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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평점 :
이솝 우화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졌지만 이솝 우화의 이솝이라는 이름은 아이소포스라는 고대 그리스 작가이자 연설가의 영어식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만 해도 막연히 이솝은 유럽 어딘가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알게 된 이솝의 정체가 의외였는데, 또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우화답게 제우스나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나 헤르메스 같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이솝 우화는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의 32번째 도서인 <이솝 우화 전집>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함께 수록하여 간행한 판본을 바탕으로 해서 무려 358개의 우화를 담았다.
이솝 우화는 많아야 수십 개쯤 될 줄 알았는데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니!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무척 많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처음 읽은 우화도 있었고,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솝 우화에 속하는 줄은 몰랐던 의외의 이야기도 마주했다.대표적으로, 사내가 나무를 하다 산 속 연못에 낡은 도끼를 빠뜨리자 연못 속에서 나타난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차례로 보여주며 사내의 도끼냐 물었고, 사내는 둘 다 자기 도끼가 아니며 낡은 도끼가 자기 도끼라고 정직하게 말해서 감동 받은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선물 받았다는 ‘금도끼와 은도끼’가 있다.우리나라 설화로 알고 있던 이 이야기의 원제는 ‘나무꾼과 헤르메스’로, 산신령이 아니라 그리스 신 헤르메스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또옥같다.우리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 것이 아니었다는 데 약간의 배신감(?)이 들기도 하더라.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우리가 보통 접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솝 우화는 원래의 이솝 우화를 개작한 것이고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도 각색되고 분칠되었다고 하니,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미묘하게 다른 점들
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하다.하나만 말해보자면 우리가 ‘개미와 베짱이’로 알고 있는 우화의 원제는 ‘매미와 개미들’로, 베짱이가 아닌 매미가 등장하는 것 외에는 같은 결의 이야기인데, 여름에 개미가 열심히 일할 때에는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다가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한 곤충으로는 베짱이보다 올 여름에도 귀가 따갑도록 우는 소리를 들려준 매미가 더 와닿았다.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교훈이 없는 소수를 제외하고) 각 우화마다 본문 아래에 교훈이 딱 정리되어 적혀있고 고대 그리스 우화임에도 각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어 내용을 파악하기 좋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매미가 날개 아래에 있는 진동막으로 소리내는 것을 우화에서는 피리로 비유했는데, 각주의 설명을 읽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피리가 춤과 노래를 반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개미가 매미에게 ‘여름철에는 피리를 불었으니 겨울에는 춤을 추면 되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또 ‘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라는 우화를 읽고는 이이야기가 담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농담으로만 보였지만, 아래에 적힌 교훈을 읽고 맥락을 알고나서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시골에 사는 목자들이 염소를 신에게 제물오 바치고 나서 잔치를 베풀어 이웃을 초대했다. 이웃들 중에는 자기 아이를 데려온 가난한 여자도 있었다. 잔치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아이가 배가 빵빵해지며 아파오자 말했다. “엄마, 내장을 토할 것 같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그건 너의 내장이 아니라 네가 먹은 내장이란다.”남의 돈을 가져다 쓸 때는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돈을 돌려줄 때는 마치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속상해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우화다.p.351각 우화 아래에 적힌 교훈은 이솝이 아니라 우화를 수집한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연설이나 웅변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실용적으로 우화의 주제를 짤막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그러니 우리도 이 <이솝 우화 전집>을 곁에 두고 필요한 주제의 우화를 찾아서 멋지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실은 <이솝 우화 전집>을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어렸을 적에 이솝 우화 책을 읽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 되었다.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보니 몰랐던 우화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우화도 새롭게 보였다.

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하며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린 아서 래컴을 포함한 그림 작가들의 일러스트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삽화로 잘 어울렸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각색된 이솝 우화와는 달리 조금 잔인한 면도 있고 거칠어 날것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색다른 느낌으로 읽기도 했다.
책을 펴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등장하는 ‘독수리와 여우’ 우화만 봐도 그렇다.
독수리와 여우는 서로 가까운 곳에 살기로 했을 만큼 친한 사이였음에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독수리가 여우의 새끼들을 물어다 자기 새끼들의 먹이로 주었는데, 여우는 높은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복수를 할 수 없었지만 어느 날 독수리의 실수로 둥지에 불이 붙자 새끼 독수리들이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어서 여우가 보란듯이 그 새끼들을 다 먹어치웠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교훈은 ‘우정을 모독한 자는 힘없는 피해자의 보복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신에게서 오는 응징은 피할 수 없음’이었다.

그렇다면 <이솝 우화 전집>은 어른만을 위한 우화인가 하면, 나는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다고 본다.
(내 기억으로는 두 우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화는한 페이지 분량이며 심지어 대여섯 줄을 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부담이 없고, 아이들에게 맞춘다며 각색된 우화보다 오히려 이쪽을 더 재미있게 읽으며 기억에도 오래 남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러니 남녀노소 모두의, 특히 잠자리에서 몇 페이지 읽거나 듣고 잘 수 있는 일명 베드타임 스토리로도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서너 줄의 짧은 이야기에도 굵직한 촌철살인 교훈을 담고 있는 이솝 우화를 읽다보면 과연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이솝 우화를 노래로 바꾸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나 헤로도토스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역사가가 이솝(아이소포스)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유를 알 것 같다.어떤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즐겁기만 하다면 좋다고 하지만 혹자는 ‘배울 것’이 없으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솝 우화 전집>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배워갈 수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