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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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가 작고 빽빽하다. 저녁 먹고 여유롭게 책이나 읽자고 펴든 책인데, 마치 정신의학 강의 교재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각 잡고 읽어야 하나(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고민하다 그냥 책장을 넘기기로 했다. 책은 불안을 설명하거나 치료법을 제시하는 교재이기도 하지만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통찰서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읽는 게 지치지 않고 읽기 쉽다. 어차피 책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외우기는 불가능하니.


어쩌면 산업화 이후 인간의 삶은 날이 갈수록 퍽퍽해졌다. 생의 모든 주기에는 불안의 요소가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이기며 세상을 살아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지나며 이마저 예측 불가능해졌다. 회사의 구조조정, 불안정한 일자리, 금리와 집값의 요동, 기후 위기, 전쟁 뉴스까지. 나의 불안만으로도 벅찬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의 단면을 마주한다. 그렇게 불안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의 세상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고. 불안이 어떠한 결함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내는 인간의 정상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책의 구성은 이론과 사례가 촘촘히 교차한다. 20년 이상의 임상심리 전문가답게 각 챕터마다 실제 환자들의 이야기가 다채로이 등장한다. 공황발작, 징크스, 여행 불안증까지. 그들의 불안은 다르지만, 저자는 공통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그는 불안을 없애려 노력하기보다 그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불안을 다루는 방법으로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 을 강조한다. 이는 불안을 회피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다루는 능력이다.

첫째, 불안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일.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지금 나는 불안하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감정은 이미 통제 가능한 형태로 바뀐다.

둘째, 불안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는 일.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

셋째, 그 감정 속에서도 행동을 선택하는 일. 완벽히 준비되지 않아도, 불안한 채로 한발 내딛는 연습.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책은 불안을 개인의 병리로만 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비교되고 평가받는 사회, 과잉 연결된 온라인 공간, 성취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구조 속에서 불안은 어쩌면 생존 전략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불안을 자기 삶의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불안을 기록하고, 그 감정을 이해하며,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의 인생을 써 내려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병원을 찾기엔 아직 망설여지고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의 불안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불안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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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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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기정학(技政學, 기존의 지정학이 지리가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만 기정학은 기술이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시대를 의미)’ 시대로 접어든 지금, 이 책은 단순한 외교 해설서가 아니다. 기술이 곧 무기가 된 시대에 한국이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묻는다. 2025년 6월, 중앙일보 조사에서 국민의 65%가 한국의 최대 위협으로 '미중 전략 경쟁'을 꼽았다는 사실은 그 질문이 더 이상 정치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 이후의 세계는 이념보다 생존이 더 절박한 곳이 되었다.


책은 성균관대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기획한 지식 콘텐츠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정치, 경제, 기술 분야 전문가 4인이 나눈 대담을 엮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현실의 현실에는 더이상 낭만이라는 자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한국 입장에서의 미중 관계의 핵심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종속'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거대한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으며, 탈출보다는 균형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여전히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트럼프틑 MAGA라는 자기중심적 신념으로 무장한 채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을 던진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트럼프 개인보다 MAGA 현상에 주목한다. 세계화의 그늘, 이민과 불평등, 산업 붕괴 속에서 미국 절반(중산층 이하 백인)의 분노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자라난 결과라는 것이다. 더 이상 미국은 '자비로운 패권국'의 얼굴을 유지할 의지도, 여력도 없다.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저자들의 진단은 싸늘하다.


반면 중국을 향한 미국의 인식은 '배은망덕 프레임'으로 요약된다. WTO 가입을 도와줬더니 이제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서사. 하지만 이 단순한 프레임의 뒤에는 미국 내부의 불안이 숨어 있다. 일자리를 빼앗긴 중산층의 분노가 외부의 적을 필요로 했고 소련이 무너지며 한동안 공석이던 그 표적이 중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딥시크 R1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AI 혁신은 결핍에서 비롯된 생존의 기술이다. 그리고 중국의 기술은 이제는 분야에 따라 미국을 초월해 버리기도 한다.


한국의 현실은 그보다 더 냉정하다. GPU도, AI칩도, 원천 기술도 없다. D램에서조차 중국의 턱밑 추격을 받는다. 책은 "한국은 실존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단언한다. 부정하기 어렵다. 기술 패권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후발 주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다. 기술이 포화된 시점, 비용과 효율의 전쟁에서 한국이 선택할 길은 '가성비 기술', 즉 실용적 혁신이다.


결국 질문은 여기로 수렴한다.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미국의 그늘에 안주할 것인가, 중국의 부상을 묵인할 것인가. 저자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떻게 설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미동맹과 탈중국 사이의 줄타기, 소버린 AI로 상징되는 기술 주권 논의 등은 모두 그 질문의 다른 이름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탈중국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건 필수다. 전략적 모호함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의 시대로 가야 한다.


짧은 책인데 이상하게도 묘한 피로감이 남는다. 세계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는 자각,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우리가 너무 작은 존재라는 실감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냉정한 현실 인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생존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은 말 그대로 레볼루션, 즉 관점의 혁명을 요구한다. 외교를 정치의 부속품으로, 기술을 산업정책의 일부로만 보던 낡은 시선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결국 국가든 개인이든, 스스로의 기술과 판단을 지켜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제는 정교함이 곧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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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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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바람이 들어온다.

낡은 창문이 열리며 먼지와 빛이 함께 흔들린다. 도시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나무와 흙의 냄새가 번져오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숲속 도서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된다. 일본 나라현의 깊은 산중, 버스도 닿지 않는 고택 속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 <루차 리브로>.


대학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저자는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도시 생활이 주는 위화감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3개월여의 입원 생활을 거친 후저자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나라현의 시골로 이주해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열었다. 가장 내밀한 공간을 세상과 나누는 용기, 그것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달라"는 절박한 초대였다. 그 마음에 응답하듯 사람들은 산을 넘고 버스를 갈아타며 그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조용히 서로를 돌보았다. 책과 사람이 맞닿는 자리에서 '치유'는 거창하지 않게 일어났다. 그저 곁에 앉아 함께 읽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책은 그 이야기를 다룬다.


'모른다'란 이제부터 세상을 알아갈 거라는, 혹은 미지를 미지로 남겨두는 단계의 입구에 서 있다는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 알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고 느껴졌던 것일까. 회사의 전략, 관계의 방향, 아이의 마음. 가끔이지만 나도 언제부터인가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나를 토닥인다. 모른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 그 말이 내 안의 빛을 살짝 흔들었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태에도 금세 길들여집니다.

이 문장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업무와 루틴 속에서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달래온 시간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펼치고 오래된 창문을 열어 일상이란 원래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을 그만큼이나 읽어도 이게 어렵다. 오래된 창문을 여는 일, 나를 둘러싼 공기를 다시 느끼는 일. 하긴 이 책을 통해 그걸 알았으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단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다른 풍경을 보여줄 창문이 필요하다.

책이 바로 그 창문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시간, 다른 사람, 다른 삶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을 읽는 일을 '숨구멍'이라 표현한다. 꽉 막힌 공간에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도 그랬다. 루차 리브로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숲속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서가 앞에 서서 내 책들을 바라보았다. 읽다 덮은 책, 언젠가 읽겠다고 쌓아둔 책, 다시 펼쳐야 할 책들. 그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마치 도서관의 창문 같았다. 내가 잊고 있던 질문들이 고요히 떠올랐다. 나는 언제 창문을 닫았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비정상을 일상이라 부르며 살아왔을까.


이 책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사서의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 조금씩 모른 채 살아가도" 그 말이 어쩐지 큰 위로로 남았다. 책은 문이자 창문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다시 살아난다. 루차 리브로에 직접 가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책에 대해서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도 서로 연결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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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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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한 남성이 갓 돌 지난 아이가 한 시간 동안 울어대는 것에 분노하며 부모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비행기를 자주(는 아니지만 오래) 타는 직업이기에 그 고충을 나 또한 누구보다 잘 안다. (두바이 가는 비행기에서 5시간 동안 우는 아이 덕에 한동안 귀가 윙윙거려서 혼났다.)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 아이를 한 번쯤은 쳐다봤겠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고 그 담은 그 부모다. 외항사의 특성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상황에서 스튜어디스도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도 우는 아이를 도와주려 뭐라도 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울기 직전인 부모의 얼굴을 보자면 별 도움이 안 될게 뻔한 총각은 그저 이어폰의 볼륨을 높이는 수밖에. 여하튼 그 게시물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에서 아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사실 아이를 키우기 전엔 나도 '노키즈존'이 불가피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차를 마실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생각마저 '어린이=시끄러운 사람'이라는 편견에 꽁꽁 갇혀 있었다는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아니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생기고 막상 유아차를 밀고 거리를 나서야 알게 되는 세상이 있었다.

턱이 높고 경사로가 없는 인도,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 그마저도 '물건 운반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사납게 아이를 몰아내는 곳들.

백화점의 수유실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지하철이나 작은 도서관의 수유실은 대개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 버려 그냥 굳게 잠겨있는 곳도 많다. 그제야 알게 됐다. 세상이 아이에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함에 대해 조금 생각이 많아졌다.(아 사회고발 책은 아니고 책은 그냥 에세이입니다 ^^;)


첫째, 어린이는 배운 대로 한다.

어린이는 알고 있다. 나쁜 말을 쓰면 안 되고, 쓰레기를 줄여야 하며, 서로 달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른들이 어지럽히는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려 애쓴다.

그런데 그 '배운 대로'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건 정작 어른들이다. 질서를 말하면서 불평등을 만들고 존중을 가르치면서 차별을 합리화한다.

집에서의 말과 밖에서의 행동이 다른 부모들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둘째.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쉬운 말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책은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차별을 선택하는지를 지적한다.

'아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막는 일은, 결국 '노 휠체어 존', '노 시니어 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사고이기도 할뿐더러 사실 문제 상황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제라는 그 쉬운 방법을 무턱대고 이 사회가 선택할 때 우리도 언제든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평등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어렵고 번거롭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스스로 그 번거로운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쉬운 해결책 대신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조율해가는 불편한 방법이 더 합리적이라고.


셋째. 어린이를 '꿈나무'가 아니다.

어린이를 '꿈나무'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가 준비하는 미래의 준비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아이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그들의 '현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어린이는 그 자체로의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넷째. 나는 어른이니까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이 선언이 참 좋았다. 어른이라는 건 대단한 지혜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은 책임의 무게이자, 동시에 관계의 따뜻함이다. 좋은 어른은 조언이 아니라 태도로 가르치고 통제 대신 모범으로 이끈다.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

그런 어른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덜 차갑고, 조금 더 인간다운 얼굴을 되찾게 될 것이다.


비행기 속 아이의 울음이 불편했던 사람들처럼 어쩌면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의 불편이었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를 손가락질하는 누군가도 아이였을 것이고 그도 성장해서 지금은 안 울게 되었을 텐데 그 순간을 기다려준 이들 덕에 우리는 이렇게 자랐다.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일이 우리 모두의 약속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먼저 좋은 어른이 된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좋은 어른을 하나씩 만들어간다면 우리 아이가 자라 만날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어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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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능 시대 -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
김희연 지음 / 이든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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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한 식품회사는 세상을 뒤흔들 제품을 내놓았다. "물만 부으면 케이크 완성!" 광고 문구처럼 간단했다. 밀가루, 설탕, 계란 가루까지 모두 들어있으니 그저 물만 부어 반죽을 굽기만 하면 됐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제품을 사지 않았다.

완벽한 효율, 완벽한 편리함, 완벽한 실패였다.


그 이유를 알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소비자들은 기술의 혁신보다 '정성의 결핍'을 느꼈던 것이다.

"물만 부어 만든 케이크를 대접하다니, 당신은 나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군요!"

그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했다.


회사는 결국 제품의 일부를 거꾸로 되돌렸다. 분말 달걀을 빼고 만드는 이가 직접 계란을 깨 넣게 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케이크 믹스는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고 그토록 외면받던 제품이 시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공감'의 승리였다.


이 사례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축약판이다. 데이터는 정확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효율이 늘 옳은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불편함 속의 의미'를 원한다. 이 인간의 마음을 읽는 능력, 바로 그것이 공감 지능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평균을 읽는 데이터가 아니라, 극단을 읽는 감정에 있다. 까탈스러운 고객의 항의, 작은 불만, 비주류의 목소리 속에는 언제나 혁신의 인사이트 씨앗이 숨어 있다. 숫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읽어내는 능력 그건 오직 인간만이, 그리고 현장에 깊이 개입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AI가 찾아오며 이제 기술의 혁신은 대부분 실리콘밸리와 그들의 리그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의 혁신은 어쩌면 어설픈 기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의 회복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LP의 부활, 독립서점의 성장. 모두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의 가치에서 비롯됐다. 완벽한 디지털보다 불완전한 진심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공감은 또한 브랜드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주는 브랜드는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팬'을 만든다.

한 잔의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루의 위로' 혹은 '새 아침을 시작하는 에너지'가 되는 이유다. 의미를 파는 곳은 언제나 마음이 소비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사이트. 타이밍과 구조의 공존.

좋은 아이디어라도 '때'가 오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LG 스타일러가 그랬다. 황사와 미세먼지, 코로나라는 환경이 시장을 열었지만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꾸준히 시도하고 기다릴 수 있는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일찍 저런 제품을 누가 사용하느냐고 했지만 스타일러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전이 되어버렸다. 실패라 생각한 순간이 사실은 변곡점일 수 있고, 그 방향이 맞다면 조금은 참고 인내하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감은 시간의 언어다. 과거를 검색하고, 현재를 사색하고, 미래를 탐색하기 위한 기초 체력.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꽤 밑줄이 많은데 대충 내가 꽂힌 책의 5가지 인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1. 감정의 가치를 읽는 능력

효율보다 정성을, 편리함보다 의미를 읽는 것이 진짜 혁신이다.


2. AI 시대의 인간적 경쟁력, 스몰 데이터

데이터가 다루지 못하는 미묘한 정서, 즉 '노이즈 속 인사이트' 즉 스몰 데이터를 읽는 감각. 이것이 인간이 현장에서 가진 진짜 경쟁력이다.


3. 아날로그 감성의 재발견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는 아날로그적 진심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차별화 포인트다.


4. 의미의 경제로의 전환

기능보다 감정, 가격보다 의미를 주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공감은 고객을 팬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5. 변화의 타이밍을 읽는 감각

실패 속에서 기회를 감지하고, 작은 변화 속에서 미래의 단서를 읽는 능력. 공감은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또 하나의 감각이다.


나 또한 데이터를 수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숫자는 답을 알려주지만 마음은 이유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읽는 힘 그것이 바로 AI가 창궐하는 공감 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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