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평점 :
책을 펼치면 바람이 들어온다.
낡은 창문이 열리며 먼지와 빛이 함께 흔들린다. 도시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나무와 흙의 냄새가 번져오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숲속 도서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된다. 일본 나라현의 깊은 산중, 버스도 닿지 않는 고택 속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 <루차 리브로>.
대학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저자는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도시 생활이 주는 위화감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3개월여의 입원 생활을 거친 후저자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나라현의 시골로 이주해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열었다. 가장 내밀한 공간을 세상과 나누는 용기, 그것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달라"는 절박한 초대였다. 그 마음에 응답하듯 사람들은 산을 넘고 버스를 갈아타며 그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조용히 서로를 돌보았다. 책과 사람이 맞닿는 자리에서 '치유'는 거창하지 않게 일어났다. 그저 곁에 앉아 함께 읽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책은 그 이야기를 다룬다.
'모른다'란 이제부터 세상을 알아갈 거라는, 혹은 미지를 미지로 남겨두는 단계의 입구에 서 있다는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 알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고 느껴졌던 것일까. 회사의 전략, 관계의 방향, 아이의 마음. 가끔이지만 나도 언제부터인가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나를 토닥인다. 모른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 그 말이 내 안의 빛을 살짝 흔들었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태에도 금세 길들여집니다.
이 문장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업무와 루틴 속에서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달래온 시간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펼치고 오래된 창문을 열어 일상이란 원래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을 그만큼이나 읽어도 이게 어렵다. 오래된 창문을 여는 일, 나를 둘러싼 공기를 다시 느끼는 일. 하긴 이 책을 통해 그걸 알았으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단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다른 풍경을 보여줄 창문이 필요하다.
책이 바로 그 창문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시간, 다른 사람, 다른 삶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을 읽는 일을 '숨구멍'이라 표현한다. 꽉 막힌 공간에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도 그랬다. 루차 리브로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숲속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서가 앞에 서서 내 책들을 바라보았다. 읽다 덮은 책, 언젠가 읽겠다고 쌓아둔 책, 다시 펼쳐야 할 책들. 그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마치 도서관의 창문 같았다. 내가 잊고 있던 질문들이 고요히 떠올랐다. 나는 언제 창문을 닫았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비정상을 일상이라 부르며 살아왔을까.
이 책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사서의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 조금씩 모른 채 살아가도" 그 말이 어쩐지 큰 위로로 남았다. 책은 문이자 창문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다시 살아난다. 루차 리브로에 직접 가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책에 대해서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도 서로 연결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