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사장님은 어떻게 건물주가 되었을까 - 적은 돈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건물주 플랜
이창헌(돈깨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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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단어, ‘부동산’이라는 말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 일상에 들어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신생아 대출이라는 정책이 생기면서 나도 ‘내 집 마련’이라는 단어를 품에 안게 되었다. 마침 괜찮은 집이 하나 있었고, 나름대로 마음을 먹었지만 누군가 먼저 계약을 해버렸다는 말을 듣고는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다. 부동산이라는 세계는 나와 무관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주 조용히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옆집 사장님은 어떻게 건물주가 되었을까>라는 제목부터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의 표지처럼 현실적인 부동산의 세계로 끌려 들어간 것이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월세는 사라지는 돈이고, 근로소득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래서 건물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뭐 대단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는 여전히 내게 낯설다. 나는 여전히 ‘건물주가 되기 위해 사는 삶’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있고, 돈을 버는 목적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엔 회의감이 있다.

솔직히 그 목적으로 읽는 책이라면 책보다는 유튜브를 권하고 싶다.


책의 진짜 가치는 그 안의 ‘실용’에 있다. 신용대출과 대출 비율, 리스크의 구조, 대출이자와 금리의 함수, 공실의 두려움과 수익률의 방정식 나아가 건물을 고르는 방법, 시세 흐름을 보는 시야, 임장을 다닐 때의 체크리스트, 계약 시 주의점 등, 정말로 부동산을 ‘사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곳곳에 실려 있다.


단순히 건물주의 성공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실패를 피하기 위한 구체적 조언의 연속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건물 하나를 갖기 위해서는 대출이자와의 싸움을 견뎌야 하고, 수익률과 공실의 간극을 감당해야 하며, 무엇보다 계속해서 변동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만 한다. 그건 내 생각보다 훨씬 피로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저자는 묻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건물주가 되고 싶은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도 있지만 잘못 발을 디뎠을 때 잃게 되는 내 소중한 것들까지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통해 부동산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문 앞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유익했다.


결국 나는 건물을 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나에게도 유효하다. 앞으로 살아갈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 삶의 기반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자극적인 재테크 입문서가 아니라 부동산이라는 현실을 조심스럽게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건네는 실용적인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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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대로 산다는 착각
변진서 지음 / 뜰book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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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저는 우리가 자주 감정의 근원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데, 그 복잡함 때문에 우리 스스로조차 왜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반응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때때로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반응이 나 타날 때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아차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p.203)


때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감정 앞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편해졌고 이유 없이 서운했고 때론 과도하게 방어적으로 굴었던 장면들. 그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어떤 이는 어릴 적 경험에서 남은 쓴 뿌리 같은 거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인생을 함부로 헤집어 놓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감정에 대한 해석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되지 뭐.


<내 생각대로 산다는 착각>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그렇기 때문이 이 책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우리 안의 무의식, 더 정확히 말하면 부처가 말한 '삼스카라'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우리가 얼마나 자주 '무의식적인 감정 패턴'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들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삼스카라. 반복되고 쌓인 경험과 기억의 흔적.

그것은 나도 모르게 어떤 감정에 취약하게 만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며, 원하는 삶과 실제 행동 사이에 균열을 만든다. 저자는 그런 내면의 장애물들을 '알아차리는 일'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좋았던 점은 철학과 수행, 명상이라는 어쩌면 꽤 무거운 단어를 그렇게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저자의 문장은 고요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실은 잘 몰랐지만 부처의 가르침이었던 삶의 지혜들이 실천 가능한 조언으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의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그 감정들로 인해 무너지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정말 내가 원해서 이렇게 반응하는가.

혹은 익숙한 패턴 속에 갇힌 채 자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저자는 말한다. 이타심이나 긍정, 평온한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조금씩 길러지는 태도라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꽤 오래된 생각인데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책은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내 안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내 삶의 핸들을 조금 더 깊이 잡고 싶은 사람에게. 감정이 흔들리는 날 나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조금 더 깊어지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자기 계발서라기보다는 하나의 길잡이다. 마음의 결을 따라 나를 돌아보는 아주 사적인 시간.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삶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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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피 누가 쓴 거예요?
이태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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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조금 빌리자면 현직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이자 LG전자, 기아자동차, 일룸 등 다양한 브랜드의 카피를 써온 소위 카피꾼의 책이다. 조금 더 친절하자면 잘 쓰는 사람이 '어떻게' 잘 쓰는지를 나누고 싶어 쓴 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우리다 평소에 좋다고 느꼈던 문장들이 단지 말장난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와 저거 어떻게 썼지'라고 느꼈던 수많은 광고 문장들 속에 어떤 전략과 맥락이 숨어 있었는지를 해부해 보여주는 동시에 실무자들에게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구조와 방향을 10개의 챕터로 들려준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내용도 꽤 포함되어 있다. 팩트의 힘을 보여주는 숫자를 사용하라(ex 1분에 1대씩 팔리는 스마트 모니터), 브랜드 포지셔닝(2등은 2등답게)을 살리는 선을 긋고 생각하라, 따라올 수 없는 1등임을 증명하는 카피, 반복하기, 의미와 재미를 더하기 등 각각의 주제가 되는 챕터에 카피의 구조를 설명하고 사례와 원리를 함께 전달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는 여기다 실무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덧붙인다. 그는 '말을 잘 포장하는 법'이 아니라 '무엇을 말할지 결정하는 법'에 더 무게를 둔다.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라는 선언은 꽤 오래 맴돌았다. 결국 카피는 방향 싸움이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 '방향'을 잡는 일이다. 이는 미사여구나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내가 팔아야 하는 그 무언가가 소비자에게 어떤 명분을 내밀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카피를 센스와 재치의 결과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명분 없는 말장난은 브랜드의 신뢰를 깎는다"고.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가 '왜 이 말에 설득되는가'를 끝까지 고민하고 기록하는 힘이다.


'저희의 의도를 잘 살렸습니다'가 아니라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었고 구입할 명분까지 담았습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일견 속이 시원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도 이 문제에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언제쯤 나는 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하는 마케터가 될까.(깊은 한숨)

우리나라에 이런 카피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굳이 카피를 쓰지 않더라도 크리에이티브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법한 책이다. 말이 아니라 '말을 하기까지의 태도'를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한다면 어떻게든 도움은 될 책이다.


언어는 결국 명확한 맥락과 탄탄한 구조 그리고 그것을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사실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꽤 촘촘하게 알려준다.

카피가 어려운 이유는 사실 문장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단지 '문장을 잘 쓰는 법'보다 '생각을 단단하게 하는 법'에 가깝다. 그래서 실무자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말과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어의 태도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부럽다.


이 카피 누가 쓴 거예요?

슬그머니 한쪽에서 손을 들어 올리는 건 얼마나 폼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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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전략 수업 - 돈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남는 15가지 시스템
폴 포돌스키 지음, 고영훈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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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많은 돈 이야기를 읽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부터 아직도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돈의 속성>까지, 책장을 넘길수록 복잡한 공식은 늘어났지만 이상하게도 돈은 여전히 어렵다.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건지 어떻게 모아야 불안하지 않은 건지. 돈은 언젠가 내가 배워야 할 과목처럼 늘 숙제처럼 남아 있다.

이 책도 그랬다. <부의 전략 수업>이라는 제목만 보면 또 하나의 자기 계발서 같은데 실제로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돈을 어떻게 불릴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내가 돈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내 삶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중요한 건 더 벌거나 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돈의 관계를 먼저 설정하는 일이다.

나는 돈이 왜 필요하고 돈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그런 맥락에서 책의 첫 번째 파트는 돈과 삶을 위한 전략적 태도를 강조한다.

"돈은 안정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마인드셋에 집중하라"

투자로 꽤 큰돈을 모은 저자도 내일 나의 주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 대신 내가 지금 바꿀 수 있는 선택들을 살피라고 저자는 거듭 말한다.


또 그의 일과 돈에 대한 조언은 현실적이다.

'생존에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내 능력의 시장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라'

급여는 늘지 않고 물가는 오를 때 내 연봉을 결정하는 건 단순히 직무가 아니라 산업 안의 계층 구조다. 그 구조를 파악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책은 그 안의 보이지 않는 질서와 사내 정치의 존재도 가감 없이 말한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시대는 끝났고 전략과 생존 지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서늘하지만 현실적이다.


투자에 대한 파트는 조심스럽고 정직하다.

"위험이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라"

어떻게 투자하라는 식의 조언은 적어도 이 책에는 없다. 자산을 분산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의 투자 철학을 찾아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조언만 반복된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기본을 잃지 않는 것. 부채에 관한 조언도 꽤 현실적이다.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평생을 잡아먹는다는 말은 명확하고 정직하다.

그는 결국 돈도, 투자도 '관계'의 문제라고 정의한다.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하고, 너무 멀어지면 기회를 놓친다. 그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 그것이 돈에 대한 감각이며 능력이라고 말한다.


돈에 관한 그의 마지막 이야기다.

"절대적인 돈의 현자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돈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을 답하고 나서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나만의 적정선을 어디쯤에서 그리고 있는가?

나는 이 돈을 무엇을 위해 벌고 쓰고 모으고 있는가?


돈에 대한 이론이 그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시대다. 초등학생도 주식투자를 하고 멍멍이도 비트코인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돈의 틈바구니에서 결국 삶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그런 드문 책이다. 당신이 가난해서 불안했든, 부자여서 더 불안하든, 돈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든.

'돈과 함께 사는 삶'을 더 잘 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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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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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을 톱아보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설령 그것이 소설 속 인물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부족하다. 그런 내가 감히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논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줄곧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상실을 조용히 따라가면서 오히려 내 안의 미숙함과 조심스러움은 더 또렷해지고 남은 내 생을 어떻게 그려나가야할지는 조금 더 생각이 많아졌다.


지난해 작고한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잃은 노학자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로 어느날 갑자기 떠난 아내의 부재에 대한 상실. 이후의 남은 자의 삶 그리고 흩어져 가는 기억과 남겨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는 상실과 기억이다. 바움가트너는 타버린 냄비, 오래된 커피잔, 마당의 새, 그리고 하얀 구름 같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불현듯 아내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그 부유물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과 변해버린 몸, 천천히 사라져가는 기억을 담담히 지켜본다.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움가트너가 얻는 것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잔해들의 생명력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며 얻어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실은 점점 커져만 갈테지만 그래도 상실은 상처만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텅 빈 곳에 스며드는 온기처럼 지나간 것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어떤 감정이 남는다.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 세계를 그가 떠올렸다면, 거기에 어떤 진실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말같은데 바움가트너가 옳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너무 얽매여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전부인 누군가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이 땅에서 그를 떠나갔지만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와 함께했던 세계는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그의 고백이 마음에 남았다.


<바움가트너>는 거대한 사건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다. 상실 이후 기억을 더듬어가며 더 깊어지는 감정의 층위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생의 온기에 대해 묵묵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조용한 소설이 어쩌면 우리 각자의 상실을 통과하게 해줄 또 하나의 작은 빛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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