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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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시물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내버려 둬라"

내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해서 꽤 반가웠다. "냅둬 알아서 하겠지"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 흔들리고 누군가의 표정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냅둬"하고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알아버렸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조용함 사이로 아주 작은 울림이 스며들었다.



내버려 두기 : 포기도 무관심도 아닌 나를 되찾는 행동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우리는 늘 신경 쓰며 산다. 관계의 온도, 말의 결, 상대의 기분,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지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누구인지 보다 ‘상대가 원하는 나’를 유지하느라 더 지쳐 있었다.


저자는 이런 마음을 단번에 뒤집는다.


"내 건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기침을 멈추게 할 책임은 상대에게 있는 게 아니다."


맞다. 돌이켜보면 관계에서 결국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상대가 틀렸다 혹은 바뀌어야 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나를 지치게 한 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꾸려는 나의 집착이다.


렛뎀이론이 말하는 내버려 두기는 무책임도 체념도 아니다. 이 말은 사실 상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그가 화를 내든, 뒷담화를하든, 나를 향해 무성의하게 대하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서 나를 떼어낼 자유가 있다.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놀라울 만큼 차분해진다.

그냥 내버려 두자.



내가 하자 : 내 삶을 나의 힘으로 움직이기


렛뎀의 두 번째 단계, Let Me. 내가 하기.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생각을 내버려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자."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누군가의 반응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회사에서 승진을 놓쳤을 때, 누가 나를 험담했을 때,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상황에만 매달렸고 자꾸만 나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렛뎀의 방향은 다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더 좋은 곳으로 움직이자.

그들이 욕하게 내버려두고, 나는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자.

그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버려두고, 나는 나의 경계를 단단히 세우자.


상대가 바뀌지 않아도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이 묵직했다.

누구의 눈치에도 기대지 않고 나의 마음을 먼저 챙기는 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일.

그건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일이고 결국은 사적인독서를 하듯 나를 마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랑이든 관계든 고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가까워진다


밑줄 그은 문장 중 가장 오래 남았던 문장.


"때로는 상대를 고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냥 받아들이고, 사랑을 더 베푸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조언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애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렛뎀은 관계의 포기가 아니라 관계의 성숙이다.

바꿀 수 없는 상대를 기어이 바꾸려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괴로움을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일.


그 이후 비로소 우리는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억지로 변화시키지도 않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나를 괴롭혔던 관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하려 했던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고

나 역시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기억을 읽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 관계를 지나왔는지, 어떤 마음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그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내버려 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내 삶은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렛뎀은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벽을 세우는 기술도 아니다.


그건 내 삶의 중심을 되찾는 기술,

그러니까 나의 존엄과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쓰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원칙이다.


누구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고

누구의 기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움직일 자유.


그 자유를 되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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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비 생활
가제노타미 지음, 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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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덜 쓰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을 고르는 일


요즘은 소비가 취향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진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느냐, 어떤 장비를 쓰느냐, 어떤 제품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돈에 그렇게 구애받는 삶은 아니었지만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라 아무래도 지출이 조금만 늘어나도 마음이 어렵다. 그 와중에 나의 스타일도 지켜야 한다. 이 책을 펼친 것도 이 고민이었고 저소비 생활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은 이유도 비슷했다.


책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와 안 맞는 장소에 있으면 맞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돈을 들이게 된다. 저소비 생활은 맞지 않는 환경에 맞추지 않는 기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점검해 보자. 나의 소비는 애초에 불필요한 환경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장소가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안은 지출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필요 없는 것까지 업그레이드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삶에 적응하려다 지쳐버린다.

그런 선택지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은 절약의 기술보다 삶을 고르는 감각을 먼저 회복하라고 말한다.


어떤 소비는 나를 살리고 어떤 소비는 나를 무너뜨릴까. 결국 저소비는 돈을 줄이는 일이라기보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삶의 자리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비를 줄이는 힘은 근력처럼 매일 만들어진다


저자는 단순한 절약 루틴을 소개하면서도 그것을 습관의 문제로 연결한다.

"돈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근력 운동과 같다. 가끔 생각났을 때만 하면 충분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야 좋은 습관이 생긴다."


'절약=인내'라는 옛 관념을 뒤집는다. 저자는 참거나 억지로 버티는 절약이 아니라 돈을 쓰지 않을 구조를 일상에 녹여두라고 말한다.

통장을 쪼개는 방식도, 월초에는 가능하면 아끼고 월말엔 조금 사치스럽게 보내는 것도 모두 지속 가능한 절약을 위한 생활 설계에 가깝다.

결국 절약이란 피곤한 삶을 견디기 위한 인내의 기술이 아니라 돈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소비가 너무 쉬운 시대다. 앱을 켜면 원하는 물건이 내일 도착하고 피곤한 날엔 따로 의식을 하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기분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소비의 핵심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쉽지 않은 길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돈 대신 다른 기쁨을 만드는 습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구조, 스스로 정한 지출 리듬.

그 작은 반복들이 마음의 불안을 덜어주고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저소비는 돈을 아끼는 삶이 아니라 돈에 기대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핍이 아니라 만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삶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세상이나 누군가가 "넌 일을 삶의 90퍼센트만큼 해야 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쓸데없는 소비가 필요해진다."


옳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비율에 맞춰 살다 보면 나의 하루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 과소비가 시작된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교와 억눌림이 결핍을 만든다. 저소비 생활의 본질은 그 결핍의 감정을 끊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절약을 결핍의 세계관이 아닌 만족의 세계관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저소비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위해 이쪽이 좋다고 느껴지는 감각을 소중히 여기자."

이 감각이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지출은 줄어들고 돈에 휘둘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필요한 건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정확한 감각이다.


저자는 월세 포함 70만 원으로 사는 삶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돈을 쓰지 않아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소비가 줄면 행복이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행복을 감지하는 감각이 살아난다.

작은 것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각이다.



책을 읽으며 절약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의 자리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 말하는 저소비는 기술보다 태도에 가깝고 돈보다 마음의 구조에 가깝다.

결국 덜 쓰고 사는 일은 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아니라, 덜 흔들리고 사는 법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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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20 러닝 훈련법 - 더 천천히 달리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맷 피츠제럴드 지음, 최보배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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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도 러너다. 나이키 앱 기록을 보니 2018년부터 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라고 하긴 좀 부끄럽지만) 달리고 있다. 처음 10km 대회에서 받은 기록이 56분인가 그랬다. 워낙 운동에는 젬병인지라 그것만으로도 내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금방 50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젊었을 때 받았던 그 기록이 내 인생 최고의 기록이고 지금은 한 시간을 훌쩍(까진 아니지만 암튼) 넘어 이제는 기록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누구는 전력 스퍼트와 천천히 달리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전문 러닝코치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빠르게 달리고 싶으면 더 천천히 달려라. 이상한 위로 같으면서도 어쩐지 설득력이 있었다. 요즘은 슬로우 러닝 같은 것들도 유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책장을 덮을 즈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달리는 일은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리듬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 오래 달린다


아 뭐 책이 삶이 어쩌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책은 기본적으로 러닝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하면 잘 뛸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기초체력 그리고 저강도의 힘이다. 리디아드의 말처럼 빨리 달리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다시 달릴 수 있다. 그는 고강도 훈련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아래 쌓여야 하는 건 결국 느린 속도로 쌓은 긴 시간의 러닝이었다.

러닝도 러닝이지만 요즘 내가 좀 그렇다. 뭔가 잘해보려고 하다가도 번아웃이 오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는 시작이 더 두렵다. 그런데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력이 열쇠다. 속도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우리게 부족한 건 재능이나 스피드가 아니라 그걸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말한다. 더 많이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더 많이 달리라고.

우리가 지쳐 있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버티지 못해서이고, 버티지 못하는 건 자주 쉬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너무 빨리 달려서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80대20 파레토 법칙


고강도와 저강도 훈련을 하는 그룹을 AB테스트 한 잘츠부르크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고강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을수록 좋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을 저강도에 쓰는 그룹이 가장 큰 향상을 이룬다.

이 실험 결과는 이상하리만치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우리는 늘 고강도로 살아간다. 눈을 뜬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전력 질주. 거기다 동기부여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완전히 반대되는 법칙을 보여준다.


고강도 20% + 저강도 80% = 장기적 성과


러닝 훈련의 법칙이지만 이 공식은 우리 삶에도 유효하다, 성장이라는 단어에 미쳐 일분일초를 매진해서 살아갈 때는 늘 나만 뒤처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삶에서 의외의 성과를 낸 것들을 톺아보자면 대단한 준비가 아니라 긴 시간 꾸준히 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느리고 반복적이고 비슷한 일상. 그러나 이상하게 그렇게 저강도로 해왔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러닝에서 80%의 천천히가 지구력을 키우듯 오늘 하루에서 쌓이는 느린 순간의 루틴들이 결국 마음의 근력을 기른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고 조금 멈추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오래가는 원동력이라는 걸 여전히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게 할 것인가


오늘날 마라톤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케냐 러너들이 성적을 내는 이유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오갈 때 수십 킬로를 걷거나 뛰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의 슬픈 현실이겠지만 그 삶이 그들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러닝도, 일도, 관계도, 삶도 어쩌면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삶이 누군가보다 뒤처진 것 같아 보여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그 일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달릴 수 없다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더 오래 버티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몸과 마음의 호흡을 맞추는 것.

다시 러닝화를 고쳐신는다. 오늘은 조금 천천히 뛰어 볼 생각이다.

주변의 풍경도 둘러보고 매일 마주치는 러너가 있다면 가볍게 목례라도 건네야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두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빨리 달리기보다 오래 달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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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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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꽤 많은 서평 요청을 받는 편이다.(이것도 비교 대상이 없으니 뭐 그러려니) 최근에는 거의 다 받는 편인데 (개인적 판단으로) 너무 엉성하거나, 편향적이거나 에세이류는 많이 거절하는 편이다. 사실 이 책도 그랬다. 거절하려 DM 창을 열었는데 뭐랄까 그 메시지에서 오는 온도가 달랐다. 정제된 문장,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고, 오자마자 책을 풀어 읽었다. 좋았다.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마도 기계가 아닌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서 그럴 것이다.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해서 혹은 재미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사실 첫 번째 이유가 독서의 목적이라면 이 책은 가만히 접어두어도 좋다. 다만 글이 전하는 마음과 위로를 믿는다면 이 책은 꽤 강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소개 글에 나와 있는 대로 그는 브랜드 기획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기획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꺼내 보인다. 그를 읽다 보면 거창한 언어 대신 마음이 다녀간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랑할수록, 살아갈수록 감춰야 할 말이 생기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는 표지의 고백처럼 우리가 매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켜야 하는 수많은 문장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완벽하지 않기에 더 진실에 가까운 글을 썼다고 말한다. 기획자로의 삶을 권두고 작가로의 삶을 10년째 살아온 그의 글은 그의 말마 따나 정돈되지 못한 삶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패, 후회, 애정, 고단함,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편했다. 너무 잘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그는 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위로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맞장구치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일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가뜩이나 말이 넘치는 시대다. SNS에선 하루에도 수백 개의 위로가 흘러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시물은 너무 완벽하고, 너무 매끄럽다. 그 완벽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체온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가. 그에 비해 그의 글에는 뾰족한 결론도 넘치는 인사이트도 없다. 그래서 더 마음에 닿았다. 함부로 건네는 조언보다 잘 모르기에 조심스레 다가서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맨살 같은 진심이 훨씬 더 깊이 닿는다.


한편으로는 마치 오래된 편지 같았다.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냄새가 느껴질 만큼 따뜻하고 덮은 후에도 그 잔향이 남는다. 문득 위로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위로는 기술이 아니다. 잘 말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깊이 아파본 사람이 건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게도 이따금 서툰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가족, 친구, 동료들. 그들의 말은 여느 작가처럼 멋지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말속에는 마음이 있었다. 이 책이 말하는 건 결국 그 마음이다. 이 마음은 언제나 인생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새삼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를.

뭔가 세상이 조금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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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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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 입을 닫은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투표는 꼭 해야 하는 거라고 다그치는 이들도 있다.(나 한 번도 투표 건너뛴 적 없는데 ㅠ)

그래서 돌이켜 보았다. 내가 정치에 대해 입꾹닫한지가 언제였는지. 아마도 '나꼼수'가 한창인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나꼼수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차고 넘쳤지만 나는 반대로 나꼼수를 계기로 정치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뭐랄까 나는 좀 싫었다. 그 가벼움이, 조롱이, 그 참을 수 없는 촐싹거림이.


변명? 고백하자면 나는 효순이, 미순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TK에서 보기 힘든 진보좌파였다. 당내 PD와 NL의 치열한 논쟁도 눈으로 목격했고 이후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을 지나 녹색당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20년 이상을 당비 내고 당적을 유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손절했고, 지금도 가끔 발견하는 예전에 싸지른 페이스북의 발언들도 보이는 족족 지워가는 중이다.


2000년대, IMF, 글로벌 경제 위기가 먹고사니즘을 직격하던 시기였지만 그래도 그때만 해도 우리 정치에는 낭만이 있었다. 어쩌다 저렇게까지 변해버렸나 싶은 지금의 주류 정치인들의 소장파 시절은 어쩌면 우리도 정치에 희망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고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밤 11시, TV로만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 기억 때문에 지금도 가끔 토론 프로그램을 틀어놓곤 하는데 꼬투리 잡기로 일관하는 이들의 억지에 그냥 TV를 꺼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이렇게 수준 낮은 토론이 거의 매일 국회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사람들이 이걸 본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팬덤 정치의 폐해, 나쁜 정치 패키지의 작동


썰전으로 유명해진, 이철희 평론가의 책이다. 책은 우리 정치를 짓누르는 세 가지를 한 묶음으로 짚는다.

포퓰리즘, 정서적 양극화, 팬덤 정치

저자는 이들의 역사와 탄생의 근거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이들이 어떻게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이들은 패키지로 움직인다.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자극하고 지원한다. 결과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배제다. 선거는 돌아가는데 정치는 사라진 듯한 풍경 즉, 선거 민주주의는 작동하지만 정치는 없는 나라라는 진단은 과장이 아니다. 팬덤이 우리의 경계를 세우는 순간, 타협은 배신이 되고 대화는 침묵이 된다. 어떤 이는 열광의 주술로 정치적 성공을 단기간에 가져오지만 의회정치의 장치들은 그 팬덤에 포획된다.

문자 총공, 낙인, 내부 총질이라는 말이 일상이 되면 정치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다루는 본래의 기능을 놓쳐버리고 만다. 법과 제도는 뒷전으로 밀리고 갈등만이 무대를 장악한다. 이는 지극한 정치혐오의 출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무조건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팬덤정치는 참여 의지를 가진 시민들의 동력이라는 밝은 면도 있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차이와 이견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결국 문제는 권력을 위한 팬덤인가, 공동선을 위한 시민성인가의 갈림길이다.

그렇다고 팬덤을 시끄러운 소수로 방치하기만 할 것인가? 그 결과 우리 정치의 팬덤은 더 시끄러운 다수의 혐오가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팬덤을 길들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오롯이 정치인의 몫이다. 책임의 좌표를 흐리지 않는다.



정치는 밥 먹여 주는 삶의 언어여야 한다


정치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책은 단호하게 되묻는다. 보통 사람의 일상, 먹고사는 문제다. 역사적 사례는 간명하다. 국민은 정치가 민생과 경제에 집중할 때 박수를 치고 갈등 이슈에 매몰되면 화를 낸다. 미국 민주당이 약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한 사이 트럼프가 박탈감의 언어를 선점했듯 우리 정치도 사회경제적 기반을 넓히지 못한 채 프레임 전쟁에 매달릴 때 신뢰를 잃었다.

정치는 비전의 문장과 제도의 설계 그리고 결과로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성적표다. 임금·주거·돌봄·부채·지역의 균형 같은 생활의 좌표들이 매일의 뉴스가 되어야 한다. 여야의 흑백논리가 아니라, 내 월세·내 대출·내 아이의 급식과 통학로, 내 부모의 병상과 요양의 언어가 의사 결정의 중심으로 올라와야 한다. 그때 시민은 정치를 다시 본다. 골대가 보이면 뛰고, 점수가 나면 환호한다.

나는 그 사실을 사회복지 현장에서 수없이 목격했다. 캠페인이 사람의 생활 동사와 닿을 때 참여는 높아지고 관계는 깊어진다. 정치는 더 크고 복잡한 캠페인일 뿐이다. 정파의 승부에서 이기는 것보다, 생활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더 뚜렷한 승리다. '저 새끼가 그랬어요' 말고 '우리 이렇게 해봅시다'라는 말을 정치인에게 듣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책을 덮고 나니 오래전의 광장의 내가 떠올랐다. 함께 외치며 울고 웃으며 배웠던 것들, 그리고 스스로 실망하고 물러나며 잃어버린 언어들. 팬덤의 소음과 프레임의 전투가 우리를 지치게 했지만 그래도 정치는 여전히 삶을 바꾸는 가장 큰 기술이다.

그러니 좋은 정치는 멋진 말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잘 살게 만들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세상을 내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가.

답은 거창하지 않다. 오늘의 쌀·월세·병원·학교, 그리고 내 일을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드는 결정들이 더 많아지는 것.

그것을 위한 정치라면 나는 다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오늘 우리 동네에서 무엇을 바꾸면 내일이 조금 더 좋아질까? 사실 이 일을 함께 시작하는 것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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