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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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인생이 부럽다


끝내주는 인생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내용이 궁금하기 보다 제목이 부러웠다.

'끝내준다'라는 말을 자기 삶에 붙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진다는 것.

이슬아를 멀리서나마 지켜본 입장에서 아마도 이 제목은 성취의 선언이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더 부럽다.

나는 아직 내 인생에 이런 제목을 붙일 용기가 없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부럽다


이슬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감정은 늘 비슷하다.

이 사람은 글을 쓰는데 글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증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글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 같지도 않고 삶이 글을 밀어내지도 않는 것 같다.

그 균형이 참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저 부럽다.



망한 친구 옆에 조용히 남아 있을 수 있는 태도가 부럽다


큰 나무를 대신 맡아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사기를 당하고, 집을 옮기고, 삶이 기울어진 친구 곁에서 그는 어떤 위로의 말을 찾지 않는다.

대신 잎을 닦고 시간을 들이고 질문을 삼킨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곁에 머물러 준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이건 연습으로 되는 태도가 아니다.

그의 삶의 자세가 부럽다.



어리석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누구나 망한 강연 하나의 기억정도는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망한 군부대 강연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묘하게 부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락해버린 무대와 전혀 관심 없는 삼백 명의 군인들.

보통은 이런 곳에서 흘린 진땀만 기억하고 아예 지워버리기 마련인데

이슬아는 이것마저 그대로 적는다.

그때의 민망함과 후회를.

그리고 하나 정도 있었던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을.

이렇게 자기 삶의 어리석은 순간 마저 사랑하는 듯한 태도가 부럽다.



기쁨과 슬픔을 굳이 나누지 않는 태도가 부럽다


그의 삶이 그렇지만 책은 계속해서 경계를 흐린다.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억지로 구분되지 않는다.

나중에 돌아보아야 비로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들.

그 애매함을 그대로 두는 일.

의미를 만들기보다 시간을 믿는 태도가 부럽다.

나는 늘 먼저 앞서가고 의미를 예측하려고만 한다.

사실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고,

지금 보다 훨씬 뒤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

그것들을 그대로 둘 줄 아는 태도가 부럽다.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책의 마지막에 그는 고생 한복판에서도

"오 끝내주는데?"라고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길 희망한다고 쓰고 있다.


그의 끝내주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건 비단 나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약간 느슨한 협회에서 내 삶을 조금씩 꺼내놓아보고 싶다.


끝내주는 인생이란, 어쩌면 그렇게나마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인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26년은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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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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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니체를 만나다


나는 학부 때 철학을 전공했고 4년 내도록 니체와 맑스에 미쳐있었다.(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니체다.)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의 문장들은 그 시절의 나를 여러 번 흔들어 놓았고, 그가 이야기한 '초인'이라는 개념은 매일 나를 일어서게 했다.

그래서 이 책 <위버멘쉬>를 처음 보았을 때 사실 반가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들었다.

철학 책이 대부분 그렇지만 니체를 다룬 책은 많지만 어렵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행처럼 <40대에 읽는 000> 같은 철학 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전공자의 입장에서 짜증 날 정도로 가볍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 책. 이 책은 딱 이 부분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 이 책의 저자는 니체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히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저자가 니체고 이 책은 어나니먼스라는 그룹 혹은 사람이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전의 복잡한 문장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언어로 다시 풀어냈다고 한다.



초인은 누구인가


니체가 말한 초인, 위버멘쉬는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기준을 넘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인간이다.

사회가 정한 답을 따르지 않고, 삶의 의미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존재. 이 개념은 여전히 강력하고 피를 끓게 한다.

특히 청춘들에게 초인은 현실을 거부하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로 작용한다.


<위버멘쉬>는 이 초인의 개념을 자기계발적 언어로 풀어낸다.

자기 극복, 감정 조절, 인간관계, 삶의 태도 같은 익숙한 주제들이 니체의 사상과 연결된다.

"고통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요즘 세대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고통,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며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어렵지 않게 읽히며,

이를 오늘의 삶에 바로 대입할 수 있다는 점.

책은 철학을 몰라도 읽을 수 있고 철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다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위버멘쉬>가 가진 장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니체를 읽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전을 그대로 해설하지 않고, 지금의 언어로 재구성했기에 독자의 진입 장벽이 낮다.

또한 문장 사이사이에 질문을 던지며 독자를 수동적인 독서에서 끌어내 능동적인 사유로 이끈다.


<위버멘쉬>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 태도는 니체가 말하는 실존주의의 근원이기도 하다.

삶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니체 입문서로도,

삶이 조금 막막해진 시점에 읽어야 할 책으로도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지 않는 이유


다만 이 책이 가진 한계 또한 분명하다.

니체의 초인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가혹하다.

초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고, 고통을 견디며,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존재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낼 정도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 초인이 될 수는 없고 모두에게 초인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또한 세상은 초인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조건들, 구조적인 한계, 각자의 삶이 가진 무게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건 개인의 노력 여하로 퉁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 책은 아니 니체는 이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이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초인이 되지 못한 삶이 실패처럼 느껴질 위험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초인을 꿈꾸되, 현실을 붙잡으라


결국 <위버멘쉬>는 이렇게 읽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초인을 목표로 삼되, 초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재단하지는 말 것.

니체의 초인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지만 당신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인간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는 초인이 되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한때 니체를 그렇게나 사랑했지만 지금 내게 니체는 조금 부담스러운 존재다.

<위버멘쉬> 또한 그렇다. 부디 이 책에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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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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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밤에는 유난히 소리가 또렷해진다.

낮 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어둠을 틈타 고개를 들고, 그 사이로 음악이 스며든다.

어떤 노래는 이유 없이 마음을 흔들고, 어떤 멜로디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온다.

<일렁이는 음의 밤>은 바로 그 순간들에 관한 책이다.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기억을 깨우고, 슬픔을 견디게 하며, 결국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음악에는 묘한 힘이 있다.

한때 자주 들었던 노래는 재생 버튼 하나로 나를 과거의 한 장면으로 데려간다.

첫사랑, 헤어짐,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군 입대를 앞두고 잠들지 못하던 밤.

그 기억이 무엇이든, 그 자리에 음악이 함께 있었다면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일렁이다’라는 표현이 왜 이토록 정확한지 새삼 느꼈다.

감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소리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흔들린다.



슬픔을 통과하는 음악이라는 프리즘


최지인 시인은 음악을 통해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친척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밤, 전유동의 ‘호수’를 들으며 의미를 곱씹는 장면에서 그는 말한다.

이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란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며, 무의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불러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날의 그에게 전유동의 '호수'는 어떤 의미였을끼?

슬픔을 외면하지 않되, 그 안에 잠기지 않게 해주는 장치 같은 것이었을까.


그는 낙관적이지만 가볍지 않고, 슬프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예술로 기억하고, 사람으로 이어지는 밤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10월의 어느 밤, 시인은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찾는다.

그리고 음악처럼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세상에 예술을 매개로 죽음을 기억하며 슬픔을 살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이때 음악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타인의 삶으로 확장된다.

하나의 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듯,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다.


그의 글을 따르다 보면 음악이 사람의 얼굴을 띠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부모의 삶, 할머니와 이웃들, 꿈을 찾아 떠난 친구들, 보문동 출판사에서 함께 버틴 선배들, 가자 지구에서 살아남아 한국으로 온 친구, 그리고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내.


우리는 혼자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통해서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음악은 그 관계를 잇는 조용한 실이다.



우리에게 남은 노래들


캄캄한 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몸 어딘가에 머물다 불쑥 되살아난다.

그리고 음악은 그 통로를 열어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괜히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게 된다.


이 책을 아니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도 분명 하나쯤의 노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노래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잠시 머물다 와도 괜찮다. 우리에겐 아직 밤마다 들을 노래들이 남아 있으니까.


지금 이 밤, 이어폰을 꽂고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어딘가에 묻어둔 당신의 기억도 함께 일렁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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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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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으로 살고 있다고 믿다가도, 문득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가 정말 이곳에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

이 책은 꼭 그런 밤에 읽혔다. 읽고 있었다기보다는 뭐든 잘 안되는 짜증으로 가득한 밤.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잠시 머물렀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유난히 불친절하다.

인물들은 이유 없이 기다리고, 걷고, 떨어지고, 사랑하고, 버려진다.

산타로사 공항에서 아무도 오지 않을 재회를 기다리는 여자, 잘린 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자, 머리가 생긴 연인을 보고 절망하는 여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기차를 타는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는 서사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불안한 장면 하나를 남긴 채 사라진다.


읽으면서 자주 멈췄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까지가 은유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최소한 나라는 독자는 끌어안기보다는 밀어내는 쪽에 가깝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남아버리는 감각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그 모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남는 감각, 설명되지 않는 불안, 끝없이 기다리는 상태, 이유 없이 지속되는 고통.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광기는 소설 속의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기괴한 감정이 변주된 것처럼 느껴졌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세계에서 불행은 늘 이유 없이 들이닥친다.

고통의 시간은 끝이 없고, 우연히 마주치는 타인들은 대체로 적대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멈추지 않는다. 기다리고, 떨어지고, 다시 일어난다.

이 반복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이유를 모른 채 견디며 살아왔는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표제작이자 단편의 마지막인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에서 침대에 묶인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주사를 맞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여기서도 질문은 쌓이지만 답은 없다.


우리는 왜 이런 삶을 사는지,

누가 결정하는지,

이 삶은 언제 끝나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하루를 통과한다.

그렇게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


이 소설의 밤은 시간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설명 받지 못한 채 존재해야 하는 상태.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던져진 삶도 이와 같다.

우리는 늘 그럴듯한 설명을 찾아 삶을 살아가지만, 어쩌면 그럴듯한 설명을 얼핏 듣거나 찾은 것도 같지만

가끔 내가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온다.

그래서 희망은 언제나 있다.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잘 쓴 소설이라고 단정하기에도, 선뜻 추천하기에도 망설여진다.

의미를 붙잡으려 할수록 미끄러지고, 대신 어떤 감정의 덩어리만 남는다.

물론 모든 책이 명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책은 이해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실존을 더 정확히 건드린다.

이 책이 그랬다.


지금 당신이 혼자이고, 지금이 밤이라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안고 있다면.

한없이 NF스러운 이 기묘한 이야기들 속으로 한 번쯤 걸어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혹시 아는가. 당신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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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 사람을 남기는 말, 관계를 바꾸는 태도
이해인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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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날아오는 말과 행동의 화살이 생각보다 크고 단단할 때, 이 마음은 단지 나의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다정함이 만만함으로 오해받는 순간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좋았던 마음을 거두고 싸늘하게 돌아앉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다정함은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선택이며, 관계는 우연이 아니라 결과다.

이 책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독자의 등을 떠민다.



1. 다정함은 성격이 아니라 태도


책은 다정함을 좋은 말이나 부드러운 표정 정도로 축소하지 않는다.

다정함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자, 관계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하려는 의지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의 다정함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내면을 다루는 일에 가깝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날카로워지는 이유, 친밀함이 어떻게 무례로 변하는지를 차분히 짚어가며,

말의 선택과 말투의 결이 관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이럴 때 어떤 태도로 상대를 대하겠느냐고.



2.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를 구분하는 법


나아게 저자는 관계의 알맹이를 묻는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이 대화가 아니라 자기 말만 속사포처럼 내뱉는 사람이다.

화려하고 말 잘하고 사람 많아 보이는 관계의 대부분이 왜 끝내 공허로 남는지, 자기 이야기로만 채워진 대화가 왜 나를 지치게 만드는지,

책은 아주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관계는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지만 모두와 깊어질 필요는 없다"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다정함이 자기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무너뜨리며 유지하는 관계는 다정함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새겨두고 적어두어야 할 문장이다.



3. 다정함이 결국 나를 지키는 방식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은 자기 존중으로 귀결된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이 아니라 감정의 질감을 보라는 조언, 만남 이후의 나를 기준으로 관계를 판단하라는 문장은 실천적인 힘을 가진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어떤 관계를 선택할 것인지는 삶의 방향과 닿아 있다.

다정함은 모두에게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태도에 가깝다.



이해인은 다정함을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구호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좋은 하루의 반복, 그 하루를 만드는 작은 선택으로 다정함을 놓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다정해지겠다는 다짐보다 먼저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온도를 가늠해 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말이 내일의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더 단단해지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는 말은,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뜻에 가깝다.

행여 지금 어떤 관계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이 책은 다정함을 다시 정의해 볼 조용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다정한사람이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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