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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김수민,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쇄)
“퇴사, 결혼, 출산1, 출산2를 해낸 뒤……”(206쪽, 후회할 수 없는 삶)
마치 내 아내의 십수 년 전 일기장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위 표현보다 하나가 더 있다. ‘출산3’이다. 출산3으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내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나는 남편(남의 편). 아내에게는 완벽한 타인(他人)이기 때문에 그 이해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영 그가 남편으로 살아가는 기분을 알 수 없고, 그 또한 영원히 그의 아내로 살아가는 내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89쪽, 배우자라는 타자)
-결혼과 출산 고백서-
저자도 나혜석을 읽었다. 아마도 이 책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녀도 나혜석처럼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던 여성이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이 그녀에게 가져온 변화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가 결혼하게 된 상황부터 시작하여 출산으로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의 경험들은 기혼자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례가 참 많다. 나도 곳곳에 나오는 표현들이 가슴에 와서 꽂혔다고 느꼈다. 저자는 예술적 소질도 있고, 아나운서라는 직업도 가진 적 있었으며, 글 쓰는 재주까지 있었다. 같은 기혼자로서 부러울 뿐이다.
나도 저자처럼 20대에 결혼했다. 울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게 벌써 20년 전인데, 그때에도 저자의 표현처럼 20대의 결혼은 ‘마이너한 경험’(7쪽)이었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일찍 결혼한 것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결혼 결정을 내릴 때 저자처럼 ‘광기’나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에서 결혼에 접근했다고 본다. 결혼할 적정한 나이가 되었고, 함께 가족을 꾸려보고 싶은 여성을 만났고,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첫 아이도 20대에 낳았다. 저자는 ‘출산이 여성만의 고유한 경험’(26쪽)이라고 표현했지만, 남자도 출산을 곁에서 지켜보는 방식으로 경험한다. 내 배 속에 아이를 넣고 길러서 꺼내는 과정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통념과 직장에서의 문화와 가족들의 기대, 아내의 변화에 대한 준비까지 남자들이 그저 수동적으로 그저 출산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내의 변화였다. 아내의 모든 상황에 남편은 맞춰져 가기 시작했고, 맞추는 것이 당연했고, 맞추지 못할만한 상황이나 맞출 수 없는 특성은 버려야만 했다. 결혼으로, 출산으로 여성이 아내와 엄마가 되어가는 것처럼, 남자도 남편과 아빠가 되어갔다. 그래서 저자가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느꼈다고 표현한 ‘고독’, ‘외로움’은 남편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감정이었다. 저자는 그걸 책으로 표현했고, 남편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내 상황을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싸움으로 이어지는 시작이었으니까.
-가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변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우리 사회 가정의 전략은 대개 ‘경제적 안정’을 목표로 세워졌던 것 같다. …… 현재 우리는 더 이상 성별에 따라 차등한 교육을 받지 않는 세대이고, 고착화된 성 역할에 맞춰 살기를 희망하지 않는 세대다.”(57쪽, 1인분의 육아?)
저자와 나는 10년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저자가 가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분석한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남녀 차별은 당연한 문화였고, 남성이 바깥일을, 여성이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성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욱 활발할 수밖에 없고, 1980년대와 동일한 형태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경력 단절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자기 정체성은 큰 타격을 받는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경험하는 그 정신적 트라우마를 현재 대한민국 여성 대다수가 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 아내도 퇴사 후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아내도 저자처럼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엄마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지점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나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는 내 역할과 기대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아내의 마음을 잘 보듬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이 지난 10년간 아내와 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저자의 책을 조금이라도 앞서 읽었었더라면, 아내와의 갈등을 줄이는데, 조금은 도움을 얻었을지 모른다. 남편으로서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내 상황만을 걱정하며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부부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 통념이 어떤 것이든 어려움이 닥치면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어렵더라도 가족 내에서는 평온할 수 있다. 행복할 수도 있다. 가족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어려움도 해결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행복-
저자는 결혼을 매우 흥미롭게 정의한다. (아마도 나혜석의 이혼고백서를 읽은 후 이거나 남편과 크게 싸운 다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혼이란, 갖은 상황과 갈등을 조율하고 서로를 부양할 의무를 떠안으면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뒤로하고 도박같은 선택을 감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87쪽, 배우자라는 타자)
쉽게 표현하자면 맞는 말이지만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이 맞는다고 동의하는 순간 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 같았다. 말이 곧 생각이 되고, 생각이 곧 행동이 되며, 행동이 습관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나 보다. 그렇다. 결혼은 도박보다도 더 끔찍한 일일지 모른다.
“결혼은 아주 쉽게 지옥을 가져다줄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은 지옥이 된다. 사랑은 쉽게 증오가 되고,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망선고가 된다.”(81쪽, 사랑이 배신하면)
그래서 저자는 쉽게 주변 사람에게 결혼을 권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자유’와 ‘행복’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 도박으로만 느껴졌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와 그리고 나혜석과 약간은 다른 생각을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나를 줄여나가고 상대방에게 나를 맞춰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 이후에 해야 할 갈등 조율, 서로에 대한 의무를 떠안는 것이 사랑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사랑이 무엇인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저자는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데, 나는 결혼해서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의무가 없는 연인은 그저 내키는 사랑을 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해야만 내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랑은 이기적이다.”(123쪽,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저자는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사랑,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조차도 이기적이라고 본다. 나도 동의한다. 내 이기심 때문에 상대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면 상대를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의 삶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 저자는 독립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을 해결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기적인 사랑으로 파괴되지 못하도록 자신을 지키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랑이 이기적이라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이기적인 마음이 조율되고, 서로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마치 저자도 자신의 독립적 삶을 위해 엄마에게 의존했던 것처럼. 육아와 유학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이기적일 수 있지만,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조건 없이 이타적일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항상 같은 모습으로만 나타나겠는가. 끊임없이 달라질 수도 있다.
-커리어(Career)와 직업(Job)-
저자는 클라우디아 골딘의 책을 인용하면서 커리어와 직업을 언급한다. 커리어는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 선택하고 키워야 하는 영역인데 반해, 직업은 급여를 위해서만 갖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놀라운 점은 저자가 아이 키우는 것도 커리어의 영역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가 끊임없이 커리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이를 재우고 자기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원에 가고 싶어 했던 1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로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었다. 커리어를 쌓기 위한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저자를 보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무엇 때문에 공부하고 싶은 것인지는 몰랐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그 피곤하고 힘든 순간과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도 앞으로 저자처럼 한 가지만 명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노력하겠다고. 모든 가족이 잠든 지금, 나도 내게 배정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저자처럼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