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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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꽤 많은 서평 요청을 받는 편이다.(이것도 비교 대상이 없으니 뭐 그러려니) 최근에는 거의 다 받는 편인데 (개인적 판단으로) 너무 엉성하거나, 편향적이거나 에세이류는 많이 거절하는 편이다. 사실 이 책도 그랬다. 거절하려 DM 창을 열었는데 뭐랄까 그 메시지에서 오는 온도가 달랐다. 정제된 문장,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고, 오자마자 책을 풀어 읽었다. 좋았다.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마도 기계가 아닌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서 그럴 것이다.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해서 혹은 재미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사실 첫 번째 이유가 독서의 목적이라면 이 책은 가만히 접어두어도 좋다. 다만 글이 전하는 마음과 위로를 믿는다면 이 책은 꽤 강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소개 글에 나와 있는 대로 그는 브랜드 기획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기획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꺼내 보인다. 그를 읽다 보면 거창한 언어 대신 마음이 다녀간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사랑할수록, 살아갈수록 감춰야 할 말이 생기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는 표지의 고백처럼 우리가 매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켜야 하는 수많은 문장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완벽하지 않기에 더 진실에 가까운 글을 썼다고 말한다. 기획자로의 삶을 권두고 작가로의 삶을 10년째 살아온 그의 글은 그의 말마 따나 정돈되지 못한 삶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패, 후회, 애정, 고단함,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편했다. 너무 잘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그는 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위로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맞장구치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일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가뜩이나 말이 넘치는 시대다. SNS에선 하루에도 수백 개의 위로가 흘러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시물은 너무 완벽하고, 너무 매끄럽다. 그 완벽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체온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가. 그에 비해 그의 글에는 뾰족한 결론도 넘치는 인사이트도 없다. 그래서 더 마음에 닿았다. 함부로 건네는 조언보다 잘 모르기에 조심스레 다가서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맨살 같은 진심이 훨씬 더 깊이 닿는다.


한편으로는 마치 오래된 편지 같았다.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냄새가 느껴질 만큼 따뜻하고 덮은 후에도 그 잔향이 남는다. 문득 위로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위로는 기술이 아니다. 잘 말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깊이 아파본 사람이 건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게도 이따금 서툰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가족, 친구, 동료들. 그들의 말은 여느 작가처럼 멋지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말속에는 마음이 있었다. 이 책이 말하는 건 결국 그 마음이다. 이 마음은 언제나 인생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새삼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를.

뭔가 세상이 조금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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