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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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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진공 붕괴 (해도연,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저자는 소설을 쓰는 우주과학 연구원이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일까. 분명 소설이고, 가상의 상황임에도 너무 생생한 실제처럼 느껴졌다.

 

발아래에도 아득하도록 먼 밤하늘이 있다.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기둥, 그리고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사이의 경계가 라미의 균형 감각을 흩트린다.”(11, 검은 절벽)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막막한 상황을 너무도 절실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우주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여러 소설 중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검은 절벽텅 빈 거품에서 이런 생생함을 자주 느꼈다. 마치 곧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상반되는 두 상황을 아주 잘 어울리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특히 나는 매우 무서울 수밖에 없는 우주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부분이나, 부모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장애를 예술작품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항성 간 공간을 가로지르는 고에너지입자(우주 방사선)가 라미의 망막을 때린 것이다. …… 지금은 오히려 이 낯섦에 홀릴 것만 같다. 아름답기 그지없다.”(31, 검은 절벽)

 

눈 봤어? 너무 예뻐. 홍채가 고흐 그림 같아. <별이 빛나는 밤>을 담아 놓은 거 같아.…… 콜러스 신드롬의 특징 중 하나가 독특하고 화려한 홍채였다.”(219, 콜러스 신드롬)

 

 

-선택, 인간의 숙명-

 

여러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있지만 모두 유사한 딜레마를 맞이한다. 그들이 맞이하는 상황은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모든 것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국 주인공들은 도망치지 않고 선택한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상미는 밤과 낮이라는 두 시간의 경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깨지고 흩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 하지만 결국 시간은 밤을 향해 쓰러질 거라는 걸 상미는 알았다.”(86, 텅 빈 거품)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나는(소설 속 주인공)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만나고, 결국은 선택을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학자도 엄정한 논리적 근거 속에서 명확한 결론만 도출해내는 컴퓨터가 아니구나. 결국, 역설적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인간이구나.’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응원하고 싶어졌고,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검은 절벽속 주인공 라미는 인공지능 러브조이와 인간 노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심지어 약물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택을 할 것인가, 확신은 없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라미의 힘든 선택을 응원했다. 지구에서 1.6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에서 영원히 떠돌게 될지라도 말이다.

 

텅 빈 거품속 주인공 상미는 140년 뒤 미래를 알게 된다. 파멸적인 미래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딜레마다. 그것도 애매하게 10년 뒤가 아니라, 내가 죽고 난 뒤 내 자손들에게 다가올 미래다. 상미는 선택해야 한다. 나만 안락한 삶을 누리다 파멸적 미래를 후손에게 넘기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파멸적 미래를 피하려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돌아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선택에 약간 집중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항성을 연료로 삼는 거대한 구조물과 거기에 기생하는 비행선의 정체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더 없었다. 약간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선택은 매우 명확하면서도 단호하다. 이른바 갈팡질팡하는 흔들리는 모습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든든하면서도 무섭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 내게 같은 이유로 고민을 이야기해 온다면, 나는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할 것이다.”(200, 콜러스 신드롬)

 

내 걱정은 하지마.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처럼(아내 유슬)”(237, 콜러스 신드롬)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주인공들의 선택에 책임을 붙였다. 아마 나는 그 책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을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가족, 그 소중함에 대한-

 

작가도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

 

마리 멜리아스의 주인공 유진은 인공 신체와 뇌를 이용해 죽은 아내 서월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가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죽은 이를 살려내는 행위는 살아남은 사람의 영원한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는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죽은 이의 기억이 완전히 복제된 인공 육체와 뇌는 죽은 자의 의식을 가진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느냐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새롭게 태어난 인공 육체 마리는 죽은 이의 복제된 존재란 걸 아는 순간 많은 혼란을 겪는다. 복제된 내가 내가 아니라는 자의식이 생긴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얼마 전 본 영화 미키17’에서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수로 잘못 복제된 내가 살아서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정말로 법을 지키기 위해 그를 살해할 수 있을까. 나와 동일한 뇌와 육체로 복제되었다고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정말로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콜로스 신드롬의 주인공은 아내 유슬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이 상황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만약 내 아이가 장애가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주 쉽게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간다. 부모는 당연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만드는 것과 그 아이를 키워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재호는 몰랐던 것 같다.”(220, 콜러스 신드롬)

 

솔직히 나도 재호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 유슬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단호하게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내 유슬이 남편 재호를 악마로 규정하고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처벌을 내렸다는 점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호는 아내 유슬과 딸 윤하를 사랑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SF의 새로운 차원-

 

지금껏 읽어본 SF는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뭔가 새롭다. 내가 알고 있던 기존 SF의 공식을 뛰어넘은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에 나오는 문장과 비슷하다.

 

세상에 이처럼 극적으로 아름다운 괴물이 있었던가.”(279)

끔찍한 재료(매우 식상한 소재)로 만든 맛있는 음식(새로운 SF)”(294)

에일-(해도연 소설집) 이후로는 모든 것이 식상했다.”(301)

 

놀라운 소설이다. 이 느낌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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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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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야만의 해변에서 (캐럴라인 도즈 페턱, 까치, 2025, 초판 1)

익숙한 유럽인의대항해 시대에 살았던 낯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저너스를 만나다.

 

이 책의 부제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에도 잘 드러나 있듯,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옮기는행위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을 인디저너스라는 호칭으로 되살리고, 그들이 대항해 시대로 명명된 유럽인의 역사에 어떻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특히 첫 부분부터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영역이 표시된 지도와 그들의 역사를 담은 연대기는 시공간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호칭이 중요한 이유에서는 왜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저너스라고 지칭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불친절하고 일방적인 유럽인의 기록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야만이라 폄훼된 인디저너스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한한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대항해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저자는 인디저너스야말로 대항해 시대의 광대한 연결망을 만든 주체였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 세계의 씨앗이었다고 주장한다. 인디저너스가 있었기에 유럽인의 대항해 시대가 가능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내용이다. 마치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한국인의 활약 덕분에 가능했다는 주장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의 메이플라워 호가 플리머스 바위에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보다 무려 한 세기 이전, 인디저너스들이 조성하고 향유했던 광대한 연결망, 즉 그들이 무역하고 약탈하고 협상하고 결혼하고 어울리고 싸웠던 그 광대한 연결망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범세계주의적인 현대의 씨앗이 되었다.”(25, 들어가며)

 

 

-인디저너스, 대서양 양안의 정체성-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주로 인디저너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1장은 노예, 2장은 중재자들, 3장은 가족과 친척이다.) 디저너스가 유럽과 조우한 이후 대서양 양안에서 만든 새로운 정체성이 광대한 연결망으로 작동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많은 사람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극도로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시대를 살아남은 인디저너스들은 매우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대체로 우리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항해 시대 초기 유럽에 노예로 끌려온 인디저너스의 삶에 주목한다. 16세기 이베리아반도는 인디저너스를 포함해 포르투갈인, 무어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다채로운 사회였다. 그래서 노예 인디저너스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인디저너스들의 상황이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103, 1장 노예)

 

다채로웠던 인디저너스 노예의 삶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 노예도 법을 통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디저너스 노예를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무리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을 막고자 했던 힘도 유럽 사회에 있었다. 물론 그것이 시혜적인 성격이거나, 포르투갈, 스페인 왕실이 인디저너스를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디저너스들이 소송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과 아메리카로 귀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에게 낯선 역사다.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 인디저너스도 다른 사람들처럼 유럽에서 어울려 살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둘째, 인디저너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개종을 강요하거나,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모두 합법적수단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합법을 운운했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합법적 폭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법치주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다. 법은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하층민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자로서 인디저너스의 삶도 매우 독특했다. 붙잡혀 통역사가 된 네판틀레라스(132)’라 지칭된 인디저너스의 삶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메리카 해변에서 조난당한 유럽인 비치코머(132)’의 삶도 매우 독특했다. 중재자라는 표현에도 내포된 의미이지만, 이들은 대서양 양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디저너스와 유럽인 간 상호작용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 대한 이중적 평가다. 이들은 유럽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배신자인가, 아니면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억압받은 노예들인가. 백인 영국인으로서 저자는 이에 관한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피압박민족의 후예인 나는 이를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평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인디저너스가 유럽 고위층의 가족이 되거나, 고위층 인디저너스가 유럽인과 친척이 되거나 하는 사례도 매우 흥미로웠다. 목테수마(아즈텍 제국 마지막 황제 몬테수마)의 후손이 스페인에서 지금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렸을 적 보았던 디즈니 영화 포카혼타스가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된 정체성을 유포했다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점은 노예나 중재자들로 유럽 압제자에게 복역했던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유럽 고위층의 가족이나 고위층 인디저너스들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서 종교적, 문화적 상징이나 영웅으로 숭앙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이 현재 인디저너스 후예들에 의해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은 분명 슬픈 일이다. 역사적 실제가 중요한지, 현재 만들어진 전통이 중요한지는 우리가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인디저너스 후예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가장 중립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서양을 건넌 물건들-

 

저자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물건들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는 인디저너스와 유럽인의 가치 체계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이 물건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것을 약탈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디저너스들은 자연을 삶의 일부로 인식했다. 마치 동양 철학의 한 단면을 보는 것과 같이 자연은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우주적 질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에서 사람과 물건이 서로 교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물건들을 상품으로만 보는 유럽의 인식에서 벗어나 인디저너스의 의식과 문화가 끼친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케찰 새 깃털이나 카카오 열매다. 이와 관련된 인디저너스의 문화가 현재 우리가 쓰는 언어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가 소개한 단어는 생각보다 많다. 초콜릿, 바비큐, 허리케인, 해먹, 카누 등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인디저너스의 단어들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 부분은 바로 인디저너스의 선물문화다. 작년에 읽었던 벽돌 책, “불평등의 창조(2015)”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책에는 아메리카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바탕으로 불평등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참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으로 나아가려는 개인의 야망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공공선 사이에서는 항상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래서 개인의 야망이 공공선을 무너뜨리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것이 제국의 질서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인디저너스의 선물문화가 아메리카 전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럽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조로운 Vs 다채로운 역사-

 

오늘도 한국사 수업을 하면서 단조로움을 느꼈다. 교과서에는 다양한 굵은 글씨의 개념어들이 정답으로만 존재한다. 다른 예외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선택형 문제로 출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다채로운 사실들이 분명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내용 정도는 손쉽게 반박할 수 있는 다채로운 사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살필 여유와 능력이 부족하다. 왜 우리는 저자처럼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옮길수 없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운 역사를 배울 수 없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백인 영국인으로서 역사에서 강제로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낸 점이 매우 고맙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이토록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다루면서 한발짝 물러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부분이다. 아마도 이 아쉬움은 내가 유럽인보다는 인디저너스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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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 -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레이 커즈와일 지음, 김명남 외 옮김, 진대제 감수, 정재승 해제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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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김영사, 2025, 21)

 

20년 만에 다시 찍은 책이라기엔 너무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왜 이 책을 지금에야 알았을까. 세계적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특이점이 곧 다가온다고 예측한다.

 

특이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41, 1장 여섯 시기)

 

나는 과연 특이점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언급된 그 시점은 바로 2020년대에서 2030년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AI가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바로 이 지점을 그는 20년 전에 예측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앞으로 천 권의 SF를 탄생시킬 책이란 찬사를 받았다. 이 책에서 예측한 장면을 다룬 SF 소설들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내가 아는 근미래의 모습들은 이 책에서 출발한 것들이 많았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특이점을 예측하며, 이에 대한 논쟁까지 담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결론은 매우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바로 특이점이 온다.”이다. 저자는 특이점이 왜 올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다만, 그가 다루는 영역이 너무 방대하고 상세한 연구 성과를 담고 있어서 나 같은 평범한 지적 수준으로는 한 번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예측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엄격한 과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예측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고, 논쟁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이 어려운 이유-

 

저자의 주장이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인 이유는 우리가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가 역사를 학습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고정관념이다. , 역사 발전 과정처럼 미래도 선형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점이다. 과거 인류 문명의 발전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미래도 그처럼 빠르게 발전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미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기술 발전이 또 다른 기술 발전을 낳고, 그 기술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기술 발전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확 가속의 법칙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까운 시일에 모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무한대의 발전이 나타날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는 미래의 길을 찾는 사람이다. 우리는 현실에만 발을 딛고 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교사인 내가 학교가 사라질 것이란 예측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학습은 일단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겠으나, 뇌 자체를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과정(학교 교육, 학습 등등) 없이 곧바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다운로드 받게 될 것이다. ……노는 것 역시 지식을 창조하는 일이 될 테니, 사실상 일과 놀이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어진다.”(422, 6장 어떤 영향들을 겪게 될 것인가.)

 

-G.N.R(유전학, 나노 기술, 로봇 공학)-

 

미래 예측이 집약된 부분이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연구처럼 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이 인류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나노 기술이 적용될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뇌에 있는 뉴런을 나노 기술로 만들어내서 생물 뉴런과 전자 뉴런이 서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뇌가 가진 생물학적 한계를 컴퓨터와의 연결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인체를 로봇으로 대체해나갈 수 있다면 뇌의 한계뿐 아니라 인간이 가진 한계 자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른바 생명이 나노 기술의 도움을 받아 로봇으로 그 한계를 대체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예측을 가장 먼저 소설가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저자가 예측한 모습들을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은 쉽게 구체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소설가들이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근미래에 발생하게 될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걸 읽기 쉬운 소설로 다양하게 그려낸다면, 그것들을 일반인들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와 웹툰 같은 형태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다음은 사회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이 다양한 매체 속에 묘사된 상상 속 모습들을 분석하여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것인지 판단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제 마지막은 법학자와 윤리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법적으로 발생할 문제를 미리 대비하고, 윤리적으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모든 협력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기술 발전이 우리 사회에 끼칠 중대한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급변하는 기술을 인류의 소중한 가치들을 진작하는 데 사용하면서 한편으로 방어 능력을 키워가는 수밖에 없다.”(600, 8장 뗄 수 없게 얽힌 GNR의 희망과 위험)

 

아무래도 내가 저자와 달리 인문학적 가치를 더 중요하나 보다. 저자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위험은 기술 발전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사실 나는 그런 기술적 균형이 쉽게 깨질 수 있고, 미래에 균형이 깨진 순간은 지금보다 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당연히 지금보다 기술 수준이 매우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논란-

 

특이점에 도달한다면, 기술(기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과연 인간은 존재할 수 있을까. 쉽게 예를 들자면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인간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뇌에 나노 기술로 만든 인공 뉴런을 넣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접속이 가능한 인간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시험볼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킬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앞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겠지만, 사실 나는 보수적인 평범한 사람이다 보니, 인간 고유의 영역이 남아 있길 기대했는가 보다. 그런데 저자는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체가 모두 기계로 대체된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와 융합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생물로서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이 지구상에 기계만 남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계가 곧 한계를 극복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매우 놀라운 생각이다.

 

특이점 이후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또는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에도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인간성이란 게 있을까? 물론이다. 늘 현재의 한계를 넘어 물질적, 정신적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유의 속성은 여전할 것이다.”(45, 1장 여섯 시기)

 

인간 복제는 잠깐은 논란의 대상이 되겠으나 곧 급속히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제껏 등장한 모든 생식 기술이 그랬다.”(317, 5GNR)

 

 

-발상의 전환-

 

저자는 아주 쉽게 시공간을 넘나든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설명이 이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용어들을 아주 재미있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20억 년 전 박테리아가 20억 년 후 인간 존재에 대해 상상하는 장면이다.

 

나는 우리(박테리아)들이 사회를 이루게 될 거라고 생각해. 우리들이 하나의 세포로 뭉치고, 그 세포는 하나의 커다랗고 복잡한 유기체(인간)처럼 행동하는 거지. 물론 능력이 훨씬 뛰어난 유기체가 되겠지.”(418, GNR)

 

박테리아가 생물학적 진화를 바탕으로 인간과 같은 유기체로 변화했음에도 그들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기계적 진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존재(포스트 휴먼?)가 되더라도 그들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전환만으로도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면서 동시에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인다.

 

레이 커즈와일은 자기 이름을 딴 발명품과 회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건강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이 있어 수많은 처방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책을 쓰기도 했다. 공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 저자는 분명 이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방대하고 세세한 예측을 할 수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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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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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김준태,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논어를 다룬 책은 이번이 세 번째 읽는다. 저자와 출판사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 중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논어의 내용을 세세하게 분해하여 범주화 시켰다는 점이다. 각각의 구절을 하나씩 나열하여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 둔 것이다.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지만, 이런 식으로 그 의미를 강조하는 것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주자의 주석서보다 이런 형태가 더 공부하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더 쉽게 다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1, 더더욱 사람이 먼저다.

2, 사람다움을 지키는 기준.

3,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관계)

4,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가.

5. 그리고, .(위 범주에는 들지 않지만 중요한 다양한 개념들)

 

 

저자가 정한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친근감이 생긴다. 논어가 어려운 철학 서적이 아니라 일종의 실용서 또는 자기계발서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됨을 강조하고, 어떻게 해야만 사람됨을 지킬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 등은 결국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종의 지침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의 지배층은 부와 이익, 영토라는 철기 사용의 결과물에만 매혹되었을 뿐, 문명의 전환을 아우르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 새 시대에 어울리는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국강병을 강조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우선하다 보니 사회는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5, 프롤로그)

 

 

저자는 지금 우리도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을 겪는 문명의 전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500년의 시간을 건너 논어를 다시 지금 소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얼마 전 동아시아사 수업을 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조금 더 소개해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사실 주자가 강조한 사서가 왜 오경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자도 저자처럼 송 대 현실을 문명의 전환기라고 판단했던 것이고,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논어를 근본을 세우는 데 필요한 책이라고 평가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의 각 챕터는 딱 필사하기 좋은 분량이다. 각각의 내용이 우리 삶에 지침이 될 정도로 충분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각 챕터 중에서, 내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필사하면서 되새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는 중에 많은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만, 그 중에서 나도 세 가지를 꼽아 적어보면서 내 삶을 되새겨보고 싶었다.

 

 

", 잘못했으면 감싸지 말고 일깨워 주라는 거죠. 설령 상대가 언짢아하고 노여워할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고,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충성하는 방법입니다."(124, 3부 관계)

 

 

은 아랫 사람이 맹목적으로 윗 사람을 추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색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으로 이것을 사랑으로 본 것이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사랑한다면 어렵겠지만 직언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진심어린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보면, 나는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이다. 내가 직설적으로 상대에게 말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는 척 하지만, 사실 나는 적극적으로 상대를 위해 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흔히 '배움'하면 지식을 쌓는 것만 생각하지만 수양도 배움입니다. ... 화가 날 때는 내가 화를 냄으로써 생겨날 어려움을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 잘못해도 되고 실수해도 됩니다. 다만 그 원인을 분명히 인지하고 개선하여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겁니다."(225~6, 4부 배움)

 

 

지식을 쌓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수양이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한다면 배우지 못한 것과 같다. 특히 공자가 중요하게 여긴 배움의 자세로 화가 날 때 실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은 항상 밑바닥에 도달할 때 그 근본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분노로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실수로부터 배워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잘못을 감추기 급급하거나 핑계를 대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공자의 말씀처럼 나도 이 두 가지를 잘 염두에 두었다가 내 행동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활용해야 겠다.

 

 

"나이가 마흔이 되었는데도 미움을 받으면 거기서 끝난 것이다."(260, 5부 그리고 삶)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불혹, 마흔이 되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게 되지만, 이미 형성된 습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고 하니, 마흔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20, 30대에 수양을 통해 완성된 인격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스스로 성찰하고, 행동을 조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이 더 불편해하고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나이를 빌미로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의견을 더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 마흔은 인격을 완성시켜야 하는 나이라기보다 인격을 계속해서 수양해가야할 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논어가 고전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다. 저자에 따르면, 공자의 가르침은 거창하지 않다. 게다가 실천하기 어렵지도 않다. 한마디로 쉽고, 누구나 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쉬워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는 곁에 두고 자주 읽을수록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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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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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호랑골동품점 (범유진,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산의 주인 호랑이가 인간에게 신령스러운 기운을 준다. 흰 눈썹으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저자가 범씨라서 범(호랑이)이 주인공일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큭큭 웃기도 했다. 물론 이 책에 호랑이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우, , 토끼까지 친근한 동물들이 나와서 그런지 우리 전래 동화를 읽은 느낌들 정도다. 익숙한 듯 낯선 물건으로 가득한 골동품점이 배경이 된 것은 물건에 깃든 인연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주된 소재다.

 

물건에는 기억이 깃듭니다.”(261, 작가의 말)

 

물건에 기억이 깃든 경우는 많다. 완전히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어떤 물건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특히 그 기억이 다른 어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미 오래전 헤어진 인연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우연히 짐 정리 중에 발견된 물건에서 잊힌 옛 인연이 떠오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매일 애지중지 사용하던 물건이라면, 어떤 간절한 바람이나 원한이 담긴 물건이라면 어떨까. 그 물건이 마치 하나의 생명인 것처럼 요정이 되어, 귀신이 되어 어떤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매력적이다. 우리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그 물건이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이 책에는 외로움이 가득하다. 절친한 친구가, 소중한 가족이 내 곁에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은 너무나도 절절하다.

 

 

-물건이 곧 그 사람-

 

골동품점에 진열된 수많은 물건 중 소설의 소재는 여섯 가지다. 이 물건들은 곧 그 사람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 물건과 인연이 닿은 사람은 모두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인물 대부분이 호랑골동품점에 우연히 방문하고, 또 강한 충동으로 그 물건들을 훔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물건이 마치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물건에 담긴 마음이, 원한이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첫 번째 물건 성냥, 성냥은 노동자를 상징했다. 그 표현이 너무도 절절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미선은 타 죽었다. 저 성냥처럼, 자기 자신을 끝까지 태우다가 소진되어 죽었다.”(37)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는 19세기 성냥 공장이나 현실의 콜센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노동자들은 성냥처럼 자기 자신을 끝까지 태우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성냥 한 개비로 켜는 불은 금세 꺼질 수밖에 없지만, 수많은 성냥이 모인다면 그 불은 삽시간에 전체로 번져나갈 수 있었다. 19세기 성냥 공장의 소녀들처럼, 현재의 콜센터 직원들도 그런 불을 켤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세 번째 물건 공중전화를 다룬 이야기가 나는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공중전화는 외로움을 가장 잘 드러내 주었고, 그 외로움을 가장 잘 달래주어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화는 일방적이다. 일방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폭력적이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전화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존재와 연결해주는 도구다. 그것은 심지어 죽음까지도 삶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나는 이 부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나지 않는 것, 그것이 죽음이었다.”(134)

박서현의 극본을 무대에 올릴 것이다.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영원히 함께일 수 있다.”(142)

 

죽어버린 이야기를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것. 나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이 이야기만큼은 이 소설로 끝나지 않고 다른 어느 매체에서 살아남아 더 생명력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미(虎眉), 호랑이 눈썹으로 이어진 인연-

 

호랑이 눈썹을 가진 청년은 인간계로 내려와 살아가다가 안개 속에서 헤매는 아이를 구해 후계자로 삼는다. 아이는 호미를 사부라 부르며 함께 살아간다. 그렇게 몇 대의 호미와 사부가 이 인간계를 거쳐 갔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호랑이 눈썹으로 이어지는 인연이다. 그 인연은 외로운 아이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는 동시에 그 인연을 반드시 빼앗아 간다. 홀연히 사라져버린 이유요의 사부와 같이 말이다. 이유요도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헤매는(가족을 모두 잃은) 소하연을 구해 골동품점으로 데려온다. 그녀를 후계자로 삼으면 이유요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이유요는 자신을 홀로 두고 떠난 사부를 기다리면서도 그를 원망한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 그래서 가혹한 것일지 모른다.

 

왜인가요. 왜 데려왔나요. …… 사라질 걸 알았을 텐데. 혼자 남겨질 것을 알았을 텐데.”(236)

 

하지만 나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던 이유요가 소하연을 구하면서 어느 정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사부의 흔적이 알지 못한 곳에 남아 있었다.”(257~8)

 

나는 이유요가 결국 외로움을 이겨냈을거라 믿는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부의 흔적이 곧 자신에게, 소하연에게, 주변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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