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야시> 쓴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단편집 <가을의 감옥>은 각각 시간, 공간, 환상에 갇힌 인물의 이야기를 담긴 세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절판이 되자 재출간 문의가 쇄도한 책이라고 해서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을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첫 번째 단편은 책 제목과 같은 <가을의 감옥>으로 갑작스럽게 가을의 어느 하루, 정확하게는 11월 7일 수요일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 아이(이름이다)의 이야기다.
그렇게 매일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는 수많은 안드로이드 속에서 유일한 사람으로 지내던 아이는 고독함을 느꼈고, 반복되는 11월 7일 수요일에서 벗어나고자 잠을 자지 않고 밤늦게까지 깨어있어봤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어느 장소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지간에 모포가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고, 눈을 뜨면 다시 11월 7일 아침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서 책을 읽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의 이름은 류이치이고, 아이처럼 11월 7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리플레이어’였다.
류이치는 이렇게 11월 7일을 반복해서 살고 있는 리플레이어들이 더 있다고 했고, 류이치 덕분에 매일 리플레이어들이 모이는 공원 분수대 앞에서 이누카이 씨와 중학생 소녀 구미를 비롯한 다른 리플레이어들을 만나게 된다.

처지가 같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아이는 더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지만 리플레이어들이 한두 명씩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기타카제 백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리플레이어들을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 속 디멘터처럼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고 주변의 빛과 소리를 집어삼키며 흰 천을 뒤집어쓰고 둥둥 떠다니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기타카제 백작의 존재는 리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리플레이어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지를 궁금해하며 첫 번째 단편부터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는...... 그림자일까?”

우리의 본체는 이미 한참 앞질러 가버렸고, 여기에 있는 우리는 본체가 11월 7일에 벗어 던져놓은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닐까? 세계는 매일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시간마다에 그림자를 버려두고 가는 것인지도 몰라.

9월 9일에는 그 날짜에 벗어던진 그림자들이 9월 9일을 영원히 반복하고, 8월 3일에는 8월 3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그림자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p.66-67


두 번째 단편은 <신의 집>으로, 봄밤에 술에 취한 주인공이 초가지붕과 툇마루가 있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그 집에 갇혀 지내던, 가면을 쓴 할아버지가 주인공을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코로나19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뛰어난 인터넷 통신망과 택배 서비스라도 있지, 주인공이 갇힌 집은 오랜 세월이 흐른 티가 역력할 정도로 낡은,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밖에 위치했고 전기와 수도도 없어서 등불을 켜고 우물 물을 퍼다 사용해야 하는 집이었다.

그러나 이 집은 신비한 면이 있었는데, 먼저 우물의 물맛이 무척 뛰어났으며 뜰에는 감자와 호박 중간쯤 되는 맛이 나는 처음 보는 과일(주인공은 망고감자라고 부른다)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 둘은 마치 신선의 음식처럼 사람의 노화를 늦추는 힘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이건 더 중요한 점인데, 초가집은 마치 기차처럼 정해진 날짜에 일본 전국 곳곳의 정해진 장소로 이동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초가집에 갇힌 생활이 몸에 익기 시작했고 의도치 않게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누구든 초가집에 발을 들이기가 좀 더 쉽도록 카페 간판도 만들어서 달아놓는다.
그리고 간판 덕분에 사람들이 초가집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이 신비한 집 지킴이 자리를 내주기로, 그러니까 그 사람을 이 집에 가두고 자신은 탈출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는 주인공도 나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쪽으로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날 밤 오키나 가면 남자가 했던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대역을 찾는 것이다.
지킴이는 집을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지킴이 노릇을 대신해줄 사람이 있으면 나갈 수 있다.
아마도 터 안에 두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은 나갈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탈출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군가 이리로 들어오기를 거미처럼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길을 잃고 들어오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터 안으로 불러들어야 한다. 툇마루에 붙들어 앉혀놓고 나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마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로서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p.96-97


마지막 세 번째 단편은 <환상은 밤에 자란다>이고, 어지러운 환상을 소재로 해서인지 앞의 두 단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쓰였다.
처음에는 환술을 사용할 줄 아는 할머니와 그의 손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가 계속 전개될수록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세계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단다.
언제였던가, 할머니가 말했다.
누구나 환상을 믿고, 환상에 조종되고, 환상의 노예가 되고, 많은 시간을 환상에 바친단다. 짧은 생을 살면서 진짜를 꿰뚫어보는 놈은 한 명도 없단다.

p.148


나도 영화 <사랑은 블랙홀>처럼 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지 않아서 영원히 건물 안에 갇히고 마는 악몽도 여러 번 꿨기 때문에 <가을의 감옥>에 수록된 단편들을 더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기타카제 백작’을 등장시켜 무한하고 무료한 시간을 또다시 한정된 시간으로 만들어 무한한 삶과 유한한 삶 모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거나, 독자가 갇혀있는 주인공의 탈출에 집중할 때 생각지도 못한 특징을 부여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리고 단편집 <가을의 감옥>은 여러모로 소설과 잘 어울리는 때에 재출간 되었다.
<가을의 감옥>을 읽으면서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겨울이 되기 전 아직 가을이 지나가지 않은 지금 읽으면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기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의 집>은 코로나19 때문에 오랜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기에 읽으면 주인공에게 더 이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을 읽고 나니 작가의 유명작 <야시>도 궁금해진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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