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 리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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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희철은 아나톨리아와 튀르크인에 열정적으로 미친(?) 사람이다. 그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열정을 바쳐 이 책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쉽게 말해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해 놓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나중에 필요한 정보를 꺼내 보아야 할 정도로 방대한 양을 좁은 지면 속에 밀어 넣어두었다. 마치 백과사전과 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의 책은 '아하~'하고 이해하기보다 '우와~'하고 놀라기 일쑤다.

"책 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튀르크인들의 역사에 꽂혀 산지도 25년이 훌쩍 지났다. 장엄하고 화려한 매력에 빠져 표정이 없는 역사를 넋 놓고 보면서 그들의 몸짓 하나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316쪽, 에필로그)


이번에는 "중간세계"라는 타밈 안사리가 제시한 개념을 빌려 아나톨리아에서 1000년을 버틴 비잔티움 제국과 600년을 살아낸 오스만 제국을 두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제목이 "중간세계사"로 지칭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만 보면 딱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이 더 부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나톨리아에서 동서양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이 두 제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 차라리 이들을 중간세계라 명명하지 말고, 이 두 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였음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스인과 로마인, 무슬림과 튀르크인, 유대인이 혼합되어 살아갔던 다양성의 세계사가 펼쳐졌던 이곳이야말로 중간 세계에 가둘 필요 없이 전체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튀르키예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는 고대 그리스, 로마 강역이었고, 중세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문화가, 근대에 들어서는 오스만 튀르크 즉 오스만 제국의 문화가 서린 곳이다."(4쪽, 프롤로그)

저자는 아나톨리아반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동 지역의 무슬림 역사를 함께 다루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1부에서는 비잔티움을 다루고, 2부에서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를 다룬다. 2부에서는 주로 이슬람이 등장한 시점부터 셀주크 튀르크 제국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3부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다룬다.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을 연결하는데 적절한 내용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저자는 왜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이 둘을 함께 다루고자 했을까. 나는 이 구성이야말로 이 책의 정체성과 목표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밝힌 두 제국의 공통점을 옮겨 적는다.

"첫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 모두 세계사라는 주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 두 번째 공통점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은 같은 장소를 수도로 했다는 것이다. ...... 세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은 정치와 행정 제도 면에서 엄청난 유사성이 있고, 종교와 문화 면에서도 공통의 전통을 가졌다는 것이다. ...... 네 번째 공통점은 로마의 일곱 언덕처럼 두 제국에도 일곱 언덕이 있었다는 것이다."(5~6쪽, 프롤로그)

저자는 특히 이 중에서도 세 번째 공통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정치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 앞 부분과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뒷부분으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다. 일반적인 교양 역사서를 기준으로 보자면 뒷 부분,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분량이 특히 많다. 이는 오랜 시간 아나톨리아에서 튀르크인들의 문화를 연구해온 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부분을 통해 서양사의 빈틈을 메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세계사의 변방에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던 이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지, 그 가치를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특히 우리가 잘 정리하기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도표의 형식으로 간략히 제시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잔티움이 동로마의 수도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결정이라든지, 이슬람 제국의 주요 왕조 연대기라든지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표들이 책 곳곳에 나온다. 나는 이것을 보며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또한, 지면 전체를 할애하여 담아내는 커다란 사진 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나톨리아반도는 내 평생에 방문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공간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전체적인 조망을 담은 생생한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게 독자로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리와 다른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현재를 담은 사진이야말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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