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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20 러닝 훈련법 - 더 천천히 달리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맷 피츠제럴드 지음, 최보배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4월
평점 :
부끄럽지만 나도 러너다. 나이키 앱 기록을 보니 2018년부터 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라고 하긴 좀 부끄럽지만) 달리고 있다. 처음 10km 대회에서 받은 기록이 56분인가 그랬다. 워낙 운동에는 젬병인지라 그것만으로도 내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금방 50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젊었을 때 받았던 그 기록이 내 인생 최고의 기록이고 지금은 한 시간을 훌쩍(까진 아니지만 암튼) 넘어 이제는 기록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누구는 전력 스퍼트와 천천히 달리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전문 러닝코치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빠르게 달리고 싶으면 더 천천히 달려라. 이상한 위로 같으면서도 어쩐지 설득력이 있었다. 요즘은 슬로우 러닝 같은 것들도 유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책장을 덮을 즈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달리는 일은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리듬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 오래 달린다
아 뭐 책이 삶이 어쩌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책은 기본적으로 러닝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하면 잘 뛸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기초체력 그리고 저강도의 힘이다. 리디아드의 말처럼 빨리 달리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다시 달릴 수 있다. 그는 고강도 훈련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아래 쌓여야 하는 건 결국 느린 속도로 쌓은 긴 시간의 러닝이었다.
러닝도 러닝이지만 요즘 내가 좀 그렇다. 뭔가 잘해보려고 하다가도 번아웃이 오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는 시작이 더 두렵다. 그런데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력이 열쇠다. 속도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우리게 부족한 건 재능이나 스피드가 아니라 그걸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말한다. 더 많이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더 많이 달리라고.
우리가 지쳐 있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버티지 못해서이고, 버티지 못하는 건 자주 쉬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너무 빨리 달려서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80대20 파레토 법칙
고강도와 저강도 훈련을 하는 그룹을 AB테스트 한 잘츠부르크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고강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을수록 좋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을 저강도에 쓰는 그룹이 가장 큰 향상을 이룬다.
이 실험 결과는 이상하리만치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우리는 늘 고강도로 살아간다. 눈을 뜬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전력 질주. 거기다 동기부여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완전히 반대되는 법칙을 보여준다.
고강도 20% + 저강도 80% = 장기적 성과
러닝 훈련의 법칙이지만 이 공식은 우리 삶에도 유효하다, 성장이라는 단어에 미쳐 일분일초를 매진해서 살아갈 때는 늘 나만 뒤처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삶에서 의외의 성과를 낸 것들을 톺아보자면 대단한 준비가 아니라 긴 시간 꾸준히 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느리고 반복적이고 비슷한 일상. 그러나 이상하게 그렇게 저강도로 해왔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러닝에서 80%의 천천히가 지구력을 키우듯 오늘 하루에서 쌓이는 느린 순간의 루틴들이 결국 마음의 근력을 기른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고 조금 멈추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오래가는 원동력이라는 걸 여전히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게 할 것인가
오늘날 마라톤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케냐 러너들이 성적을 내는 이유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오갈 때 수십 킬로를 걷거나 뛰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의 슬픈 현실이겠지만 그 삶이 그들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러닝도, 일도, 관계도, 삶도 어쩌면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삶이 누군가보다 뒤처진 것 같아 보여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그 일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달릴 수 없다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더 오래 버티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몸과 마음의 호흡을 맞추는 것.
다시 러닝화를 고쳐신는다. 오늘은 조금 천천히 뛰어 볼 생각이다.
주변의 풍경도 둘러보고 매일 마주치는 러너가 있다면 가볍게 목례라도 건네야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두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빨리 달리기보다 오래 달리는 사람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