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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비 생활
가제노타미 지음, 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평점 :
돈을 덜 쓰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을 고르는 일
요즘은 소비가 취향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진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느냐, 어떤 장비를 쓰느냐, 어떤 제품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돈에 그렇게 구애받는 삶은 아니었지만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라 아무래도 지출이 조금만 늘어나도 마음이 어렵다. 그 와중에 나의 스타일도 지켜야 한다. 이 책을 펼친 것도 이 고민이었고 저소비 생활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은 이유도 비슷했다.
책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와 안 맞는 장소에 있으면 맞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돈을 들이게 된다. 저소비 생활은 맞지 않는 환경에 맞추지 않는 기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점검해 보자. 나의 소비는 애초에 불필요한 환경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장소가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안은 지출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필요 없는 것까지 업그레이드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삶에 적응하려다 지쳐버린다.
그런 선택지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은 절약의 기술보다 삶을 고르는 감각을 먼저 회복하라고 말한다.
어떤 소비는 나를 살리고 어떤 소비는 나를 무너뜨릴까. 결국 저소비는 돈을 줄이는 일이라기보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삶의 자리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비를 줄이는 힘은 근력처럼 매일 만들어진다
저자는 단순한 절약 루틴을 소개하면서도 그것을 습관의 문제로 연결한다.
"돈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근력 운동과 같다. 가끔 생각났을 때만 하면 충분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야 좋은 습관이 생긴다."
'절약=인내'라는 옛 관념을 뒤집는다. 저자는 참거나 억지로 버티는 절약이 아니라 돈을 쓰지 않을 구조를 일상에 녹여두라고 말한다.
통장을 쪼개는 방식도, 월초에는 가능하면 아끼고 월말엔 조금 사치스럽게 보내는 것도 모두 지속 가능한 절약을 위한 생활 설계에 가깝다.
결국 절약이란 피곤한 삶을 견디기 위한 인내의 기술이 아니라 돈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소비가 너무 쉬운 시대다. 앱을 켜면 원하는 물건이 내일 도착하고 피곤한 날엔 따로 의식을 하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기분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소비의 핵심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쉽지 않은 길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돈 대신 다른 기쁨을 만드는 습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구조, 스스로 정한 지출 리듬.
그 작은 반복들이 마음의 불안을 덜어주고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저소비는 돈을 아끼는 삶이 아니라 돈에 기대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핍이 아니라 만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삶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세상이나 누군가가 "넌 일을 삶의 90퍼센트만큼 해야 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쓸데없는 소비가 필요해진다."
옳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비율에 맞춰 살다 보면 나의 하루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 과소비가 시작된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교와 억눌림이 결핍을 만든다. 저소비 생활의 본질은 그 결핍의 감정을 끊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절약을 결핍의 세계관이 아닌 만족의 세계관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저소비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위해 이쪽이 좋다고 느껴지는 감각을 소중히 여기자."
이 감각이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지출은 줄어들고 돈에 휘둘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필요한 건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정확한 감각이다.
저자는 월세 포함 70만 원으로 사는 삶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돈을 쓰지 않아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소비가 줄면 행복이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행복을 감지하는 감각이 살아난다.
작은 것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각이다.
책을 읽으며 절약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의 자리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 말하는 저소비는 기술보다 태도에 가깝고 돈보다 마음의 구조에 가깝다.
결국 덜 쓰고 사는 일은 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아니라, 덜 흔들리고 사는 법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