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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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을 톱아보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설령 그것이 소설 속 인물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부족하다. 그런 내가 감히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논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줄곧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상실을 조용히 따라가면서 오히려 내 안의 미숙함과 조심스러움은 더 또렷해지고 남은 내 생을 어떻게 그려나가야할지는 조금 더 생각이 많아졌다.


지난해 작고한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잃은 노학자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로 어느날 갑자기 떠난 아내의 부재에 대한 상실. 이후의 남은 자의 삶 그리고 흩어져 가는 기억과 남겨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는 상실과 기억이다. 바움가트너는 타버린 냄비, 오래된 커피잔, 마당의 새, 그리고 하얀 구름 같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불현듯 아내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그 부유물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과 변해버린 몸, 천천히 사라져가는 기억을 담담히 지켜본다.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움가트너가 얻는 것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잔해들의 생명력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며 얻어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실은 점점 커져만 갈테지만 그래도 상실은 상처만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텅 빈 곳에 스며드는 온기처럼 지나간 것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어떤 감정이 남는다.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 세계를 그가 떠올렸다면, 거기에 어떤 진실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말같은데 바움가트너가 옳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너무 얽매여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전부인 누군가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이 땅에서 그를 떠나갔지만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와 함께했던 세계는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그의 고백이 마음에 남았다.


<바움가트너>는 거대한 사건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다. 상실 이후 기억을 더듬어가며 더 깊어지는 감정의 층위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생의 온기에 대해 묵묵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조용한 소설이 어쩌면 우리 각자의 상실을 통과하게 해줄 또 하나의 작은 빛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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