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늘 미술관, 박물관 도슨트가 부러웠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 그들의 이야기와 말빨이 뭐랄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그림 혹은 문화재에 대해 누군가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동안 미술책을 읽으며 그림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었다. 별자리나 클래식을 공부한 적도 있다. 그런데 모두 다 실패했다. 뭐랄까. 몸에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책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시절 가판대에서 책을 파는 일을 맡았었는데 웬걸 나 이거 꽤 잘했다. 어릴 때부터 많이 읽기도 했고, 사실 그 자리에서 후루룩 흝어본 책이었는데도 내가 봐도 그럴싸하게 설명을 잘했다. 물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작가들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전작들과 최신작 그리고 우리 사회의 배경까지 연결해가며 어떻게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까지 풀어 소개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나 잘했다. 그때 생각했다. 오 나 이거 좀 잘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거 해야지. 언젠가는 책방을 해야지. 그리고 지금 인스타에서 책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정확히는 일이 아니라 취미생활!)


이 책은 미술과 클래식 그리고 본업인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안내를 가장 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글이다. 바스키야와 베토벤을 연결하며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물 흐르듯 흐르다 마지막 장인 바이올린 연주곡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QR코드로 그녀가 설명하는 곡을 들어볼 수 있게 장치 해놓았는데 사실 읽으면서 휴대폰 들고 스캔할 여유도 없고 이미 들리는 BGM이 있기에 스킵 하는 타입인데 그렇게 읽는 와중에도 어떤 글은 정말 지나칠 수 없어 굳이 그 곡을 찾아 듣기도 했다. 그리고 확실히 그 곡을 들으며 읽는 문장들이 더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이런 이야기구나.. 이해되지 않던 문장들이 이해되던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 바이올린 곡들은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들과도 꽤 어울렸다. 지는 저녁노을과도,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오리 배와도.


'여러분의 영감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책을 읽는 도중에 내가 한 메모였는데, 책 어디에 나온 문장이었는지 내가 쓴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작가의 영감의 출처는 그림과 클래식이다. 그것들은 그녀의 눈과 귀를 거쳐 내재화되고 또 다른 색채와 선율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나의 영감의 출처는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괜스레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영감을 얻는 사람일까? 고양이? 책? 사진?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겠지만, 특히 가을에 읽기 괜찮은 책이다. 미술과 음악의 역사 그리고 영감의 원천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크게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 -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ㅣ 한경arte
한경arte 특별취재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여행 했다면 지나칠 수 없는 가문의 이름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길게는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1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연도로 1200년부터 1900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의 국왕으로, 황제로, 총독으로 존재한 가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란츠, 페르티난트, 요제프, 까를 등 내로라하는 이름들의 집합소. 지금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뿐 아니라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까지 전 유럽에서 그 이름을 빼고는 역사 뿐 아니라 미술, 건축 등 거의 유럽의 모든 문화를 설명하기 어려운 가문. 


이 대단하다 못해 어마어마한 가문의 컬렉션이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열린다. 전 유럽의 유력가들이었던 만큼 이들은  대단한 수집광이기도 했는데 이번에 열리는 전시회에서 오스트리아의 황제들의 취향을 살펴볼 수 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수집된 명화들 그래서 빈미술사박물관의 다양한 컬렉션들이 국내에 소개된다.


전시 외에 가보기 전 책으로 전시에 대한 정보와 합스부르크에 대한 이야기들을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아니 전시 팜플렛이 무슨 1만 3천원이나 해? 라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지만 책은 전시물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배경, 가문을 이끌어왔던 주요인물들과 그들이 다스렸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쇤부른 궁전, 호프부르크 왕공, 미라벨 정원, 빈 오페라극장의 이야기들도 같이 전해주는데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그 때 이 이야기를 안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그득 남았다. 그저 전시회 팜플렛 같아 보이지만 이 책이 1만3천원이나 하는 이유다.


역사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는 글쎄요라고 대답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또 좋아하는 편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 그들의 성공 혹은 실수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겨 한다. 게 중 이 합스부르크 같은 글로벌 로열패밀리의 이야기라면 놓칠 순 없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다. 다음주 쯤 그들을 만나러 국립 박물관에 가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망그러진 만화 1 - 망그러진 곰과 햄터의 귀염뽀짝 일상다반사! ㅣ 망그러진 만화 1
유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책을 리뷰하지만 제일 어려운 리뷰가 웹툰이다. 정말 시간 가지는지 모르고 즐겁게 읽지만 읽고 나면 뿌듯함 이외에 쓸 말이 별로 없다. 'ㅋㅋㅋㅋㅋ 아 이거 너무 재밌어'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다. 사실 이 책도 그랬다. 그래도 뭐라고 써야 할 텐데 심란한 마음으로 밑줄 그은(정확히는 접어놓은) 페이지들을 들췄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1.

약속에 늦었는데 친구가 자꾸 재촉한다. 버스를 타고 곰은 괜히 다리에 힘을 준다.

'달리는 건 버스지만 의미 없이 힘줘보기'


2.

사람들이 자꾸 박스 안에 들어있는 고양이를 보며 웃는다. 재밌는 녀석이야 하하하. 고양이는 생각한다.

'너네도 커다란 박스 좋아하면서'

시선은 하늘로 솟으며 사람들이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위로다. 작가도 이야기한다. '삐뚤빼뚤 망그러졌지만, 이대로도 좋아!'

일을 하다 보면.. 아니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다. 모든 과목에 만점을 받아야 하고, 모든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나는 영어는 못했지만 수학을 잘했고, 체육을 못했지만 국어는 또 잘했는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잘 해야만 '잘하는' 사람으로 칭찬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까짓 칭찬이 뭐 대수냐 하지만 그땐(사실 지금도) 난 칭찬 받고 싶다.

그래서 난 가능하면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곧잘 지쳤다. 하루를 빡세게 살고 늘 녹초가 되서 집에 왔고 그렇게 퍼져버린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MBTI 검사를 하면 늘 E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종종 I가 나오기도 한다. 정말 편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만나 무얼하는게 싫고 부담스러워 졌다. 이 책은 그렇게 '아니 난 그냥 집에 갈게(어색한 웃음 하하하)'하고 집에 와 퍼져있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피식.


그랬다. 완벽하지 않아도 귀여우면 된다. 잘하지 못해도 따뜻하면 괜찮다. 우리는 모두 다 그렇게 산다. 물론 잘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당신, 우리 대다수는 그냥저냥 산다. 굉장히 많은 순간 우리는 그렇게 견디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괜찮다. 당신이 어떤 하루를 보냈든 우리에겐 떡볶이와 맥주, 그리고 고양이가 있다. 가진거라곤 귀여움 뿐인 당당한 고양이는 지금 내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세상 행복한 고양이처럼 골골송을 부르며.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박스 BOX
조유영 지음 / 문학나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마트 소설? 제목의 글귀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건 뭐냐.. 책의 부제는 이렇다. '언제든지 꺼내 먹지 좋은 박스 안 달콤쌉쌀 스마트 이야기'


책은 5-10페이지 사이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철 혹은 버스 출퇴근길에 잠깐 스크롤을 올리며 읽을 수 있는 정도? 이 짧지만 간결하고, 뭉툭하지만 예리한 소설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는데 추천사에서는 이 소설들을 '수상함'이라고 선언한다. 꽤 적확하다. 어떤 단편은 가볍고 즐거우며 또 어떤 단편은 책을 덮은지 하루가 지나도 계속 곱씹고 있으며 어떤 단편은 두려울 정도로 기괴했다. 수상함? 옳다. 어떻게 정의하기 힘든 이 기분을 수상함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 박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은 오늘 여러 모양으로 변했다. 그냥 박스였는데. 그것에 사랑이 담겼다고 민서는 써놓았다. 내가 버린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그 안에 담겨 있을까? 이제 나는 박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p.61)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박스>의 한 대목이다. 새로 만난 그녀가 씻으러 들어가고 집을 정리하던 찰나 쌓여있던 박스에는 전 여친이 사랑을 담아 보냈다고 적혀있다. 언제부터 있었지? 생각하던 찰나 박스의 한 부분이 빨갛게 물들었고, 그렇게 짓이겨진 박스 안으로 반짝하는 불빛이 비췬다. 그런데 그 박스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니 이 박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어지러운 순간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랬다. 언제나 내 삶 귀퉁이에 있었지만 미처 발견되지 못했고, 매일 발에 치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어떤 것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그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은 매 순간 다른 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하기도 또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에 빠져 유영하던 나를 언제나 지금의 누군가가 불러냈다. 아니 깨워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일까? 


조유영의 소설을 읽으며 꽤 여러 번 나는 어느 세계로 빠져들었다. 꽤 많은 단편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사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과거의 내가 꽤 많이 되살아났고 그 모든 일들을 곱씹으며 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요즘은 모두가 MBTI로 얘기한다는데 NF 계열의 사람들이 읽으면 꽤 좋아할 만한 책이다.(NF 주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99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숨을 거두기까지의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간의 일생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당장 매일 바뀌는 눈앞의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마흔. 딱 인생의 반환점을 돈 듯한 시점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자면 꽤 많은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1. 사실 기억이 나지도 않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난 4살 때부터 거리의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재라고, 온 집이 떠들썩 걸렸다고 한다.

2. 국민학교 1학년, 엄마는 학교에 가는 길을 등교 날 나와 함께 걸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혼자 이 길을 걸어야 한다며. 하필이면  다음날 비가 왔고 난 내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쓰인 노란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그날 혼자 나선 길에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알지? 그리고 난 노란 우산 밖으로 써진 내 이름을 확인하고 너무 부끄러워 집으로 달려오다 넘어졌다.

3. 국민학교 2학년, 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죽기보다 싫었다. 그 노란 피아노 가방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를 정도로 힘겨웠던 기억이었는데 어렵게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태권도복을 입은 내 친구가 나를 보더니 '풋'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날 울고불고 난 학원을 그만뒀다.

4. 중학교 1학년, 엄마가 교통사고 났다는 연락이 왔다. 꽤 오래 병원에 있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의 거의 모든 음식을 내다 버렸다. 음식 뿐 아니라 꽤 많은 것을 버렸다.

5. 중학교 2학년,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아이는 내게 천사의 다른 이름 같았다. 사춘기 감정이 폭발하던 시절이어서인지 그 아이의 얼굴, 눈, 코, 입 모든 것이 꽤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말도 못 붙여 본 내 첫사랑의 이름으로 그 아이는 남아있다.

6.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내 성적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만약 떨어지면 그땐 집에서 두어 시간 거리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데 와 나 그때 처음으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줄 알았다.

7. 고등학교 3학년, 중3 때의 경험은 조금도 내 인생의 교훈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고2 마지막 수능을 240점으로(당시 400점 만점) 마무리한 나는 고3 마지막 모의고사를 370점으로 끊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역대급 물수능이었단 2001학년도 수학 평가 시험, 우리 학교에서 나만 빼고 모두가 수능 점수가 2-30점씩은 올랐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8. 내 인생에 연애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대학교 1학년 과제에 찌들어있는데 이제 막 수능을 끝낸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보고 싶다고. 그 제안을 어렵사리 거절하며 내심 속으로 혼자 뿌듯해 했다.

9. 편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대학 1학년 때 죽도록 했고, 그렇게 난 생전 처음 장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결심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란 성경의 이야기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고민하는데 그거 돈이랑 자랑이더라. 좋은 학교 가서 돈 많이 벌고 싶은 거. 나는 부끄러웠고 이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돌아갔다. 

10. 군대 훈련소 시절, 4년제 대학 다니고 키 크다는 이유로 중대장 훈련병이 된 나는 무언가 증명하기 위해 몸이 달아있었다. 4주 뭐 짧은 시간이지만 내도록 최우수 병사가 되었고 한주에 한 번씩 10분간 전화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집에는 1번 친구들에게 2번 전화를 걸었다.

11.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나는 마흔 몇군데 원서를 냈고 스물 몇군데 면접을 봤으며 모두 떨어졌다. 꽤 오랜 시간, 아침에 누워 천장을 봤다. '오늘 뭐 하지?'..

12. 일을 하며 처음으로 왕따라는 걸 당했다. 타의인지 자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늘 나를 빼고 모였고 문제가 생기면 나를 제일 먼저 타박했다. 꽤 오랫동안 출근하기 위해 시동 거는 게 무서웠다.

13.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언제나 혼자 들어가던 집에 나를 기다리는 쪼그만 녀석이 생겼고 녀석은 꼭 내 팔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지금도 등치는 산만해졌지만 여전히 짱고는 그 자리에서 나를 안고 잔다.

14. 정신과 상담이라는 걸 받았다. 의사는 내게 휴직을 권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고, 그냥 참고 다녔다. 입 닫고 귀 닫고. 꽤 오래 잠을 못 잤고, 사직서는 늘 임시저장 문서에 들어있었다.

15. 결혼을 했다. 결혼이 꽃길이라고 하는 사람들 말 다 뻥이다. 삶은 좋은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꽤 다이내믹하게 변했다. 난 이전에도 명절을 싫어했지만 이젠 명절 혐오론자가 되었다.

16. 직장 생활하며 처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10여 년 직장 생활하며 꽤 집 평수를 넓혀왔는데 다시 반지하 자취방으로 돌아갔고, 여름엔 더위와 겨울엔 추위와 씨름했다. 처음으로 제습기라는 걸 사보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지며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재택근무가 내 삶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번호의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모락모락. 우리들은 그렇게 자랐다.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왔다. 그 길이 우리가 선택했던 그렇지 않았던 아마도 시간은 우리를 계속 밀고 갈 것이다. 

늘 바라는 건 언제고 우리가 우리 인생의 길에서 뒤를 돌아볼 때 그 시간이 후회와 한탄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그때는 꼭 세상이 없어질 일 같았지만 조금만 떨어져 바라볼 때 그것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내 하루를 바라볼 때도 내 하루가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

꽤 마음이 따뜻해지고, 단단해진다.


#모락모락블라인드서평단 #모락모락 #블라인드서평단 #블라인드북 #키미앤일이 #책 #독서 #서평 #문학동네 #문학동네북클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