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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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생일을 맞아 가족과 지인 모두에게 축하받는 하루를 보낸 뒤 잠자리에 든 남자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점차 흐려져가는 기억을 더듬으며 밤을 보낸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랜시스 카마츠인데,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그는 평생을 놓고 본다면 짧지만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을 기간 동안 아주 특별한 일을 했다.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특수 작전국에서 ‘로저’라는 암호명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랜시스 카마츠가 아흔 살 생일을 보내고 아버지 에밀, 남동생 피터, 배우자 낸시, 동료 교사이자 마음의 스승 해리, 특수 작전국 동료들로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오귀스트와 크리스틴과 폴, 이렇게 기억 속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 상황에서 비밀 요원으로서 레지스탕스 활동을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프랜시스는 평화주의자여서 전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대신 농장에서 일을 했을 정도였는데, 그를 바꾼 것은 동생 피터였다.
교사였던 프랜시스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서 배우로 활약하던 피터는 평화주의로는 히틀러를 막지 못한다며 공군 항법사가 되어 전장에 나갔고, 그가 타고 있던 전투기가 대공포를 맞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피터의 죽음은 평화주의자 프랜시스를 전쟁에 뛰어들게 했고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네가 스물한 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소식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어. 너는 죽음으로써 나를 이긴 거야. 나는 평화주의를 옆으로 치우고 어떻게든 전쟁에 뛰어들 길을 찾아야 했어. 너를 죽인 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어.

결국 너는 별에 다다랐어, 피터. 내 방 창문 밖으로 북두칠성이 보여. 너는 언제나 북두칠성을 제일 좋아했지. 지금 넌 저 위 어디선가 별자리를 거닐고 있겠지. 이따금 지상을 내려다보고 나를 보살피면서. 지금껏 넌 항상 나를 보살펴 줬어. 그날 이후로 줄곧.

p.42


이후 프랜시스는 동료 교사 해리의 소개로 훈련을 받고 영국 특수 작전국 비밀 요원이 되어 동료들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데, 당시 비밀 요원을 비롯한 레지스탕스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일을 겪기도 했는지 프랜시스가 예전 일을 추억하며 혼잣말로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게 했다.


여인네들은 우리를 도와 궤짝을 뜯고 폭약과 총기와 탄약을 노새에 실은 다음 산 아래로 전부 옮겼어.
그리고 여인네들은 자기 집과 농장에 그것들을 모두 숨겼다가 산과 들을 가로질러 레지스탕스 조직들에게 운반했어. 때로는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말이나 마차로, 무기를 짚 더미나 포도 밑에 혹은 치마 속에 숨기거나 유모차에 싣고서.
그리고 여인네들은 숲속과 산속에 숨어 사는 남자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었어. 독일군 코앞에서 말이야. 그 여자들에게 바치는 훈장은 없었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영웅들이었어. 그게 진정한 용기야. 그 여인네들이 없었다면 레지스탕스도 없었겠지.

p.95


특히 프랜시스가 말을 건낸 사람들 중 특수 작전국 동료 중 하나로 엄청난 용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프랜시스의 목숨을 구한 크리스틴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지는데, 크리스틴은 정말이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 이날 우리는 늑대의 입속에서 탈출했습니다.

p.139



이 책은 글 작가 마이클 모퍼고가 삼촌 프랜시스 카마츠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책 말미에 소설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짧은 소개와 사진이 실려 있는데, 책을 다 읽고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찡해진다.

그리고 펜션을 번지게 하여 세계 대전 당시의 회색빛 공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작가 바루의 삽화와 함께 프랜시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전쟁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위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전쟁의 무서움과 슬픔을 곱씹고, 나였다면 전시에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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