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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정치 얘기는 어디서든 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다. 이건 4인 혹은 2인 밖에 안되는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선거에 몇 번을 찍었고, 누가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이제 신념을 넘어 신앙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정치 이야기는 건드려서는 안될 성격, 종교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다.
옛말에 한 가족 안에 두 개의 종교가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종교는 없지만, 정치 성향이 다르고, 성적 지향이 다르고 심지어 삶의 지향까지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다. 물론 부모는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믿었다. 평범한 4인 가족, 성실한 부모와 두 자녀. 하지만 가장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자식이라고 했던가. 어느 봄, 음악을 한다는 것도 탐탁치 않았는데 심지어 이대남이 되어 나타난 아들은 아버지와 정치 문제로 투닥거리다 입에서 "씨발"이라는 욕지기를 뱉어낸다. 언젠가부터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딸은 터키 출신의 여성과 결혼 선언을 해버린다. 두 자녀에게 평생을 민주당을 찍고 살아온 부모는 한순간 꼰대 혹은 종북 좌파가 되어버리고, 한번 갈라진 틈으로 사소한 감정의 골은 자꾸 깊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족이고 삶은 계속된다. 너의 정치 성향이 어떻든, 니가 폐미든 이대남이든 해는 동쪽에서 뜨고, 직장인은 회사에 가며, 사람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먹고 잔다. 딸은 이명을 앓고 있는 엄마가 눈에 밟히고, 아들은 아들이 밥을 굶지는 않는지 걱정된다. 얼핏 모두의 처지와 고민은 다른데 또 이들의 고민은 한데 모인다. '행복하고 싶다'
어느 봄에 둘러 앉아 각자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난 가족은 네 계절을 따로 또 함께 맞이한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어느 날 생겨 난 가족의 빈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부모는 퀴어 영화를 보며 딸을 이해하려 한다. 부동산에 대한 분노를 뉴스로 접하며 아들의 마음을 안아보려 한다. 은퇴 후 하릴없이 글쓰기에만 매진하는 아버지, 이명을 앓으며 아버지 옆에선 엄마의 모습을 자녀들은 가만히 지켜봐 준다. 자칫 혐오로 치달을 수 있는 감정을 참아내고 가만히 서로의 모습을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가족에게는 또 한 번의 봄이 돌아온다.
사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극으로 치닫고만 있는 우리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렸다. 강대강으로 치닫고만 있는 와중에 가족은 정과 반 사이 합의 이야기를 찾아나간다. 그리고 이 합은 어쩌면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한다. 때론 잘못된 편에 서기도 하고, 아집과 고집에 서로에게 칼을 겨눌 뿐 아니라 휘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좀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너도 나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봄은 언제고 돌아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