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피니
코너 오클레어리 지음, 김정아 옮김 / 가나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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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유의 책이다. 500페이지 이상의 깊이 있게 오직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한 '사람'에 대한 보고서. 카더라의 시대에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사람의 일생에 가감 없이, 그리고 깊게 기록하고 톺아보는 책. 이 작업 이후의 그에 대한 평가는 세상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서머리의 시대, 빨리 감기, 요약의 시대라지만 여전히 난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척 피니'를 검색하면 프로필에 그 흔해 빠진 사진 한 장이 없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처럼 검색창에 이름만 올려도 그의 배경부터 업적, 칭송해 마지않는 이들의 평가와 달리 척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에게 알려진 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척은 뉴저지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카드, 샌드위치를 팔며 탁월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20살부터 본격적으로 면세점 사업을 시작하여 그는 이내 억만장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꼭대기에 그는 올라섰지만, 그는 한 번도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삶 전체는 사실 돈에 대한 모순으로 가득했다는 점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부동산을 여러 채 샀지만 정작 본인은 한 번도 그곳에 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담배상이었지만, 흡연이라면 질색했다. 면세점의 왕이라 불렸지만 본인은 정작 루이뷔통의 가방 하나 들지 않았다. 물건을 파는 장사치면서도 소비주의를 탓하며 크리스마스를 싫어한다.

척에 대해 띄엄띄엄 알고 있던 사실들이 꿰맞춰지면서 사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잘 버는 것만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는데 이 사람은 벌기만 했지 쓰는 것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이 먼저고, 가족은 다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정말이지 일에 대해 진심이었는데 그의 진짜 관심은 그다음에 있었다. 그는 성공의 잣대를 부를 쌓는 게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효과 있게 나눠주느냐로 잡았다. 지근거리의 사람들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지만 그는 평생을 15불 싸구려 시계를 차고선 '왜 롤렉스를 차느냐' 되물었고 리무진이나 버스나 좌석은 똑같다며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리고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남을 위해 주었다. 그의 기부금액은 오래전 카네기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한다.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생각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를 이용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요. 나는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내가 자랐던 방식대로요. 내가 보기에는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사람의 기질이 어느 정도 형성됩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려고 했지, 부유해지려 한 게 아닙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셨어도 부유해지지 못하셨어요.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늘 주위를 살피셨지요.(p.417)


'그가 도대체 왜 이럴까'가 책을 읽는 내도록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세상을 위한 대단한 희생이나 헌신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정말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고, 단지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이가 없는지 돌아보았던 것뿐이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그리고 이것을 정말로 좋아했다. <포브스>는 이런 척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 손으로는 신문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은 철제 난간을 붙잡은 이 작달만한 뉴저지 출신 인사를 뒤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 패트릭 이후로 누구보다 아일랜드에 크게 이바지했을 이 사람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천천히 역에서 나왔다. 누구 하나 피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피니가 좋아하는 방식이었다.(p.503)


최근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하며 일단 부를 쌓고 그것으로 행복해지겠다는 이들을 주변에서 꽤 자주 본다. 나는 척이 돈이 많은 사람보다, 행복하게 일생을 보낸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아들은 척을 이렇게 기억한다.


사실 아버지는 아주 행복하게 살아요. 당신이 바라는 삶을 살죠. 책과 신문 읽기, 뉴스 듣기를 좋아하고 와인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죠. 실제로 웬만한 사람보다 아버지가 행복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부와 행복의 상징, 이를테면 잡지 표지에 얼마나 자주 실리느냐, 얼마나 큰 차를 모느냐로 사람을 평가하잖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에게 맞는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당신만의 생각이 있어요.(p.419)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척을 소개하려 한다. 자유와 행복은 아마 그곳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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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을 통해서 본 성형 이야기 -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이 될 수 있다면
김인규 지음 / 아마존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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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정중앙에 얼굴에 조금 부끄러운 구멍이 있다. 어릴 적에는 그냥 그거 '장민혁이라는 표시'야라 웃어넘겼는데, 언제부턴가 신경 쓰이는 게 이 녀석을 꼭 한번 해결하고 싶어졌다.(털도 삐져나옴) 나이 마흔에 난생처음 피부과를 갔다. 내 코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선생님은 이 녀석의 병명을 '피지 낭종'이라고 했다. 코 안에 피지를 키워내는 동굴이 있고 그 녀석을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려면 코를 세로로 째야 하는데 상처가 커지기에 본인은 할 수 없다고 성형외과로 가란다. 어떻게 안되겠냐고 사정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노'였다. 수술 안 하겠다는 의사는 또 처음.


그래서 성형외과를 갔다. 평생 성형외과를 와 볼 거라고 상상도 한적 없기에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3군데의 성형외과를 돌아봤는데 병원이라기보다 카페를 방불케하는 분위기가 일단 낯설었고, 간호사가 아니라 매니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꾸 친절하게 불러주는 것도 왠지 불편했다. 뷰가 꽤 좋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기다렸고, 이윽도 들어간 상담실에서의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상담을 받는데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성형외과는 상담 시에는 돈을 안 받고 수술이나 시술 시에만 돈을 받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뭐랄까. 모르면 눈뜨고 코 베일 것 같은 느낌. 근데 이걸 어디서 어떻게 알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 그렇게 치일 피일 미루던 중에 이 책이 왔다.


10년 이상 꾸준히 언론에서 칼럼을 쓰셨다는 성형외과 원장님이 쓴 책은 성형외과에서 진행하는 거의 모든 치료에 대해 알려준다. 어떤 걸 어떻게 고치고 싶을 때 관련 시술과 수술은 어떤 것이 있는지, 또 연예인을 사례로 들어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도 대략적으로 나마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무턱대고 성형외과를 찾아가 부끄러울 수 있을 가능성을 사전 차단할 수 있다. 사전 정보,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어 과잉치료를 예방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의사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기왕 하는 수술 알고 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현장에 앉아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내 지갑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책은 덤으로 성형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법에 대한 팁을 알려주는데 이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겐 소소한 꿀팁이기도 했다.

성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한 번 정도는 읽어볼 짐 하다.


*아, 내 코는 아직 구멍이 난 채로 있다. 성형외과 원장님 세분의 의견이 분분해서 서울 쪽으로 옮겨볼까 생각 중이고, 그럼 귀찮은 데라는 생각이 현재는 훨씬 더 큰 뭐 그런 상태.

*이 책은 @bookmessenger 에게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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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기가 싫어 - 달리고 싶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
브렌던 레너드 지음, 김효정 옮김 / 좋은생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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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한계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이 교훈을 이해했다면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다. _알렉산드라 헤민슬리(p.131)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은 사랑에 푹 빠진다기 보다 사랑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쪽에 가깝다. 시작할 때는 괴롭지만 끝내고 나면 상쾌하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썩 나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면 조금 좋아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달리기 없이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고, 참 묘하게도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건가?' 싶어진다(p.15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읽으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외국 저자가 쓴 책은 어지간히 잘 쓰지 않고선 웃길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의 장르가 코미디도 아닌데 그랬다. 츤데레라고 하나? 책 제목처럼 시니컬하게 '나 달리기가 싫어'라고 할 말 다 하면서 툭툭 달리기를 영업하는 저자의 태도라니. 아 나 이런 거 너무 사랑한다.


나도 달리기가 싫다. 저자는 잘 달리면서 싫다고 하는 거지만 나는 정말이지 어릴 때부터 달리기가 싫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 꼴등은 늘 나였고, 달리기가 모든 운동의 근본인지라 나는 모든 운동을 못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가 있는 날은 '엄마나 학교 안 가'를 외치다 등짝 스매싱을 불렀고, 내 친구들이 축구다 계주다 한 명씩 출전하는데 가만히 앉아 응원만 해야 하는 신세는 늘 고역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체육시간이 따로 없는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루즈한 생활 속에 나의 한계 뭐 이런 걸 깨고 싶었던 것인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혹은 다들 달리는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날 백화점에서 러닝화 한 켤레와 체육복 몇 벌을 샀다. 그리고 무작정 동네 호숫가를 뛰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호수는 한 바퀴가 정확히 2km이다. 다섯 바퀴를 무리 없이 뛰면 사람들이 한다는 10km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목표는 10km 완주가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을 거의 매일 공원을 두 바퀴 혹은 세 바퀴씩 달렸다. 처음에는 500m만 달려도 죽을 것 같던 숨이 점차 반바퀴, 한 바퀴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떻게 5km를 쉬지 않고 물도 안 먹고 뛸 수 있냐고 했지만 그 어려운 걸 어느 순간 나는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10km 단축마라톤에 도전했다.


대회가 열리는 주에 처음으로 10km를 미리 뛰어보기로 했다.(이전에 난 한 번도 10km를 뛰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8km를 넘어가지는 지점에서 다리가 풀리고 온몸이 죽을 것 같이 아팠다. 그리고 달리기를 멈춰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대회장으로 가는 내도록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날 처음으로 10km를 뛰고 또 걸었다. 누가 달리기를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쫓아 무작정 뛰었다. 페이스메이커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를 느끼며 3km를 넘어서는 순간 몸이 아파졌다. 그랬다. 내가 같이 뛰던 사람들은 킬로당 4분대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이었다. 오버 페이스에 큰일 났다 싶어 일단 물주는 부스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때 꽤 처음 보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간혹 나처럼 죽기 살기의 각오로 뛰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지나자 그저 즐거운 표정으로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이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코스튬을 하고, 큰 깃발을 높이 휘저으며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나는 그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리고 웃었다. 하늘이 보였고, 바람이 느껴졌고, 귀에 꽂은 음악이 즐거웠다. 그렇게 뛰고 걷고 먹고를 반복하며 결국은 골인 지점에 다다랐다. 봉사자님이 메달을 건네주었고 속으로 '와 이게 되네'를 외쳤다. 나의 첫 번째 마라톤이다. 그리고 난 그 해에 다섯 번의 마라톤에 나갔다. 가장 멋졌던 건 광안대교를 달리던 부산마라톤이었다.


처음 참여한 마라톤에서 나는 실로 달리기는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4년 동안 나름의 페이스로 꾸준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도 달리는 게 싫다. 오늘의 달리기는 내가 나에게 낸 숙제의 다른 이름이고 해치워야 할 목록의 최상단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러닝화 끈을 고쳐 묶는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에(p.40)


나도 달리기가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나도 러너다. 다시 운동화 끈을 메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를.



* 이 서평은 좋은생각서평단 포지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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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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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안나 선배는 몇 년 전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서 처음 만났다.(같은 사회복지사라고 나 혼자 그냥 선배로 퉁치기로 결정.) '1천 권 독서법'이라는 책이 유명했던 모양이고, 그래서 그걸 바탕으로 독서와 관한 사회복지사의 리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회복지사들은 보통 1년에 한 번인 보수교육에 시큰둥하다. 그런데 이날은 웬일로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13년째 듣는 보수교육 중 몇 안 되는 기억에 남는 강의가 되었다. 이때가 하필 사회복지사 리브랜딩, 글쓰기 뭐 이런 거에 다들 관심이 쏠리던 시절이어서 평소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책은 선배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책을 통해 책의 요약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쓰고 싶은 류의 글쓰기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이 공간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선배의 삶이 이런 상처로 얼룩졌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센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했다. 책이나 다른 루트로 들어온 선배의 삶을 알기에 제목처럼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이제 그만 넣어두셨으면 좋겠다. 선배 참 열심히 사셨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선배는 행복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이 말은 옳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좇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만 기본적으로 행복하다는 감정은 행위가 아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누군가로부터 벅차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믿음, 감정. 그래서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의지. 이것은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곁에 없어도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존감의 기틀이 된다. 물론 어릴 적 부모의 사랑으로 이것이 만들어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조기교육을 주창하는 어느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난 자존감이 어릴 때만 형성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이가 적던 많던, 성별이 어떻건, 장애를 가졌건, 모든 순간 모든 공간에서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나를 세워갈 수 있다. 사람은 본연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꺼내기 힘든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 선배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배를 선배답게 하는데 책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이 도구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음악일 수도, 영화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다시 세상과 관계 맺는 접점이고 그 가운데 주고받는 사랑과 존중의 감정일 테니. 이는 사회복지의 기본 정신이도 하며, 선배가 좋은 사회복지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사실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릴 적 내가 볼 수 있는 영상물은 한정되었으니 어쩌면 책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책에는 TV 보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꼭 그랬다. TV를 모든 문맥, 모든 대사를 놓치지 않으려 귀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보는 이는 없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고요한 공간에서 경건하게 책을 읽기보다, TV를 켜놓은 거실에서 읽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읽다 잠들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이 책을 자기계발의 도구로, 공부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튜브 보듯, TV 보듯, 친구 만나듯 그냥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쉽게 읽히는 에세이는 삶에 대해서, 사랑받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책에 대해서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나는 사랑받고 살고 있는가? 대답해 볼 만한 고민거리다.



* 한 가지 '사회복지'는 이제 고유명사로 사용되는데 띄어쓰기가 '사회 복지', '사회 복지사'로 되어있는 점이 사회복지사의 한 사람으로 좀 마뜩잖았다. 2쇄가 나온다면 이 부분은 수정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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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둥글게 살 필요는 없어 - 삶에, 사랑에, 일에 지친 당신을 위한 위로의 문장
쓰담 지음 / 달콤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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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좋아한다. 중학교 때 우연히 들은 '박소현의 FM 데이트' 이후 지금도 밤 10시는 내게 드라마가 아니라 라디오의 시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라디오는 팟캐스트로 꼭 다시 듣는다. 라디오에서 처음 들은 노래가 위로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의 사연에 깔깔대기도 했고 혹여 내 사연이 읽히는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특히나 모든 라디오의 시작, 좋은 글귀나 문장을 읽어주는 오프닝을 좋아했는데 라디오 작가들은 어디서 매일 저런 글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신기해하기도 했다.


<애써 둥글게 살 필요는 없어>라는 책 제목은 아마도 둥글둥글하게 살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가르침에 대한 반작용일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부터 부모 혹은 어른들로부터 00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듣고 자랐고 거기다 욱하며 욕지기 한 번쯤 뱉어보고 싶었을 것 같다. 그냥 나대로 살게 좀 내버려 두세요 좀.


제법 공격적인 제목과 달리 책은 꼭 라디오의 오프닝 문장 같다. 적어두고 싶은 글, 보관해 뒀다가 꼭 다시 읽고 싶은 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 그런 글타래가 예쁘게 묶인 책이다. 예쁜 책이다. 오랜만에 예쁜 책을 만났다.


처음에는 한 시간 안에 끝내리라 다짐을 하고 책을 펼쳤는데, 절반쯤 읽고 이내 접었다. 책상 한편에 꽂아두고 처음부터 하루에 몇 페이지씩 천천히 읽을 생각이다. 하루의 시작에 라디오의 그것처럼 한 장씩 읽어도 좋을 것만 같다. 아니 오늘의 운세처럼 아무 곳이나 펴고 읽어도 재밌을 것이다. 사람에 지친, 관계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저자의 위로는 정답고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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