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리 신간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사전 정보가 없는 책이 있나 싶었다. 이지 뷰티. 쉬운 아름다움.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저자의 자서전이자 에세이다.

우리는 이미 사회에 울림을 주는 장애인에 대한 스토리를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스티븐 호킹이라든지 닉 부이치치 같은. 이들은 하나 같이 신체적 장애의 어려움을 딛고 무언가를 이룬 극복의 아이콘이다. 긍정적 마음과 불굴의 의지만 가지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저 사람들도 하는데.. 이런 동기부여 메시지를 쏟아내는 성공한 장애인들의 자기고백, 처음에는 그런 책인가 했다.


오해였다. 저자는 자신의 장애인이며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이들처럼 학문이나 내적인 부분으로 자꾸만 파고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도 있을 수 밖에 없는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심지어 섹스에 대한 원초적 욕구들과도 점차 마주하게 되고 남들의 시선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외적인 것이건, 내적인 것이건 간에.


그리고 클로이는 이 외적인 욕망들을 거절하지 않는다. 여느 성자들 처럼 그것들을 속된 것이라 무시하고 내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기 시작한다. 철학자이기도 한 그녀의 사유는 여행을 통해 점점 깊어진다. 나아가 모두가 안될 거라고 말했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어느새 그녀는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라 삶에서 장애를 지워버린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닌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 삶을 누리는 클로이를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된다.


책은 브루클린의 허름한 술집에서 두 남자가 장애 있는 여성을 두고 살 가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우리를 브루클린의 그 술집으로 다시 데려간다. 남자의 이름은 카일.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의 몸이 부담스러울 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다'라는 그의 무례한 질문에 더 이상 그녀는 중립지대로 도망가지 않는다. 클로이에게 이제 장애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허영심에 상처를 입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자아는 사라졌다. 이제 아무것도 없고 황조롱이 한 마리만 있다. 그리고 내가 아까 그 문제를 다시 떠올릴 무렵에는 그 문제가 덜 중요해 보인다.(p.490)


철학자 머독의 이야기다. 그는 아름다움을 매개로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데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더 멋진 비례나 완벽한 비율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가 바깥의 세계와 만나는 어떤 지점,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황조롱이 한 마리. 그것이 아름답다.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한. 이지 뷰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언제나 강자의 기록이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네 개의 연방으로 구성된 영국을 처음에는 꽤 멋진 국가로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된 영국 변방이자 허울뿐인 연방, 독립되지 못한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저릿했다. 만약 조선이 일본에 독립되지 못한 채 오늘날 일본의 연방 국가처럼 존재한다면 아마 우리 또한 이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총칼에 죽고, 시간은 흐르고 경제발전을 거듭하며 100년 전 흘린 피는 잊힌 채 누군가는 적응하고, 누군가는 저항하며 또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말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아일랜드의 한 가문의 이야기. 독립을 원한 아일랜드에 숨어든 영국의 첩자가 혀가 잘리고 목이 달린 채로 발견되면서부터  삼대를 걸쳐 내려온 사랑과 증오에 관한 이야기다. 첩자의 죽음이 있었던 퀸턴가는 영국의 무장단체에 의해 피로 물든다. 학살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윌리는 유일하게 생존했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찾아온 외사촌 메리엔과 사랑에 빠지지만,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그 사랑을 지탱할 수 없었던 그는 떠나고 메리엔과 딸 이엘라만 남는다. 윌리가 떠난 이후 메리엔은 끊임없이 영국으로 되돌아 갈 것을 종용 받지만 그녀는 떠나지 못한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이야기는 메리엔을 거쳐 이엘라에게로 옮겨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가, 또 다음 세대가 언제까지 이어나갈 것이다.


월리와 메리엔, 이멜다, 세 명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묵직하다. 독립전쟁, 종교분쟁, 사랑 등 역사의 풍경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풍경도 다양하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파친코> 같기도 했다. 


뭐랄까. 이런 긴 호흡의 책을 읽고 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하고 싶은 말은 목까지 차오르는데 켜켜이 쌓인 시간 앞에 나의 존재가 보잘 것 없어지는 느낌이고,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의 선택이 만든 나의 처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자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답답할 즈음 저어기 방문 너머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내 고양이가 기지개를 양껏 켜고는 자박자박 내게 걸어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무릎 위로 뛰어올라와서는 이내 고개를 처박고 갸릉거리기 시작한다. 이 고양이는 나를 선택했다.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매 순간 나를 선택했고, 내 무릎 위에서, 내 팔을 베고 누워 나를 필요로 했다. 물론 '아빠 바빠'하고 무릎의 고양이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으면 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쿨하게 제 길을 간다. 이 작은 하루하루, 진지하다기 보다 돌이켜보면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즐거웠던 오늘이 모여 10년이 되었고 나는 이 녀석의 집사, 이 녀석은 나의 고양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거대한 세월의 무게라도 괜스레 먼저 쫄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사랑의 결국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결과야 어쨌건 간에 나의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이 하루가 모여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이 하루를 모아서 뒤돌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감히 운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에서 만난 말들 -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앎에도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이에게 굳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불친절과 오만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프랑스인 특유의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게 프랑스라는 자존감으로 뭉친 강해 보이기만 한 프랑스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두스망'이라는 단어에서(정확하게는 그 발음에서) 느껴지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부드럽게라는 단어를 가진 이 단어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지마는) 자본주의와는 좀 다른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유럽의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부드럽게, 여유 있고, 천천히. 그래 그렇게 너의 길을 주시하고 그 길을 걸어.


2.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내려온 프랑스의 정신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인 특유의 단단한 개인주의의 근본이 되었다. 그들은 본인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는 걸 참지 않는다. (물론 미국이 만든 드라마지만)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프랑스인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미국인들을 이해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 그것을 강요할 때는 가차 없이 손절해 버리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프랑스 정신을 훼손하는 어떤 것에도 이들은 연대하여 대응한다.


3. 재미있는 사실은, 프랑스 대부분의 빵집엔 딱히 이름이 없다(드물게 있는 체인점에만 상호가 있다). 그저 블랑즈리라 써 있고, 제과를 하면 파티스리라는 단어가 더해져 있을 뿐. 프랑스의 약국에 딱히 상호가 없고, 그저 약국이라 써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마치 그 구역의 빵을 담당하는, 공적 의무를 행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p.65)


빵집에 다른 이름이 아니라 그저 '빵집'이라고 쓰여있다는 점, 그리고 빵집이 단순히 빵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공적 의무를 행하는 곳처럼 여겨진다는 이야기는 꽤 울림이 컸다. 누구도 굶게 하지 않겠다. 프랑스라는 공동체에 함께 속해있는 이라면 누구나 프랑스인처럼 살게 하겠다는 의지. 이는 치료를 담당하는 약국도 마찬가지다.


4. 나는 한 번도 프랑스에 가보지 못했다. 갈 기회는 몇 번 있었는데 번번이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모습이 그려진 영화를 좋아하고, 파리의 풍경을 담은 책을 어떤 영화나 책보다 선호한다. <비포 선셋>의 세느강의 풍경은 언제고 내가 앉아있을 풍경이라 믿고 지금도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프랑스 앓이를 하던 중 이 책이 내게 왔다. 아는 프랑스어라곤 봉쥬르 밖에 없지만 낯선 34개의 언어는 마치 이것이 프랑스라는 듯 불쑥 나를 찾아왔다.

언어는 그 사회의 거울이다. 20년간 파리지앵으로 살아온 저자는 34개의 프랑스어를 꼽으며 언어에 투영된 프랑스 사회를 비추어 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데 괜히 마음이 벅찼다. 책 한 권으로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책의 울림은 꽤 컸고 마음은 몽글해졌다. 프랑스로 떠나고 싶은가? 이 책은 어느 정도 그 여행의 대체재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 얘기는 어디서든 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다. 이건 4인 혹은 2인 밖에 안되는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선거에 몇 번을 찍었고, 누가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이제 신념을 넘어 신앙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정치 이야기는 건드려서는 안될 성격, 종교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다.



옛말에 한 가족 안에 두 개의 종교가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종교는 없지만, 정치 성향이 다르고, 성적 지향이 다르고 심지어 삶의 지향까지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다. 물론 부모는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믿었다. 평범한 4인 가족, 성실한 부모와 두 자녀. 하지만 가장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자식이라고 했던가. 어느 봄, 음악을 한다는 것도 탐탁치 않았는데 심지어 이대남이 되어 나타난 아들은 아버지와 정치 문제로 투닥거리다 입에서 "씨발"이라는 욕지기를 뱉어낸다. 언젠가부터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딸은 터키 출신의 여성과 결혼 선언을 해버린다. 두 자녀에게 평생을 민주당을 찍고 살아온 부모는 한순간 꼰대 혹은 종북 좌파가 되어버리고, 한번 갈라진 틈으로 사소한 감정의 골은 자꾸 깊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족이고 삶은 계속된다. 너의 정치 성향이 어떻든, 니가 폐미든 이대남이든 해는 동쪽에서 뜨고, 직장인은 회사에 가며, 사람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먹고 잔다. 딸은 이명을 앓고 있는 엄마가 눈에 밟히고, 아들은 아들이 밥을 굶지는 않는지 걱정된다. 얼핏 모두의 처지와 고민은 다른데 또 이들의 고민은 한데 모인다. '행복하고 싶다'


어느 봄에 둘러 앉아 각자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난 가족은 네 계절을 따로 또 함께 맞이한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어느 날 생겨 난 가족의 빈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부모는 퀴어 영화를 보며 딸을 이해하려 한다. 부동산에 대한 분노를 뉴스로 접하며 아들의 마음을 안아보려 한다. 은퇴 후 하릴없이 글쓰기에만 매진하는 아버지, 이명을 앓으며 아버지 옆에선 엄마의 모습을 자녀들은 가만히 지켜봐 준다. 자칫 혐오로 치달을 수 있는 감정을 참아내고 가만히 서로의 모습을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가족에게는 또 한 번의 봄이 돌아온다.


사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극으로 치닫고만 있는 우리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렸다. 강대강으로 치닫고만 있는 와중에 가족은 정과 반 사이 합의 이야기를 찾아나간다. 그리고 이 합은 어쩌면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한다. 때론 잘못된 편에 서기도 하고, 아집과 고집에 서로에게 칼을 겨눌 뿐 아니라 휘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좀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너도 나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봄은 언제고 돌아오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지난해 SPC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게 산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통계는 하루에 두 명 꼴로 노동자가 그들의 일터에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뉴스에 보도된 사례들은 운이 좋은 케이스인지도 모른다는 거다. 우리는 얼마나 한편만 보고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칼에 손을 깊게 베였는데 하필 주말이었던 터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야 했다. 나름 꽤 상처가 깊어(보여) 서 택시까지 잡아타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괴성이었는데 그때 슬쩍 돌아본 광경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한쪽 팔이 없는 상태에서 피에 찌들어 아무렇게나 감긴 붕대(아니 그게 붕대인지 휴지 뭉텅이인지도 불명확하다) 그리고 모든 구멍에서 물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의 괴성.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프레스기에 팔이 끼였다고 한다. 내 상처 난 손가락을 한참을 구석에서 쳐다보다 간호사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돌아 나왔다.

그는 잘 치료받고 고국으로 돌아갔을까?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을 보아 한 즉 왠지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든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그랬다. 이 책은 오늘 함께 출근했으나 함께 퇴근하지 못한,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그 2명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두 명.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1장을 읽고 마음이 아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1장은 평택항에서 목숨을 잃은 이선호 씨에 관한 이야기,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또 그 주검을 눈앞에 둔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세세히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은 운 좋게도(?) 굉장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모두의  이목을 끌었고 정치와 언론은 당장이라도 이 시스템을 뜯어고칠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관심이 사그라들며 7개월을 끈 지지부진한 재판의 결론은 '관리 감독의 의무를 해태 한' 기업 및 관리자들의 벌금과 집행유예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사건은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었다. 아마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은 오늘도 무관심 속에 어제 내련 판결과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산재사고의 현장 속에 있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는 구조적 문제라 외치지만 이 목소리는 거의 모든 재판 과정에서 무시된다.


저자는 책의 2부에 산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측은 집요하게 산재가 아니라 개인의 실수 혹은 일탈이었음을 강조하려 한다. 일견 그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자는 산재의 원인을 구조적 한계에서 찾는다. 2022년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자 "작업자가 제 목숨 함부로 다루는 것까지 회사가 책임져 줘야 하느냐"라는 실제 있었던 목소리의 빈틈이 무엇인지, 왜 그들은 산재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는 꽤 오랜 페이지를 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당신도 산재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3부는 이러한 산재가 왜 숨겨지고 터부시되는지에 대해 4부는 이 산재가 건설이나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들의 문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우리가 어떻게 이 산재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이를 넘어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책은 기자가 평택항에서부터 산재 현장을 쫓아다니며 취재한, 그리고 그렇게 그가 알게 된 산재에 대한 기록, 꽤 깊이 있는 대한민국 산재에 관한 르포다. 사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좀 답답해졌다. 하루에 두 명. 함께 출근했으나 퇴근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두 명이 내가 되지 않기를 감사해하며 퇴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꽤 숙제를 많이 남기는 책이다.


*산재에 관한 당사자를 알고 있거나 본인이 당사자라면 한 번쯤은 정독하기를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