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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서툴지만 ㅣ 바른북스 청소년 문학 12
정수환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4월
평점 :
꿈이 없다고
'정우는 꿈이 뭐니?'
'없어요'
<아직은 서툴지만>은 이 단호한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참 이상한 문장이다.
꿈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일인데 정우는 이 없다는 말을 꼭 잘못하는 것만 같다.
어른들은 자꾸만 꿈에 대해 말하라는 데 없는 꿈을 지어내기 싫은 아이는 그냥 엄마가 적어준 꿈을 적는다.
의사.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에는 무게가 붙는다.
희망은 계획이 되어야 하고, 계획은 성적과 대학과 직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빈칸은 탐색 중이라는 표시보다 준비하지 못했다는 흔적으로 취급된다.
질문은 학년을 거듭할수록 계속된다.
그러고보면 나도 그랬다.
사실 꿈이 있어서 꿈을 적었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적었던 것 같다.
그게 꿈이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숫자가 대체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범한 하루
성격 유형 검사에는 180개의 문항이 있다.
답을 모두 고르면 성격과 적성에 관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정우는 꽤 꼼꼼히 체크하지만 검사지는 정우가 왜 축구선수의 자서전을 좋아했는지, 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는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는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학교는 아이를 알아보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은다.
시험 점수, 성격 유형, 진로 희망, 생활기록부. 기록은 풍성해지는데 사람은 선명해지지 않는다.
무엇을 잘하는지는 숫자로 남길 수 있어도,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모르는 마음은 평가표에 놓기 어렵다.
현우와 희재, 유현은 같은 교실에 있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본다.
누군가는 성적이 좋고, 누군가는 꿈을 접으며, 누군가는 꿈이 없는 삶을 정우와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들의 차이는 아이를 한 가지 기준으로 설명하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정을 지우는지 보여준다.
정우에게 부족했던 것은 검사 결과 한 줄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알아들을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빈칸도 하나의 대답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비어 있는 제목이다.
Chapter 4는 '[ ]'로, 에필로그는 '[ ________ ]'이다.
지금은 쓰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다른 말을 적어도 되는 자리다.
어쩌면 꿈이라는 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딱 정하기 어려운 자리.
정하는 순간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닌 의무가 되어버리는 어떤 것.
이 꿈은 필연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누군가에게 기억될 사람인지 하는 마음과 이어진다.
그렇기에 빈칸은 언젠가는 채워져야 하고 아직은 모르지만 그 질문은 대답되어야 한다.
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연필로 쓴 정우의 시가 등장하는데 삶의 답이 있겠냐마는 어쩌면 그 시와 연필 자국이 정우의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적을 수 있는 연필.
기억하는가? 우리는 어릴적 연필로 글씨를 배웠으며 지우개로 지우는 법도 함께 배웠다.
우리는 언제고 종이에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곤 했다.
아이의 미래를 대신 쓰지 않는 일
책을 덮고 나면 정우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보다 그가 결국에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본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건 결국 직업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꿈은 그런게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견딜 수 있는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을 발견하며 몇 번이나 바뀔 수 있고, 한 직업의 모양으로 고정되지도 않는다.
어른은 아이에게 길을 보여주고 실패의 비용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빈칸까지 대신 채우려는 순간 도움은 통제가 된다.
그리고 그 도움은 아이에게 되려 가시가 될지도 모른다.
청소년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꿈에 대해 묻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미 직업을 가진 어른도 내가 원해서 사는 삶인지, 설명하기 좋은 답을 붙든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여러 일 앞에서 서툴다.
미래를 빨리 증명하느라 지친 청소년, 아이의 진로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부모와 교사, 다음 칸을 쓰지 못한 모든 이들이 들어봄 직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