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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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기정학(技政學, 기존의 지정학이 지리가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만 기정학은 기술이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시대를 의미)’ 시대로 접어든 지금, 이 책은 단순한 외교 해설서가 아니다. 기술이 곧 무기가 된 시대에 한국이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묻는다. 2025년 6월, 중앙일보 조사에서 국민의 65%가 한국의 최대 위협으로 '미중 전략 경쟁'을 꼽았다는 사실은 그 질문이 더 이상 정치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 이후의 세계는 이념보다 생존이 더 절박한 곳이 되었다.


책은 성균관대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기획한 지식 콘텐츠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정치, 경제, 기술 분야 전문가 4인이 나눈 대담을 엮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현실의 현실에는 더이상 낭만이라는 자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한국 입장에서의 미중 관계의 핵심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종속'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거대한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으며, 탈출보다는 균형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여전히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트럼프틑 MAGA라는 자기중심적 신념으로 무장한 채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을 던진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트럼프 개인보다 MAGA 현상에 주목한다. 세계화의 그늘, 이민과 불평등, 산업 붕괴 속에서 미국 절반(중산층 이하 백인)의 분노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자라난 결과라는 것이다. 더 이상 미국은 '자비로운 패권국'의 얼굴을 유지할 의지도, 여력도 없다.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저자들의 진단은 싸늘하다.


반면 중국을 향한 미국의 인식은 '배은망덕 프레임'으로 요약된다. WTO 가입을 도와줬더니 이제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서사. 하지만 이 단순한 프레임의 뒤에는 미국 내부의 불안이 숨어 있다. 일자리를 빼앗긴 중산층의 분노가 외부의 적을 필요로 했고 소련이 무너지며 한동안 공석이던 그 표적이 중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딥시크 R1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AI 혁신은 결핍에서 비롯된 생존의 기술이다. 그리고 중국의 기술은 이제는 분야에 따라 미국을 초월해 버리기도 한다.


한국의 현실은 그보다 더 냉정하다. GPU도, AI칩도, 원천 기술도 없다. D램에서조차 중국의 턱밑 추격을 받는다. 책은 "한국은 실존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단언한다. 부정하기 어렵다. 기술 패권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후발 주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다. 기술이 포화된 시점, 비용과 효율의 전쟁에서 한국이 선택할 길은 '가성비 기술', 즉 실용적 혁신이다.


결국 질문은 여기로 수렴한다.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미국의 그늘에 안주할 것인가, 중국의 부상을 묵인할 것인가. 저자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떻게 설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미동맹과 탈중국 사이의 줄타기, 소버린 AI로 상징되는 기술 주권 논의 등은 모두 그 질문의 다른 이름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탈중국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건 필수다. 전략적 모호함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의 시대로 가야 한다.


짧은 책인데 이상하게도 묘한 피로감이 남는다. 세계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는 자각,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우리가 너무 작은 존재라는 실감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냉정한 현실 인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생존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은 말 그대로 레볼루션, 즉 관점의 혁명을 요구한다. 외교를 정치의 부속품으로, 기술을 산업정책의 일부로만 보던 낡은 시선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결국 국가든 개인이든, 스스로의 기술과 판단을 지켜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제는 정교함이 곧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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