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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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그 슬픔에서 과연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만약 헤어나오게 된다면 그 이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서성이다>를 읽는 내내 이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를
 보다 더 무서운 시간,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이미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을 다룬다.
안시찬은 아내 이지수의 곁을 지키면서도 계속 최악을 상상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재의 고통으로 끌어온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 발걸음,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를 붙잡는 일, 의식이 흐릿한 아내 대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으로 드러난다.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예감 앞에서 더 선명해지는 사랑.
그 사랑을 그린다.


그럼에도 도착하는 청구서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는데 이사 잔금일은 다가온다.
계약과 통장은 아내 명의이고 남편은 비밀번호를 모른다.
가족에게 상황을 알려야 하고, 의료진의 말을 이해해야 하며, 취소하기 어려운 방송 일정도 결정해야 한다.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현실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시찬은 그런 일을 처리하는 자신을 보며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의심한다.
아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돈과 일정부터 계산하는 자신이 끔찍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사람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을 보았다.
누군가는 서류를 챙기고, 전화를 걸고, 잔금을 마련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사실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니다.
때로 그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이기도 하다.

장강명은 비극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덮지 않는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사이에 은행 계좌와 부동산 계약을 끼워 넣는다.
삶은 가장 큰 슬픔과 가장 치사한 실무를 같은 날 내민다. 
우리는 울면서도 다음 통화를 건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시찬은 아내가 아픈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는다.
자신이 일을 부추겼기 때문인지, 더 몰아붙였기 때문인지, 아내의 힘듦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지난 기억을 하나씩 꺼내 유죄의 증거로 만든다.
의사는 뇌종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그냥 생긴다’고 말하지만, 그는 우연을 견디지 못한다.
원인이 없다면 탓할 사람도, 되돌릴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나르시시즘이냐.’(p.215)

이 문장은 <서성이다>가 쉽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 이유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병을 다른 사람의 깨달음으로 바꾸는 순간, 아픈 사람의 고통은 서사의 재료가 된다.

시찬은 이 일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내의 뇌종양에 감사하지 않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그럴듯한 의미로 포장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나는 이 완강함이 좋았다.
모든 시련에 교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되지 않는 불행 앞에서는 해답을 찾기보다 아프다고 말하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도 고통을 통과하는 한 방법이다.


자전적 소설의 힘

이 작품의 힘은 실제 경험과 허구가 맞닿은 자리에서 나온다.
작가가 겪은 감정이 안시찬에게 스며 있고, 독자는 소설 밖 현실을 알고 읽는다.
병원에서의 공포와 느닷없이 터지는 울음은 꾸며낸 비극이 아니다.

시찬의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거듭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숨을 돌릴 틈도 없다.
이는 현재 장강명 작가의 사정과도 맞물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감정의 밀도가 높고 읽다보면 책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시찬은 계산하고, 의심하고, 자기 잘못을 찾는다.

소설은 끝내 이 모순을 정리해 주지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은 계석 그 자리를 맴돈다.
제목이 왜 <서성이다>인지 이해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 모르는 슬픔에서 나는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도 답은 얻지 못했다.

아마 <서성이다> 역시 답을 주려는 소설은 아닐 것이다. 
대신 사랑은 우리가 믿어온 이성과 질서를 얼마나 쉽게 무너뜨리는지, 그 폐허에서 사람이 무엇을 붙잡는지를 보여준다.

무신론자였던 시찬은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기도의 언어를 떠올린다.
믿음이 생겨서라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믿지 않던 존재의 문 앞에서도 서성일 수 있다.
그 절박함을 누가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큰 슬픔을 지나게 된다면 나는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을 것이다.

꼭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랑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다.
사랑과 상실에 쉬운 위로를 붙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서성이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미뤄둔 말을 건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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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뷰 처음공부 - 전 세계 6,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웹 기반 차트 플랫폼 완벽 가이드 처음공부 시리즈 13
이정호 지음 / 이레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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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이 투자하는 시대


전국민이 주식투자하는 시대다.


주변을 둘러보면 주식 계좌 하나쯤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점심메뉴로는 종목 이야기가 오가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 역시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여러 증권사 앱과 ETF 이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통해 ‘트레이딩뷰’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사이트의 사용설명서다.


책은 계정을 만드는 일부터 무료와 유료 플랜의 차이, 슈퍼차트 화면의 메뉴, 여러 금융 자산을 찾고 비교하는 방법까지 하나씩 설명한다.

차트에 익숙한 이들도 어려운데 책은 사이트에 처음 접속하면 어디를 눌러야 할지 막막한 화면을 실제 캡처와 설명으로 풀어낸다.


다만 사용설명서라는 말만으로 책의 범위를 다 설명하기엔 좀 부족하다.

책은 트레이딩뷰에 접속하는 법을 알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차트를 어떻게 읽고 지표를 무엇에 써야 하는지, 떠올린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시험할 수 있는지까지 설명한다.

사이트를 소개하는 책으로 시작하지만 중간중간 투자 분석의 기초와 시스템트레이딩의 입구로 우릴 데려간다.



투자는 예측이 아니라 검증일지도


트레이딩뷰의 장점은 많은 정보를 한 화면에 펼쳐놓는 데 있다.

주식과 암호화폐뿐 아니라 선물, 채권, 외환 등 여러 자산의 차트를 비교할 수 있고, 추세선과 피보나치 도구를 비롯한 다양한 분석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


이동평균선, MACD, RSI, 스토캐스틱처럼 자주 듣지만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지표도 목적에 따라 구분해 보여준다.


하지만 보조지표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것을 매매에 사용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RSI가 과매수 구간을 가리킨다고 해서 바로 매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동평균선이 교차했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지표는 시장을 해석하는 하나의 근거일 뿐이다.

감으로 괜찮아 보이는 전략을 과거 데이터에 넣어보고, 어떤 조건에서 작동했으며 어디에서 무너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투자가 쉬워진다고 표현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예전처럼 감으로 하는 투자를 한번쯤은 점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는 예측보다 검증의 문제가 된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믿는 대신 내가 세운 규칙을 데이터 앞에 놓는 일. 물론 과거에 잘 맞았다는 사실이 미래의 수익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검증하지 않은 확신보다 실패할 조건까지 확인한 전략이 조금은 더 단단할 것이다.



AI가 추세선을 읽는 시대


예전에 어떻게 주식 추세선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점과 고점을 잇고 저점과 저점을 이으며 흐름을 찾았다.

선 하나를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서 같은 차트를 보면서도 사람마다 다른 말을 했다.

결굴 시장의 흐름과 차트를 읽는 기술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는데 AI의 발전은 이 시장의 지배자를 이땅으로 데려왔다.


책의 후반부는 파인 스크립트와 생성형 AI를 연결한다.

원하는 매매 조건을 말로 정리하고,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에게 코드를 요청한 뒤 트레이딩뷰의 파인 에디터에서 실행하며 코드를 고친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자기 아이디어를 지표나 전략의 형태로 옮길 수 있는 길이 생겼고 책은 이를 상세히 알려준다.


‘오르면 사고 떨어지면 판다’는 말은 전략이 아니다.

어느 기간의 이동평균선을 볼지, 얼마만큼 움직였을 때 진입할지, 손실을 어디에서 제한할지를 정해야 비로소 시험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다


뒤로 갈수록 난도가 꽤 빠르게 높아진다.

금융 자산별 차트 설정과 파인 스크립트, 백테스팅, 브로커 연동으로 들어가면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소화하기 어렵다.

주식이나 기술적 분석이 낯선 독자라면 새 플랫폼과 새 개념을 동시에 배워야하는 허들도 있다.


추세추종 지표와 오실레이터, 여러 투자 대가의 전략, 코딩과 자동매매 등 넘치는 정보가 한 권에 이어지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플랫폼을 다루는 책의 숙명 상 화면 구성과 구독 조건, 연결 가능한 서비스는 업데이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모든 메뉴를 외우기보다 트레이딩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실제 화면에서 다시 확인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책 한 권을 끝냈다고 곧바로 자동매매를 시작하기보다 모의 거래와 백테스팅으로 충분히 연습하기를 권한다.



차트는 답이 아니다


투자를 하다 보면 불안할수록 더 많은 지표를 찾게 된다.


추세선을 하나 더 긋고 숫자를 하나 더 확인하면 정답에 가까워질 것 같다.

트레이딩뷰는 그 욕망을 충족할 만큼 다양한 차트와 데이터, 기술적 분석 기능을 제공한다.

AI까지 연결하면 자신의 투자 전략을 코드로 만들고 과거 데이터에 적용하는 과정도 훨씬 쉬워진다.


하지만 도구가 정교해질수록 사용하는 사람의 기준은 오히려 더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살 것인지보다 왜 이 조건을 선택했는지, 예상 수익보다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백테스팅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과거 데이터에 지나치게 맞춘 전략일 수 있다.

자동매매 시스템이 주문을 대신 실행한다고 해서 투자에 대한 책임까지 대신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차트는 답이 아니다.

차트는 내가 가진 생각이 실제 데이터에서도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이 책은 트레이딩뷰가 궁금하지만 첫 화면부터 막막했던 사람, 기술적 분석 지표를 실제 차트에 적용해보고 싶은 사람, AI를 활용해 자신의 투자 전략을 백테스팅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익히려 하지 말고 관심 있는 종목 하나를 열어 추세선을 긋고, 익숙한 지표 하나를 올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이미 트레이딩뷰를 사용하고 있다면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는 기능이 무엇인지 댓글로 나눠주시길 바란다.


그렇다고 주식투자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투자는 개인의 선택이고, 좋은 도구가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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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서툴지만 바른북스 청소년 문학 12
정수환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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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다고


'정우는 꿈이 뭐니?'

'없어요'


<아직은 서툴지만>은 이 단호한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참 이상한 문장이다.

꿈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일인데 정우는 이 없다는 말을 꼭 잘못하는 것만 같다.

어른들은 자꾸만 꿈에 대해 말하라는 데 없는 꿈을 지어내기 싫은 아이는 그냥 엄마가 적어준 꿈을 적는다.


의사.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에는 무게가 붙는다.

희망은 계획이 되어야 하고, 계획은 성적과 대학과 직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빈칸은 탐색 중이라는 표시보다 준비하지 못했다는 흔적으로 취급된다.


질문은 학년을 거듭할수록 계속된다.

그러고보면 나도 그랬다.

사실 꿈이 있어서 꿈을 적었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적었던 것 같다.

그게 꿈이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숫자가 대체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범한 하루


성격 유형 검사에는 180개의 문항이 있다.

답을 모두 고르면 성격과 적성에 관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정우는 꽤 꼼꼼히 체크하지만 검사지는 정우가 왜 축구선수의 자서전을 좋아했는지, 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는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는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학교는 아이를 알아보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은다.

시험 점수, 성격 유형, 진로 희망, 생활기록부. 기록은 풍성해지는데 사람은 선명해지지 않는다.


무엇을 잘하는지는 숫자로 남길 수 있어도,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모르는 마음은 평가표에 놓기 어렵다.


현우와 희재, 유현은 같은 교실에 있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본다.

누군가는 성적이 좋고, 누군가는 꿈을 접으며, 누군가는 꿈이 없는 삶을 정우와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들의 차이는 아이를 한 가지 기준으로 설명하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정을 지우는지 보여준다.


정우에게 부족했던 것은 검사 결과 한 줄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알아들을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빈칸도 하나의 대답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비어 있는 제목이다.

Chapter 4는 '[ ]'로, 에필로그는 '[ ________ ]'이다.


지금은 쓰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다른 말을 적어도 되는 자리다.


어쩌면 꿈이라는 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딱 정하기 어려운 자리.

정하는 순간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닌 의무가 되어버리는 어떤 것.


이 꿈은 필연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누군가에게 기억될 사람인지 하는 마음과 이어진다.

그렇기에 빈칸은 언젠가는 채워져야 하고 아직은 모르지만 그 질문은 대답되어야 한다.


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연필로 쓴 정우의 시가 등장하는데 삶의 답이 있겠냐마는 어쩌면 그 시와 연필 자국이 정우의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적을 수 있는 연필.


기억하는가? 우리는 어릴적 연필로 글씨를 배웠으며 지우개로 지우는 법도 함께 배웠다.

우리는 언제고 종이에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곤 했다.



아이의 미래를 대신 쓰지 않는 일


책을 덮고 나면 정우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보다 그가 결국에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본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건 결국 직업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꿈은 그런게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견딜 수 있는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을 발견하며 몇 번이나 바뀔 수 있고, 한 직업의 모양으로 고정되지도 않는다.


어른은 아이에게 길을 보여주고 실패의 비용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빈칸까지 대신 채우려는 순간 도움은 통제가 된다.


그리고 그 도움은 아이에게 되려 가시가 될지도 모른다.


청소년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꿈에 대해 묻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미 직업을 가진 어른도 내가 원해서 사는 삶인지, 설명하기 좋은 답을 붙든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여러 일 앞에서 서툴다.

미래를 빨리 증명하느라 지친 청소년, 아이의 진로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부모와 교사, 다음 칸을 쓰지 못한 모든 이들이 들어봄 직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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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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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


아이가 아프면 가장 먼저 찾는게 체온계다.

사실 체온이 정상이면 약간의 이상증상이 보여도 나름 안심이 된다.

반대로 아무리 멀쩡해도 체온이 37.5도를 넘어가는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


그런데 체온이 몸의 상태를 말해 준다는 사실도, 심장이 밀어낸 피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도 한때는 증명해야 할 가설이었다는 걸 아는가?


누군가는 거대한 저울 위에 앉아 몸무게의 미세한 변화를 기록했고, 누군가는 살아 있는 동물의 혈관을 묶었으며, 누군가는 심장이 한 시간에 내보내는 피의 양을 계산했다.

지금의 상식이 그 언젠가의 사람들에게는 꽤 이상한 집착으로 보였을 것이다.


유임주의 <비주얼 의과학사>는 바로 그 낯선 시절로 독자를 데려간다.

40개의 혁명적인 순간과 150여 점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의학은 완성된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몸을 더 정확히 읽기 위해 계속 질문을 고쳐 온 과정이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책에는 꽤 많은 그림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그저 예전에는 그랬지를 보여주는 장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 시대의 사람이 어디까지 볼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어떤 기록같은 것임을 알게됐다.


베살리우스의 근육 해부도는 책 속 권위보다 눈앞의 몸을 믿겠다는 선언이었고, 하비의 혈액순환 도해는 장기를 따로 보던 시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꾸는 기록이었다.

레이우엔훅의 스케치는 맨눈으로 볼 수 없던 생명을 지식의 자리로 불러냈다.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도 그렇다.

그는 병원체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환자가 발생한 장소를 지도 위에 표시해 오염된 식수 펌프를 찾아냈다.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패턴을 정직하게 기록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이후 X선은 몸을 열지 않고 안을 보게 했고, MRI는 수소 원자핵의 신호로 인체 내부를 영상으로 바꾸었다.

의학의 발전은 이미 있는 것을 더 잘 암기한 이들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같은 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본 사람들이 만든 결과였다.


책장을 넘기며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본 내 몸의 엑스레이, 빼곡한 숫자로 가득찬 감진표들.

우리는 이것을 사실이라 생각하지만(사실 뭐 사실 맞긴하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의사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비주얼 의과학사>는 이렇게 같은 숫자를 보고도 해석이 다르다는 사실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새로운 사실을 찾는 것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제멜바이스는 의사의 손에 묻은 오염물질이 산욕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지극히도 당연한 시술 전 손 씻기를 제안했고 그것만으로 사망률을 크게 낮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의료진에 의해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팩트와 별개로 의사들의 자존심을 크게 긁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진실이 곧 상식이 되지 않는다.


책은 의학사를 승리한 천재들의 행진으로 만들지 않는다.


파스퇴르와 코흐의 경쟁, 인슐린 특허를 공익을 위해 넘긴 선택, DNA 구조 규명 과정에서 충분한 공을 인정받지 못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사례가 함께 등장한다.

발견에는 야망도 있고 우연도 있으며, 협력과 배제도 있다

사실 좋은 목적을 가진 의사, 과학자라고 해서 언제나 좋은 선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의학의 품격은 무엇을 알아냈는가가 아닌 그 지식을 누구와 나누었고, 환자의 고통을 실제로 줄였는지,

나아가 그 일을 함꼐한 다른 사람의 기여를 제대로 기록했는지까지 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기술이 빠르게 앞서가는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두껍지만 얇은 책


책은 충분히 두껍지만 그래도 고대의 해부 기록부터 줄기세포와 암 유전자까지 40개의 큰 사건을 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한 인물과 논쟁이 막 흥미로워질 때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150여 점의 도판은 이해를 돕지만 본문과 설명을 오가며 읽어야 하므로 호흡을 길게두고 읽기를 권한다.


특히 과학적 발견의 사회적 비용이나 연구윤리의 갈등을 더 깊게 읽고 싶은 이들은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접하고 조금 더 깊게 다른 책을 선택해도 좋을 것 같다.

그만큼 에피소드들은 흥미롭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정말 그런가


돌이켜보면 오늘의 일상은 누군가 자기 시대의 상식에 ‘정말 그런가?’라고 물었던 결과다.

틀린 답도 다음 질문의 발판이 되었고, 실패한 실험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줄였다.


그러고 보면 과학은 정답을 많이 가진 상태라기보다 틀릴 가능성을 열어 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권위보다 몸을 보고, 추측보다 기록하며, 성취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의학이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새로운 기술만큼 그 기술을 사용할 사람의 겸손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비주얼 의과학사>는 의학에 대해 막연히 어렵고 차가운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장기와 세포가 아니라 아픈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질문, 자기 오류를 고친 사람, 다음 세대가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한 사람이다.


당신이 당연하다고 믿는 건강 상식은 누구의 질문에서 시작됐을까.

꽤 흥미로운 책을 또 한 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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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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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라는 말 너머에


전쟁과 같은 저녁을 마치고 설거지는 끝났다.

아이 가방도 챙겼고 세탁기도 돌아간다.

겉으로 보이는 일은 얼추 마무리된 것 같다.


그리고 한 사람의 머리에서만 내일 준비물이 무엇인지, 계란은 사야하는지, 예방접종 예약을 언제 잡아야 할지, 언제 양가 부모님께 영통을 해야 할지가 계속 생각 되어진다.

몸은 쉬는 것 같은데, 생각은 일에 잡혀 있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바로 이 지점을 노동의 자리로 불러낸다.

우리는 집안일을 나눌 때 대개 누가 설거지를 했고, 누가 아이를 씻겼으며, 누가 쓰레기를 버렸는지를 센다.


하지만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먼저 알아차린 사람, 방법을 찾아 비교한 사람, 상대에게 부탁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일은 그 계산에서 빠진다.

‘말만 하면 할게’라는 대답이 괜히 공평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이거다.

말해 달라는 요청 자체가 발견하고 판단하고 지시하는 일을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책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일을 성향이 아니라 노동으로 명명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동안 사소한 예민함으로 취급되던 일에 구조가 생긴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노동은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생기는 마음이 아니다.

가족이 별 탈 없이 움직이도록 주의력과 판단력을 계속 사용하는 일이며, 누군가 그 비용을 치르고 있는 '일'이다.



인지노동의 네 단계


데이밍거는 이 인지노동을 네 단계로 나눈다.


1) 필요한 일을 예상하고, 2) 가능한 선택지를 찾고, 3) 무엇을 할지 결정한 뒤, 4)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이의 신발이 작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새 신발을 비교하고 주문하고, 잘 맞는지 살펴보는 데까지가 하나의 일이다.

마지막 행동은 그저 택배 상자를 열어 아이에게 신겨주는 것일 뿐 앞선 세 단계는 평가되지 않는다.


이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사실 일이 많고 부담이 큰 단계일수록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발견하고, 일이 틀어지지 않도록 점검하면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쉽게 얘기해서 보이지 않는 일을 잘할수록 노동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잘해야 본전인 일.

그래서 가족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탱한 사람은 칭찬보다 원래 다 그런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누린다는 통념도 이 책은 과연 그러한가 되짚는다.

무엇을 먹을지, 어느 병원에 갈지, 어떤 돌봄을 선택할지 정하는 권한은 권력처럼 보이지만 선택지를 조사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면 책임도 함께 따라온다.

누군가에게는 선택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무가 되는 아이러니.


‘당신이 결정했잖아’라는 말로 노동과 책임을 다시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은 어쩌면 폭력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분업은 성격인가 성별인가?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불평등을 설명하는 우리의 언어를 의심하는 대목이다.

많은 커플은 여성이 계획을 더 많이 맡는 이유를 성별이 아니라 성격에서 찾는다.

한 사람은 꼼꼼하고 미리 준비하는 성격이며, 다른 사람은 느긋하고 순간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설명 같지만 되짚어보면 이상할 만큼 꼼꼼한 사람은 늘 여성이고 느긋한 사람은 늘 남성인 경우가 많다.


이 구분이 정말로 그러한 것인지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천성이라면 상대에게 바꾸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퀴어 커플에 관한 분석은 이 설명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이들 역시 모든 일을 정확히 절반씩 나누지는 않지만, 한 사람이 가족생활 전체의 생각을 독점하기보다 음식, 아이, 여행, 집 관리처럼 영역별로 책임을 섞어 맡는 경향을 보인다.


'남자는 이래, 여자는 이래'라는 기본값이 약해지면 사람들은 각자의 형편과 선호 그리고 우리가 할일을 더 구체적으로 협상한다.


공평이란 모든 것을 반으로 자른다기보다,

왜 이 일은 늘 같은 사람에게 가는지 질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


다만 이 연구가 다분히 미국의 자녀 양육 커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쉽게 우리나라에 대입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조사 대상에 도시 거주자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으며, 인종·민족·이민 배경에 따른 차이를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종교, 계층, 조부모 돌봄, 한부모 가족처럼 노동을 나누는 조건이 달라질 때 인지노동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학교/어린이집의 일정과 학부모 단체 대화방, 사교육 일정, 병원 예약뿐 아니라 양가 가족행사와 직장의 긴 노동시간까지, 고려해야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물론 가정 by 가정, 사람 by 사람이겠지만)


그렇기에 미국 커플의 사례가 그대로 한국 가정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또한 그래서 어떡할 것인가를 일러주는 실천법 또한 다소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책은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인지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사실 이걸로 충분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인지노동을 나누는 일은 단지 상대가 시키는 일을 하나 더 맡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할 일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결과를 확인하는 마지막까지 하나의 영역을 통째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각자 머릿속에 들고 있는 목록을 꺼내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분담이 언젠가부터 저절로 그랬던 것인지, 두 사람이 합의한 선택인지 물어야 한다.

사실 이러려면 둘 사이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책이 제안하는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저녁 메뉴나 생활용품 관리처럼 실패의 부담이 작은 영역부터 서로에게 넘기고, 새로 맡은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익힐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다.


명심하라.

가정은 프로젝트가 아니며, 가족은 주인력과 보조 인력이 아니다.


평등한 집이란 두 사람이 같은 횟수만큼 청소와 설거지하는 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만 가족의 내일을 계속 예측하지 않아도 되는 집, 쉬는 시간에 누구의 머리도 다음 지시를 만들기 위해 돌아가지 않는 집.


오늘 당신 가족의 저녁 풍경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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