야 한다. 직접 경험해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럼에도 이 일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그런 의미로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명사로서 같은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동사로서의 답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195쪽, 사라질 직업)
나는 학생들이 특히 이 ‘동사’로 표현하는 직업 부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밝혔지만, 같은 기자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가 다른 이 부분이 학생부 특기사항에 기록되어야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역사의 현장에 서서 직접 기록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기자는 어쩌면 세상에 몇 명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297쪽, 에필로그)
나도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책쓰기 선배인 저자의 말에 나도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