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피 누가 쓴 거예요?
이태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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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조금 빌리자면 현직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이자 LG전자, 기아자동차, 일룸 등 다양한 브랜드의 카피를 써온 소위 카피꾼의 책이다. 조금 더 친절하자면 잘 쓰는 사람이 '어떻게' 잘 쓰는지를 나누고 싶어 쓴 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우리다 평소에 좋다고 느꼈던 문장들이 단지 말장난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와 저거 어떻게 썼지'라고 느꼈던 수많은 광고 문장들 속에 어떤 전략과 맥락이 숨어 있었는지를 해부해 보여주는 동시에 실무자들에게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구조와 방향을 10개의 챕터로 들려준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내용도 꽤 포함되어 있다. 팩트의 힘을 보여주는 숫자를 사용하라(ex 1분에 1대씩 팔리는 스마트 모니터), 브랜드 포지셔닝(2등은 2등답게)을 살리는 선을 긋고 생각하라, 따라올 수 없는 1등임을 증명하는 카피, 반복하기, 의미와 재미를 더하기 등 각각의 주제가 되는 챕터에 카피의 구조를 설명하고 사례와 원리를 함께 전달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는 여기다 실무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덧붙인다. 그는 '말을 잘 포장하는 법'이 아니라 '무엇을 말할지 결정하는 법'에 더 무게를 둔다.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라는 선언은 꽤 오래 맴돌았다. 결국 카피는 방향 싸움이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 '방향'을 잡는 일이다. 이는 미사여구나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내가 팔아야 하는 그 무언가가 소비자에게 어떤 명분을 내밀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카피를 센스와 재치의 결과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명분 없는 말장난은 브랜드의 신뢰를 깎는다"고.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가 '왜 이 말에 설득되는가'를 끝까지 고민하고 기록하는 힘이다.


'저희의 의도를 잘 살렸습니다'가 아니라 '소비자의 언어로 바꾸었고 구입할 명분까지 담았습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일견 속이 시원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도 이 문제에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언제쯤 나는 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하는 마케터가 될까.(깊은 한숨)

우리나라에 이런 카피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굳이 카피를 쓰지 않더라도 크리에이티브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법한 책이다. 말이 아니라 '말을 하기까지의 태도'를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한다면 어떻게든 도움은 될 책이다.


언어는 결국 명확한 맥락과 탄탄한 구조 그리고 그것을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사실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꽤 촘촘하게 알려준다.

카피가 어려운 이유는 사실 문장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단지 '문장을 잘 쓰는 법'보다 '생각을 단단하게 하는 법'에 가깝다. 그래서 실무자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말과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어의 태도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부럽다.


이 카피 누가 쓴 거예요?

슬그머니 한쪽에서 손을 들어 올리는 건 얼마나 폼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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