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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언더월드_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까치글방, 2025, 초판 1쇄)
이 책은 일종의 사랑 고백서이다.
저자는 깊은 바닷속(심해)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곳저곳에 펼쳐 놓는다. 나 같은 T가 읽어도 그 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절절하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연인의 과거를 조사하고(심해의 역사를 다룬 1장 망누스의 괴물들), 상대를(심해(深海))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고 동분서주 한다.(2장~7장까지)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벅찬 감정을 토해낸다.(8장 이제 박광층(심해)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곤 분노를 터뜨린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향해(9장 심해를 팝니다.).
이렇게만 보면 저자가 심해를 상대로 처절한 스토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저자의 깊은 애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독자가 그녀처럼 심해를 사랑하게 만들려는 전략이다. 아마도 평범한 해양학자였다면, 독자에게 심해가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심해를 보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지면을 더욱 할애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우리가 심해를 사랑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실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 관심갖기 어렵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당장 심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활용했다.
-심해(心海), 지표면에서 가장 넓은 미지의 공간-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저자의 애절한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 저렇게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나는 심해에 내려갈 용기도, 돈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그토록 심해에 대해 알리려고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심해는 왜 중요할까. 우리는 그곳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심해는 마치 공기를 닮았다. 우리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그 존재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존재 같은 것이었다. 심해가 우리 삶에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이 책 이곳저곳에 잘 드러나 있었다. 내가 그 일부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다면, 심해는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해에 있는) 케스케이디아 섭입대가 다시 파열된다면, …… 높이가 최대 30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800만 명이 살고 있는 해안 지대를 덮칠 것이다. …… 만약 바닷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피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132쪽,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바로 심해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재난은 주기적으로 닥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더욱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함께 다양한 센서들이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곳에 관심이 없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의향은 더더욱 없다.
“지구 내부의 이러한 생물들에 대한 연구는 과학계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분야이다. …… 극한 생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생물이야말로 …… 또다른 해양 세계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유형의 생명체이다. ……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품은 장소라는 사실이다.”(146쪽,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환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와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본 적 없는 수많은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산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육지 생명체에게 독극물인 황화수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에게는 독극물이지만, 그것을 양분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또한, 지구에서 처음 생명이 생성되었을 당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생명에 관한 비밀이 저멀리 우주가 아니라 바로 근처 심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는 것보다 심해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한다.
“1970년 이후로 바다는 우리가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발생시킨 열의 93퍼센트와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해왔다.”(151쪽,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탄소 흡수량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뒤에서 저자가 직접 방문한 박광층에 사는 생명체에 의해 수면에서 흡수되고, 심해에 갇히는 탄소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렇듯 심해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대다수를 조절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기후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마지막 남은 지구의 자정 기능이 심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심해와 나의 삶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일 것이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놀라운 사실들이 이 책에 나온다. 해양 생태계는 물론 전 지구적인 모든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고, 현재 가장 최신의 연구 성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심해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난파선, 해양 고고학과 역사학의 보고(寶庫)-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게 된 부분은 ‘6장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였다. 특히 산 호세 갈레온 선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바닷속에 수많은 배가 원형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누누이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들을 그대로 인양해 박물관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인근에도 분명 수많은 난파선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비밀들을 파헤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심만 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저자는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심해의 역사를 발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해양고고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정부는 권리를, 기업은 로봇과 돈을 가지고 있지만 공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266쪽,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
결국, 돈이라니. 앞으로 심해 탐사와 관련된 장비와 기술이 더욱 발전하겠지만, 결국 그것들을 움직이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가슴 아픈 현실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더 많은 지원을 얻어서, 더욱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탐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 나도 그런 관심을 두게 된 한 명의 독자이니까 언젠가는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
“사물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음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이다. …… 황홀경처럼 느껴졌다. ……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세계를, 세계 자체의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328쪽, 이제 박광층으로 들어갑니다.)
저자의 탐험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단순한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자연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우리가 가진 시야(관점)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의 대다수는 빛이 없는 심해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육지는 지구 표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바다다. 우리가 인식하고 절대적이라고 믿는 세계는 얼마나 비좁은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심해에서 광물을 채굴할 권리를 판매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단지 돈을 위해서 파괴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녀가 느낀 분노가 ‘9장 심해를 팝니다’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 같다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기 바란다. 알면 알수록 더 황당하니까 말이다.”(337쪽, 9장 심해를 팝니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논란은 심해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된 문제다. 그런데 그 문제가 심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인간은 참으로 조악한 기술만으로 세상을 파괴할 능력을 갖춘 특이한 존재다. 그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돈 몇 푼을 위해 스스로 파괴한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케케묵은 것 같은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항상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멈춰요. 기다려요. 우리가 대안을 생각해볼 기회를 줘요. …… 한번 사라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요.”
“메탈스 컴퍼니(심해 채굴을 위한 기업)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359쪽, 9장 심해를 팝니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은 부러웠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웠다. 나는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다시 가슴이 뛰어서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떻게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