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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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가 작고 빽빽하다. 저녁 먹고 여유롭게 책이나 읽자고 펴든 책인데, 마치 정신의학 강의 교재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각 잡고 읽어야 하나(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고민하다 그냥 책장을 넘기기로 했다. 책은 불안을 설명하거나 치료법을 제시하는 교재이기도 하지만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통찰서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읽는 게 지치지 않고 읽기 쉽다. 어차피 책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외우기는 불가능하니.


어쩌면 산업화 이후 인간의 삶은 날이 갈수록 퍽퍽해졌다. 생의 모든 주기에는 불안의 요소가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이기며 세상을 살아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지나며 이마저 예측 불가능해졌다. 회사의 구조조정, 불안정한 일자리, 금리와 집값의 요동, 기후 위기, 전쟁 뉴스까지. 나의 불안만으로도 벅찬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의 단면을 마주한다. 그렇게 불안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의 세상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고. 불안이 어떠한 결함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내는 인간의 정상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책의 구성은 이론과 사례가 촘촘히 교차한다. 20년 이상의 임상심리 전문가답게 각 챕터마다 실제 환자들의 이야기가 다채로이 등장한다. 공황발작, 징크스, 여행 불안증까지. 그들의 불안은 다르지만, 저자는 공통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그는 불안을 없애려 노력하기보다 그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불안을 다루는 방법으로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 을 강조한다. 이는 불안을 회피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다루는 능력이다.

첫째, 불안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일.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지금 나는 불안하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감정은 이미 통제 가능한 형태로 바뀐다.

둘째, 불안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는 일.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

셋째, 그 감정 속에서도 행동을 선택하는 일. 완벽히 준비되지 않아도, 불안한 채로 한발 내딛는 연습.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책은 불안을 개인의 병리로만 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비교되고 평가받는 사회, 과잉 연결된 온라인 공간, 성취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구조 속에서 불안은 어쩌면 생존 전략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불안을 자기 삶의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불안을 기록하고, 그 감정을 이해하며,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의 인생을 써 내려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병원을 찾기엔 아직 망설여지고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의 불안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불안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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