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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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졌지만 이솝 우화의 이솝이라는 이름은 아이소포스라는 고대 그리스 작가이자 연설가의 영어식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만 해도 막연히 이솝은 유럽 어딘가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알게 된 이솝의 정체가 의외였는데, 또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우화답게 제우스나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나 헤르메스 같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이솝 우화는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의 32번째 도서인 <이솝 우화 전집>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함께 수록하여 간행한 판본을 바탕으로 해서 무려 358개의 우화를 담았다.

이솝 우화는 많아야 수십 개쯤 될 줄 알았는데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니!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무척 많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처음 읽은 우화도 있었고,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솝 우화에 속하는 줄은 몰랐던 의외의 이야기도 마주했다.

대표적으로, 사내가 나무를 하다 산 속 연못에 낡은 도끼를 빠뜨리자 연못 속에서 나타난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차례로 보여주며 사내의 도끼냐 물었고, 사내는 둘 다 자기 도끼가 아니며 낡은 도끼가 자기 도끼라고 정직하게 말해서 감동 받은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선물 받았다는 ‘금도끼와 은도끼’가 있다.
우리나라 설화로 알고 있던 이 이야기의 원제는 ‘나무꾼과 헤르메스’로, 산신령이 아니라 그리스 신 헤르메스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또옥같다.
우리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 것이 아니었다는 데 약간의 배신감(?)이 들기도 하더라.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우리가 보통 접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솝 우화는 원래의 이솝 우화를 개작한 것이고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도 각색되고 분칠되었다고 하니,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미묘하게 다른 점들

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하다.
하나만 말해보자면 우리가 ‘개미와 베짱이’로 알고 있는 우화의 원제는 ‘매미와 개미들’로, 베짱이가 아닌 매미가 등장하는 것 외에는 같은 결의 이야기인데, 여름에 개미가 열심히 일할 때에는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다가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한 곤충으로는 베짱이보다 올 여름에도 귀가 따갑도록 우는 소리를 들려준 매미가 더 와닿았다.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교훈이 없는 소수를 제외하고) 각 우화마다 본문 아래에 교훈이 딱 정리되어 적혀있고 고대 그리스 우화임에도 각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어 내용을 파악하기 좋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매미가 날개 아래에 있는 진동막으로 소리내는 것을 우화에서는 피리로 비유했는데, 각주의 설명을 읽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피리가 춤과 노래를 반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개미가 매미에게 ‘여름철에는 피리를 불었으니 겨울에는 춤을 추면 되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라는 우화를 읽고는 이이야기가 담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농담으로만 보였지만, 아래에 적힌 교훈을 읽고 맥락을 알고나서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

시골에 사는 목자들이 염소를 신에게 제물오 바치고 나서 잔치를 베풀어 이웃을 초대했다. 이웃들 중에는 자기 아이를 데려온 가난한 여자도 있었다. 잔치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아이가 배가 빵빵해지며 아파오자 말했다. “엄마, 내장을 토할 것 같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그건 너의 내장이 아니라 네가 먹은 내장이란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쓸 때는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돈을 돌려줄 때는 마치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속상해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우화다.

p.351


각 우화 아래에 적힌 교훈은 이솝이 아니라 우화를 수집한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연설이나 웅변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실용적으로 우화의 주제를 짤막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 <이솝 우화 전집>을 곁에 두고 필요한 주제의 우화를 찾아서 멋지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이솝 우화 전집>을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어렸을 적에 이솝 우화 책을 읽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보니 몰랐던 우화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우화도 새롭게 보였다.


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하며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린 아서 래컴을 포함한 그림 작가들의 일러스트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삽화로 잘 어울렸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각색된 이솝 우화와는 달리 조금 잔인한 면도 있고 거칠어 날것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색다른 느낌으로 읽기도 했다.


책을 펴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등장하는 ‘독수리와 여우’ 우화만 봐도 그렇다.
독수리와 여우는 서로 가까운 곳에 살기로 했을 만큼 친한 사이였음에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독수리가 여우의 새끼들을 물어다 자기 새끼들의 먹이로 주었는데, 여우는 높은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복수를 할 수 없었지만 어느 날 독수리의 실수로 둥지에 불이 붙자 새끼 독수리들이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어서 여우가 보란듯이 그 새끼들을 다 먹어치웠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교훈은 ‘우정을 모독한 자는 힘없는 피해자의 보복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신에게서 오는 응징은 피할 수 없음’이었다.


그렇다면 <이솝 우화 전집>은 어른만을 위한 우화인가 하면, 나는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다고 본다.

(내 기억으로는 두 우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화는한 페이지 분량이며 심지어 대여섯 줄을 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부담이 없고, 아이들에게 맞춘다며 각색된 우화보다 오히려 이쪽을 더 재미있게 읽으며 기억에도 오래 남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녀노소 모두의, 특히 잠자리에서 몇 페이지 읽거나 듣고 잘 수 있는 일명 베드타임 스토리로도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서너 줄의 짧은 이야기에도 굵직한 촌철살인 교훈을 담고 있는 이솝 우화를 읽다보면 과연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이솝 우화를 노래로 바꾸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나 헤로도토스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역사가가 이솝(아이소포스)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즐겁기만 하다면 좋다고 하지만 혹자는 ‘배울 것’이 없으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솝 우화 전집>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배워갈 수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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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멘탈 - 마음 근육을 길러주는 스포츠 멘탈코칭
이영실 외 지음 / 예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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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단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삐끗하면 4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올림픽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흔들림 없이 기량을 발휘하는지 궁금했는데, 스포츠 멘탈 코치 전문가 6명이 쓴 이 책 <프로멘탈>을 보면서 그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프로멘탈(Pro Mental)’이란 ‘예상하기 힘든 실전에서,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평점심을 유지하고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누구나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려 멘탈이 흔들리거나 붕괴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흔히 말하는 멘붕도 마냥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너무 상심하지는 말자.
그리고 멘탈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고 하니 이 책에서 차근차근 알려주는대로 실천한다면 우리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멘탈을 가지게 될 것이다.

<프로멘탈> 집필진은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제안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서 바라보며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 말하기에 앞서 이 책의 특징을 먼저 말해야겠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교과서’ 같은 책이다.
큼직한 글씨에 군더더기 없는 글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본문 다음에 위치한 ‘워크북’ 코너에서 질문에 답을 하며 알려준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워크북은 답변 예시도 적혀 있어서 혼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고, ‘선수에게 주는 코칭tip’에서는 주의할 점이나 핵심을 콕 찝어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어서 멘탈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방법, 경기에서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및 관련 직원을 모두 포함하여 서로 협력하는 팀의 비결 등을 알려준다.
또 이승엽, 라파엘 나달, 박태환, 박상영 등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사례를 곁들여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도 쉽고 글을 더 흥미롭게 다가가도록 했다.

<프로멘탈>은 스포츠 선수를 대상으로 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기에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관리 방법이 그 외의 사람들, 그러니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평소에 정신을 다잡으려고 했던 행동들이 책에서 소개되기도 했고, 스포츠 선수들의 상황에 공감이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습 때는 잘만 하다가 실전에서는 긴장해서 연습 때만큼 못한 경험 역시 무대만 경기장이 아닐 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시험을 보는 등의 경우에 여러 사람들이 경험했을 텐데, 이 책이 낯설거나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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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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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생일을 맞아 가족과 지인 모두에게 축하받는 하루를 보낸 뒤 잠자리에 든 남자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점차 흐려져가는 기억을 더듬으며 밤을 보낸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랜시스 카마츠인데,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그는 평생을 놓고 본다면 짧지만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을 기간 동안 아주 특별한 일을 했다.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특수 작전국에서 ‘로저’라는 암호명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랜시스 카마츠가 아흔 살 생일을 보내고 아버지 에밀, 남동생 피터, 배우자 낸시, 동료 교사이자 마음의 스승 해리, 특수 작전국 동료들로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오귀스트와 크리스틴과 폴, 이렇게 기억 속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 상황에서 비밀 요원으로서 레지스탕스 활동을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프랜시스는 평화주의자여서 전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대신 농장에서 일을 했을 정도였는데, 그를 바꾼 것은 동생 피터였다.
교사였던 프랜시스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서 배우로 활약하던 피터는 평화주의로는 히틀러를 막지 못한다며 공군 항법사가 되어 전장에 나갔고, 그가 타고 있던 전투기가 대공포를 맞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피터의 죽음은 평화주의자 프랜시스를 전쟁에 뛰어들게 했고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네가 스물한 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소식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어. 너는 죽음으로써 나를 이긴 거야. 나는 평화주의를 옆으로 치우고 어떻게든 전쟁에 뛰어들 길을 찾아야 했어. 너를 죽인 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어.

결국 너는 별에 다다랐어, 피터. 내 방 창문 밖으로 북두칠성이 보여. 너는 언제나 북두칠성을 제일 좋아했지. 지금 넌 저 위 어디선가 별자리를 거닐고 있겠지. 이따금 지상을 내려다보고 나를 보살피면서. 지금껏 넌 항상 나를 보살펴 줬어. 그날 이후로 줄곧.

p.42


이후 프랜시스는 동료 교사 해리의 소개로 훈련을 받고 영국 특수 작전국 비밀 요원이 되어 동료들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데, 당시 비밀 요원을 비롯한 레지스탕스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일을 겪기도 했는지 프랜시스가 예전 일을 추억하며 혼잣말로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게 했다.


여인네들은 우리를 도와 궤짝을 뜯고 폭약과 총기와 탄약을 노새에 실은 다음 산 아래로 전부 옮겼어.
그리고 여인네들은 자기 집과 농장에 그것들을 모두 숨겼다가 산과 들을 가로질러 레지스탕스 조직들에게 운반했어. 때로는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말이나 마차로, 무기를 짚 더미나 포도 밑에 혹은 치마 속에 숨기거나 유모차에 싣고서.
그리고 여인네들은 숲속과 산속에 숨어 사는 남자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었어. 독일군 코앞에서 말이야. 그 여자들에게 바치는 훈장은 없었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영웅들이었어. 그게 진정한 용기야. 그 여인네들이 없었다면 레지스탕스도 없었겠지.

p.95


특히 프랜시스가 말을 건낸 사람들 중 특수 작전국 동료 중 하나로 엄청난 용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프랜시스의 목숨을 구한 크리스틴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지는데, 크리스틴은 정말이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 이날 우리는 늑대의 입속에서 탈출했습니다.

p.139



이 책은 글 작가 마이클 모퍼고가 삼촌 프랜시스 카마츠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책 말미에 소설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짧은 소개와 사진이 실려 있는데, 책을 다 읽고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찡해진다.

그리고 펜션을 번지게 하여 세계 대전 당시의 회색빛 공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작가 바루의 삽화와 함께 프랜시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전쟁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위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전쟁의 무서움과 슬픔을 곱씹고, 나였다면 전시에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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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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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쓴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단편집 <가을의 감옥>은 각각 시간, 공간, 환상에 갇힌 인물의 이야기를 담긴 세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절판이 되자 재출간 문의가 쇄도한 책이라고 해서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을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첫 번째 단편은 책 제목과 같은 <가을의 감옥>으로 갑작스럽게 가을의 어느 하루, 정확하게는 11월 7일 수요일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 아이(이름이다)의 이야기다.
그렇게 매일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는 수많은 안드로이드 속에서 유일한 사람으로 지내던 아이는 고독함을 느꼈고, 반복되는 11월 7일 수요일에서 벗어나고자 잠을 자지 않고 밤늦게까지 깨어있어봤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어느 장소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지간에 모포가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고, 눈을 뜨면 다시 11월 7일 아침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서 책을 읽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의 이름은 류이치이고, 아이처럼 11월 7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리플레이어’였다.
류이치는 이렇게 11월 7일을 반복해서 살고 있는 리플레이어들이 더 있다고 했고, 류이치 덕분에 매일 리플레이어들이 모이는 공원 분수대 앞에서 이누카이 씨와 중학생 소녀 구미를 비롯한 다른 리플레이어들을 만나게 된다.

처지가 같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아이는 더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지만 리플레이어들이 한두 명씩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기타카제 백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리플레이어들을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 속 디멘터처럼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고 주변의 빛과 소리를 집어삼키며 흰 천을 뒤집어쓰고 둥둥 떠다니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기타카제 백작의 존재는 리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리플레이어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지를 궁금해하며 첫 번째 단편부터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는...... 그림자일까?”

우리의 본체는 이미 한참 앞질러 가버렸고, 여기에 있는 우리는 본체가 11월 7일에 벗어 던져놓은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닐까? 세계는 매일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시간마다에 그림자를 버려두고 가는 것인지도 몰라.

9월 9일에는 그 날짜에 벗어던진 그림자들이 9월 9일을 영원히 반복하고, 8월 3일에는 8월 3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그림자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p.66-67


두 번째 단편은 <신의 집>으로, 봄밤에 술에 취한 주인공이 초가지붕과 툇마루가 있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그 집에 갇혀 지내던, 가면을 쓴 할아버지가 주인공을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코로나19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뛰어난 인터넷 통신망과 택배 서비스라도 있지, 주인공이 갇힌 집은 오랜 세월이 흐른 티가 역력할 정도로 낡은,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밖에 위치했고 전기와 수도도 없어서 등불을 켜고 우물 물을 퍼다 사용해야 하는 집이었다.

그러나 이 집은 신비한 면이 있었는데, 먼저 우물의 물맛이 무척 뛰어났으며 뜰에는 감자와 호박 중간쯤 되는 맛이 나는 처음 보는 과일(주인공은 망고감자라고 부른다)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 둘은 마치 신선의 음식처럼 사람의 노화를 늦추는 힘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이건 더 중요한 점인데, 초가집은 마치 기차처럼 정해진 날짜에 일본 전국 곳곳의 정해진 장소로 이동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초가집에 갇힌 생활이 몸에 익기 시작했고 의도치 않게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누구든 초가집에 발을 들이기가 좀 더 쉽도록 카페 간판도 만들어서 달아놓는다.
그리고 간판 덕분에 사람들이 초가집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이 신비한 집 지킴이 자리를 내주기로, 그러니까 그 사람을 이 집에 가두고 자신은 탈출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는 주인공도 나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쪽으로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날 밤 오키나 가면 남자가 했던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대역을 찾는 것이다.
지킴이는 집을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지킴이 노릇을 대신해줄 사람이 있으면 나갈 수 있다.
아마도 터 안에 두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은 나갈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탈출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군가 이리로 들어오기를 거미처럼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길을 잃고 들어오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터 안으로 불러들어야 한다. 툇마루에 붙들어 앉혀놓고 나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마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로서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p.96-97


마지막 세 번째 단편은 <환상은 밤에 자란다>이고, 어지러운 환상을 소재로 해서인지 앞의 두 단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쓰였다.
처음에는 환술을 사용할 줄 아는 할머니와 그의 손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계속 전개될수록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세계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단다.
언제였던가, 할머니가 말했다.
누구나 환상을 믿고, 환상에 조종되고, 환상의 노예가 되고, 많은 시간을 환상에 바친단다. 짧은 생을 살면서 진짜를 꿰뚫어보는 놈은 한 명도 없단다.

p.148


나도 영화 <사랑은 블랙홀>처럼 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지 않아서 영원히 건물 안에 갇히고 마는 악몽도 여러 번 꿨기 때문에 <가을의 감옥>에 수록된 단편들을 더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기타카제 백작’을 등장시켜 무한하고 무료한 시간을 또다시 한정된 시간으로 만들어 무한한 삶과 유한한 삶 모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거나, 독자가 갇혀있는 주인공의 탈출에 집중할 때 생각지도 못한 특징을 부여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리고 단편집 <가을의 감옥>은 여러모로 소설과 잘 어울리는 때에 재출간 되었다.
<가을의 감옥>을 읽으면서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겨울이 되기 전 아직 가을이 지나가지 않은 지금 읽으면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기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의 집>은 코로나19 때문에 오랜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기에 읽으면 주인공에게 더 이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을 읽고 나니 작가의 유명작 <야시>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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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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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몇 번은 누가 내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해서 일을 벌인 듯한 기분이 들어 “이거 깜짝카메라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 않는가?
특히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머피의 법칙이나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샐리의 법칙이 떠오를 때에는 우연이 우연 같지가 않다.
나의 경험이 설계의 결과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한 다른 사람의 상상력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소설 속 우연 제작자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끔 교묘하게 상황을 설계해서 대상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면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훌륭한 작곡가가 되도록 먼저 일자리에서 해고 당하게 한 뒤 작곡을 시도할 마음이 들게 음악에 노출시키는 등 우연 제작자가 여러모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작했던 최초의 우연을 계획해둔 페이지를 펼쳤다. 그것은 신발 공장에 다니는 어떤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임무였다.
(...)
물론, 그 계획은 실패했다. 가이가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신발 공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해고했다. 그 시절의 가이는, 각각의 사람이 더 큰 그림 속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하나의 사람만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작곡가가 사는 동네의 목요일 아침 교통 체증 패턴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표적이 도착해 있을 것으로 생각한 시간에 공장에는 다른 사람이 나와 있었다.

가이가 실행하려 했던 작전 전체가 공책을 네 페이지에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겨우 네 페이지라니! 제기랄, 대체 난 내가 얼마나 잘났다고 생각한 걸까?

p.25-26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조금만 삐끗해도 일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대상과 그 주변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 그리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방금 완료한 임무에 관한 크고 자세한 다이어그램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가운데에 ‘셜리’라고 적힌 원이 하나 있고, 두 번째 원에는 ‘댄’이 적혀 있었으며, 그 둘에서 뻗어나가는 선이 수없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그 옆의 기나긴 목록에는 성격과 특징, 장래 희망, 욕망 등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파란색 선(수행할 행동), 검은 선(고려해야 하는 연관성)으로 연결된 원도 엄청나게 많았다. 각 원 안에는 작게, 머뭇거리는 듯한 선으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 왼쪽 아래 구석은 계산을 위한 공간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커피 잔에 충분히 이목이 쏠릴 만한 커피의 양, 줄리아의 향수병에 남아 있어야 하는 향수의 양, 수도관의 시간당 유량, 버스가 운행 중 마주칠 물웅덩이의 바람직한 깊이, 여자아이들이 흥얼거리기 좋아하는 노래 등등.
그 외에도 수백 가지의 다른 세부 사항들이 다양한 색깔의 작은 글자로 적혀 있는 목록이 있었다. (...) 단 하나의 목표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과 하위 가능성, 맥락과 생각, 또 그 조합 사이를 오가며 선들이 뻗어 있었다.
확실히, 공책에 적어가며 일하는 수준은 오래전에 넘어섰다.

p.41-42


그렇기 때문에 우연 제작자가 되려면 우연 제작자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고, 주인공 가이와 에밀리 그리고 에릭 셋은 우연 제작자 수련 과정 동기다.
가이는 인연을 맺어주는 우연 제작이 특기인데 반에 건조해 보이지만 사실은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순정파이고, 에밀리는 그런 가이에게 마음이 있으며, 에릭은 그 둘을 곁에서 지켜본다.
그런데 우연을 만들며 실수하기도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우연 제작에 꽤 능숙해진 것으로 보이던 가이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우연을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인연 그리고 등장인물의 정체는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또 한 가지, 책 중간중간 우연 제작자 수련 과정에 사용하는 교재에서 발췌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글을 읽을 때면 우연 제작자 수련 과정이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아 더 재미있었다.

<우연 제작자들>을 읽으면서 나는 인연과 운명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쩐지 삶에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소설 도입부에서 가이가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셜리와 손님으로 방문한 사관생도 댄을 이어주기 위해서 셜리에게 어떤 일을 했냐면, 댄이 셜리를 인식하게 하려고 셜리가 커피잔를 떨어뜨리도록 설계해서 셜리는 카페에서 해고 당했고, 수도관을 터뜨려서 셜리가 버스나 택시를 타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택시인 줄 착각하고 타게된 댄의 차에 휴대폰까지 놓고 내리게 했다.
셜리 입장에서 보면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지만, 그날의 재수 없는 일들은 댄과의 인연을 위해 가이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

앞서 나온 다른 우연 제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상이 휼륭한 작곡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직장에서 해고 당하게 해야 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나 또한 당장 보기에는 실망스럽거나 재수 없거나 힘든 일을 겪을지라도 멀리에서 보면 그런 일들이 다 이유가 있고 결국에는 잘 되기 위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연 제작자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 요아브 블룸의 데뷔작인데, 이어서 같은 작가의 <다가올 날들의 안내서>(가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또한 기대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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