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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부생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나만의 답사기를 써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유홍준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었던 설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행복했다. 책의 표지에 저자 소개 사진이 나온다. 답사 지도를 걸어두고, 그에 관련된 공부를 한 흔적으로 책 탑이 다섯 줄이나 높이 쌓여 있다. 답사, 공부, 지도는 역사학도에게 일종의 로망이다. 저자는 그 로망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매우 부러운 존재다. 일과 가족, 수업과 육아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뚱이도 답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시시각각, 사시사철 변화하는 문화유산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마음 한쪽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문밖을 나가지 못하니 더욱 답사가 간절하다.
‘세 가지 기조’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답사기’를 쓰는 세 가지 기조를 밝히고 있다. 학문적 정확성, 문학적 소양, 사회적 실천이다. 그의 답사기는 이 기조에 따라 정확하고 재미있으면서 유익하다. 이 글을 읽으면 매우 난해하지만, 그의 깊이 있는 공부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또 그 장소에서 마주한 그의 감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유산의 유래나 그 성격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으니 매우 유익하기까지 하다.
위구르 인들의 땅, 중국에 가장 마지막으로 복속된 영토인 신강이 우리의 역사와 이리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법현, 현장, 혜초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긴 여정의 한 부분만이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고된 여정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업에 녹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으로 보고 익힌 것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만 하고 있었을 뿐이니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처럼 정확하면서도 그 생생한 느낌을 살려내고 싶다. 그래서 더욱 답사 욕심이 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 천산위구르왕국’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위구르 인들은 중국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우리에게도 회교도는 매우 생소하면서 거리감이 있는 존재들이다. 저자도 우리와 유사한 불교 문화에 더 애착을 느끼고,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답사기를 통해 위구르 인들이 우리와 매우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비슷한 운명을 경험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 신선하면서도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209년 몽골군이 (천산위구르왕국에) 쳐들어왔을 때 칭기즈칸에게 항복하고 공주와 결혼하는 사위나라가 되었다. …… 대원제국에서 고려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사위나라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148쪽)
나는 여태까지 고려가 몽골 제국의 유일한 부마국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몽골에 맞선 위대한 역사로 매우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아는 세상은 매우 좁았다. 그리고 나같이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이러한 부분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우리 역사가 위대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
학부생 때 답사를 다녀본 것이 거의 전부이지만, 나도 저자처럼 답사를 가면 꼭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에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유 있게 둘러보기 위해서다. 나는 문화유산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그곳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설령 볼 게 없다 하더라도 가봐야 하는 게 문화유산 답사야. 벽화 못지않게 중요한 게 석굴의 자리앉음새야. 아마 풍광은 좋을걸세.”(241쪽)
몸이 고되더라도 직접 그곳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답사기가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평한 지붕, 파미르 고원에서 마무리되는 그의 답사기는 아마도 다음 답사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