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사의 정석 ㅣ 세계사의 정석
야마사키 게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까치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편의 잘 정리된 세계사 교양서를 읽은 느낌이다. 오랜 시간 세계사를 가르쳐 온 교사의 강한 내공이 전해지는 책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세계사를 어려워하는 많은 학생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고,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에게도 훌륭한 교양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책이 지향하는 전반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알맞은 구성 체계를 안내한 뒤, 본격적인 세계사 속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가장 모범적인 수업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주 일반적인 수업의 절차를 따르면서도 학생들이 암기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이야기’의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왜 학생들이 저자의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사의 재구성’
세계사는 말 그대로 세계의 수많은 지역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의 총체이다. 그렇게 많은 지역과 인물과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등장한다면 아무리 중요한 과목일지라도 당연히 모든 사람이 세계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지역, 인물, 사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의 질서를 바탕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했다.
첫째, 세계사 교과서 속 내용을 11개 덩어리로 묶고, 한 줄기로 엮어서 학습한다.
둘째, 가능한 한 ‘주어’를 고정해 놓고 설명을 이어나간다.
셋째, 연도를 절대 쓰지 않고, 이야기를 부각하여 설명한다.
저자가 재구성한 세계사는 책 21쪽의 그림처럼 한 줄기로 전체를 엮을 수 있는 흐름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며, 어느 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이 내용이 전체의 흐름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계속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이야기식으로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도 부분과 전체의 흐름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그렇다면 이 방대한 세계사를 왜 학습해야 할까. 단순히 입시에 중요한 성적이 목적이라면 세계사는 당연히 학습 이전에 선택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우리를 위해 세계사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시는 ‘지식의 유무를 묻는 장’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장’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 생각하고 표현하려면 역사의 흐름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시시각각 글로벌화되고 있다. …… 이제는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세계인으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337쪽)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계사란 어떤 의미일까. 저자가 말하는 역사의 뼈대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세계화 시대의 세계사에 대한 함의가 국가마다, 개인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이긴 하지만, 세계사를 학습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일본의 세계사 Vs 한국의 세계사’
저자는 일본의 역사 교사이고, 나는 한국의 역사 교사이다. 역사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저자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과 일본의 세계사 수업이 어떤 면에서 같고, 또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석’이라는 말로 표현된 세계사 수업의 결과물이 내 수업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먼저 학생들이 원하고, 일반인들이 교양처럼 즐길 수 있는 역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나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역사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자의 교과서 내용 재구성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저자처럼 항상 재미있는 수업을 추구한다고 말은 해 왔지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제는 학생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학습하고자 하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설명을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 수업에 대한 어려움만큼이나 일본과 한국의 세계사 교과서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역적 나열과 시대적 배열 중에 어떤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학습에 효과적일지에 대한 논쟁도 유사한 듯 보였다. 저자는 지역과 시대순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 11개 묶음은 단순화한 지역 단위를 사용하였고, 전체 흐름은 시대순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저자의 결과물을 보면서 세계사 교과서 서술에 적합한 내용 서술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제 5장.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내용을 ‘대항해 시대’로 설정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다르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육상에서 세계를 처음 연결했던 몽골 제국과 바다에서 세계를 연결하려고 했던 유럽의 시도 사이의 성격 조명이 좀 더 필요할 듯 보인다. 내용만으로 보자면 ‘대항해 시대’와 ‘유럽의 해외 진출’은 세계를 연결하려는 시도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해 ‘제국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이 바다로 세계를 연결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개척할 수밖에 없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던 몽골인들의 제국이 세계를 연결한 주체로서 서술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세계사는 어떻게 서술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육지와 바다. 반도인 한국에서는 육지에서 만들어진 세계를 당연히 더 선호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일본의 세계사를 기준으로 내용이 재구성되었고, 서술되었기 때문에 일본사가 빠져 있다. 이는 중국을 하나의 지역 묶음으로 설정하여 중국인들을 주체적으로 서술하려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에게는 일본사가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 세계사가 설정되어서 우리의 세계사와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일본사가 전근대 사회에서는 크게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1894년 청일 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청을 밀어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한국의 세계사에서 꼭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세계사’는 지역 묶음을 설정할 때 ‘인도’, ‘중국’보다는 ‘남아시아’, ‘동아시아’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국사가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 위에 동아시아사, 세계사가 연결되는 것이 더 적절한 구성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