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알아듣는 하루 한 장 표현력 연습 - 관찰력과 전달력을 단련하는 103가지 실전 말하기 트레이닝
오구라 히토시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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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단번에 알아듣는 하루 한 장 표현력 연습 (오구라 히토시, 알에이치코리아, 2025, 11)

말과 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다. 나는 직업상 그 필요성을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늘 말과 글은 어렵다. 같은 상황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받아들이는 정보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생각이나 의도를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표현력을 기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토대로 30년 경력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쓴 일종의 표현력연습 지침서다. 103가지 상황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표현하기 위해 관찰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사람은 관찰한 것만 표현할 수 있다.”

상황을 스쳐보듯 눈에 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전할 때도 막연한 표현을 쓰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한다.”(7, 머리말)

 

아주 당연한 듯 보이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내용이다. 입력값이 정확할수록 출력값이 정확한 것은 사람이나 기계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정확한 표현을 하기 위해 관찰하는 연습을 하도록 유도한다. 103가지 상황을 모두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해 우리가 정확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주의하여 관찰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아무리 간단하고 재미난 것이라도 계속 반복된다면 지루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손쉽게 멈출 수 있도록 상황을 2페이지 정도로 간단히 나누어 두었다. 부담 없이 읽다가 언제든 책을 덮을 수 있도록 읽는 시간, 읽는 숨을 짧게 배치한 것이다. 가볍게 읽어보고 두어 번 연습한 후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면 좋은 책이다.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비슷한 패턴으로 글을 배치해두었지만, 가볍게 읽고 덮어두기에 좋게 가볍게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아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도 지침서를 만들어두고 그에 따라 생활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인의 문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지침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지침서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모든 일에 지침서를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일본인들만큼이나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 답을 우리나라에서는 지침서로 만들어내지 않겠지만, 일본이라면 이런 지침서를 만들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거창하지는 않아도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침서는 들고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하다. 부디 이 책이 표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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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동물 열전 -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들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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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팔도 동물 열전 (곽재식, 도서출판 다른, 2025, 초판 1)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공간에도 얼마나 소중한 자연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밝혀보고자 했다.”(10, 들어가는 말)

 

저자는 우리 주변의 야생 동물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사실 팔도는 우리 한반도를 표현한 제목이지만 이 책에서 지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한반도 곳곳에 살고 있는 동물을 애정어린 눈으로 살핀다. 단순히 어떤 야생 동물이 있는지 조사하는 수준이 아니다. 대대로 우리 조상과 함께 살아온 흔적을 찾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내면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다. 매우 입체적으로 그 동물을 살피는 열전이다. 예를 들면 한국을 대표하는(?) 야생 동물인 고라니를 살피면서 백제 멸망의 순간부터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방향까지 들여다본다. ‘동물 열전은 역사적으로도 참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저자가 환경과 공학, SF 소설가의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옛 조상들은 우리 자연과 동물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반도에 사는 대표적인 야생 동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마도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저자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다양한 자료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었던 빈 곳은 저자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했다. 나는 그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다. 허무맹랑한 수준이 아니라 어쩐지 그럴듯하게 설득력이 있는 그런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야생 동물을 애써 공부한 흔적일지 모른다. 먼저 열심히 흩어진 지식을 모아 자기 관점으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우리 현재 삶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미래를 풍족하게 만들어내는 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공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동물-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너무나 당연했던 사실이 외국 학자들의 눈에는 이렇게나 특별하고 놀라운 현상으로 비치고 있다.”(194, 담비)

 

비단 외국 학자에게만 놀라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이 책에 나온 내용 대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 우리는 여우를 미워하는 것일까. 청설모라는 이름은 과연 무슨 뜻일까. 곰은 왜 탱이를 만들어 미련 곰탱이가 되었을까. 우리 조상이 익숙하게 알고 지내던 것들이 낯설어진 지금, 이 동물 열전을 읽으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서 많은 것들이 동물과 관련이 있고, 우리 역사에는 친숙한 동물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조상이 동물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했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던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파트라는 작은 공간 안에 오밀조밀 모여 살면서 동물들과는 절연된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우리 주변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익숙했던 조상의 기억을 되새겨주는 장치고, 우리 문화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돋보기다.

 

 

-야생 동물과 함께 살아갈 미래-

 

이 책은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야생 동물과 현재를 연결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한반도 야생 동물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동물을 기르고 보호하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꾸준히 예산을 들여 잘 관리한다면 한국에서도 무척 가치있는 장소로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동물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다면, 그곳은 보통의 공원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될 것이다.”(145, 너구리)

 

나는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나 동물을 자유롭게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상상을 우리나라에서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무 곳에나 야생 동물을 풀어 놓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또는 생태학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에 관련 야생 동물을 함께 보호하는 동물 친화 공원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천 용유도에서 원숭이를 풀어놓고 길렀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기반으로 동물 실험을 당하던 원숭이의 여생을 살아갈 시설을 마련한다면? 역사적 계승이면서 동시에 동물 보호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그리고 야생 동물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야생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만 매우 흔히 볼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희귀한 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너무 많이 서식한 나머지 농작물에 피해가 커지고 있고, 정부는 고라니를 대량 사냥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지리산 반달곰은 멸종된 것을 다시 복원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너무 많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문제로 대규모로 사냥을 하고 있다. 인간과 야생 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공존이라는 게 가능한 지점은 어떤 것인지 앞으로도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만든 환경-

 

저자는 환경공학 전문가답게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마치 그대로 내버려 두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자연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오류이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제대로 자연을 이해하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보호도 불가능하다. 단순히 옛 방식으로 되돌아간다고 해서 자연이 마법처럼 저절로 회복되는 일은 없다.”(113, 청설모)

 

인위적인 조작이나 노력이 자연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일까. 나는 그 부분에 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은 다람쥐보다는 청설모에게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고, 광물을 캐내기 위한 인공 동굴은 박쥐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나는 이 점도 매우 중요한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야생 동물이 도심에 나타나거나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인간의 행위가 환경에 어떤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중국에서 건너온 러브버그의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이상 변화가 감지되었다면, 시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하여 앞으로 공존해 나가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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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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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언더월드_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까치글방, 2025, 초판 1)



이 책은 일종의 사랑 고백서이다.


저자는 깊은 바닷속(심해)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곳저곳에 펼쳐 놓는다. 나 같은 T가 읽어도 그 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절절하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연인의 과거를 조사하고(심해의 역사를 다룬 1장 망누스의 괴물들), 상대를(심해(深海))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고 동분서주 한다.(2~7장까지)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벅찬 감정을 토해낸다.(8장 이제 박광층(심해)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곤 분노를 터뜨린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향해(9장 심해를 팝니다.).

 

이렇게만 보면 저자가 심해를 상대로 처절한 스토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저자의 깊은 애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독자가 그녀처럼 심해를 사랑하게 만들려는 전략이다. 아마도 평범한 해양학자였다면, 독자에게 심해가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심해를 보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지면을 더욱 할애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우리가 심해를 사랑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실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 관심갖기 어렵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당장 심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활용했다.

 

 

-심해(心海), 지표면에서 가장 넓은 미지의 공간-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저자의 애절한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 저렇게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나는 심해에 내려갈 용기도, 돈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그토록 심해에 대해 알리려고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심해는 왜 중요할까. 우리는 그곳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심해는 마치 공기를 닮았다. 우리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그 존재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존재 같은 것이었다. 심해가 우리 삶에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이 책 이곳저곳에 잘 드러나 있었다. 내가 그 일부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다면, 심해는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해에 있는) 케스케이디아 섭입대가 다시 파열된다면, …… 높이가 최대 30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800만 명이 살고 있는 해안 지대를 덮칠 것이다. …… 만약 바닷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피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132,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바로 심해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재난은 주기적으로 닥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더욱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함께 다양한 센서들이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곳에 관심이 없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의향은 더더욱 없다.

 

지구 내부의 이러한 생물들에 대한 연구는 과학계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분야이다. …… 극한 생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생물이야말로 …… 또다른 해양 세계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유형의 생명체이다. ……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품은 장소라는 사실이다.”(146,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환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와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본 적 없는 수많은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산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육지 생명체에게 독극물인 황화수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에게는 독극물이지만, 그것을 양분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또한, 지구에서 처음 생명이 생성되었을 당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생명에 관한 비밀이 저멀리 우주가 아니라 바로 근처 심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는 것보다 심해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한다.

 

“1970년 이후로 바다는 우리가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발생시킨 열의 93퍼센트와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해왔다.”(151,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탄소 흡수량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뒤에서 저자가 직접 방문한 박광층에 사는 생명체에 의해 수면에서 흡수되고, 심해에 갇히는 탄소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렇듯 심해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대다수를 조절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기후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마지막 남은 지구의 자정 기능이 심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심해와 나의 삶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일 것이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놀라운 사실들이 이 책에 나온다. 해양 생태계는 물론 전 지구적인 모든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고, 현재 가장 최신의 연구 성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심해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난파선, 해양 고고학과 역사학의 보고(寶庫)-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게 된 부분은 ‘6장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였다. 특히 산 호세 갈레온 선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바닷속에 수많은 배가 원형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누누이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들을 그대로 인양해 박물관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인근에도 분명 수많은 난파선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비밀들을 파헤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심만 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저자는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심해의 역사를 발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해양고고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정부는 권리를, 기업은 로봇과 돈을 가지고 있지만 공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266,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

 

결국, 돈이라니. 앞으로 심해 탐사와 관련된 장비와 기술이 더욱 발전하겠지만, 결국 그것들을 움직이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가슴 아픈 현실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더 많은 지원을 얻어서, 더욱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탐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 나도 그런 관심을 두게 된 한 명의 독자이니까 언젠가는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

 

사물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음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이다. …… 황홀경처럼 느껴졌다. ……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세계를, 세계 자체의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328, 이제 박광층으로 들어갑니다.)

 

저자의 탐험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단순한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자연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우리가 가진 시야(관점)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의 대다수는 빛이 없는 심해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육지는 지구 표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바다다. 우리가 인식하고 절대적이라고 믿는 세계는 얼마나 비좁은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심해에서 광물을 채굴할 권리를 판매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단지 돈을 위해서 파괴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녀가 느낀 분노가 ‘9장 심해를 팝니다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 같다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기 바란다. 알면 알수록 더 황당하니까 말이다.”(337, 9장 심해를 팝니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논란은 심해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된 문제다. 그런데 그 문제가 심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인간은 참으로 조악한 기술만으로 세상을 파괴할 능력을 갖춘 특이한 존재다. 그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돈 몇 푼을 위해 스스로 파괴한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케케묵은 것 같은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항상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멈춰요. 기다려요. 우리가 대안을 생각해볼 기회를 줘요. …… 한번 사라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요.”

메탈스 컴퍼니(심해 채굴을 위한 기업)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359, 9장 심해를 팝니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은 부러웠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웠다. 나는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다시 가슴이 뛰어서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떻게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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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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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하승민을 비롯한 19명의 작가가 짧은 글을 담았다. 모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1996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한겨레문학상은 총 서른 번의 수상작과 작가를 남겼다. 책의 맨 뒤를 보면 제2회부터 29회까지 수상작과 작가가 기록되어 있다. (1회와 30회는 빠졌는지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집을 읽으며 ‘30(서른)’힌트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짧은 글을 보면서 수상작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9회 수상작인 하승민의 멜라닌을 읽어서 그런지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글이 수상작의 확장된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수상 이후 갖게 된 생각이나 경험을 알게 해준 작품들도 있어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여기 실린 19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강화길 작가의 종이탈과 최진영의 무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진영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짧은 글이었지만 읽고 난 후 역시 최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0(서른), 힌트-

 

그렇게 서른 번째”(150, 강화길, 종이탈)

서른!”(179, 강태식, 모든 고릴라에게)

일단 ‘30’이라고 번호를 쓴다.”(253, 서진, 웰컴 투더 로스트앤드 파운드)

서른!”(312, 권리, 어나니)

그러기에 서른 살 전후가 되면 고난이 닥친다.”(371, 한창훈, 홍합, 이시죠?)

 

이 책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이 보내온 30주년 기념 글들이다. 30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를 작가마다 개성 있게 풀어냈다. 30이라는 숫자를 보면 뭔가 긴 시간 같기도 하고, 나이 서른을 의미하는 것 같다.(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나이 서른은 매우 큰 숫자였지만, 지금은 서른이 그다지 많은 나이가 아니다. 한겨레문학상이 달려온 30년이라는 긴 세월 작가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한겨레출판은 한겨레문학상 30주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세대는 <한겨레>에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362, 한창훈, 홍합, 이시죠?)

 

작가, 출판사, 독자에게 한겨레문학상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아마도 나의 선배 세대들에게 한겨레는 뭔가 뜨거움을 느끼게 만든 상징이었는가보다. 출판사나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의미가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힌트를 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출판사, 작가, 독자는 아마도 저마다의 의미를 힌트 속에 감춰 공유하려고 한 것 같다.

 

힌트인가?”(96, 김유원, 힌트)

 

 

-한겨레문학상의 역사-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역대 수상자의 글이 수상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에게도 시간의 무게가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29회 수상자인 하승민 작가의 글이 가장 최근의 한겨레문학상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2회 수상자인 김연 작가의 글은 아마도 시간의 무게와 함께 작품의 의미가 약간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대체로 최근 수상자의 글은 수상작의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반영했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오래전 수상자들은 한겨레출판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된 글을 통해 힌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승민의 글에서는 이 갖는 차별적 시선을, 김유원의 글에서는 좋아함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수진의 글에서는 소수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 집단 안에서 받는 역차별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박서련의 글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갖게 되는 생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나는 이런 것들이 바로 한겨레문학상의 역사를 담고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래서 그만큼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할 수 없는 가벼운 소재를 소설로 무겁게 다루고 있다. 나는 그렇게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158)’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길-

 

한겨레문학상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겨레문학상은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조두진의 표범에 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한겨레출판도 아마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겨레문학상을 30년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집에 사는 흑돼지이고 싶었다. …… 킬리만자로에 무슨 놈의 자유가 있어?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고, 천적을 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297, 조두진, 표범)

 

쉴 새 없이 달려온 한겨레문학상.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30년을 버텨온 그 길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평원을 호령하는 표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빠다.”(335, 심윤경, 너를 응원해)

 

한겨레문학상은 아빠와도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아이들을 든든하게 보듬어 주어야 하는 존재.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만큼은 꼭 지켜내야 하는 존재. 나는 한겨레문학상이 아빠와 같은 존재로 지금처럼 계속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은 든든한 아빠를 믿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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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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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파이트 (이라야, 창비청소년문학, 2025, 초판 1)

어쩌면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발상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내가 전달받은 위로의 힘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201, 작가의 말)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하람이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상처는 어쩌면 부모를 닮았는지 모른다.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빠도, 엄마도, 하람이에게서도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지독히도 닮은 가족들이다. 아빠는 아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캄보디아로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상처를 보듬는 데에만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가족의 상처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만 한다. 하람이는 그런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달려간다. 격투기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이다. 하람이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의 시선이 머물렀던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람이를 바라봐주던 유일한 존재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다.

 

 

-투정부리지 않는 아이-

 

하람이의 어려운 상황보다도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녀가 투정조차 부리지 않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한다고 탓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한국으로의 도피 과정에서도 엄마를 놓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어른인 척 살아야만 하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느냐고 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억울할 이유도 없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엄마가 선택한 일이고, 그 선택권자인 엄마가 나를 외면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또한 엄마의 마음 아닌가. 그 결과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불합리하지만 내 선택이 아니니 따지고 들 일도 못 된다.”(111, 엄마의 생일)

 

그래서 하람이는 격투기 선수(파이터)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속에 꽁꽁 감춰둔 투정을 온몸으로 쏟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격투기 덕분에 하람이는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격투기는 하람이에게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파이트인 이유도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두드리는 위로-

 

캄보디아(아빠가 있는 보금자리)를 떠나 돌아가신 한국 할머니의 집을 찾아왔을 때, 하람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중에 돈은 없었고, 한겨울임에도 두꺼운 외투조차 없었으며,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람이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SNS에서 만났던 무하는 시시콜콜 묻지 않고 그저 도움을 주었으며, 이웃집 할머니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겨울옷을 내주었다. 심지어 원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하람이의 엄마를 덜컥 받아준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다.

 

단단하고 철벽같은 내 감정선 사이를 얇은 실금처럼 깊게 파고든다.”(59, 방심은 금물)

 

하람이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결국 마음을 연다. 마음의 문은 꼭꼭 닫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려주길 기다렸을 뿐이다. 주변의 가벼운 두드림(위로)만으로 하람이의 마음은 열릴 수 있었다.

 

 

-어른의 역할-

 

하람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주변의 어른들이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을 뿐이다. 하나님을 모시는 아빠가 하람이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였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 했지만 아빠는 사람이라 똑같이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만 절실히 깨달았다.”(92, 찾아오는 사람들)

 

하나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 혼자 버티게 내버려 둔다는 거. 살든지, 나가떨어지든지, 죽든지.”(144, 울지마, 제발)

 

아마도 하나님은 아빠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람이가 원한 것은 매우 간단했다. 아이니까, 당연히 바랄 수 있는 것. 바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죄책감에 빠져 아이를 외면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하람이를 방치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주 가끔 다녀가시는 할머니뿐이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으니 하람이에게 남은 어른은 이제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한국에서는 하람이 편에 서주는, 그녀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어른을 만난다. 하람이가 어린아이였고, 그녀가 바란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 어른들이 제대로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이었다.

 

하람이는 안 불쌍해요? 왜 얘가 엄마의 상처, 고통을 모조리 뒤집어써야 하냐고요, 왜요? …… 얘 아픈 건 누가 알아줄 건데요. 누가요!”(157, 울지마, 제발)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좀 풀렸다. 나의 가능성을 평가해주는 거, 지금은 그것도 내게 필요한 양분이었다.”(167, 파이트!)

 

하람이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두드려준 것은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였다. 그런데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은 하람이가 받은 상처를 치유했다. 하람이가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것. 그녀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그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주었다. 하람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이 어른들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어른일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살필 수 있는 부모인지, 학생의 든든한 한편이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인지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하람이의 성장 과정은 매우 눈물겹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주는 친구들,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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