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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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한 남성이 갓 돌 지난 아이가 한 시간 동안 울어대는 것에 분노하며 부모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비행기를 자주(는 아니지만 오래) 타는 직업이기에 그 고충을 나 또한 누구보다 잘 안다. (두바이 가는 비행기에서 5시간 동안 우는 아이 덕에 한동안 귀가 윙윙거려서 혼났다.)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 아이를 한 번쯤은 쳐다봤겠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고 그 담은 그 부모다. 외항사의 특성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상황에서 스튜어디스도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도 우는 아이를 도와주려 뭐라도 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울기 직전인 부모의 얼굴을 보자면 별 도움이 안 될게 뻔한 총각은 그저 이어폰의 볼륨을 높이는 수밖에. 여하튼 그 게시물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에서 아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사실 아이를 키우기 전엔 나도 '노키즈존'이 불가피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차를 마실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생각마저 '어린이=시끄러운 사람'이라는 편견에 꽁꽁 갇혀 있었다는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아니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생기고 막상 유아차를 밀고 거리를 나서야 알게 되는 세상이 있었다.

턱이 높고 경사로가 없는 인도,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 그마저도 '물건 운반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사납게 아이를 몰아내는 곳들.

백화점의 수유실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지하철이나 작은 도서관의 수유실은 대개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 버려 그냥 굳게 잠겨있는 곳도 많다. 그제야 알게 됐다. 세상이 아이에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함에 대해 조금 생각이 많아졌다.(아 사회고발 책은 아니고 책은 그냥 에세이입니다 ^^;)


첫째, 어린이는 배운 대로 한다.

어린이는 알고 있다. 나쁜 말을 쓰면 안 되고, 쓰레기를 줄여야 하며, 서로 달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른들이 어지럽히는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지려 애쓴다.

그런데 그 '배운 대로'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건 정작 어른들이다. 질서를 말하면서 불평등을 만들고 존중을 가르치면서 차별을 합리화한다.

집에서의 말과 밖에서의 행동이 다른 부모들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둘째.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쉬운 말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책은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차별을 선택하는지를 지적한다.

'아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막는 일은, 결국 '노 휠체어 존', '노 시니어 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사고이기도 할뿐더러 사실 문제 상황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제라는 그 쉬운 방법을 무턱대고 이 사회가 선택할 때 우리도 언제든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평등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어렵고 번거롭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스스로 그 번거로운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쉬운 해결책 대신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조율해가는 불편한 방법이 더 합리적이라고.


셋째. 어린이를 '꿈나무'가 아니다.

어린이를 '꿈나무'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가 준비하는 미래의 준비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아이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그들의 '현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어린이는 그 자체로의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넷째. 나는 어른이니까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이 선언이 참 좋았다. 어른이라는 건 대단한 지혜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은 책임의 무게이자, 동시에 관계의 따뜻함이다. 좋은 어른은 조언이 아니라 태도로 가르치고 통제 대신 모범으로 이끈다.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

그런 어른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덜 차갑고, 조금 더 인간다운 얼굴을 되찾게 될 것이다.


비행기 속 아이의 울음이 불편했던 사람들처럼 어쩌면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의 불편이었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를 손가락질하는 누군가도 아이였을 것이고 그도 성장해서 지금은 안 울게 되었을 텐데 그 순간을 기다려준 이들 덕에 우리는 이렇게 자랐다.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일이 우리 모두의 약속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먼저 좋은 어른이 된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좋은 어른을 하나씩 만들어간다면 우리 아이가 자라 만날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어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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