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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가파도에 가다 - 비움과 낮춤의 지혜를 배우는 노자 철학 소설 ㅣ 사계절 지식소설 18
김경윤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노자, 가파도에 가다 (김경윤, 사계절, 2025, 1판 1쇄)
참 신기하다. 어릴 적 아까워 먹지 못하고 감춰두던 사탕 같은 책이다. 남은 부분이 줄어들수록 이야기가 끝나버릴까 봐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주인공 이백양을 응원하면서, 또 그처럼 은퇴 후 살아갈 내 미래를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은퇴는 끝이 아님을, 지금 내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어서다.
학교는 디지털화하고, 도서관은 사라진다는 가정. 결코, 상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이다.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할 것만 같다. 이미 도서관은 책을 읽기보다 공부하는 공간이 되었고, 동네 서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서점에 들어가면 문제 풀이집만 가득하다. 도서관장인 주인공 이백양은 자기 은퇴를 종이책의 소멸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도 비슷한 걱정거리가 있다.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걱정이 쉽게 가슴에 와 닿았다.
-말 없는 가르침(不言之敎)-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9쪽, 프롤로그)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노자의 이름이 이백양이라는 것을. 저자는 도덕경 속의 노자를 현실에 불러내려 했다. ‘노자 철학 소설’로 소개된 이 책은 2500년 전 노자의 목소리를 지금 이 시대에 직접 소환하기 위해서 소설을 썼고, 주인공을 우리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은퇴자의 모습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2500년 전 그 성현(聖賢)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평범한 은퇴자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그의 생각과 고민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와 그날을 정리하는 일기 형식으로 그의 생각 흐름을 잘 보여준다. 노자의 현신(現身)이지만 이번 생은 처음인 이백양은 처절하게 흔들리며, 고민한다. 저자는 그의 모습을 통해 삶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마치 ‘말 없는 가르침(36쪽)’같았다.
“노자라고 처음부터 존재와 변화의 이치를 깨달았겠는가? 아니, 흔들리지 않고 존재와 변화의 이채를 깨달을 수가 있는가? 노자도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을 것이다. 흔들리며 살았기에 말년에 담담히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91~2쪽, 5장. 고양이 청년을 만나다.)
그래서 주인공의 삶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삶의 방향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주인공 이백양이 살아간 방향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깨닫게만 해 주었다. 저자는 이백양을 통해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단순히 보여주었다. 이백양은 도시에서만 살아왔지만, 농촌에서, 섬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은퇴 이후에도 얼마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생기있는 삶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도 보여주었다.
“백양은 가파도에 도서관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일을 준비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자기가 의미 있어 하는 게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118쪽, 7장 고양이 도서관을 만들다)
-묘(猫)한 위로-
1장에서부터 주인공 이백양은 지인의 죽음을 겪는다. 그리고 곧바로 길고양이의 죽음도 마주한다. 그런데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 나한테는 낯설었다. 사실 나는 죽음을 꺼리고 두려워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백양은, 가파도의 노자는 좀 달랐다. 죽음을 ‘데면데면(37쪽)’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른바 고양이가 집사에게 보여주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그 적당한 거리감이 묘하게 날 위로했다. 격하게 슬퍼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전혀 모른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닫게 되었다.
“외면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삶, 홀로 지내고 싶을 때 마음 편히 혼자가 되는 상태가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인 것 같다.”(37쪽, 2장 고양이의 가르침)
위의 관계처럼 이백양이 가파도에서 살아가면서 배운 그 모든 모습이 내겐 위로였다. 그가 건네는 말이 내가 가진 강박과 두려움, 고민 같은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직접 살아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얻을 수도 있었다.
“애써 마음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무심한 노동, 무심한 친절, 무심한 생활!”(47쪽)
이백양은 매표소 직원의 삶을 통해 애쓰지 않아도 노동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너무 애쓰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무심하게 살아가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파도 사람의 인심은 이렇게 은근하다. 오래도록 관찰하다가 필요한 것을 슬쩍 주는 것이 섬사람의 인심이다.”(48쪽, 3장 천천히 살다)
가파도 사람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친절인지를 깨닫는다. 두드러지는 행동보다 은근한 것이 더 큰 친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에는 참으로 묘한 위로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내 삶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위로를 받는다.
-교사를 위한 도덕경-
주인공 이백양은 교사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 교재를 쓴다. 이른바 ‘교사들을 위한 도덕경’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젊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이 강의가 진행되었지만, 나같은 나이든 교사도 참여할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그리고 학생도 함께 있었다면 더 의미가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건 그 강의 교재 전체가 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강의 교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 나도 제주도로 내려가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책 말미에 보면 수강생 중 누군가가 출간을 하시던데.. 실제로 저자가 다음 작품으로 이 내용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히 바란다.
“노자가 교육자였다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했더니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됐다. 교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구나.”(133쪽,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인간에게는 소통 능력이 있다. 이 소통 능력 안에는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감정에 대한 소통 능력도 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공감하면서, 서로 기대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이 찾아온다.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바로 이 공감의 소통으로까지 나아가는 것, 그래서 진정으로 지혜롭고 강하고 자족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142쪽,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주인공의 일기를 통해 대강 그 내용을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구상했을까. 교육자로서의 노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통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으면 좋을까. 지식의 전달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이백양을, 아니 노자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들을 무차별적으로 마구 쏟아낼 것만 같다.
이 책이 딱 내 책이라는 느낌을 준 구절이 있다. 바로 주인공 이백양이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날이 바로 8월 8일이라는 점이다. 그날은 내 생일이다.
“고양이도서관의 개관일은 8월 8일로 정했다. …… 세계적으로 고양이를 위한 행사가 열리는 날에 고양이도서관을 개관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126쪽,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주인공 이백양에게도, 내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내 삶의 의미를 그렇게 쉽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거창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갈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백양처럼 티베트로 떠날 수도, 1년 간 가파도에서 살 수도 없지만, 나도 내 삶을 조금은 바꿔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볼 용기를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